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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는 존재하는가] 문화는 ‘섞음의 미학’ 통해 발전 문화민족주의는 경계해야
컬처(Culture)는 ‘문화(文化)’를 뜻하며,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후천적으로 습득, 공유, 전달하는 모든 생활 양식(의식주, 예술, 언어, 풍습 등)을 말합니다. 라틴어 ‘컬투스(cultus, 경작/가꾸다)’에서 유래되어, 본래 의미인 땅을 갈듯 인간의 정신과 교양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행위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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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컬처(K-Culture는 한국의 대중문화 전반을 일컫는 용어로, 음악, 드라마, 영화를 넘어 음식, 뷰티, 웹툰 등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Hallyu)'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주요 요소 및 2026년 동향 K-팝 (K-Pop): 2026년은 BTS와 블랙핑크 등 주요 그룹들의 복귀로 인해 K-팝이 다시 한번 큰 모멘텀을 얻을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팬들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성장 서사에 몰입하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추세입니다. K-드라마 및 K-영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한국 콘텐츠는 언어 장벽을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을 목표로 제작된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2026년에도 새로운 글로벌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대거 출시될 예정입니다. K-푸드 (K-Food) 및 K-뷰티 (K-Beauty):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한 한국 음식을 직접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한국 식품의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K-뷰티는 이미 미국 화장품 수입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K-웹툰 (K-Webtoon): 웹툰은 한국 고유의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인도 등 여러 국가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K-컬처의 중요한 부분으로 부상했습니다. K-패션 (K-Fashion): 2026년 K-팝 패션은 '정제된 맥시멀리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지속 가능한 소재를 활용한 에코 퓨처리즘과 성별 유동적인 스타일링이 주요 트렌드입니다. 기술 및 AI와의 융합: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은 K-컬처 창작 및 소비 전반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으며, 이는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과 초개인화된 경험 제공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K-컬처는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기술, 산업,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
-POP, K-드라마, K-영화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류의 뒤를 이어 ‘K-컬처’가 그 의미를 물려받았다. 마치 ‘K’가 한국을 상징하는 접두사처럼 쓰이는 요즘, ‘K-컬처’라는 명명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김수정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 대중문화가 일으킨 새로운 초국가적 문화 흐름이라는 뜻의 ‘한류’가 ‘K-컬처’라는 명칭으로 대체되고 있다. 한류는 ‘한국의 드라마, 영화, K-POP 등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으로 정의되는 것에 비해, 정부 문화 정책 관계자들과 언론의 적극적인 호응 아래 사용되는 K-컬처는 어떤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아니면 K-POP처럼 영어여서 외국인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편의성 정도의 차이일까? K-컬처라고 부르는 의도와 실제 효과는 무엇일까? 이 글은 K-컬처의 명명과 그 담론적 실천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어떤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K-컬처가 어떤 명확한 정의나 내재적 속성을 상정하고 붙여진 명명은 아닌 듯하다. 해외에서 호평받거나 호의적 이미지를 얻을 만한 한국의 것은 무엇이든지 ‘K’라는 도장을 찍어 국적 마크를 붙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K-컬처는 K-POP, K-드라마, K-영화, K-푸드, K-패션, K-뷰티, K-관광, K-(성형)의료, 나아가 K-방역까지 계속 호명할 수 있는 이른바 비어있는 기호다. 그 포함 목록이 늘어나도 외국인을 향해서 K-컬처가 전달하는 표면적인 의미는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국적성이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내포적 의미는 ‘자랑스러운 우리 국가, 우리의 것’이며, 심층에 놓인 이념이자 감정은 ‘애국주의, 국가주의, 문화민족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한국 청년들은 K-컬처 명명 현상을 자기도취적인 한국 우월주의와 맹목적인 애국심을 뜻하는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성한 신조어)’ 현상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한다.
