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8대 명당 (음택명당)
「덕을 쌓아야 名堂 얻는다」 「積德(적덕)이 명당을 낳는다」
名門(명문), 즉 「좋은 집안」이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代(대)에 걸쳐 사회적으로 기여한 인물을 배출해 낸 집안을 말한다. 그런 집안이 만들어진 내력을 추적해 보면 예외 없이 名堂(명당)을 만날 수 있다. 조상의 누군가 명당에 들지 못한 채 「우연히」 형성된 명문은 없다. 당대에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가도 명당을 얻지 못하면 후손들이 寒微(한미)해지거나 絶孫(절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당이 명당을 낳는다」는 논리 그대로 名門(명문)은 많은 명당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 근원을 거슬러 발복의 원천을 알아보자.
道詵(도선) 국사 이래 수많은 풍수가들이 남겨 놓은 발자취와 그동안 답사하여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남한)에는 수천 개의 「名堂」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인연을 만나 묘소가 들어선 것이 1,000여 개소 정도이다. 그중에서 眞穴에 든 경우는 겨우 20% 정도였다. 나머지는 안타깝게도 명당 근처에는 갔으나 眞穴에 들지 못하는 失穴 무덤이었다. -김성수-
신라 도선국사 이후 풍수가 성행한 지 천년 세월이 넘었는데 아직도 명당이 남아 있을까 . “있고말고요. 명당인 줄 알고 써도 아닌 법이고, 모르고 써도 명당인 법입니다. 조선 왕조 때도 겨우 28개 성씨만 28개 명당에 묘를 쓰고 벼슬한 것 아닙니까. 풍수이론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간산으로 자리를 찾아 재혈만 잘하면 가운의 형세가 달라지지요.” -황진경(黃軫經) 스님-
1. 전북 光山金氏 김극뉴의 묘 (전북 순창군 임계면 마흘리)
말 명당, 천마시풍형 (天馬嘶風形·천마가 바람을 가르며 크게 우는 형세)
「300년 大發福(대발복)에 萬年香火之地(만년향화지지)」
광산김씨 시조 신라왕자 김흥광(金興光)의 단(壇)도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있으며, 보기 드문 명당으로써, 23세손 金克忸 묘와 멀지 않다. 4대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부자가 문묘(文廟)에 배향(配享) 되였다. 광산김씨는 조선조에 정승5명, 대제학(大提學)7명, 왕비1명, 265명의 문과급제자, 청백리 4명을 배출 했다.
전설에 의하면 박씨 삼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풍수지리에 능통한 도사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신후지지(身後之地)를 잡았는데 큰형은 순창 인계의 말명당, 둘째는 임실 갈담의 잉어명당, 셋째 막내는 임실 가실마을 앞의 금계포란형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큰형 박감찰에게는 딸만 있었고 아들이 없었다. 자신의 제사를 받들어줄 아들이 없으므로 사위가 좋은 자리에 들어가 외손이 번창하면 자신의 제사는 받들어 줄 것이라 믿고, 자신은 혈 위 부분인 입수도두에 묻혔다고 한다. 그의 예견대로 지금도 광산김씨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려오면 꼭 이곳에 먼저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반면에 함양박씨(咸陽朴氏) 문중에서는 이렇게 좋은 자리를 조카에게라도 주었으면 광산김씨들이 누린 복을 자신들 문중이 누렸을 텐데 하면서 두고두고 서운해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보국(保局)은 참으로 크고 넓다. 청룡의 기세가 강할 뿐만 아니라 백호는 가깝게 여러 겹으로 감싸주고 있으며, 멀리 건지산 연봉들이 문필봉(文筆峰), 귀인봉(貴人峰), 천마사(天馬砂)가 되기도 하고, 혹은 무곡(武曲) 금성체(金星體)가 되어 부봉(富峰)을 만들면서 이곳 혈을 향하여 나열(羅列)되어 있다.
나성(羅城)을 이루는 사격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마상귀인(馬上貴人), 집홀규(執笏圭) 귀인, 오마귀인(五馬貴人), 문성귀인(文星貴人) 등등 귀한 사격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명당(明堂) 역시 평탄 원만하면서도 여러 산과 골짜기에서 나오는 육곡구수(六曲九水)의 물이 모두 혈 앞 명당에 모이는 광취명당(廣聚明堂)이다.
