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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825주일오전예배/정광수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복음적인 갱신 |
성경 | 사도행전 11:1-9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사도행전 11:1-9)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녹취자료 |
조선 후기 역사를 보면 1800년대 전까지는 한국이 앞섰습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게 되면 한국의 선진문물을 받기 위해서 일본이 들썩였을 정도였어요. 그때 당시의 한국은 쇄국 정책 때문에 외국과 교류를 갖지 않았지만 유럽열강은 범선을 띄워서 아시아와 남미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은 빠르게 문호를 개방해서 맞아들였는데 어느 나라와 가장 친했는가 하면 영국이었어요. 그래서 일본 자동차의 운전석이 우측에 있죠? 영국식입니다. 또 영국 해군이 일본 해군을 훈련시키고 군함 만드는 기술도 전수해주었습니다. 영국 군인들이 인도 카레 먹는 모습을 보고 따라 만든 것이 일본 카레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해외 문물과 우리 나라의 성리학도 받아들여서 모든 학교에 적용했어요. 친절하고, 정직한 민족으로 정신 개조하는데 성리학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전통에 머무르면서 갱신하지 않았고 일본은 갱신했어요. 결국 일본에 36년간 지배받게 되었죠. 일본은 미국과 대항해 싸울 만큼 강한 나라가 되었어요. 패전 이후에도 또다시 전자, 자동차, 철강 국가로 일어나게 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가 포항제철과 협력했던 회사인데, 1973년 포항제철에서 제 2기 100만톤 증설공사를 했었어요. 그 공사예산이 3조였어요. 그런데 1972년 국가 예산이 3조였어요. 어마어마한 도전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일본의 신일본제철은 이미 1000만톤 규모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의 회사 자산규모가 우리 나라 국가예산의 열 배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비참하더라고요. 야... 정말 일본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 후 자만해져서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나 디지털시대로 변화가 일어나 놀랍게도 개인 국민소득 GMI가 일본보다 앞섭니다. 무역 규모도 일본보다 앞서고 있어요. 국가도 갱신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겁니다. 국가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도, 교회도 갱신하지 못한다면 실패하게 됩니다.
갱신해야 한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가치관과 습관이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싫어하게 만들어요. 갱신하지 않으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맙니다. 1980년대까지 우리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했었어요. 그래서 미국의 코닥이나 일본의 후지필름이 아주 판매를 잘 했었죠. 원조였던 코닥은 사실 디지털기술의 원천을 개발했었어요. 그런데 필름이 너무 잘 팔리니까 더이상 개발하지 않고 던져둔 거예요. 그러다가 디지털시대가 와서 필름이 필요없게 되자 그 결과 코닥은 이름도 없는 소규모 회사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오늘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봐야하는데, 갱신의 기준이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복음의 갱신입니다. 아무리 갱신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본질이 훼손된다면 잘못된 갱신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사단에게 속고, 죄를 범해 하나님을 떠나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갱신해야 하는 거죠? 근본문제 즉, 문제의 시작이 어디인지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3장입니다. 이 문제의 유일한 해답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 분이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우리는 이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는 갱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배의 순간에도 갱신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하면서도 갱신하셔야 합니다. 기도속에서도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 어떻게 전도자의 삶을 살것인가? 갱신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메시지 들어도 갱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복음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교회가 어떻게 갱신해야 하는지 찾아야 합니다. 4차 산업시대, AI시대에 맞게 복음안에서 갱신해가야 합니다. 제가 파키스탄 선교를 하면서 1년에 세 차례밖에 못 가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갱신한 것이 줌으로 전도학교를 세워서 매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 시대에 맞춰 어떻게 내 삶을 갱신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떻게 내 자신이 복음을 체험하고 누릴 것인가?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이루는 곳에 나는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절대 언약을 깨닫고 이 여정을 걸어가서 절대 목표를 이루도록 쓰임 받을 것인가?