사실 한류나 한국의 대중문화가 글로벌 차원에서 일궈낸 문화적 성과는 이 세상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국가의 구성원인 한국인이라면 문화적 자긍심을 느낄 만한 사건이다.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핍박 받은 역사, 그리고 전쟁과 가난, IMF의 고통을 기억하는 한국인이라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세계 대도시 광장에 빽빽하게 밀집한 수만 명의 외국인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환호하며 말춤을 추는 유튜브 장면에 경이감과 잠시의 우쭐함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인 배우가 단지 구경꾼이 아니라 그 무대의 주인공이 돼 여러 개의 상을 받는 모습은 감개무량할 수 있다. 이는 자국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할 때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애국심, 모두를 평등한 형제로 느끼게 하는 민족적 정체성의 감정과 유사한 감정일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한류 현상에 대한 한국인의 문화적 자긍심은 애국이나 개별 민족 차원을 넘어 세계의 문화 질서 차원에서 볼 때도 정당할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유럽과 영미 국가의 문화물이 국제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지배하며 뉴스, 드라마와 영화를 비서구권 국가들에게 일방적으로 유통하고,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서구 국가에 대한 선망,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에 영향을 끼쳤던 사실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한류 현상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중남미 국가의 일일 드라마 장르인 ‘텔레노벨라’와 일본 만화인 ‘망가’가 일부 서구 국가로 역유통돼 인기를 얻었지만, 비서구권 문화인 K-POP이나 한국 드라마의 인기 규모는 더 압도적이다. 92년 역사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그것도 한국어)의 영화에 작품상을 ‘최초’로 수여했다는 것은 미국 중심주의에 일어난 적잖은 균열이며, 세계 영화사를 새롭게 쓰는 등의 글로벌 문화 권력의 변화 조짐으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국 문화 패권이 해체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지배 중심을 흔드는 ‘탈중심화’적 사건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한국이라는 개별 국가 차원의 자긍심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 문화사 차원에서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K-컬처라는 명명과 담론화
그러나 이러한 세계사적 의의를 인정한다고 해서, K-컬처의 명명이나 의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와 관련 문화 정책 기관들이 K-컬처를 정책 수준에서 담론화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작금의 지식 정보 중심의 기술 문화 시대에 국가 자체를 하나의 멋진 ‘브랜드’로 구성해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산업 시대의 국가 경제력과 국방력만큼 중시된다. 좋은 국가 이미지가 외교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 자체를 성장시키고, 해당 국가의 기업과 여타 상품에 호의적 이미지를 부여해 외국인의 마음과 지갑을 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문화상품은 이 순환고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준다. 이른바 21세기 세계 경쟁에서 ‘소프트파워’는 국가의 전략적 목표가 된다.
한국 정부의 K-컬처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앞세운 이른바 소프트파워 전략의 연장선이자 산업육성책의 일환이며,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성과를 국민에게 과시하고 애국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이는 한류 시작 이래 역대 정부에서 줄곧 이어져 왔다. 다만 실제로 어떤 내실 있는 정책이 추진돼 어떤 산업 진작과 실제적 경제 효과를 산출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정부만이 아니라 언론과 방송도 K-컬처 붐인 듯하다. 언론은 늘 해외에서 K-POP이나 한국 드라마가 달성한 수치를 나열한 기사를 뉴스 제공이란 이름 아래 애국 마케팅으로 활용해 클릭 수를 올린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셰프를 동반한 연예인들이 해외에 나가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거나 대접하는 리얼리티 쇼가 양산되며 인기를 누린다. 외국의 풍경을 보여주며 여행의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부가 효과도 있지만, 주로 아프리카의 낯선 지역이든, 스페인이든, 영국 옥스퍼드대 같은 명문대에서든 외국인이 한국 음식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과연 한국 음식에 ‘엄지척’을 하는지에 몰입하게 하는 리얼리티 쇼가 많다. 이러한 예능 쇼들은 한국인들의 애국적이고 문화민족주의적 감정을 은밀하게 건드리며 수익을 얻고 있다. 세계가 우리에게 보내는 시선에 몰두하는 것, 즉 외부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욕망은 우리를 허약하게 하고 우리를 옥죄는 나쁜 정서와 습관을 유지한다.
