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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한복판 가장 부자들만 온다는 삼풍 백화점의 어이없는 붕괴를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저도 사고 몇달전 삼촌이 서울 구경 시켜준다고 한번 가본 적도 있었는데 뉴스에서 소식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종종 외부강연할일이 있으면 우리나라 황당 재난의 한 사례로 삼풍 백화점 참사를 얘기하는데 이제야 정리된 책으로 나왔군요
안타까운건 책에서도 저 참사현장에서 갖가지 도둑들이 엄청 몰렸다고 얘기하네요
사망자의 떨어진 손을 가져나오다 걸린자도 있었는데 손가락의 반지를 빼려했었다고...
목차를 봤는데 재난재해에 관심이 있는분들에겐 좋은 책일듯
21년 만에 기록된
삼풍백화점 참사 개인들의 기억
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데 모인 적이 없다. 이는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는 구술·기록프로젝트이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책에는 59명의 구술이 실렸다.
당사자들이 재현한 기억의 몽타주 씨줄과 날줄은 하나의 배경 화면으로 엮어진다. 바로 지하4층, 지상5층의 호화 백화점 최후의 조감도이다. 이 조감도는 타자화된 언어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는 ‘화자(구술자)’의 언어로 재구성된 화면이다. ‘기록된 적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 사람이 가고 저희끼리 “아니, 가스도 새고 금도 가고 그러면 어, 이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 그러면서 농담했어요. 굉장히 웃긴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언니가 “야, 이거 무너지면 어떻게 하냐, 흔들면 무너지는 거 아냐” 이러면서 포즈도 취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진짜 무너진 거예요, 그날. 진짜로.
--- p.10
장비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도 배낭 열어보면 구조장비가 있는 게 아니고, 고가 옷,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또 훼손된 시신, 잘린 손가락도 들어 있었어요. 사망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빼가려는 거죠.
도저히 구조대라고 볼 수 없었어요. (이런 좀도둑을) 통제하기 위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일단 신원파악을 시작했죠.
--- p.38
그길로 평상복 입은 채 뛰쳐나가서 버스를 탔어요. 기사분께 “제가 강남성모병원 응급실 간호산데, 삼풍이 무너져서 지금 응급실을 가야 한다” 그랬어요. 승객이 한 7, 8명 있었는데 기사분께서 저기 다들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이분을 빨리 강남성모병원에 데려다줘도 되겠냐, 괜찮으시겠냐, 양해를 구하니까 사람들이 다 “괜찮아요” 한 거죠. 분당에서 강남성모병원까지 그 버스가 논스톱으로...그 사람이 가고 저희끼리 “아니, 가스도 새고 금도 가고 그러면 어, 이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 그러면서 농담했어요. 굉장히 웃긴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언니가 “야, 이거 무너지면 어떻게 하냐, 흔들면 무너지는 거 아냐” 이러면서 포즈도 취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진짜 무너진 거예요, 그날. 진짜로.
--- p.10
장비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도 배낭 열어보면 구조장비가 있는 게 아니고, 고가 옷,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또 훼손된 시신, 잘린 손가락도 들어 있었어요. 사망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빼가려는 거죠.
도저히 구조대라고 볼 수 없었어요. (이런 좀도둑을) 통제하기 위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일단 신원파악을 시작했죠.
--- p.38
그길로 평상복 입은 채 뛰쳐나가서 버스를 탔어요. 기사분께 “제가 강남성모병원 응급실 간호산데, 삼풍이 무너져서 지금 응급실을 가야 한다” 그랬어요. 승객이 한 7, 8명 있었는데 기사분께서 저기 다들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이분을 빨리 강남성모병원에 데려다줘도 되겠냐, 괜찮으시겠냐, 양해를 구하니까 사람들이 다 “괜찮아요” 한 거죠. 분당에서 강남성모병원까지 그 버스가 논스톱으로 갔어요. “고맙다” 인사드리고 (병원으로) 막 들어왔더니 난리,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죠.
