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21.6.10.(목) 목양나눔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 聖讀 (수도원 전통 성경 묵상), 진리와 복음
찬양 ;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458장),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459장). 내 영혼이 주를 바라봅니다.
< 묵상과 기도 >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시133)
** 고대 수도자들의 반추反芻기도 (되세김) **
☞ 성경을 온 마음으로 읽고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기도의 방법
정화(淨化.purification, 회개) → 조명(照明,illumination, 인도) → 일치(一致,unification, 합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 정화(淨化) 악을 피하고 ; 정화(淨化)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조명(照明) 선을 행하며 ; 조명(照明)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일치(一致) - (눅9;23) 평화를 추구하라. ; 일치(一致) - (시34;15)
1) 읽고(Lectio); 내게 주시는 보물을 찾기, 단어나 구절 (합2;2)
2) 묵상하고(Meditatio) ; 그 말씀을 읊조리며 머무르기 (시119;15)
3) 기도하고(Oratio) ; 주님께 말씀 드리고 묻고 기다리기 (엡6;18)
4) 관상하는(Contemplatio) ; 오롯이 주님만 바라보기. 주님 마음과 일치(시62;1,빌2;5)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원장 귀고 2세(Guigo II)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해 올라가야 할 영적 단계
지금 이순간 이곳에 충만히 임재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실재와 현존을 믿음으로 느끼고 바라봄.
* 세계 성서공회 3년주기 오늘의 성경 일과 (시편92;1-4, 12-15, 창3;14-24, 히2;5-9)
1.가장 높으신 하나님,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2.아침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3.열 줄 현악기와 거문고를 타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4.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
12.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
13.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
14.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15.그리하여 주님의 올곧으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다.
14.주 하나님이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16.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17.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18.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19.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20.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그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21.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22.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23.그래서 주 하나님은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시고, 그가 흙에서 나왔으므로, 흙을 갈게 하셨다. 24.그를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을 세우시고,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5.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6.어떤 이가 성경 어딘가에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7.주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그에게 씌워 주셨으며, 8.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9.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히2;5-9)
* 나에게 주시는 말씀, 단어, 구절을 반복해서 읊조리며 기다림 ;
< 십자가 중심성의 삶과 신앙과 설교> - 독서 묵상과 적용 (플레밍 러틀리지, 예수와 십자가 처형)
1.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고전2;1-4)
바울이 변증적인 용어로 십자가 중심성을 주장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이 십자가를 완전히 건너 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 경향은 오늘날 미국교회(한국교회 역시)에서 지속되고 있다.
리차드 니버는 “미국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분노하지 않는 하나님이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죄없는 사람들을 심판이 없는 하나님 나라로 이끌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종교성, 고양, 영성이 있을지는 몰라도 기독교는 사라진다. (플레밍 러틀리지, 예수와 십자가 처형, 새물결플러스, pp.131-132)
19.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고전1;19-23)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많은 내용 – 창조, 성육신, 영성 – 이 항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고전1;23)에 관한 설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예수가 겪었던 고통, 박탈, 그리고 비인간화와 분리된 승리주의 형태의 교회의 삶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윤리적 도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학적 도전이기도 하다.
영지주의의 비현실성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십자가형이 없는 성육신만으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십자가는 단순히 가정되기만 해서는 안되며
항상 해석되고 중심에 재배치되어야 한다. .... 성육신에만 초점을 맞추면 종종 환경운동에서 그러하듯이 창조세계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간주하는 경향을 낳는다. (위책. pp. 126-127)
십자가에 개인적으로 참여하기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이 없이는 그들의 사역 한 가운데서 구멍이 날 것이다. (129)
“설교자는 말만 늘어놓기와 고통 받는자를 모욕하고 고통을 하찮게 여기는 거짓 정복의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경을 자주 마비시키는 자부심과 자기만족에 직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 참여하라고 설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130)
1.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은 무엇인가?
2. 복음을 설교로 전하는 목회자로서 복음적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3.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의 예수 따르미의 삶은 필히 선행되어야 하는 것인가?
4. 십자가 중심성은 승리주의적 십자군 형태의 심각히 잘못된 복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5. 말만 늘어 놓기와 고통받는 자를 무차별로 모욕하고 하찮게 여기는 설교 놀음, 말 놀음의 설교자는
진정코 핵심을 놓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 아닐까? 나는 어떤가? 우리들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