K-컬처에 대한 세 가지 오해
K-컬처를 문화 산업 확산의 주요 정책이자 전략으로 삼는 정부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오해하고 또 착각하는 것 같다. 첫째, K-컬처라는 명명은 분명 기존의 K-POP에서 힌트를 얻었겠지만, K-POP과 K-컬처는 모두 한국 문화이면서 세계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단어다. K-POP은 1990년대 후반 외국에서 명명한 용어로서, 2000년 중반까지도 국내에서는 유통되지 않았다. 그것은 외국 대중음악인들이 영미권의 팝의 문법과 다양한 팝 장르를 혼합하면서도 독특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을 지칭하기 위해, 기존의 브릿팝(Britpop, 영국), J-POP(일본) 용어를 모방해 만든 용어다. 해외인들이 파악한 K-POP의 변별적 특성은, 잘 알다시피, 뛰어난 외모를 지닌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동성 그룹, 한국어 가사와 일부 영어 가사의 혼용, 후크적 후렴, 화려한 군무, 그리고 해외 팬들에게 포착되는 스타의 성실성과 친밀성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브릿팝, J-POP, 칸토팝(Canto-POP, 홍콩), 라틴팝(Latin-POP, 중남미)이 결코 그들 자국의 대중음악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K-POP도 결코 노래 중심의 기존 가요나 트로트 등이 공존하는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지칭할 수도 없고, 그렇게 번역돼서도 안 된다.
K-POP은 팝의 하위 장르로서 글로벌 음악에 속하면서도, 한국에서는 아이돌 음악이라고 불리는 한국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간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적절하다. 따라서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음악이나 퍼포먼스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특정 음악 장르인 ‘고유명사’인 것이다. 한국의 특성과 창조성이 새겨진 것이지만,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글로벌 음악이 되어 세계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K-POP은 한편으로는 서구 팝의 음악적 문법과 다양한 하위 팝 장르에 기초한 글로벌 특성을 띠지만, 다른 한편으로 연습생 시스템이라는 생산 양식, 노래 가사, 팬들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과 상호작용 방식은 ‘집단적 도덕주의’라는 한국적 에토스(ethos)에 의해 구성되고 작동되는 매우 독특한 한국 로컬 문화의 특성을 지녀서, 글로컬(글로벌+로컬) 성격을 지닌다.1) 따라서 K-POP에서 ‘K’는 분명 한국의 사회·문화적 산물이지만 다른 국내 대중음악 장르와도 변별되는 독특성과 개별성을 지닌다. 단지 가수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제작사여서, 한국어를 써서 한국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한국적인 것을 본질적인 요소로 치환해서 고정시켜버린다. 따라서 K-POP은 K-컬처처럼 그저 한국의 국적성만 내세워서 한국산이면 무엇이든 포섭해버리는 텅 빈 기호와는 의미론 차원에서도 다르다. 여기서 K-컬처 명명과 담론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K-컬처라는 국가 문화 정책이자 산업정책의 전략적 접근은 한국의 개별 문화들이 지닌 독특성을 모두 동질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응축시켜버린다. 그것의 결과가 무엇일지는 마지막에 기술할 것이다.
둘째, K-컬처를 문화 전략으로 삼는 정책은 ‘문화’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한국 문화, 일본 문화, 중국 문화 등으로 부르며 마치 민족마다 단일하고 동질적인 문화를 영위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문화라는 것은 이질적인 다양한 것들로 구성돼 있으며, 보통 사람의 일상에서의 실천 행위다. 그래서 같은 한국 문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치 하나만 봐도 지역이나 가족에 따라 재료도, 조리법도, 먹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한 차이가 개별 집단이나 지역에게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차이들이 여전히 공존하면서도 한국인의 일상에서 밥상 위에 오르는 한, 한국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한국 문화가 되며 한국인 정체성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K-컬처가 강조하며 전달하는 단일성과 동질성의 의미는 문화 일반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문화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문화란 그 공동체의 삶 속에서 활발히 생산되고 소비될 때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기에 한국 사회가 변화하면서 한국 대중의 삶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때 기억되지만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문화사회학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지배문화(dominant culture)’, ‘신생문화(emergent culture)’, ‘잔여문화(residual culture)’의 세 개념을 통해 문화의 변화적 성격과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했다.2) 지배문화는 그 사회에서 왕성하게 생산되고 대중 다수에게 향유되는 문화를 뜻한다. 음악 분야를 예로 들면, 지금의 아이돌 음악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사회 변화와 함께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가 신생문화인데,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몰고 온 힙합과 랩은 당시 소수의 10대가 향유하기 시작한 신생문화라 할 수 있다. 한편 더 이상 대중의 일상에서 향유되지 않고 소수의 사람에 의해 유지되는 문화가 잔여문화인데, 이제는 소수의 전통문화 예술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통 국악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문화란 이렇게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다른 위상을 차지하면서 변화하는데, K-컬처의 접근은 서로 다른 강도와 결을 지닌 한국의 문화 다양체를 K의 울타리에 가둬 납작하게 만들고 고정된 것인 양 취급한다.
