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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킨 사람들
내가 가르켰다고 하니 내가 무슨 선생이 된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아니고 어떤 우연으로 가르킨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고 꽤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군 제대한 때가 팔십년 대 초 였습니다.
제대 하고 집에 와 잠시 쉬고 있는 때
내 친구가 나에게 와서 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을 좀 가르켜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 친구는 나 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습니다.
우리집이 공장을 했는데 열살인가 부터 우리집에 일했답니다.
요즘은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바람 피우고, 학교 다니기도 싫고 해서 일찍 자퇴를 하여서
한글 마저 배우지 못 하였답니다.
차츰 자라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배움이 없으니 엄청 답답함을 느낀 모양입니다.
별로 할 일이 없든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시골의 자그마한 집을 빌렸습니다.
돈 주고 빌린 것은 아니고 친척집 소개로 어느 종가의 재실이었지요.
재실을 빌려서 몇 달 공부를 시켰습니다.
초등학교 국어책으론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어 한글 연구 하듯이 가르켰습니다.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를 기역,니은,.....으로 안 가르키고
기,니,디,리,미,비,시,이,지,치,키,티,피,히 로 외우게 했지요.
모음은 노래 하듯이 외우게 하였구요.
"기+ㅏ를 읽어 봐라. 그라마 기아가 되제. 빨리 읽어봐라. 가 비슷하니 나오제.
그기 '가' 다. 니+ㅓ를 읽어 봐라. 빨리 읽으면 너가 된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따라 외웠습니다.
한달 지나니 떠듬 떠듬 국어책을 읽을 수 있더군요.
그렇게 공부 하고 우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십여년 뒤 그는 운전 면허증을 땄더군요.
비록 십여차례 시험을 쳤지만 결국 면허증을 땄습니다.
운전면허 필기가 쉬운 사람은 쉽지만, 어려운 사람은 엄청 어렵습니다.
그것을 통과했답니다.
합격하고 나에게 와서 펑펑 울고 갔습니다.
남자는 잘 안 운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울고 갔습니다.
몇 년 뒤 나는 두번째 가르킬 기회를 가집니다.
내 조카가(지금은 서른이 넘었습니다만) 국민학교 다녔는데
성적이 영 형편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삼학년 이었는데 반에서 한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지요.
그때 나는 장애인 초기 시절이었습니다.
집에서 아무 일 없이 있느니 그 아이를 가르키기로 했습니다.
먼저 시작한 것이 주산 이었습니다.
다른 공부 다 치우고 그냥 주산만 가르켰습니다.
내가 상고를 나왔기 때문에 주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손가락 한번 잘못 움직이면 회초리로 손가락을 때렸습니다.
그런 스파르트식 교육이 주효 했는지
한 육개월 하니 일단 정도의 실력이 되더군요.
아마 주산 해 본 사람이라면 주산 일단의 실력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것입니다.
그 정도의 실력이 되는 것을 보고 다른 공부를 시켰답니다.
주산 실력이 있으니 산수 실력이 좋아졌고,
산수를 잘 하니 다른 과목도 따라 좋아졌습니다.
오학년 되니 성적이 일취월장해서
우 하나 빼고 나머진 다 수 였습니다.
아마 전교에서 몇 등하는 실력으로 등수가 올라 간 것이겠지요.
그 아이는 그 뒤에도 공부를 늘 하여서
이제 내 년 쯤이면 박사가 되지 싶습니다.
국어국문학과의...
주산과 아무 관계가 없지만 주산이 원동력이 되었지요.
구십 몇년인가 세번 째 가르킬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 막내 동생의 아들이 공부가 엉망이었습니다.
정신과적인 병명으로는 '실독증' 이란 것이었는 것 같은데
그 아이가 그 증세가 있었습니다.
'실독증'이 뭐냐 하면 글자의 조합을 못 하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고 외워서 글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글 순서가 바뀌면 글을 못 읽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1.어머니, 안녕하세요?
2.아버지, 식사 하셨어요?
라는 두 예문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 순서를 바꾸어서 읽어라고 하면 2번을 읽어라고 해도
외운 순서대로 어머니 안녕하세요? 라고 읽습니다.
글자를 모르니 만화책도 안 봅니다.
동화도 당연히 안 보고, 그냥 컴퓨터 오락이나 TV 시청 하는것이 다였답니다.
그 아이를 잡고 한글을 가르켰습니다.
