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학년도 1차 인하대 논술모의고사
가. 계열공통
1. 출제문
※ 제시문을 읽고 주어진 논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하시오. (20점, 600±60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 오비락은 평소 친구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해결될 때까지 돌봐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길 좋아하는 학생이다. 지난 주말을 지내는 동안 마침 가까이 지내는 학급 친구들에게 선물해 주면 좋을 몇 가지 물건이 수중에 들어 왔다. 형이 읽으라고 건네준 철학책은 자신이 읽기엔 다소 벅찼고 책벌레인 유원칙에게 주면 더 좋아할 터였다. 누나가 야유회에서 상품으로 타온 초콜릿이 열 상자나 있었는데 한 상자는 먹보 전실익에게 한 상자는 빼빼 나우정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늘 붙어 다니는 여보배가 걸렸다. 그에게는 자신이 아끼던 음악 CD를 한 장 주기로 했다. 좀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여보배가 용돈을 모아 구입하려고 벼르고 있는 것이었다. 여보배는 남에게서 좀처럼 뭘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지만 이 CD만큼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마침 오비락의 학급에는 회장이 전학을 가서 조만간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 오비락은 이번 기회에 급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회장 보궐 선거 후보로 등록해 놓았으며, 경쟁자인 다른 급우와는 지지도 면에서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혹시 오해를 살까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늘 하던 일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기뻐할 표정을 생각하니 오비락은 빨리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월요일에 등교하자마자 오비락은 친구들을 만나 선물을 건넸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오비락이 물건을 건네자 친구들의 반응은 제 각기 달랐다. 이들은 나중에 오비락이 없는 자리에서 이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유원칙 : 아까 오비락이 자기가 읽긴 좀 벅차다면서 형이 준 철학책을 나에게 주려고 하더라. 평소에 무척 읽어 보고 싶던 것이긴 해. 그런데 그 친구 이번에 학급 회장에 출마했잖아? 그럼 그 책은 뇌물이 되는 거 아냐? 그러면 곤란하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했어. 아무리 친구고 평소 베풀기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런 때 녀석처럼 행동하는 부정직한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어. 이 사실을 학생 윤리위원회에 알려야겠어.
전실익 : 나에겐 초콜릿을 주더라. 내가 마다할리 없지. 그런데 학기 초에 옆 반 회장 후보가 같은 반 애들에게 피자 세트를 사준 일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일이 있는데, 함께 얻어먹은 그 반 학생윤리위원회 위원도 자격을 잃었어. 나도 위원이라는 사실은 너희도 알고 있지? 부모님은 살찐다고 간식 사먹을 용돈도 주시지 않고, 초콜릿도 매달 지급되는 위원 활동비를 아껴서 사 먹는 거야. 그렇지만 내가 위원 자격을 박탈당하면 결국 더 손해지. 괜한 소문이라도 나면 오비락에게도 좋을 게 없고.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내내 좋아하는 초콜릿을 먹기 위해서라도 미안하지만 일단 사양한다고 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친구가 주는 것이고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누가 본 것도 아니고. 혹시 누가 봤더라도 늘 뭔가를 나눠주는 녀석인걸. 그래서 결국 받았어.
나우정 : 그래 나도 받아서 벌써 다른 애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는걸. 오비락은 늘 우리들에게 뭘 주는 친구이지. 평소 하던 행동이고 우정의 표시야. 그것을 무슨 뇌물이니 어쩌니 할 수 있을까? 나야 초콜릿을 받고 받지 않고를 떠나 둘도 없는 친구이고 항상 베풀기를 좋아하는 오비락에게 한 표 찍을 테지만, 아무튼 오비락이 부정직하니 어쩌니 하는 말은 듣기 거북하구나. 너무 착하다 보니 앞뒤 가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선거 기간에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다른 친구에게는 선물을 자제하란 이야기는 해 두었어.
여보배 : 나에게는 다 들었다며 CD를 한 장 주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고 하던 그 CD 말이야. 그게 오비락이 요즘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내가 잘 알아.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는 것이 내가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는 생활신조라는 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나도 그 CD가 무척이나 갖고 싶어서 용돈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거절했어. 네 마음은 잘 알겠으니 됐고 각자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간직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
【논제】(가) 오비락이 친구들에게 건넨 선물에는 뇌물성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분명하지 않은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절한 이유(기준)을 들어 서술한 다음, 이와 연관지어 (나) 유원칙, 전실익, 나우정, 여보배 네 학생이 취한 태도 중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 골라 나머지 세 사람의 태도와 비교하며 논술하되, 그와 같은 태도에는 어떤 단점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언급하시오.