물은 수관재물(水官財物)이라 하였으니 귀(貴) 못지 않게 부(富) 역시 풍족한 혈이라 할 수 있다. 묘 아래에는 하수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주룡의 행룡을 멈추게 하였다. 을진(乙辰) 방위로 파구되니 좌향을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하여 팔십팔향법으로 부귀왕정(富貴旺丁)한다는 자생향(自生向)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명당이라 하여도 완벽하지는 않는 법이다. 백호쪽 두 번째 능선이 끝을 뾰족하게 하여 혈장을 찌르듯이 들어오고 있는데 자손에게 가끔씩 큰 화를 가져다 줄 흉한 모습이다. 또 안산이 뚜렷하지 않고 거칠고 억세며 명당이 혈에서 조금 멀리 있다.
사위에게 眞穴을 주고 스스로 명당 아닌곳에 누웠다는 박예의 무덤이 眞穴. 대개 眞穴은 결인 지점에서 결인의 높이만큼 상거한 곳에 맺혀지는 것이 지금까지 증명된 풍수의 상식이며, 강한 생기가 지금도 발산되고 있다. 亥坐(해좌)는 兩性發福地(양성발복지)라 아들이든 딸이든 가리지 않고 음덕을 입히니, 결과는 같다 하겠지만 발복의 근원은 달랐다는 주장도 있다.
2. 경기도 安東金氏 김번의 묘 (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옥호저수형(玉壺貯水形 옥 항아리에 물을 담은 형국). 조부 김계권묘 (창평부수형蒼萍浮水形 푸른 개구리밥이 물위에 떠있는형)와 김번의묘는 김계권의 장남인 학조대사(學祖大師, 세조때 국사)가 잡았다. 安東金氏 60년 세도의 문을 열어 준 蔭德(음덕)의 發源地(발원지) 新安東金氏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승 15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집중적으로 배출하여 최고의 가문으로 위치를 굳혔다.
김번의 묘는 괴혈(怪穴)로서 정확한 혈을 점지(點地)하기가 어려운 자리다. 아무리 높은 풍수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속기 쉬운 장소다. 기룡혈은 괴혈(怪穴)로서 얼핏보기에는 행룡 과정에 있는 과룡처 같은데 용이 잠시 머뭇거리듯 주저앉아 혈을 결지 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번개 불이 번쩍할 사이 예상치 못한 곳에 혈을 결지한다 하여 섬룡입수혈(閃龍入首穴) 이라고도 한다.
기룡혈은 역량이 매우 커서 장상공후(將相公侯)가 연출하며 백자천손(百子千孫)하는 대혈을 결지한다. 그러나 기룡혈은 입수도두, 선익, 순전, 혈심이 뚜렷하지 않아 자칫 잘못하면 과룡처를 잘못 오인할 수 있으므로 귀신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렵다고 하는 곳이다. 과룡처(過龍處)를 섬룡입수한 곳으로 착각하여 입장(入葬)하면 삼대내절향화(三代內絶香火)라 하여 패가망신(敗家亡身)은 물론 절손(絶孫)의 우려가 있다.
병목에 해당되는 능선은 입수룡이고, 호로병 첫 둥근 부분에 혈을 맺고 다시 잘록 해진 다음 다시 둥근 형태로 되어 능선이 끝나는데, 아래 부분 하단에는 요석이 빙 둘러 박혀 있다. 이는 기가 앞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매우 귀한 돌이며, 이 돌 하나에 정승 판서가 하나씩이라고 한다. 청룡에 비해 백호가 강하고 가깝다. 또 청룡이나 백호 모두 처음 보다는 끝이 더욱 강해 반골(叛骨)의 형상이다.
3. 경기도 윤관 장군의 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고려왕조 34대 475년과 조선왕조 27대 519년을 합쳐 약 천년동안 삼한의 대표적인 문벌로서 번성을 누린 가문이다. 조선조에 418명의 문과급제자, 왕비 5명, 정승 11명을 배출하였다. 이처럼 파평윤씨들이 번창한 것은 5세조(五世祖)인 윤관(尹瓘)장군 묘가 조선8대 명당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현무봉에서 혈까지 입수룡(入首龍)이 36절룡(節龍)이어서 발복이 36대(代) 약 천년에 이른다고 하는 곳이다. 파평 윤씨들은 잉어의자손이라 하여 잉어를 잡거나 먹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시조 윤신달과 윤관 장군에 대해서 잉어전설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산인 박달산에서 부터 잘생긴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모습은 마치 기치창검을 높이든 백만 대군이 행진하는 모습과도흡사하다. 좌천을 우태을의 보호를 받는 봉우리에서 중심 맥으로 이어진 용맥(龍脈)에 혈을 맺으면 대개 대혈(大穴)에 속한다.
