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에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간 후’ 비로소 찾기를 시작하여
아들 예수를 3일 만에 성전에서 발견했다(눅 2:41~47).
미국 미시건주 어느 정신요양소의 환자실에 의사가 들어가니 그 환자는 열심히
찬장을 뒤지고, 침대 밑을 살피고, 옷장 문을 열었다가 또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의사는 소지품을 잃은 줄 알고 “무엇을 상실했는지 내가 도울 수 있는가?”라고
했더니 이 환자는 “나는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고 있다.” 했다. 어떤 의미론
이 환자의 말은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고백해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카고의 어느 아파트에서 목사를 초청해 놓고 심히 우는 처녀가 있었는데 기다리다 못해
목사는 “왜 울기만 합니까?” 했더니 “목사님, 나는 청춘을 잃었어요.”라고 했다. 문제는
잃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우냐에 있고 사실상 울만큼 귀중한 것으로 살아 왔던가에 있다.
노부모님이 자식들을 찾아오다 많은 물건이 없어졌다. 상실의 아픔이 어떠하며
아깝고 분한 마음이 어떠하랴! 찾는 데는 기쁨이 있어도 놓치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현대의 병통은 잃어도 잃은 감각이 없으니, 안타깝고 죽어가면서도 심각하지 않으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잃은 자동차를 위해 몇 년이고 투쟁하며 찾는데 잃어버린
자기 생명, 자기 본위, 자기 위신, 자기 전공,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자기 자녀,
자기 소질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하다.
상실증의 이유는 대개,
1. 자기를 보는 데는 원시안경을 끼고 타인을 보기에는 근시안경을 쓰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는 눈은 세계를 보는 눈이요, 자아발견은 최대발견인데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한 셈이다.
2. 가치관의 전도(顚倒)이다.
한국에서 미국에 갈 때의 가치관이 미 본토에서는 그 가치가 바뀌어서
인생관이, 세계관이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3. 케세라주의 때문이다.
인간은 최선의 노력을 하다가 잘 안될 때는 최악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선한 아버지가 살인자도 될 수 있고, 얌전한 엄마가 자녀를 두고 가출을 할 수도,
도서관을 찾던 학생이 고교만 마치고 멋대로 살아가는 현실쾌락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얼마든지 있는 곳도 역시 오늘의 우리사회이다.
가을은 제비가 강남의 고향을 찾아가며, 불효자식이 노부모를 찾아 그 슬하에
엎드리는 기회요, 피서와 요양지에서 돌아와 먼지를 털고 책상 앞에 마주 앉는 기회다.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이 성경 앞에서
자기를 들여다보며 본연의 자아를 찾는 것이다.
2015. 4. 27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들려다 보며 본연의 자아를 찾는 당신이길 ..... 柳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