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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고전 1:18-2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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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동아목사
기독교 역사 2000년을 통틀어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은 십자가 형틀입니다. 노예를 처형하는 살상무기로서 수치와 치욕과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가 갈보리 십자가 사건 이 후 기독교 하면 십자가, 예수님 하면 십자가, 이렇게 다 십자가로 통합니다. 초대교회 초창기 때는 십자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현장을 실제로 목격했던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소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형태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일체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이 다 가고 나서, 특히 주후 4세기 경 콘스탄틴 대제가 환상 중에 십자가를 본 다음부터는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예술의 소재로 활용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을 쥐어짜면 피가 나온다" 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짐승의 피가 흐르고, 신약에는 예수의 피가 흐릅니다.
한나라의 국기는 나라의 모든 문화와 전통과 역사와 국민성을 융합하여 표현하는 것이 국기일진데, 그 국기에 십자가를 새겨 넣은 국가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 스웨덴, 덴마크,그리스, 노르웨이, 뉴질랜드, 도미니카, 스위스, 아이슬란드, 통가, 투발루, 피지, 핀란드, 솔로바키아의 국기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국가의 안녕, 보호, 축복의 상징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병원의 마크는 십자가를 쓰고 있습니다. 국제적십자사의 마크는 글자 그대로 붉은 색 십자가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 무공십자가훈장입니다.
전번 영국 월드컵의 대표팀 주장인 데이비드 베컴(27)이라는 미남 선수의 신고 있는 축구화를 눈여겨 보면,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축구화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성 조지의 십자가'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 대한 존경과 팀 승리의 기원을 담고 있는 표시입니다.
지금은 신자나 불신자나 이 십자가를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때로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어떤 이들은 목걸이로, 어떤 이들은 귀걸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집에도 걸려 있고, 그것도 가장 은밀한 안방에 십자가를 걸어 놓는 집들도 많습니다. 가게나 사무실에도 이 십자가를 걸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귀한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는 영광이요, 승리요, 환희요, 구원이요, 치유의 상징으로 우뚝 서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감격과 기쁨과 평화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안목에 대한 놀라운 변화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챤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뭡니까?
크리스챤이라는 것은 바로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를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인의 속성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 것은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아주 처참한 죄인에 대한 처형법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저주스러운 죽음입니다. 인류역사상의 가장 비참한, 가장 부끄럽고,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이 십자가를 자랑,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합니다. 십자가 안에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 있습니다. 그 속에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이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1.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사탄과 세상과 죄와 타락한 사람과 육신과 타고난 생명과 옛 창조와 또는 율법을 폐하기 위하여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탄을 멸하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제하고 타락한 사람과 육신과 타고난 생명과 옛 창조를 끝내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주사만 맞으며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인인데, 의사가 아무리 진찰을 하고 엑스레이 (X-ray)를 찍어 보아도 그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에 의뢰 했는데, 정신과에서도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내과의사와 정신과 의사가 그 병원의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과 상담하는 중에, 그 여인은 어려서부터 좋은 신앙을 가졌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순간의 잘못으로 정조를 잃어버린 일과,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 점점 신체에 마비 현상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마비되고 식도가 마비되어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바로 죄의식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여인에게 죄 용서에 대한 말씀을 간략하게 해주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당신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예, 압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모든 죄는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용서받은 증거로 성찬식을 행하실까요?"
목사님께서는 성찬기를 가지고서 단 둘이서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살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를 씻어 주기 외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입니다."
목사님은 간곡하게 기도하면서 성찬식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찬식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마비 상태가 풀렸다는 사실입니다. 영양주사를 뽑고 그녀는 국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차츰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죄의 올무에서 그녀를 해방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얻은 자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약함을 치료하며 질병을 고치십니다.
김익두를 모르는 미국인 처녀 선교사님이 길에서 김익두를 만나자 "청년,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김익두가 그 전도지로 코를 팽 풀어서 집어던졌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모르는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
그런데 그 말에 능력이 들어가니, 그때부터 김익두의 코가 간질간질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꼭 코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웠는데도 코가 폭싹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강심장인 김익두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내 코가 정말 썩으면 어떻게 하나?'
다음 날 수소문해서 처녀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제발 코가 썩지 않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코가 썩지 않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은혜를 받고 나니 너무 좋아서 입만 열면 "예수, 예수." 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김익두는 죽었다. 깡패 김익두는 죽고, 새 사람 김익두가 살아 있다." 하며, 여기 저기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결국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병한자를 낫게 하고, 장님의 손을 대고 기도하여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예수님의 복음을 얼마나 많이 전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왜 크리스챤이 되었는가? 란 책에서 그는 유식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려고 신학공부 신학이론에 영적인 눈이 가리워 30년 동안 기독교를 등지고 일본주의산봉하다 아내의 인도로 교회에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의상이 자리라고 변화되어 복음의 광채가 빛나게 되었던 간증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2.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는 십자가는 거치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1)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충족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능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계획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능력은 계획하고 목적한 바를 수행하고 성취하기 위한 에너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우리는 지혜나 방법이 없이 자신의 능력이나 힘만을 가지고 그 힘을 어리석은 방법으로 사용하기가 쉽습니다.