생기가 흩어지지 않고 뭉치도록 하여 혈을 결지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인속기법으로 용맥의 목을 잘록하게 묶어 기를모으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좌우선룡법으로 내룡(來龍)의 생기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용맥의 끝이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아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이때 물이 우측에서 흘러나오면 용맥은 좌측으로 돌아야 하고, 물이 좌측에서 나오면 용맥은 우측으로 돌아야 음인 용과 양인 물이 서로 음양교합을 할 수 있다. 이를 좌선수(左旋水)에 우선룡(右旋龍), 우선수(右旋水)에 좌선룡(左旋龍)이라 한다.
세 번째는 태식잉육법으로 현무봉 중출로 처음 나오는 용을 태(胎), 과협이나 결인속기처럼 잘록하게 변화하는 것을 식(息), 혈장의 입수도두(入首倒頭)에 기를 모아 마치 아이밴 모습과 같은 잉(孕), 아이를 출산하여 기른다는 뜻으로 혈을 육(育)이라 부른다. 용맥이 혈을 결지(結地)하였는지 여부를 살필 때는 이 세 가지 방법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때로는 세 가지 현상 모두가 있을 때도 있는데 윤관 장군 묘가 이에 해당되는 것 같다.
주산과 현무봉이 탐랑(貪狼) 목성(木星)체이므로 혈은 유두혈(乳頭穴)이 진혈이다. 유두혈이란 혈판이 마치 풍만한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고 혈심은 젖꼭지부분에 해당되는 것을 말한다. 윤관 장군 묘는혈심(穴心) 보다 약간 위에 자리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혈 앞 순전(脣氈)이나 하수사(下水砂) 등은 너무 많은 인공적인 조장을했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다.
청룡 백호는 여러 겹으로 감싸주면서 혈장을 보호하고 있다. 안산은 작고 귀하게 생긴 반월형(半月形)이다. 주변 사격은 문필봉(文筆峰), 옥녀봉(玉女峰), 거문성(巨門星), 천마사(天馬砂)등이 수려하게 있어 보국(保局) 안에 장엄한 기운이 감돌게 한다. 그러나 이곳도 흠은 있
다. 명당은 평탄하나 원만하지 않고, 명당 가운데로 흐르는 물길은 혈을 감싸주지 못하고 반배(反背)하였다. 안산은 똑바로 혈과 조응하지 못하고 약간 비껴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용과 혈은 좋으나 주변 산이나 물이 완벽하게 보호를 못해준다. 이러한 곳은 똑똑한 인물은 나오나 그를 도와주는 사람보다는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가 있어 이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곳이다. 돌이켜보면 윤관 장군 생애와 비슷한 자리라 할 수 있을것 같다. 묘 자리도 살아생전 그 주인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공덕을 쌓지 않으면 절대로 명당에 못 들어간다고 강조한 것 같다.
물은 좌측 용미리 쪽에서 나와 우측 광탄 쪽으로 흐른다. 파구는 경유(庚酉) 방향이며 좌향은 간좌곤향(艮坐坤向)을 하여 문고소수(文庫消水)에 해당된다. 문고소수 향은 이른바 녹존유진(祿存流盡)이면 패금어(佩金魚)라 하여 총명수재하고 문장이 특출하여 부귀상전(富貴雙全)하는 길향(吉向)이다. 그러나 혈이 아닌 곳에서는 이 향을 놓으면 음탕하지 않으면 바로 패절(敗絶)한다 했으니 함부로 쓰면 안 되는 향이기도 하다.
4. 경기도 청풍김씨 김인백 처 안동권씨묘 (의왕시 오봉산)
오봉쟁소형(五鳳爭巢形). 조선 중후기 3정승 6판서 배출한 묘.
역사상 3대 정승을 낸 집안은 청송심씨와 달성서씨, 그리고 청풍김씨 세 가문 밖에 없다.