2. 출제 의도와 문제 해설
(1) 출제 의도
인하대학교 정시모집 논술고사 인문계․자연계 공통 문제는 수험생들의 일반적인 가치관과 인성을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고전 등에서 발췌한 어려운 지문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고도의 이해력과 분석 능력, 비판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고등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설정하여, 그 상황과 관련된 합리적인 판단 능력과 논리적인 의사표현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계열공통 문제의 출제 의도이다. 계열공통 문제는 인문계나 자연계 학생 어느 쪽에도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할 것이 없다.
제시문은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평범한 내용이다. 또한 서술해야 할 내용과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점도 문제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논술고사에 대비한 시험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익힌 정형화된 틀이나 기술적 방식 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자신의 견해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드러내며, 그 견해에 대한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만 밝힌다면 누구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 주제 분석과 제시문 해설
평소와 다름없는 선의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늘 남을 챙기기 좋아하고 선물 주길 좋아하는 한 학생이 학급 회장 후보에 출마한 상황에서 충분한 고려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함으로써 빚어진 상황과 친구들 간의 논란을 제시했다. 오비락이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주고자 한 데에는 다른 뜻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의식하면서도 신중히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의 상황에 봉착한 셈이다.
(3) 논제 해설
논제는 크게 (가)와 (나) 두 가지가 주어졌다.
(가)는 주어진 제시문에서와 같은 경우에 관해 뇌물성 여부 혹은 모호함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해 분명한 이유/기준을 들어 견해를 서술하도록 요구했다.
(나)에서는 (가)에 관한 견해와의 연관 속에서 네 학생의 서로 다른 태도/반응 가운데 응시자가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선택하고 다른 학생의 경우와의 비교 속에서 그 이유를 논술하도록 요구했다. 덧붙여 응시자가 선택한 가장 바람직한 태도의 이면에 있을 수 있는 단점 혹은 맹점을 고려해 논술하도록 했다.
응시자는 다음의 각 사항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답안을 작성하면 될 것이다.
(가) 뇌물성 여부의 판단
① 뇌물성이 있다고 판단
회장 입후보자인 오비락은 학급 회장 보궐 선거를 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비록 명시적으로 말한 바는 없으나 선물이 건네진 시점이 회장선거를 눈앞에 둔 때였으므로 오비락의 선물공세는 정황상 친구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행위로 판단할 수 있고 따라서 그가 준 선물 속에는 뇌물의 성격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② 뇌물성이 없다고 판단
오비락은 평소 친구들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여기고 돌봐준 학생이며 이것저것 챙겨주길 좋아하는 학생이다. 이번 선물도 오비락은 별다른 생각이나 의도하는 바가 없이 늘 하던 대로 친구들에게 준 것일 뿐이다. 회장 선거가 있든 없든 오비락의 행동은 시종일관 했으므로 그가 준 선물을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순수하고 착한 행동을 왜곡하는 억측이다.
③ 뇌물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호하다고 판단
오비락이 평소에 친구들을 도와주고 순수한 의도로 선물을 자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물에 대해도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선물은 회장 입후보자인 오비락이 회장 보궐선거가 눈앞에 닥친 미묘한 상황에서 준 것이다. 따라서 그가 평소처럼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선물을 주었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오비락의 선물 속에 뇌물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나) 각각 취한 태도의 장단점 ― 바람직하다고 판단할만한 근거 및 비교의 대상이 되는 단점, 바람직한 태도 이면의 맹점
① 유원칙
장점-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견지한다는 점 그리고 투철한 준법정신이 장점이다. 대상이 친구라 할지라도 자신이 부정직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단호하게 배척한 점, 평소 무척 갖고 싶어 한 책이었지만 그것이 뇌물이라고 판단하자 받기를 거부한 점, 학생윤리위원회에 알리려고 한 점 등에서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단점- 융통성이 없고 성급하다. 오비락의 선물을 뇌물로 단정하거나, 학생윤리위원회에 알리려 한 점 등에서 이런 면이 잘 드러난다. 오비락의 진심을 찬찬히 확인해 본 이후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친구로서 취해야할 도리일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직설적인 성격도 단점이다.
② 전실익
장점- 사고와 행동이 유연한 점이 장점이다. 학생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오비락의 초콜릿선물이 말썽의 소지가 있는지를 따져보고 일단 거절했다가 다시금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한 후에 받는 행동에서 그의 사고나 행동이 상당히 유연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방을 적당히 배려할 줄도 안다.