2)여자의 후손을 통한 가죽옷 사건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3)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주신 것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누리고 생명주는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기질과 성질에 대하여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 우리의 성질과 기질과 인격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체험할 때 인내하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심한 가뭄이 들어서 농부들이 물싸움을 하는 판에 한 성도도 밤 새워가며 자기 논에 물을 대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집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와 보니 아래의 논임자가 물을 모두 도둑질하여 자기 논에 대놓았더랍니다. 그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고는 그날 밤도 자정이 넘도록 논에 물을 댔습니다.
새벽에 들어와 한숨 자고 나가보니 또 물을 빼갔습니다. 당장 쫓아가서 분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목사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 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당신도 살고 그 사람도 사는 길을 찾아보십시오. 두 번이나 속았으니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아랫논에 먼저 물을 대주고 당신의 논에 물을 대 보십시오."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성도는 울분을 달래며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래 논임자가 울면서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데도 이번에는 내 논에다 물을 대주셨습니까? "저도 당신을 따라 예수를 믿겠습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십자가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를 이겼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 안으로 들어갈 입구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육신과 천연적인 생명과 옛창조로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자리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을 어서 예수 믿게 하려는 급한 마음에,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예수 천당!"하고 소리 쳤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든, 처녀를 만나든, "예수 천당!"하고 외쳤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는 최 목사님을 보면서 "저 미친 놈 좀 봐라."라고 했지만, 그들이 결국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왜입니까? 잠을 자려고 하는데도 "예수 천당! 예수 천당!" 하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서 맴도니, '아이구, 예수 귀신이 붙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예수귀신 을 떼려고 교회에 갔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도는 내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여도 똑똑한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해 보이는 것도 사람보다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께서 약해 보이 셨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찬란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계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 능력으로 쇠를 자석에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석만 들고 가면, 아기가 들고 가든 할아버지가 들고 가든 대학 교수가 들고 가든 의사가 들고 가든 환자가 들고 가든 자석만 들고 가면 쇠가 달라붙습니다. 자석의 능력으로 쇠가 달라붙는 것이지 사람의 실력으로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이 지혜로워 내가 전도할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것만 자랑하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놀랍습니다. 물론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도 믿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세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니 내가 보여 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요나가 큰 물고기 속에 3일 동안 있었던 것같이 나도 땅 속에서 3일간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입니까? 표적을 보아도 믿을 사람만 믿지,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기시는 것,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것, 장례식 하러 가는 나인성 과부 아들의 관에 손을 대고 "청년아, 일어나라." 고 말씀하셔서 청년을 살리시는 것을 다 보았어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표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마다 천사가 백 명씩 내려와서 우리 교회 성가대에 앉아 찬송하고 올라가면 우리나라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을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믿을 사람만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 하여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주시고 밤새도록 바람으로 말려주셔서 모든 백성이 안전하게 건넜습니다. 너무 기뻐서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광야로 들어가자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흘을 걸어갔으나 당장 마실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마라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그들앞에 물이 보였습니다. 달려가 마셔보니 너무나 써서 아무리 목이 갈한 상태라도 도저히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물이 눈앞에 있어도 쓴 물이라 마실 수 없으니 얼마나 맘이 더 상하겠습니까? 그러자 백성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마라의 쓴 물보다 더 쓴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을 떠서 마시니 이제는 하나도 쓰지 않고 단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달아진 물을 모든 백성들이 마음껏 마시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하나님께서는 쓴물도 단물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히 12:15 말씀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사람에게는 쓴 뿌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쓴 뿌리가 나면 본인도 괴롭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러움을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쓴 뿌리가 어디에서 생깁니까? 마음입니다. 백성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불안에 사로잡히고 마음에 쓴 뿌리가 나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던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쓴 뿌리에서 나온 독이 민족공동체 전체에 확산되었습니다.
그 때 그 쓴 물을 해결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에서 나왔습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쓴 물에 던지자 물이 치료되고 달아졌습니다. 그 나무는 도대체 어떤 나무이기에 쓴 물을 치료하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그 나무의 수종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패하여 쓴 물을 내는 죄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괴롭게 하고 더럽게 하는 쓰디 쓴 사단의 독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쓰디 쓴 감정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쓴 물로 가득 채워진 인생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마음에 던지면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속에 잠기우기만 하면 쓴 물이 단 물로 바뀝니다. 아무도 마시지 못할 정도로 쓴 물을 내는 사람이라도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쓴 물을 내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마음에 받아들여 잠그고 살면 단물 인생이 되어 본인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만족해하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의 세력을 이깁니다. 육의 본성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율법의 사망의 법을 이기게 하십니다. 마귀의 세력을 이기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의 소망이요 능력이요 환희요 승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