淸風金氏 가문이 文科급제 110명에 정승 8명, 대제학 3명, 왕비 3명을 배출하면서 명문으로 도약하게 한 發福의 근원.
와혈(窩穴)로서 오봉산의 모든 기가 집중된 곳이며, 혈의 생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청룡 내 백호가 양팔을 벌려 감싸 안아주듯 하였고, 혈 앞 하수사(下水砂)는 기가 앞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손파(巽破)하고 좌수도우(左水倒右)하며, 술좌진향(戌坐辰向)이니, 팔십팔향법으로 발부발귀(發富發貴)에 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는 정묘향(正墓向)이다.
주변의 사격(砂格)은 안산이 정승과 대학자를 배출한다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이고, 삼길육수(三吉六秀) 방위를 비롯하여 모든 방위에 귀인봉(貴人峰)들이 중첩으로 감싸주고 있으며, 어느 산 하나도 이곳을 배신한 곳이 없다.
5. 충북 청주한씨 중시조 한란의 묘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回龍顧祖穴 조선조에서 정승13명, 왕비6명, 부마4명, 공신24명 배출
한명회(韓明澮), 한석봉(韓石峯), 한용운(韓龍雲) 등이 후손들이다.
한란묘의 순전은 신라 왕릉을 방불케 한다. 묘 앞이 치솟아 역할 수행에 완벽하다. 순전이 솟으면 권력가가 난다고 했다. 이것은 혈(穴)을 만들고 남은 여기(餘氣)가 뭉쳤다는 의미가 되고 그만큼 그 땅의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 된다. 청룡과 백호가 팔짱을 낀듯한 형세의 수구다. 교쇄 그 자체다.
막힌 수구와 둥글게 감싸 안은 국세는 꽉 짜인 한폭의 명당도(明堂圖)다. 한란묘는 백호가 청룡보다 강하다. 길게 묘 앞까지 이어져 전형적인 백호작국(白虎作局)이다. 그것도 겹겹이다. 더욱이 봉긋봉긋한 봉우리들이 이어져 마치 옥구슬을 꿰어 놓은 듯하다. 그만큼 아름답다.
6. 부산 동래정씨 중시조 정문도의 묘 (부산시 화지산)
外靑龍과 外白虎에 못지않게 화지산 자체도 內靑龍과 內白虎로 갈라지면서 야자형(也字形)의 名局(명국)을 빚으니 그 사이에 천하 명당이 만들어졌다. 이 묘소는 휴전선 너머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문화柳氏 시조산과 함께 조선조 500여 년 동안 가장 크게 발복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
東萊鄭氏는 조선시대에 文科(문과)급제 198명, 정승 17명, 대제학 2명, 공신 4명, 판서 20여 명을 배출했다. 東萊鄭氏는 왕비는 한 사람도 배출하지 않았는데, 외척으로 행세한 적이 없으면서 이만한 인물을 배출해 낸 것이 특이하다. 이 문중에서는 조선조 500년 동안 그 많은 벼슬을 했으면서도 賜死者(사사자: 사약을 받고 죽은 사람)나 유배당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진기록을 남겼다.
7. 경기도 延安李氏 이석형의 묘 (경기도 용인 문수산)
쌍유(雙乳)명당. 좌측 주맥에 鄭夢周, 우측에 손자사위 이석형의 묘가 있다. 정몽주의 무덤은 그동안 보수를 하였으나, 護石(호석)들에 이끼가 끼고 뒤틀릴 정도로 水脈(수맥)이 관통하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이석형의 묘소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강한 생기를 뿜어 내는 眞穴(진혈) 위에 자리 잡았다. 정몽주 묘소의 바로 뒤편(위쪽)의 선익이 뚜렷한 지점에는 이석형의 묘소를 능가하는 眞穴이 있다. 두 묘소의 좌측 靑龍 등에 빈 자리가 또 하나 있다.
延安李氏는 250명의 文科급제자, 8명의 정승, 6명의 대제학, 42명의 판서를 배출해 조선조 5大 名家의 하나로 떠올랐다. 반면에 포은의 迎日鄭氏 가문은 文科급제자 119명, 정승 1명, 판서 2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같은 장소에 비슷한 형태로 있는 두 묘가 이처럼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의문점은 묘 뒤를 가보면 금방 풀린다. 혈을 결지(結地)하기 위해서는 생기(生氣)를 공급해주는 용이 좋아야 하고 생기를 저장하는 입수도두(入首倒頭)가 있어야 한다.
