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부자로 살 수 있다.
얼마 전 집사람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다.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는 어떻게 그렇게도 남편 복이 많으냐?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며 부러워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결혼한 지 39년 만에 처음으로 나와 같이 한 삶이 정말로 행복했다는 고백에 감격(?)하면서 하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남편들은 공무원, 선생 및 은행원 등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여 연금으로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서, 의정부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가 전 재산이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잘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서 저축한 돈으로 일을 놓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반면에 나는 평생 허둥지둥 생활고에 쫓기며 살았지만, 저축은커녕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하여 인생 말년에도 생활비를 벌어야만 하는 초라한 월급쟁이다
그녀들이 집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소위 말해서 집에서 아내가 해준 세끼 밥을 얻어먹는 삼식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60대 늙은 부부가 온종일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떼야 하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과는 달리, 나는 나 자신을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진짜 부자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나의 이러한 믿음은 감히 깨달음의 문턱을 넘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그들 속에 나의 형상도 존재한다고 고백하고자 한다.
나는 평생 알지 못할 두려움에 쫓기며 살아왔다. “평생 나를 쫓아다니는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결코 가난과 빈곤이 아니며 모든 인간에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막연한 공포 또한 아니라는 데에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단지 내 마음의 분별이 만들어낸 탐진치(貪瞋癡)일 뿐이며,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신(神)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본성(本性)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적지 않은 고뇌를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수많은 번뇌의 강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에 살아계시는 신(神), 부처님의 나라에 도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불교의 목표는 오직 생사를 해탈하여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깨달음인 견성(見性)을 이루기 위해서 성철스님같이 위대한 스님도 눕지도 자지도 졸지도 않는 장좌불와( 長坐不臥) 정진을 8년, 선방이나 토굴, 절 밖으로 나가지 않는 동구불출(洞口不出)을 10년간 지켜야 한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살아서 성불(成佛)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불교는 성철 스님 등 전생(前生)에서 이미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분들만을 위한 종교인가?
“불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며, 부처님이 없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지난날 부처님에 대한 나의 이러한 의구심에 명쾌한 답변을 주신 분은 김원수 법사다. 내가 그의 새로운 금강경 해석을 만나게 된 것은 부처님의 은덕이었으며, 그 인연으로 나는 평생 그토록 사랑했던 나 자신과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수 있었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나의 모든 철학적 사고와 논리를 가감하게 무덤 속에 묻을 수 있었다.
인간은 구족(具足)-모든 것을 충분히 갖추어진 부처님과 같은 존재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부자로서 사는 삶이 시작되었고, 그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인생이 행복해지며 세상만사가 잘 풀린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회사에서 주한미군과 미국대사관의 입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최저가가 낙찰되는 입찰 시스템에서 회사 수지 균형점을 넘는 가격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은 절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입찰 시스템이 바뀌었다. 컴맹에 미국인이 녹화한 안내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나이 먹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난제를 해결하는 나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승리를 선언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낙찰자가 되었다. 나는 이미 입찰 시스템을 완벽하게 숙지했다. 떠오르는 모든 분별 망상과 궁리를 부처님께 받칩니다. 부처님 뜻대로 하소서!”
모든 입찰은 충분한 이익이 남는 가격에 낙찰되었고 입찰 시스템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작은 기적을 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사상을 통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의식을 현재 의식과 잠재의식으로 나눈다. 현재 의식은 육식을 의미하는데,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기관[六根-육근]이 각각의 감각 대상[六經- 육경], 즉 모양/색, 소리, 냄새, 맛, 촉감, 심리 현상을 만나서 생기는 여섯 가지 의식을 말한다.
잠재의식은 7식과 8식으로 구분된다.
7식-말라야 식
8식-아라야식-
*1.업보(業報)-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 2.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 의식.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에서의 마음은 심층 의식을 의미한다. 육식으로 인식한 형상(形相)은 자신의 가짜 모습인 아상(我相) 이며 어두움이며 탐진치( 貪瞋癡)이다.
*탐(貪)-무었을 하고자 하는 욕심.
*진(瞋)-하고자 하는 일의 속도가 나지 않아서 화를 냄.
*치(癡)-이만하면 되었다고 하는 자만심.
세상은 심층 의식, 즉 자기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진다. 침침하고 어두운 하늘 아래서 자포자기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눈물을 흘리는 영화를 스스로 제작하고 이를 그럴듯하게 각색하는 행위를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악이다.
혹자는 부처님 혹은 예수님 가라사대 하면서 성인의 행동을 우리들의 그릇된 일상에 비유하곤 한다. 나는 그러한 비유에 동의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위대한 성인은 타고난다고 믿기기 때문이다. 전생에 이미 상당한 공덕을 쌓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기복 신앙[ 祈福 信仰]의 사전적 의미는 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 즉, 신앙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혈통과 소원 성취와 입신양명(立身揚名), 무병장수와 자손 번영 등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現世的)인 신앙 행태다.
나는 종교가 현실적인 행복을 외면하고 우리가 직면한 세상을 정화하지 못한다면, 종교로서의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동안 가졌던 기복 신앙[ 祈福 信仰]에 비판적인 견해를 거두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적인 삶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내 아들이 일류 대학에 진학할 것을 비는 것은 나 같이 평범하고 편편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내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우리 모두의 아들로 더나가서 부처님 아들로 그 수식어를 바꾸어 나가도록 기도 방법을 바꾸어 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원(圓)을 세우고 부처님께 시봉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맑고 깨끗한 기쁨을 만끽하면서 참선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부자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초겨울 속을 달린다.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들어와 머릿속 망상을 날려 보내고 거친 숨결이 욕심과 조바심을 삼켜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뛰는 걸음을 멈추고 거울 앞에 서서 적나라한 그대의 모습인 성리(性理)를 볼 수 있다면, 그대는 견성(見性)을 이룬 부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