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확진자가 22만 명을 넘어서 최다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거리두기 완화를 발표하여 ‘정치방역’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구를 닷새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영업시간 규제를 완화시킨 것은 선거와 무관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여당의원이 정은경 질병청장에게 ‘선거에게 여당후보를 찍도록 관리를 해 달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인 작태를 보여 빈축을 샀는데 이번에도 대부분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갑자기 규제 완화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방역당국은 앞서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밀접접촉자에 대한 격리를 중단했고, 방역패스를 폐지했습니다. 이에 더해 거리두기까지 대폭 완화되면 사실상 마스크 착용 외에 모든 방역 조치가 해제되는 셈인데 이게 대통령 선거와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자랑하던 소위 'K-방역'의 목적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영국·미국·독일·프랑스 등은 한국에 참 고마운 존재이다. 백신 접종, 치료제 투여, 이런저런 방역 등을 우리보다 앞서 시행했다. 델타·오미크론 등의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유행도 먼저 겪었다.
한국은 백신의 효능, 접종 주기, 치료제 효능 등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델타나 오미크론이 어떤 놈인지, 어떻게 유행하는지, 약점이 뭔지 등등 모든 걸 배웠다. 이들 덕분에 좀 더 편하고 안전한 길을 갔고 'K 방역'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준 길이다.
방역 당국은 오늘(5일)부터 거리두기를 밤 10시에서 11시로 늦췄다. 그러면서 아직 정점이 언제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이기일 제 1통제관은 4일 브리핑에서 "정점 규모와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확실성이 있다"며 "전문가들과 질병청 분석 결과로는 향후 2~3주 이내에 정점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4일 0시 확진자·사망자가 최대치를 기록한 사실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하루 확진자가 35만명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스스로 무시했다.
오미크론은 8부 능선쯤에 온 듯하다. 우리의 선생이 돼 준 나라 중 8부 능선에서 규제를 푼 데는 없다. 규제를 가장 일찍 푼 덴마크도 정점 언저리에서 풀었다가 다시 확진자가 치솟아 '쌍봉낙타' 유형을 보였다.
규제를 풀려면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게 치명률이다. 오미크론이 델타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독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모(확진자)가 늘면 치명률이 떨어지는 건 너무 당연하다. 치명률 감소가 치솟는 세 가지 지표(확진자·위중증환자·사망자)를 무시할 만큼 강력할까.
방역 당국은 지난달 18일 영업제한 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늦추면서 이례적으로 3주 시행을 내놨다. 그전까지 2주였다. 대통령 선거일을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 3주를 고집했으면 대선 일(9일)이 낀 주의 금요일인 11일에 새 거리두기 조정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대선을 4일 앞두고 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자영업·소상공인분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김부겸 총리도 민생 경제 애로를 들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분석 결과 거리두기 조정은 중증환자 규모와 발생 시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감염병 전문가도 아닌 청와대 참모가 거리두기 조정을 두고 가타부타 말을 보탠다.
방역패스 중단(1일)도 뒷말을 남겼다. 지난달 24일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어느 정도 (유행이) 안정화되면 방역패스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며 "전국적 중단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일주일 만에 허언이 됐다.
중대본은 4일 1m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주기적인 환기·소독 등 기본방역수칙의 철저한 준수를 당부했다. 한쪽은 풀고, 다른 쪽은 죄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지난달 14일 4차 접종을 시작했지만 3만 9900명밖에 맞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말대로 오미크론 시대에는 거리두기의 무용론이 나올 법하다. '6명, 11시'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정점에서 좀 내려왔을 때 해도 절대 늦지 않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 주인은 "영업시간을 연장해도 손님이 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확진자가 줄기 시작했다는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계속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영업시간 연장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득표에 얼마나 기여할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섣부른 완화가 유행 지속기간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한 여당 의원은 지난달 초 대놓고 “여당 후보를 찍도록 (코로나19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달라”고 정은경 청장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가 아무리 "정치 방역이 아니다"라고 한들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며칠 전 한 전직 장관은 사석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게 방역의 정치 개입과 이로 인한 신뢰 상실"이라고 지적했다.>중앙일보.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문가들이 모두 정점을 찍고 내려갈 때까지는 유지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안 받아들여진다”라며 “정치적인 고려가 깔려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예방 가능한 중환자와 사망자를 담보로 ‘방역 도박’을 하는 것”이라며 “정점이 아직인데, 관리 가능하니까 방역을 푼다는 건 죽을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얘기”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치 방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장관이 했던 말이 며칠 뒤 뒤집어지고 방역 당국의 말 바꾸기도 반복되고 있다”라며 “정치 방역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규 확진자 숫자나 기초감염재생산지수, 사망률 등이 계속 올라가며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 계속 엑셀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