셋째, K-컬처는 한국 문화를 ‘순수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하지만, 문화는 늘 혼종적인 것이고 그로 인해 내적 긴장과 발명이 공존하며 문화의 역동성이 생겨나오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문화도 다른 문화와 섞이지 않은, 완전히 순수한 문화란 없다. ‘순수’는 환상이거나 믿음의 차원이지 사실의 차원이 아니다. 사람들이 접촉하고 살면 문화도 전파된다. 문화란 원래 다른 문화들과 섞이면서 풍부해진다. 아무리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의 문화적 요소가 도입돼도 특정 기후와 영토 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만의 고유성을 발명하며 삶 속에서 지속해 빚어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K-POP이야말로 이를 잘 보여준다. K-POP이 지속적으로 외국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이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제작 아래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돼 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K-POP 아이돌 그룹도 생기면서 혼종을 통한 글로벌과 로컬의 긴장과 배치는 더욱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다.
문화의 본질을 우선 이해해야
K-POP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되어 세계에서 제작되고 다양한 언어로 노래 불려질 때, K-POP은 국적성의 꼬리표가 불필요한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 문화적 특성을 꼭 잃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만큼 세계인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인도식 K-POP, 프랑스식 K-POP, 브라질식 K-POP의 등장을 볼지도 모른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미국 팝은 세계인이 즐기기 때문에 지배적이 된 것이지, 미국 것이어서 지배적으로 소비된 것은 아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나 영화 <기생충> 역시 서구적 제작 기법, 영상 효과, 플롯 전개 방식 등이 활용되면서도 한국의 계층적 정서와 가족주의, 한국 제작진의 세련된 감각 등의 로컬적 특성이 혼합돼 구성된 점에서 역시 혼종성을 찾을 수 있다. 모든 문화는 혼종적이지만, 어떻게 상이한 요소들의 강도를 조절하며 개성을 구성해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고유성을 지니게 된다. 두 작품은 모두 한국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험하는 생존경쟁의 위기감과 한국인의 가족주의 정서 등을 지역적 특이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를 통해 세계인 역시 경험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생존경쟁이 주는 불안과, 경쟁으로 위태로워진 상호 신뢰라는 사회 문제의식을 시대의 글로벌 보편성으로 구현해 세계인에게 새로운 감각과 감동을 모두 끌어낼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문화는 ‘순수의 미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섞음의 미학’을 통해서 더욱 생성적이고 역동적으로 발전한다. K-POP도 지속적으로 분화되고 역사가 두터워질수록 더욱 진화한다. BTS가 전성기를 누리는 시점에서도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 주목을 끌며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과 음악인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250(이오공, 실명 이호형)은 일본 트로트가 한국에서 고유하게 토착화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뽕(또는 뽕끼)’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포착하고 이를 전자음악 기반의 신스팝, 저지클럽, 뉴잭 스윙 등 다양한 장르와 믹스해 새로운 뉴트로 음악을 창작해내고 있다. 이 혼종 음악은 글로컬의 새로운 표본을 제시하며, 동시에 한국의 음악장에 신선한 충격과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250은 음반 <뽕>으로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다수의 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까지 수상했다. 더구나 250이 걸그룹 뉴진스(NewJeans)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아 이들 걸그룹의 인기를 견인하며 새로운 K-POP 세대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즉, 문화의 혼종성은 ‘문화의 국적주의’가 할 수 없는 독특한 변주와 생성을 이루게 하는 열린 구조를 지닌다.