오늘날 시대상을 누가 제일 잘 아실까요?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장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누가 알고 계실까요? 성령님이 알고 계세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께 내 인생을 맡기면서 오늘 우리는 갱신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을까요? 그분이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 나를 상담하시고 인도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기도해야 하나요?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깨달은 것을 가지고 갱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할례‘라는 제도는 창세기17:9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권속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본거죠. 할례라는 것은 신약 시대에 세례를 받는 것과 사실 같습니다. 가톨릭이 이걸 오해를 해서 영세만 받으면 지옥에 안 간다고 가르치죠. 할례의 의미를 같이 본 겁니다. 유대 민족이 가지고 있는 신관과 구원관과 복음관이 다른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겁니다. 이방인 들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고 오로지 지옥의 불쏘시개 감으로 본거죠. 만야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려면 신앙 고백을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 백성이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초대교회도 할례장이 나와서 예수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천당에 간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예수님 지상 명령도 이들이 틀리게 해석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걸 뭐로 해석한 것인가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과 복음관을 가지고서 생각을 하는 겁니다. 모든 족속은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땅 끝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온 천하를 다니며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걸 못 벗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선민이고 이방인들은 개같은 존재로 서로 밥도 먹지 않았어요. 어떻게 개같은 자들과 밥을 같이 먹고 복음을 전하냐. 이게 유대인이 가졌던 전통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대지도자인 베드로가 이 모든 규휼을 버리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집에 가서 같이 음식먹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왔습니다. 이들 크리스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거죠. 가장 모범적으로 전통을 지켜야 최고의 사도가 어떻게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인가 힐난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 역사에 가장 먼저 일어난 청문회입니다. 청문회 대상자로 베드로를 세워놓고 잘못을 지적합니다. 여기에 앞장 선 사람들이 누구인 것인가. 예루살렘 교회 중직자들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지만 그들의 생각과 관습 속에는 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갱신이 안되고 있는 것들이에요. 껍데기는 복음인데 속 알맹이는 복음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아요.
우리 한국 사람의 기본 영적상태가 무엇인가 알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기본 바탕은 무속신앙이에요. 이게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1천년동안에 불교사상이 들어왔죠. 그리고 고려말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에 유교사상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영적사상은 3가지입니다. 무속사상, 불교사상, 유교사상. 무속사사의 핵심은 신비입니다. 지금도 남아있어요. 손 없는 날 찾아서 이사하죠. 손재수 없는 날 선택하고 재수없다고 하죠. 전부 여기서 나온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불교문화에서 온 것이 뭔가 착하게 사는 겁니다. 선행강조하는 것 이게 밑바탕에 깔려있어요. 그리고 유교를 통해서 윤리 도덕을 강조하고 율법적인 삶을 살도록 강조하는 게 밑바닥 속에 다 깔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정신은 이 세가지가 융합되어서 우리 한국 사람의 기본 밑바닥 속에 다 깔려있는 겁니다.
여러분 대웅전 절에 가면 뒤편에 뭐가 있는가요. 그 위에 칠성각이 있고 산신각이 있어요. 원래 불교에는 칠성각과 산신각이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무속신앙과 합쳐진거죠. 칠성신은 뭐하는 거죠. 애기 낳을 때 점지해주는 그 무속신이 칠성신이요. 산신각에서는 뭐하죠? 그 산의 신을 섬겨야 되는 거죠. 여러분 산신각에 가면 다 뭘 걸어놨는지 압니까. 호랑이를 걸어놔요. 그 산을 지켜야 되니까.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 밑바탕입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이 유교사상이 얼마나 우리를 지배한지 압니까. 처음에 60년대까지는 남녀가 섞여서 예배를 못드렸어요. 중간에 커튼치고 남녀를 분리해서 앉았죠. 남녀칠세부동석 같이 앉으면 안됐잖아요. 청바지 입고 왔다고 쫓겨나고 짧은 바지 입고 와도 쫓겨나요 슬리퍼 신고 들어왔다고 교회 못들어오고. 전혀 복음과 상관 없는 것들이 교회를 사로잡았었어요. 자, 그리고 다락방 복음운동이 들어왔어요. 이 복음이 들어갔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속신앙과 불교가 가진 선행과 율법주의 바탕 위에 복음이 포장이 된거죠. 이게 서로간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신비에 빠졌던 분들은 거의 90%가 다른 것 하다가 다 떠나갑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안 맞거든요. 기본 자기의 체질과 안맞아요. 누구가 또 떠나가는 것인가. 선행 구원을 강조하셨던 분들 복음 받았다가 다시 다 떠나갑니다. 지금 다락방에 문제 일으키는 분들 밑바닥 속에 뭐가 들어있는 것이죠. 율법이 다 깔려있는 겁니다. 이게 갱신이 안된거죠. 그래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 갱신을 해야하는데 기존 신자들이 갱신이 어려워요. 제가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을 때 간사가 우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불신자는 복음 전해서 제자 만드는 3년이면 되는데 기존 신자는 6년 걸린대요. 왜 6년 걸리냐했더니 잘못 들어있는 것 꺼내는데 3년, 다시 제대로 넣는데 3년. 그만큼 뭐가 어렵다는거죠. 잘못 들어간 것 갱신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오늘 메시지 핵심 자체가 뭘 얘기하는 건가요? 복음적인 갱신입니다. 정말 성도의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오직 그리스도가 이게 갱신이 안 돼요. 