외우는 능력은 뛰어나니
'기니디리미비시이지치키티피히' 와 모음을 외우게 했지요.
참 어려웠습니다.
어릴 때 부터 유아원 부터 다니면서 생긴 '실독증'이 그렇게 끈질기더군요.
글을 외우지 않고 글 조합으로 글 만들게 만드는 것이 어렵더군요.
몇 년 고심을 하여서 글을 읽도록 하였습니다.
삼학년 부터 오학년 동안이니 이년이나 걸렸나요?
그렇게 늦게 글을 깨우치니 공부는 지지부진 했습니다.
허나 글 모르고 살지 않게는 했습니다.
늦게 중학교 가고 나서 만화책을 보더군요.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반인데 실습하러 다닙니다.
공고 다니니깐요.
더이상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답니다.
제가 크게 많이 가르켰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내 친구 처름 문맹자 아니게는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간간히 동네 아이들 컴퓨터 자판 연습 시킨 일은 있지만
뭐 크게 중요한 일 같지 않아 생략하고
이천년 넘어서 다시 가르킬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컴퓨터 활용능력을 독학으로 공부한 일이 있습니다.
한 육개월 공부하고 나서 장애인 기능경기 대회 출전한 일이 있는데
운이 좋아서 전국대회 동상을 딴 일이 있습니다.
상금이 지방대회까지 치면 이백 삼십 만원이니 몇 개월 공부하고
얻은 소득으론 참 괜찮지요?
그 다음 다음 해 나에게 엑셀을 가르켜 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장애인이 된 아가씨 였는데
이십년이 넘게 집에서만 있든 아가씨 였습니다.
나 보다 십년 가량 어린...
그 아가씨에게 공부를 시키려니 참 난감 하였습니다.
집에 가서 하긴 곤란하였고(좀 멀어서)
결국 통신 교육을 시켰습니다.
전화와 이메일로 공부 시켰답니다.
같은 문제를 컴퓨터에 놓고서 서로 공부 하였답니다.
내가 못 푸는 문제는 별로 없었으니 그 아가씨가 모르면
이 메일로 묻기도 하고 전화로 묻기도 하면 가르켜 주는 방식이었지요.
이듬해 그 아가씨는 장애인 기능경기 대회 지방대회 은상을 탔으며,
년 말에는 저도 없는 일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십년 집에서 살든 버릇도 없어져 차도 한대 샀습니다.
나도 없는 차를...
다음 가르킨 사람이 또 다른 장애인이었습니다.
전에 저의 글에 있든 발로만 컴퓨터를 칠 수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릴 때 열이 심했다든가 해서 뇌성마비가 되었다든데
손은 전혀 못 쓰고 입으로 전동 휠체어를 조정하면서
엄지 발가락 두개로 컴퓨터 자판을 치는 아이였습니다.
밥이나 그런 것도 혼자서는 못 먹는 그런 상황이었지요.
그 아이가 엑셀에 취미가 있어해서 가르켰습니다.
'이럴 경우는 이렇게 하고, 저럴 경우는 저렇게 하라는 간단한 충고 였습니다.'
여름에 제가 병원에 있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아이가 병원에 왔습니다.
그냥 병문안 왔거니 하고 빵 하나와 우유 한잔 먹여 주고 가라고 했더니,
"아저씨, 저 삼급 자격증 땄어요."
그 아이의 몸 상황으로서는 일급 자격증 딴 사람 보다 더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그 자격증을 받고 바로 저에게 가져 온 것입니다.
공부 가르킨 후 이런 결과가 나올 때 참 뿌듯 해집니다.
요즘 한 학생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S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엑셀을 말입니다.
'내가 이것 배워서 뭣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키니 합니다.'
라는 불평을 들어가면서 가르킵니다.
허어! 참
첫댓글 친구이야기... 참 보기가 좋습니다..배운다는것도 힘들지만 가르친다는것 요것도 여간힘들지않는답니다
좋은일 많이 하시니 복을 받는가보네요 저도 한강수님과 가까이 있었으면 배울게 많은데 남을 가르친다는것은 닌내와 끈기가 있어야 가르치는건데 장하십니다
지금 옆에서 그럽니다.절더러.."밉제!!"저도 가르켜주시려고 하는맘은 고마운데 제가 못 따라가니까 더 미안하죠..너무 많이 알아도 그렇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