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인사와 식은 죽 한 그릇
-나의 문학적 소신과 정치적 소신
정임표
날이 추워진다. 어제는 무를 뽑아 구덩이를 파고 묻었고 오늘 아침에는 헤르만 헷세가 남긴 시 <꽃에게 물을 주며>를 읽는다. 필자는 등단 16년 차 작가다. 세상을 울릴 감동적인 작품은 발표한 적이 없지만 문학이 뭔지 왜 문학이 아름다워야 하는지는 안다. 문학에 쌍말, 쌍욕을 쓰지 말아야하는 것은 쌍말 쌍욕이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 시키는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쌍말을 하는 분을 보면 사람이 덜 된 듯하여 가까이 하지 않는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인간정신세계 발전 단계에 대한 성찰을 압축한 말이다. 격물치지는 했지만 성의정심이 없으면 분노와 욕설을 마구잡이로 잘 터트리고 잘 내 뱉는다. 격물치지에다 수신제가를 이루려는 인내심이 뒷받침되어야 다음 인성(人性)인 성의정심이 일어나고 그 힘으로 이웃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치국평천하가 이루어진다. 이는 미시적인 문제해결에서 거시적인 문제해결로, 미분의 세계에서 적분의 세계로, 소승적 세계관에서 대승적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인간정신의 바른 발전 단계이다.
알릴레오를 운영하시는 분이 "어제(2021년 11월 12일) 알릴레오에서 "000후보는 흠결이 아니라 상처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알릴레오 이름처럼 아주 정확하게 알렸다고 본다. 상처가 많은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하지 한(恨)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가난했던 집안의 자식이 독기를 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자신을 무시한 옆집아줌마에게 복수하고 자기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하늘에다 맹세하는 것도, 바로 그 영혼에 남긴 상처 때문에 일어나는 자기 한의 올가미다. 한은 흠 많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보듬어 안는 사랑으로 풀어야지 복수로서 풀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한풀이는 또 다른 무수한 새로운 한을 잉태시킨다. 그래서 작가인 나는 한풀이성 독재자를 싫어하고 자유주의자를 좋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싶다. 점심도 굶고 아버지와 둘이서 긴 보리밭을 매고 있었다. 보릿고개를 넘기가 참으로 힘이 들던 시절이었던지라 어머니는 그 즈음에 막내 동생을 등에 업고 괴나리봇짐 장수로 나서곤 했다.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종다리가 높이 떠서 울면 그 소리에 빠져서 배고픈 것도 잊었다. 우리 밭 건너 저 편에서도 한 아낙이 보리밭을 매고 있다. 재종 누님이다. 뭔가 보자기에 싸가지고 와서 점심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같이 먹자고 부르지도 않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와 아버지는 긴 보리밭을 기며 모른 척하고 김을 매고 있었다. 한 참이 지났다. 건너 누님도 식사를 다했는지 일어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같이 먹자고 부르려다가 멀어서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보리 밭 이랑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누님을 향해 쏘아 붙였다.
"헛인사는 식은 죽 한 그릇보다 못해요~!"
어디서 그런 당돌한 표현이 나왔는지는 나도 몰랐다. 어른들이 가끔씩 하는 말을 주워들은 게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인가? 그 말 속에는 내 가슴 속에 숨겨 놓은 세상을 향한 미움과 증오(가난에 대한 트라우마)의 덩어리가 똘똘 뭉쳐져 있었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작가가 되고나서 비로소 미움과 증오의 덩어리를 자식처럼 끌어안고 쉰이 넘은 나이까지 세상을 살아냈다는 것을 알았다. 자학과 가학사이를 오가면서 내 방식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여겼다. 한(트라우마)의 포로가 되어 나의 영혼이 자유를 잃고 감옥 속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로또 복권을 사는 심리", "왕창 한방에 떼돈 벌어서 한을 풀어보고 싶다는 심리" 속에는 성의정심이 없다. 금수저 흙수저 논쟁 속에도 성의정심이 없으니 사랑이 내재해 있지 않다. 사랑이 내재하지 않으면 어느 한 쪽는 늘 타도 대상이 된다. 그래서 한이 많은 인간의 귀에는 “부르주아"나 "플로레타리아” 같은 괴이한 언어가 신비하게 들려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생명도 타도대상이 될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도 인간사회 속에서 인간의 정신작용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홀로 자연인으로 살면 선악이란 개념 자체가 생길 수가 없다. 톨스토이의 <부활>, 토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빅톨위고의 <레 미제라블>, 기타 수많은 세계문호들이 남긴 불후의 명저들은 죄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동체 속에서의 사랑을 주제로 담아 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 세계에서나마 인류의 한풀이가 일어나려는 가 보다. 한이라 표현하면 와 닿지도 않던 말이 트라우마라고 표현하니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인간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유희하는 아름다운 세상(문화예술의 창달)을 만들고 싶다. 이게 나의 정치적 소신이자 문학적 소신이다. 나눠먹을 게 없어서 많이 미안했던 그 누님도, 가난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이제는 다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다. 가을이 깊어가니 "살아내면서" 이웃들에게 독한 소리를 한 게 천둥소리처럼 매일 밤마다 울려온다. 유희할 시간에 유희하지 못하고 미움과 증오의 독기를 품고 살았으니 가난이 죄였던 시절이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들이여! 참으로 미안했다. 부디 용서를 빈다.
주어진 시간이라는 오선지 위에서 자기 삶을 연주하는 자여! 자기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라! 그 이상의 정치적 문학적 소명이 이 땅에는 없다. 있다고 떠드는 자는 헛소리 하는 자다. 오늘 밤은 헤르만 헷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어봐야겠다.(21.11.14 09:59)
꽃에게 물을 주며/헤르만 헷세
다시 한 번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
우리, 정원을 가꿉시다.
꽃들에게 물을 줍시다. 벌써 생기를 잃고 있어요.
곧 시들 거에요. 어쩌면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 번, 다시 세상이
광폭해지고 전쟁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우리,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
노래를 불러줍시다.
첫댓글 ^*^ ^*^
꽃에게 물을 주며/헤르만 헷세
다시 한 번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
우리, 정원을 가꿉시다.
꽃들에게 물을 줍시다. 벌써 생기를 잃고 있어요.
곧 시들 거에요. 어쩌면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 번, 다시 세상이
광폭해지고 전쟁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우리,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
노래를 불러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