--- p.70
남편 동료가 “삼풍 무너졌대” 하는 말에 “장난해? 우리 와이프 거기 있는데” 그랬었대요. 휴대 전화 이런 게 없을 때니까 부랴부랴 TV 자막으로 사고 소식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은행 동료들하고 오
산당병원, 또 어디 병원,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동료분들이 제가 있는 병원을 찾아내서, 남편이 왔는데 저희는 온몸에 하얗게 석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죠. (제가 다리가 부러진) 작은애 검사를 쫓아다니느라 병원 측에서 큰애 현정이를 데리고 있었나 봐요. 따로 씻기고 할 여유도 없었어요. 나중에 애 아빠가 와서 큰애 얼굴에 허옇게 석면이 덮여 있으니까 손으로 계속 털어줬대요. 아무리 털어도 안 털어지니까 혀로도 닦아줬다고 하더라고요.
--- p.132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또 삼풍백화점 희생자 가족들… 될 수 있으면 유가족과 생존자분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분들이 또 사회생활을 할 수가 있거든요. 되게 힘들어요, 생존자분들도. ‘저 사람들 삼풍백화점 유가족이야. 저 사람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야’ 아니면 ‘저 참사에서 구조된 사람이니, 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돼’ 절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p.188
우리는 왜 삼풍백화점을 기억해야 하는가
기록과 출판의 본령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실증적 사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행위가 아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현세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미부여 ‘활동’에 가깝다. ‘기록’은 개인의 기억을 문서화시키면서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나아가 ‘역사’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 수단이다.
‘무엇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기록 중 어느 것이 역사로 선택되는가?’ 이 문제의 답은 늘 정치 공학적으로 풀어졌고, 역사가의 펜 끝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 계층이 ‘역사가’를 독점하던 과거를 지나 누구나 말하고, 듣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시대이다. 물론 한 사회가 어떤 기억을 품고 미래로 향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회적 기억’은 독자만이 이룩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쩐지 모든 출판의 본령과도 닮아 있다.
신간 『1995년 서울, 삼풍』(부제: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은 그러한 출판의 본질적 의의를 되새김하는 책이다. 세월호 참사 기록물이 한국 사회의 기록 문화를 풍부하게 했고 이에 화답하듯 출판계에도 ‘기록’과 ‘당사자성’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고’ 혹은 ‘사건’은 결코 그 당사자만의 불행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공론장에 펼쳐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움튼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구술자(화자)는 무려 21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구술자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아물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아픈 기억을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인터뷰어·기억수집가)들이 기꺼이 이들의 ‘청자’가 되어주었다. ‘들어주는 행위’가 매정한 망각에 빠진 사회에서 조용히 21년을 보낸 당사자의 기억을 매만져주었다. 화자와 청자, 이 관계성 덕분에 21년 전의 기억이 공론장으로 겨우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21년 만에 기록된
삼풍백화점 참사 개인들의 기억
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데 모인 적이 없다. 이는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는 구술·기록프...우리는 왜 삼풍백화점을 기억해야 하는가
기록과 출판의 본령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실증적 사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행위가 아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현세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미부여 ‘활동’에 가깝다. ‘기록’은 개인의 기억을 문서화시키면서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나아가 ‘역사’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 수단이다.
‘무엇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기록 중 어느 것이 역사로 선택되는가?’ 이 문제의 답은 늘 정치 공학적으로 풀어졌고, 역사가의 펜 끝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 계층이 ‘역사가’를 독점하던 과거를 지나 누구나 말하고, 듣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시대이다. 물론 한 사회가 어떤 기억을 품고 미래로 향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회적 기억’은 독자만이 이룩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쩐지 모든 출판의 본령과도 닮아 있다.
신간 『1995년 서울, 삼풍』(부제: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은 그러한 출판의 본질적 의의를 되새김하는 책이다. 세월호 참사 기록물이 한국 사회의 기록 문화를 풍부하게 했고 이에 화답하듯 출판계에도 ‘기록’과 ‘당사자성’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고’ 혹은 ‘사건’은 결코 그 당사자만의 불행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공론장에 펼쳐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움튼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구술자(화자)는 무려 21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구술자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아물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아픈 기억을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인터뷰어·기억수집가)들이 기꺼이 이들의 ‘청자’가 되어주었다. ‘들어주는 행위’가 매정한 망각에 빠진 사회에서 조용히 21년을 보낸 당사자의 기억을 매만져주었다. 화자와 청자, 이 관계성 덕분에 21년 전의 기억이 공론장으로 겨우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21년 만에 기록된
삼풍백화점 참사 개인들의 기억
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데 모인 적이 없다. 이는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는 구술·기록프로젝트이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책에는 59명의 구술이 실렸다.