이렇게 문화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K’라는 한국 마크를 새겨 배타적인 문화 ‘소유권’을 주장하며 ‘순수한’ 한국 문화임을 강조하고, 그 가운데 매력으로서 우월성을 은근히 과시하는 K-컬처의 전략적 접근이 과연 타당할까? 문화를 경제의 수단으로 종속시키고 문화를 본질적인 요소들의 집합처럼 인식하는 이 접근이,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의도한 대로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고, 글로벌 시장에서 문화상품의 구매를 유도하여 문화산업을 성장시켜줄까? 오히려 세계가 좋아하는 한국 문화마다 K 마크를 단다면, 혹여 한국의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세계에 알려질 때, K가 붙은 문화들도 함께 밀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K-컬쳐를 국가전략 삼아 과시할 때, K-POP과 한류가 모두 정부가 주도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식의 해외 언론들의 오해를 벗기는 커녕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문화는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있게 하고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의미, 가치, 취향의 것이라서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비틀스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래서 비틀스의 팬이 되어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간 한국인들에게 만약 끊임없이 ‘영국 문화’임을 강조한다면 그것을 내 것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나를 그저 물건을 사 줄 구매자로서만, 또는 소비하고 환호하는 팬으로만 위치시킬 때, 내가 그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럼 실제 문화 기업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지난 3월 관훈토론에 참석해, K-POP에서 “‘K’라는 단어가 희석돼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는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K-POP 매출 점유율이 여전히 1%대에 그치는 현재를 위기로 진단하면서, 한때의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K-POP은 한국만의 것이라는 인식을 깨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그룹이 나오거나 K-POP 회사 출신임을 모를 만큼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즉, 기업의 성장을 돕겠다는 정부의 전략이 대중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적 색채만 입힘으로써, 되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본래 기업 비즈니스 생리는 세계 모든 구매자에게 ‘당신만을 위한’ 상품을 만든 것처럼 접근하는, 탈국적의 자본논리로 추동된다.
더구나 국적과 민족적 마크는 이웃 국가와 불필요한 감정 마찰을 일으키고 불리함을 초래하기 쉽다. 특히 우리의 이웃 국가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 모두 한국 못지않게 매우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지녔다. 이들은 이웃 국가이지만 역사적으로나 정치적 관계로 볼 때 더 갈등적이고 경쟁적이다. 따라서 K-컬처의 정책 전략이 정말로 내부 국민용 애국심 정치가 아니라 국가 경제적 이익 차원이라면 이들 국가나 국민의 민족주의적 저항 심리가 불러올 역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필자는 2012년 6월 《신문과방송》에서 기획한 ‘한류,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특집에서 <‘민족’과 ‘경제’ 렌즈 빼고 제대로 들여다보자: 문화 탈중심화 사건으로서의 한류>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4) 우리의 대중문화는 더욱 세계화되고 더욱 멋있어지고 깊어가는데, 정부와 언론의 담론은 11년이 지났지만 또 다른 이름만 바꿔 달았을 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대중문화를 호명하는 방식은 개별적이어야 한다. 각각의 특이성과 개별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K-푸드로 부르기보다, 비빔밥, 삼계탕, 불고기이며, K-POP보다 BTS, 블랙핑크, 레드벨벳, 트와이스, 뉴진스로 불러야 한다. 그리고 내부의 K-POP 아이돌의 인권을 살피고, 박봉에 과로사하는 대중문화인들이 안전하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과 안전장치 마련이 문화 산업의 성장 전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공장형 아이돌의 혐의를 벗고 더욱 자신들의 개성을 뽐낼 수 있고, 좀 더 다양해지며, 아이돌 육성 시스템도 변화하고, 사회가 아이돌에게 한없이 무거운 짐을 지워 죽음으로 내모는 일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