입수도두는 혈 뒤의 볼록한 흙덩어리로 용에서 받은 생기를 정축(渟 )해놓았다가 혈에서 필요한 만큼의 생기를 조절하여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생기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약간 둥그렇고 단단하게 뭉쳐진 것이 특징이며 입수도두가 크면 그 만큼 생기를 많이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혈의 발복도 크고 오래간다.
정몽주 묘는 입수도두가 뚜렷하지 않은 반면에 이석형 묘는 크고 단단하며 아름다워 마치 정랑 주머니 같다. 두 묘의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포은 묘의 입수룡은 주룡(主龍)에서 옆으로 거의 직각에 가깝게 내려와 힘이 약한 반면에 이석형 묘의 입수룡은 힘을 몰아 휘어져 내려 왔기 때문에 힘이 강하고 기세가 있어 보인다.
정몽주 묘의 입수룡은 용맥(龍脈)이 땅위로 드러날 만큼 얕게 내려왔는데 너무 깊게 파서 묘를 쓴 것 같다. 장사(葬事)는 유골을 생기 위에 모셔야 하는 것인데 생기 밑까지 깊게 파면 파혈(破穴)될 우려가 있다. 광중을 팔 때 혈토(穴土)가 나오면 멈추고 혈토 위에 유골을 모시는 것이 풍수지리의 원칙이다.
두 묘의 차이는 순전(脣氈)과 하수사(下水砂)에서도 발견 할 수 있다. 순전(脣氈)은 혈 앞에 약간 두툼하게 흙이 뭉쳐져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비유하면 턱과 같은 것이다. 순전은 혈을 아래에서 지탱해주고 혈의 생기가 앞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포은 묘의 순전은 약간 파이고 빗물에 씻겨 나간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혈을 아래에서 지탱해주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저헌 묘의 순전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함은 물론 순전 밑에 혈장을 지탱해주기 위한 작은 요석이 여러개 박혀있다. 요석이 있는 것은 용의 기세가 강하기 때문에 순전이 혈의 생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흙만으로는 감당 할 수 없어 자연적으로 돌이 박힌 것이다.
화복론(禍福論)을 말할 때 요석 하나에 정승과 판서가 하나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귀한 귀석(貴石)이며 기세 왕성한 용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수사(下水砂)는 혈장을 지탱해주고 용맥을 보호하면서 따라온 원진수(元辰水)가 직거(直去)하지 않고 역수(逆水)하게 함으로서 혈의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수사가 물을 걷어 주어야 양(陽)인 물과 음(陰)인 용혈(龍穴)이 음양조화를 이루어 생기를 응결(凝結)할 수 있다. 두 묘 모두 하수사가 잘 발달되어 우측에서 좌측으로 혈장을 감아 주면서 연못 있는 곳까지 뻗어 나갔는데 이석형 묘가 더욱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8. 경기도 포천 달성서씨 약봉묘 (포천군 포천읍 설운리)
광산김씨(光山金氏) 사계 김장생, 연안이씨(延安李氏) 월사 이정구와 함께 달성서씨(達城徐氏) 약봉 서성의 후손들은 조선조 3대 명문으로 유명하다. 포천에 있는 약봉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약봉 묘의 발복 때문이라고 하여 그 묘를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로 꼽는다. 해룡입수혈(海龍入水穴)
1왕비와 1부마, 3대 정승, 3대 대제학, 3대 대학자등 선조이후 1백여 년에 걸쳐 가장 현달한 가문 중의 하나. 근대 인물로는 서재필(徐載弼)이 있다.
8. 세종대왕의 장인 청송심씨 심온(沈溫) 묘
조선조 청송심씨 (淸松沈氏)는 정승13명, 왕비3명, 부마4명이 나왔는데, 정승13명 중 9명이 심온의 후손들이며, 대제학2명, 왕비2명, 부마1명이 모두 심온의 후손들이어서 심온묘가 명당임을 말해 준다. 심온(沈溫)은 영의정으로 세종대왕의 장인이면서도, 태종 이방원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황룡농주형(黃龍弄珠形)이다. 입수도두가 3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선익 역시 3중으로 되어 있으며, 혈 위와 옆에서 3중으로 혈을 감싸 보호한다. 혈의 생기가 앞으로 누기(漏氣)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순전이 두텁고 튼튼하며, 아래에는 작은 요석이 십여개 박혀있다.