당사자들이 재현한 기억의 몽타주 씨줄과 날줄은 하나의 배경 화면으로 엮어진다. 바로 지하4층, 지상5층의 호화 백화점 최후의 조감도이다. 이 조감도는 타자화된 언어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는 ‘화자(구술자)’의 언어로 재구성된 화면이다. ‘기록된 적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잊혀졌는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시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책에 실린 구술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시루떡 형태로(도봉소방서 경광숙 씨)” “착착 포개져(유가족 허재혁 씨)” “지하로 쑥 내려가(유가족 김문수 씨)” “폭격에 맞은 듯한(조선일보 기자 홍헌표 씨)” 모양이었다고 한다. 두 동짜리 건물이었던 삼풍백화점의 무너진 한쪽 건물 A동에는 5층 전문식당가, 4층 가정용품, 3층 남성의류·아동용품, 2층 여성의류, 1층 잡화·해외 수입브랜드 매장이 밀집되어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한국전쟁 이후 단일 사건 최대 사상자를 초래한 이 참사로 502명이 죽었고, 937명이 다쳤다. 하지만 이렇게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삼풍백화점 참사의 풍경은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책의 총 4장 중 1장~3장, 230여 쪽에 걸쳐 59명의 참사의 당사자 구술이 담겨 있다. 붕괴 현장에서 골프채를 훔치는 좀도둑을 잡은 경찰, 취재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기자, 자녀에게 끝끝내 참사 경험을 숨기고 마는 생존자, 매몰된 부상자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119구조대원, 소방 호스로 구조대의 옷에 밴 시신 냄새를 씻겨준 자원봉사자, 600여 구의 시신 지문을 발췌하던 경찰, 토막 시신이 널브러진 붕괴 현장에서 말을 잃은 민간구조대, 브래지어로 시신의 성별을 구분했던 의료진, 실종자 가족 대표를 뽑는 절차를 만들었던 서울시 공무원, 꺼림칙한 기분에도 자리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매장 직원, 적용죄명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검사, 난지도에 버려진 발가락 시체를 붙들고 꺼이꺼이 울던 유가족, 딸의 보상금을 가지고 소식을 끊은 사위까지…. 59명, 개인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경험담’을 읽다 보면 장마철이었다는 참사 당시의 축축한 공기가 코끝에 닿는 듯 하다.
그런데 왜 우리의 기억 속 잔상에는 이들의 모습이 충분히 그려진 적이 없을까. 왜 그저 ‘기적적인 생환자’, ‘부실공사 단죄’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말초적인 뒷이야기만 물씬물씬 떠오를까. 우리의 ‘집단 기억’에 있어 삼풍 참사는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잊혀진 것일까.
책 구성과 내용 엿보기
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94쪽) [1장 우리는 삼풍백화점에 있었다: 참사24시]에는 49명의 구술 인터뷰가 참사 직전부터 시간순으로 담겨 있다. 리드미컬한 순서 배치와 짧은 호흡의 구성으로 가독성이 좋다. 1장은 5개의 절로 나뉘어 있다.
「한낮의 붕괴 조짐」에는 “이러다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삼풍백화점 직원들의 이야기와 무너진 건물 속에서도 금고를 지키고 있었던 경비원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오후 5시 55분 붕괴의 순간」에는 갑자기 다닥다닥 깨지던 백화점 유리창을 지켜보다가 불과 몇 초 만에 백화점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한 삼풍주유소 직원의 이야기, 그리고 붕괴 현장으로 달려가며 전화로 속보 기사를 불렀던 기자의 사연 등이 있다. 「생사의 갈림길, 구조 현장」에는 좁은 틈 사이로 몸집이 큰 매몰자를 구조하기 위해 식용유를 매몰자의 몸에 들이부은 사연과, 컨트롤타워가 없어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도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선 민간구조대의 이야기, 음식 장사를 접고 구조대를 위한 음식을 만든 자원봉사자, 또 강원도에서 수도방위사령부의 헬기를 타고 파견된 ‘광부 구조대’의 사연 등이 담겨 있다. 「제2의 현장, 병원」에는 삼풍백화점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서울성모병원(당시 강남성모병원)에 아무 체계 없이 무턱대고 이송된 환자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던 응급실 풍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 분산 작전을 벌였던 의료진들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으며 「붕괴의 책임과 처벌」에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백서를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하게 된 검사와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그가 송치된 의왕구치소로 찾아간 서울시 공무원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게다가 책에 실린 30여 장의 참사 현장 사진은 우리 눈에 익숙한 구도의 보도 사진이 아니다. 서초소방서와 구술자 이종관 씨(당시 대한 건축사협회 이사, 특별대책점검반)가 찍었던 참사 당시 ‘기록용 필름 사진’은 현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 느낌이 강하다. 독자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참사 현장의 컬러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다. 구술자들의 개성적 입말과 적절하게 어울린 이 현장 사진의 도움으로 1장에 실린 5명의 민간구조대, 5명의 경찰, 2명의 기자, 5명의 의사, 3명의 검사, 3명의 간호사, 3명의 소방관, 10명의 자원봉사자, 4명의 서울시 공무원 등의 구술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막힘없이 형상화될 것이다.