단점- 일관성이 부족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따진다. 오비락이 주는 초콜릿을 거절했다가 번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행동기준이 없다. 또한 학생윤리위원 활동비로 초콜릿을 사먹는다든가, 오비락의 초콜릿을 거절하는 이유를 학생윤리위원 활동비로 계속해서 초콜릿을 사먹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서 그의 행동 기준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의 여부임을 알 수 있다.
③ 나우정
장점- 우정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친구를 감싸고 충고해 줄줄 안다. 절친한 친구인 오비락에게 가해지는 다른 친구들의 의심을 평소 그의 행동을 근거로 들어 변호하고 있다. 또한 오비락에게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단점- 우정지상주의에 의해 그의 객관적 판단력이 흐려져 있다. 친구들 간의 오고가는 대화의 초점은 오비락의 선물에 뇌물성이 있는가의 여부였는데 나우정은 엉뚱하게 우정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둘도 없는 친구인 오비락에게 한 표 찍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방향성 상실은 절정에 이른다.
④ 여보배
장점- 거절할 때도 친구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한다. 오비락이 내미는 CD를 거절하면서도 마음은 잘 알겠다고 말해주어 상대방의 호의를 긍정해주었다. 이런 여운은 오비락의 마음을 감싸줌으로써 친구들에게 호의를 거절당했다는 씁쓸한 기억이 그의 뇌리에 남지 않도록 해 준다.
단점- 융통성이나 남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조를 지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친구의 선물을 받으면 신세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융통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선물을 거절했지만, 특정 상황에서 선물을 받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신념은 결여하고 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싫다는 원칙에 근거한 거절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알겠다는 모호한 말은 그가 친구들 사이에 논란이 된 뇌물이냐 선물이냐 하는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예시 답안
* 여러 가지 유형의 답안이 나올 수 있다. 그 가운데 네 가지 유형의 예시 답안을 제시한다.
<예시 답안 A>
뇌물성 선물로 간주함. 유원칙의 태도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봄.
선물이냐 뇌물이냐를 가늠하려면 의도, 언행, 정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의도가 어떤지도 중요하지만 모호하거나 은폐된 경우가 많으므로 결국은 객관적 정황에 따라 판단해야만 한다. 오비락이 공정하게 치뤄져야 할 회장 선거를 앞두고 친구들에게 건넨 선물은 뇌물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봤을 때 네 친구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취한 것은 유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유원칙은 준법정신이 투철한 학생으로 뇌물수수에 관해 올바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유원칙은 오비락의 잘못된 행태를 분명히 지적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 반면 여보배의 경우 CD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 이유는 뇌물에 대한 정확한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나우정은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우정지상주의자이다. 뇌물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선물을 덥석 받은 데에서 더 나아가 잘못된 행동을 한 오비락을 두둔하는 잘못을 범한다. 전실익은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의 여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저울질 끝에 결국 초콜릿을 받아 챙기는 그는 가장 속물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유원칙의 태도에도 흠은 있다. 정황이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베풀기 좋아하는 친구의 의중을 헤아려 좀 더 신중히 반응했을 필요가 있다. 성급하고 융통성 없는 행동이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650자)
<예시 답안 B>
뇌물성 여부가 모호하다고 판단함. 전실익의 태도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봄.
특정 상황에서 선물이 증여될 때 그것이 뇌물성을 갖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전후 맥락과 정황, 의도, 관련 언행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구체적인 요구 같은 것이 없었다면 특히 맥락을 잘 살피고 의도를 신중히 가늠해보아야 한다. 오비락의 평소 행동을 통해 보건대 그가 선의로 그랬으리라 인정할 수 있지만, 선거를 앞둔 정황은 혹시 하는 의심을 품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물의 뇌물성 여부는 다소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행동한 친구는 전실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섣불리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 그에 비하면 유원칙이나 나우정은 뇌물이냐 아니냐를 지나치게 성급하게 판단했다. 상황의 어떤 한 측면만을 보고 가능한 다른 측면들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보배의 경우 상황의 본질에 고려하지 않고 자기 신조만을 기준으로 반응했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가 있다.
전실익은 대단히 실리주의적인 학생으로 철저히 자신의 이해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신중함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옳고 그름을 무시하는 행동이 된다는 맹점도 있다.(552자)
<예시 답안 C>
뇌물성 선물이 아니라고 판단함. 나우정의 태도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봄.