그만큼 용혈의 기세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요석 하나에 정승 판서가 하나씩 난다고 할만큼 매우 귀한 돌이다. 우수도좌에 손사파(巽巳破)이고, 계좌정향(癸坐丁向)이니, 팔십팔향법 중 가장 좋다는 정양향(正養向)이다.
이곳에도 흠은 있다. 청룡 백호가 거듭거듭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게 혈을 감싸주지 못하고 산만하다. 파구 역시 쪽배 하나 지날 수 없는 불능통주(不能通舟)로 좁게 관쇄 해주어야 하는데 넓고 거리가 멀다. 더 큰 흠은 묘지뒤 용맥을 신갈 안산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면서 완전히 절단시켜 놓았다. 혈은 절맥이 되어 더 이상 혈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8. 강원도 平山申氏 신숭겸의 묘 (춘천시 서면 방동리)
고려 왕건은 도선국사가 王建의 身後地(신후지)로 점지해 준 명당에 八公山 전투에서 대신 죽은 신숭겸을 장사 지내도록 했다. 흠이 있다면 12절후 입수한데다 안산이 멀어 12代 이후, 즉 묘소를 만든 후 약 300년 후부터 發福하여 자손들이 음덕을 입는다는 점이다. 신숭겸의 묘소 인근에 天·地·人(천·지·인)의 3穴(혈)이 있는데, 天의 혈에는 장절공이 들어갔고 地·人의 혈은 비어 있다.
8. 전남 나주 반남박씨 시조 응주묘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 )
벌명당, 주산(主山)은 자미산(紫微山), 조선조에 왕후(王后) 2명과 빈(嬪) 1명, 정승 7명과 판서 25명, 대제학 2명, 공신 5명 등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
길게 뻗어나간 청룡과 백호가 팔짱을 끼듯 서로 교쇄(交鎖)하고 있다. 수구도 완벽하단 뜻이다. 혈장을 빼곡히 둘러싼 주위 산세는 생기를 챙기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명당을 둘러싸고 내려간 외백호는 안(案)을 겸하고 있다. 백호장안(白虎長案)은 재물이 풍성함을 뜻한다. 청룡은 일자문성(一字文星) 형태다. 일자문성이 있는 지형에선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난다 했다.
명당이 넓고 주위 산세에 험한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묘는 평야지대로 내려온 평강룡(平崗龍)이다. 벌판에서 솟았기에 그만큼 힘이 있다. 입수(入首)에 석맥(石脈)이 있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박혔다. 다소 펑퍼짐하게 내려온 입수룡을 보완해 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돌은 지기의 집합체다. 묘 주위의 단단하게 박힌 돌은 그 만큼 큰 힘을 실어 준다. 그렇다고 주위의 모든 돌이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잡석이나 뜬 돌은 이롭기는커녕 되레 손해를 끼친다.
벌명당 = 뒷산의 봉우리가 멍덕(토종 벌통 위를 덮는 뚜껑) 모양이며, 주변의 산세가 꽃을 닮은 지역을 말한다. 즉 묘가 있는 등성이 벌통이 되고, 주위 산들이 꽃이 된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곳에 묘를 쓰면 벌 떼처럼 그 자손이 번창하며, 벌 떼들이 꿀을 모으듯 재물과 명예가 뒤따르게 된다고 본다. 하지만 풍수설화에선 벌명당의 묏자리를 잡아준 지관은 기이하게도 모두 벌에게 쏘여 죽음을 맞는다.
8. 경북 예천 동래정씨 정사의묘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옥녀단장형(玉女端坐形) 자궁穴,
5아들중 3째아들손에서 13명의 정승 배출
출처
봉전선생 (鳳田 정일균) 풍수기행 (풍수지리학연구회 효풍학회장)
형산 (정경연) 답사기 (正統風水地理學會)
碩礎 채영석 (한국자연풍수지리 연구소)
靈目 김성수 (金聖洙74· 영목 풍수지리 연구소장)
※ 木星山(죽순모양, 文筆峯), 火星山(불꽃모양), 土星山(一字文星, 富와貴), 金星山(종엎은모양, 富峯), 水星山(물결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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