[부록: 기억의 재구성]에는 상세한 사건개요와 사고에 관한 객관적 자료(판결문, 보상금 및 사건발생비용 등)가 있어 책이 단순 구술집의 장르를 벗어나 ‘기록’ 본연의 의미에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독자들이 사건에 관한 일련의 객관적 자료에 접근하는 데 용이하다. [2장 살아서 돌아오다: 생존자의 기억]에는 43쪽에 걸친 생존자 5명의 상세한 구술이 실려 있다. 삼풍 백화점 내 호화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삼풍 아트홀’ 관장이었던 주성근 씨의 구술을 읽다 보면 당시 삼풍백화점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한눈에 그려진다. 피범벅이 된 삼풍백화점 유니폼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생존자 박은희(가명) 씨는 매장에서 일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경우인데, 이후 구조 현장에서 다른 삼풍 직원 생존자들과 지속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3장 남겨진 사람들: 유가족의 기억]에는 73쪽에 걸친 유가족 5명의 구술이 담겨 있다.
[4장 ‘사회적 기억’으로 가는길] 에는 박해천 동양대 공공디자인학부 교수의 「백화점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정윤수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의 「망각의 골짜기에서 기억을 말하라!」 라는 비평 글이 실려 있다. 박해천 교수는 저서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에서 특유의 ‘비평적 픽션’ 스타일로 꾸준한 도시인문학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윤수 교수 또한 재즈, 스포츠 등 다방면에 걸친 문화 칼럼니스트인 동시에 저서 『인공낙원』과 각종 강연 활동으로 역시 ‘도시인문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학자이다. 박해천 교수의 글에서는 1990년대 서울의 백화점이라는 ‘장소성’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정윤수 교수의 글에서는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참사위령탑 현장 답사기를 통해 ‘사회적 기억’과 ‘기억의 장소성’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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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라에 돈이 없어서 인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래요.
사망자의 손까지...ㄷ ㄷ ㄷ 전 옷 주으며 웃고닜는 여자 사진에서 악마를 본듯합니다.
함봐야 겠네여
재난시 일시적인 치안붕괴를 악용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대규모 재난시 약탈 강간이 빈번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저도 얼굴을 본 적 있는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당시 삼풍서 근무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문이 열렸는데 사람이 꽉 차서? 인지 여자육감으로 불안해서인지 ? 저도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안탔는데 그 엘리베이터가 바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몇달 정신 치료 받았다고해요. 저도 건너 들어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전...당시 사고직후 주변에 있었습니다..
뿌연 먼지만 기억나는군요...ㅜㅜ
근무지 옥상에서 연기가 폭격 맞은 것처럼 피어나는게 생각 납니다. 당시 압구정동 거래처 본사 옥상에서 본건 그게 다 입니다. 그리고 출근길에 옥수역에서 성수대교 끊어져서 한강에 떨어져 있던 교각 본 것......이젠 그때 처럼 배가 가라앉아 수백의 애들이 수몰되는 세상으로 변한거죠. 이게 하나하나 떨어져 본다면 그냥 사고이지만 전 그리 생각 안합니다.
어마어마 하네요..;;
다음 웹툰도 있는데 한번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다 필요없고 당시 백화점 회장?인가 하는 사람을 인터뷰했었는데 엄청 당당했었죠... 그거 보고 진심 경악
....백화점 회장님은 무사하시겟지...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