오직 하나님 나라가 갱신이 안 돼요. 오직 성령충만이 갱신이 안 돼요. 우리는 말씀 속에 들어가져서 오늘 우리가 무슨 결단을 해야 될까요? 이 갱신을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2.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대로 설명하여 이르되..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대로 설명하여 이르되.. 여기서 베드로가 오늘 본문을 보면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이방인과 같이 음식을 먹고 복음을 전한 것 내가 자발적으로 한 것 아니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 거다. 세 번씩이나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내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11장 15절을 보면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말했다 그러죠. 그리고 나서 복음을 전했더니 성령이 그때 임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누가 막겠느냐? 베드로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죠? 내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한 것 뿐이다 그러죠.
여기서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역사를 보세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천하 인간 중에 구원 받을만한 다른 인물을 주신 적이 없다고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합니까? 그런데 베드로에게 뭐가 없는 것인가? 선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 세계복음화란 사실 자체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분명히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증거하라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이게 가슴에 안 담겨지는 거예요. 베드로 가슴 속에 여전히 선민사상과 여호와는 우리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구원의 대상이 유대인이라는 이 고정관념 자체가 베드로의 뇌에 박혀있는 거예요. 베드로는 누군가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바로 베드로의 영적 상태는 뭘 말하고 있을까요? 바로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갖고 있는 그 생각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예루살렘 교회가 가진 선민사상과 율법주의로는 세계복음화가 더디다고 생각을 하신 겁니다. 이들을 갱신시켜서 세계복음화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11장 19절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중심에서는 세계복음화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시고서 선교의 푯대를 안디옥 교회로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뭐를 못한거죠? 갱신을 못한 것이에요. 왜 여러분에게 갱신을 강조하는지 압니까? 갱신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수가 없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왜 청교도들을 미국 땅으로 보낸 것인가? 당시에 영국과 유럽이 기독교 국가입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궁극주의로 모든 나라를 뭐했죠? 식민지화를 만들면서 완전히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 다 뭐로 만들었어요? 식민 국가로 만들었어요. 이들이 선교는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를 무엇 때문에 한 것인가? 식민 통치의 방편으로 선교를 한 것이에요. 오히려 기독교에 대해서 반감만 불어 넣는 이런 선교를 이들이 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유럽교회 가지고는 세계 선교가 안된다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청교도들을 미국으로 보내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이 언약을 잡게 만들어서 바로 미국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세계 선교의 문을 여신 것이에요. 하나님은 이 미국을 통하여서 세계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해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식민 통치 때문에 우리 나라에 선교사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원더우드, 아펜셀러를 비롯하여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생명 걸고 한국에 올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에요. 이 미션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미국을 무조건 축복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말 쓰임 받고 갱신할 때 하나님은 뭐하신다고요? 모든 축복의 문도 이것 때문에 여신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갱신해야 합니다. 첫째는 오직 복음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오직 그리스도 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없는 것인가? 아직도 오직 복음 외에 다른 것에 잡혀서 놓치고 살고 있지 않은 것인가? 아직도 틀린 해답을 붙잡고서 오직 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아닌가? 참좋은교회 다니고 복음 듣는다고 여러분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갱신의 결단을 여러분이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복음을 놓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두 번째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 이것을 갱신해야 합니다. 정말 내 가슴속에도 꿈에도 소원이 전도와 선교로 되어 있는 것인가? 왜 전도자의 삶을 가슴에 품고 기도 왜 안 하죠? 여러분 갱신하기 전까지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갱신한다는 말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인생의 방향이 맞추어져서 하나님이 축복 할 수밖에 없는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갱신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주 메시지를 통하여서 갱신의 방향과 내용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뭐 안하죠? 갱신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 아요. 메시지를 수없이 들어도 메시지는 메시지로 끝나는 것이죠. 나와 그 메시지는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찾고, 하나님이 가장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속에 방향 맞춘다면 하나님이 모든 축복의 문을 여실 것인데 이 갱신을 안 하고, 내 것만 채워달라고, 왜 우리가 갱신이 안 될까요?
