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역사는 물음의 역사이다. 물음이 속출할 때 학문이 진보한다. 물음이 사라지면 학문은 정지한다. 모방과 예찬이 흐르는 에피고넨의 세상에서는 교조주의와 호고주의가 번식할 뿐이다. 학문의 역사에서 건강함의 척도는 물음을 쏟아내는 생명력이다.
조선후기 ‘실학’ 연구는 어느 시기에 가장 건강했을까. 어쩌면 ‘실학’을 향한 물음이 쏟아져 나온 1980년대가 아니었을까.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근대와 민족의 맹아 찾기. 그것을 내재적 발전론의 틀로 체계화하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실학’이라는 역사 지식, 1970년대의 그 지식을 향해 여러 가지 물음이 던져졌다.
어쩌면 주자학 이념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가운데 일방적으로 실학사상 연구를 진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사회경제사상 연구에만 치우쳐셔 실학의 정치사상에 대한 관심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실학의 철학에 대한 논의, 실학의 역사의식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어쩌면 실학자를 지나치게 많이 발굴해서 주자학과 실학을 구별하는 방법을 상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실학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분별없이 늘이다가 유학사의 문맥에서 자기 위치를 상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실학을 근대적 관점으로 과잉 해석하다가 실학에 관한 개념 그 자체가 실종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이런 물음도 제기되었다. 조선후기 사상사의 전반적 흐름을 모르면서 조선후기 실학의 흐름만 알아도 좋은 것일까. 실학의 사회경제사적 이해만 추구하고 실학의 경학사적 이해를 홀시해도 좋은 것일까. 조선학운동 시기만 집착하지 말고 그 이전 애국계몽운동 시기의 실학 연구도 본격적으로 규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실학자의 저작부터 다시 정리해서 새롭게 체계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실학사상의 기본정신을 계승해서 현재의 사회 모순에 대해서도 발언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런 물음도 제기되었다. 실학파의 실학에만 매몰되는 폐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너른 범위의 실학, 곧 국가 관료의 실학도 연구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실학의 내재적 계기만 강조하는 연구 풍토 때문에 실학의 외래적 계기가 무시되거나 외면되었던 것은 아닐까. 실학 그 자체는 분석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실학의 허상(=추상성)에 실상(=구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키워드를 발굴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더 근본적인 물음도 제기되었다. 실학의 서로 다른 유파를 하나의 실학으로 명명하기에는 너무 사상의 차이가 크지 않은가.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실학을 발전적으로 해소시켜서 단지 정치사상, 경제사상, 사회사상 등으로 범주화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농업 사회에 구속된 성리학적 개혁론과 상공업 사회를 지향하는 북학사상의 개혁론을 똑같이 실학으로 규정하면 실학 이해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실학을 북학으로 한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많은 물음들을 보노라면 1980년대라는 시기에서 어떤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 시기를 실학 연구에서 ‘전환기’라고 명명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전환기’의 의미, 어떤 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는 실학 연구의 황금기였다고 하겠으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학계의 관심은 물질과 경제 대신 윤리와 철학 쪽을 향하고 있었다. 곧이어 출현한 ‘신실학’의 조어는 기존의 실학이 이제 ‘구실학’으로 감각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학문의 역사는 물음의 역사이다. 1980년대의 물음은 이전의 물음과 비교하면 어떤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의 역사에 비추어 오늘날 ‘실학’을 향한 물음이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