3.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우리가 무엇을 갱신해야 할 것인가? 갱신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달리다가 지치면 걷고 싶죠. 걷다보면 서고 싶어요. 서있으면 피곤하죠, 앉고 싶어요. 앉으면 뭐하고 싶죠? 눕고 싶어요. 제가 기를 쓰고 아침마다 교회에 9시에 출근합니다. 집에 있으면 사람이 나태해져요. 나도 모르게 눕고 싶어져요. 그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체질이에요. 인간의 본성대로 살면 게으를 수밖에 없고, 핑계거리만 나오는 것이에요. 잠언 22장 13절을 보면, 밖에 나가기 싫은 사람이 ‘길에 사자가 있다. 사자가 있다’ 핑계예요. 잠언 6장 10절을 보면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9장 24절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은혜 받는 것에 집중이 안 돼요. 영적 게으름이에요.
이번 올림픽에 매달을 딴 사람들의 동일한 고백들입니다. 정말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한 사람들이에요. 수영선수의 고백 들어보셨나요? 숨이 멎을 것 같을 때까지 연습하고, 운동한 것입니다. 전설적인 농구선수였던 ‘마이클 조던‘, 남들이 다 자도 새벽에 나와서 공 던지는 연습을 하고, 밤에는 가로등 밑에서 공 던지기 연습을 하고. 여러분 영적으로도 사실 동일합니다. 영적으로 게으른데, 게으르면서 우리는 무엇을 꿈꾸죠? 가만히 있으면서도 일확천금이 떨어질 것을 꿈꿉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영적게으름이에요. 복음 가진 우리에게 오늘 주시는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영적 게으름에서 벗어나라. 지난주 메시지에서 모든 성도는 예배에 성공하기 원하고, 기도 대장되기 원하고, 헌금 많이 하길 원하고, 전도자 되기 원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어요. 왜요? 그 속에 예수 생명이 있으니까요. 당연히 그 생각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어져요. 왜 안 될까요? 영적 게으름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할 때에 여러분들이 모르고 불순종합니까? 알고도 불순종 합니까? 알고 있는데도 내 영적 게으름 때문에 잡혀져서 안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지라도 로마서 8장 1-2절 말씀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법적으로 내 모든 죄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러나 무엇은 남아있죠? 우리 인간의 죄성은 남아 있어요. 죄를 짓고 싶어하고, 죄의 지배를 받는 나의 마음의 상태는 남아 있는데 이 죄성이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데는 부지런해요. 결과적으로 이 죄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항상 게으르게 만들어요. 경건의 시간 못 갖도록 여러분을 게으르게 만들어요. 영적 게으름이란 것은 마음의 부패한 곳에 뿌리 내린 자기 사랑에 근거를 두어요. 왜 예배를 등한시 하는 것인가요? 당연히 예배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시잖아요? 그러나 핑계 거리가 많아요. 그 속에 뭐가 들어가죠? 자기 사랑, 자기 유익, 바쁘다는 핑계들. 새벽에 나오기 싫죠? 핑계거리 많잖아요? 나는 몸이 약해, 나는 피곤해, 그것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죄성의 지배를 받는 영적 게으름. 이 영적 게으름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영적 가난으로 도적같이 찾아오는 것이에요. 여러분 말씀을 정말 묵상하고 있나요?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제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에디오피아에 기근이 닥쳐서 비가 내리지 않아서, 유엔에서 세운 구호소가 세워져있는데 거기까지 오는데 200Km에요. 초등학교 교사가 걸어서 거기까지 왔는데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까 뼈 위에 가죽을 도배한 모양이에요. 너무 말라서요. 그런데 눈은 커서 껌뻑껌뻑, 여기에 파리가 눈 옆에 붙어서 파먹는 것이에요. 그런데 손을 들어서 파리를 쫓아내야 하는데 이 팔을 들 힘이 없어서 눈만 껌뻑이는 것이에요.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닐까? 내가 말씀을 그 속에 담지 못한다면, 사실 내가 마음의 소원은 있는데 사단이 공격하는데 게으름을 이길 힘 자체가 없어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이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 그것도 영적인 게으름이에요. 왜 여러분이 중심 없는 예배를 드릴까요? 절박한 마음이 없어요. 제가 교회와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가끔 봅니다. 보면은 예배 시간에도 핸드폰 쳐다보고 예배시간에도 웹툰 보고 있고.. 영적 게으름이에요. 나 자신과 싸워야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은 변하지 않아요. 정말 내가 예배 성공하기 위해서 결단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내가 말씀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정말 묵상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결단해서 기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정말 전도 대상을 내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있는 것인가? 결단하였다고 영적 게으름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단하였으면 우리가 실천하여 옮겨야 합니다. 실천하려고 그러면은 아마 방해 거리, 핑계거리가 많이 생겨날 거에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넘어져도 또다시 도전 하셔야 돼요. 의인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것이 의인이에요. 안 넘어진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넘여져도 다시금 도전하고 도전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도전하는 중에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들의 체질이 바뀌어지게 되고 도전하는 과정 속에 나 자신도 모르게 아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맞구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주고 힘을 주게 되어있어요. 언제까지요? 그 영적상태가 만들어지기까지 우리가 도전해야 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결단하였다면 여러분들이 기도 수첩에.. 기도 수첩이 없으면 노트에다가 작은 일기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점검해야 돼요. 정말 내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오늘 내가 성경말씀을 정말 읽은 것인가? 내가 정말 기도를 한 것인가? 정말 내가 예배 성공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전도대상자를 두고 정말 기도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점검해봐야 될 것 아니에요. 그것을 어디에다가 해보자고요? 기도수첩에다가, 아니면 작은 노트에다가.. 그리고는 스스로를 점검해보면서 여러분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결단해야 되는 겁니다. 말로서 갱신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내 속에 보혜사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라는 단어는 세가지 뜻을 가지고 있죠.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헬퍼로서.. 나를 상담자로서 카운슬링 하기 위해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컴포터로..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갱신하겠다고 결단할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깨닫게 만들어 주세요.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
결국은 여러분들이 갱신하지 못하면은 아무리 복음 메시지를 들어도 그 인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못 살아요. 하나님이 그 인생을 쓰실 수가 없어요. 이미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신분이잖아요. 이 놀라운 신분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바꿀 신분으로 나를 불러 주셨는데, 우리가 뭐하지 못해서? 갱신하지 못해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해야 됩니다. 오늘 제목이 복음적인 갱신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뭐부터 갱신할까요? 예배 갱신하세요. 말씀 묵상 하세요. 기도 갱신 하세요! 전도 갱신 하세요.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여러분들이 결단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바로 여러분들이 진정한 참된 갱신의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 싶어도 갱신되지 못한 사람을 쓰시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잘못된 신관과 구원관에 잡혀있는 예루살렘교회, 그 어마어마한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를 사용하실 수 없었어요. 하나님은 유럽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로는 세계복음화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이 갱신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겠다고 저희들에게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오늘 그 갱신의결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주의 성령께서 저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옵시고, 결단케 허락하여 주옵시고, 지속 할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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