힘 있는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며 상당금액의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물품을 제공했을 때 뇌물을 주었다고 한다. 평소에 늘 뭔가를 챙겨주는 친구였다면 선거를 앞두고 사소한 선물을 주었다는 정황만으로 뇌물을 제공했다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지를 바란다는 구체적 요구가 없었던 바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시된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취한 것은 나우정이다. 친구에 대한 신뢰와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다면 절대 그 선물을 뇌물이라고 주장 할 수 없을 터이다. 친구가 주는 선물을 평소와 같이 거리낌 없이 받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오비락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그의 선의를 설득하려는 모습도 훌륭하다. 반면 유원칙은 성급한 판단을 근거로 지나치게 고지식한 태도를 보였다. 전실익은 신중한 듯 하지만 사실은 제 잇속만을 챙기려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여보배는 친구를 한껏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제 신조 지키기에 급급한 이기주의자이다. 전실익과 여보배는 사실은 비슷한 부류이다.
나우정과 같은 의리파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친구를 두둔하는 잘못을 곧잘 범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다. 친구고 착하니까 무조건 오비락을 믿고 지지하겠다는 태도를 옳다고만은 볼 수 없다.(649자)
<예시 답안 D>
신세지지 않는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함. 여보배의 태도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봄.
뇌물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의도가 어떠한가이다. 고위공직자가 금품을 받았다가 돌려주어도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전부터 줄곧 그런 행동을 보인 데에서 오비락의 의도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순수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 친구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보인 것은 여보배다. 그는 친구의 선의를 인정하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신조에 따라 거절한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소중한 것을 지키자는 말로 상대를 배려한다. 사려 깊으면서도 단호한 이러한 태도는 섣부른 판단으로 친구의 의도를 왜곡하고 힐난하는 유원칙이나 제 잇속만 챙기려는 속셈으로 오락가락하는 전실익의 태도와 크게 대조된다. 나우정도 친구의 선의를 인정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덥석 선물을 받은 것은 경솔하다.
물론 여보배의 태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태도가 엄격히 봤을 때 뇌물수수에 관한 명확한 입장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잘 알겠다’는 말도 다소 모호하다. 중요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이처럼 무신경한 태도는 다른 상황이었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592자)
4. 평가 기준
(1) 일반적 기준
* 원고지 작성법,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의 정확성과 명료성, 정해진 분량 등 한글 답안의 형식적 요건들이 두루 충족되어야 한다.
* 모든 논술고사에서 요구하는 기본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견해, 일관된 주장, 설득력 있는 근거,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지가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본 논제와 관련된 구체적 평가 기준
*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했는가?
* 제시된 정황을 기초로 사태의 이면에 대해서도 고려했는가? (단, 제시된 정황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억측해서는 곤란함)
* 주어진 논제를 정확히 파악해 지시대로 빠짐없이 서술했는가?
① 뇌물성 여부에 관한 서술
②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분명히 제시
③ 다른 학생의 경우와의 비교 속에서 서술
④ 바람직한 경우가 갖는 단점에 대해 서술)
* (가)와 (나) 부분의 연결이 논리적이며 자연스러운가?
* 한 사람의 태도에 적용하는 기준과 다른 사람의 태도에 적용하는 기준에 일관성이 있는가?
*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 최근 사회적 이슈, 현상과 연결시켜 과도하게 서술을 확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 인문계열
1. 출제문
※ 제시문을 읽고 아래 논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하시오.(80점)
【논제 1】 (나)를 요약하시오. (10점, 250±25자)
【논제 2】 (가)와 (나)가 주장하는 ‘글’의 장점을 200자 정도로 요약한 후, (다)를 참고하여 ‘글’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을 200자 정도로 서술하시오. (20점, 400±40자)
【논제 3】 공동체의식 고취에 기존의 반상회와 (라)의 사이버 반상회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논술하되, 반드시 (다) 혹은 (라)에 있는 논거 3개를 이용하시오. (50점, 900±90자)
(가) 사람이 말할 줄 몰랐다면, 사람은 제가 체험하고 제가 만든 일을 남에게 가르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말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은 말을 하고 들음으로써 남의 경험을 그대로 제 경험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말은 그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듣지 못한다. 또,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 들은 말을 완전하게 받아서 오랫동안 지니고 있지를 못한다. 이와 같은 말의 약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람은 글자라는 것을 발명하여 말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말을 그림과 글자로 기록함으로써, 말의 뜻은 더 먼 곳의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훨씬 뒤에 오는 사람에게도 알려질 수가 있게 되었다. 말을 글자로 기록한 것이 글이요, 글을 손으로 쓰거나 인쇄한 것이 책인 줄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말과 글이 사람의 정신과 정신이 오고 가는 다리이듯이, 책이 또한 그렇다. 그러나 책이 놓는 다리는 말과 글보다 더 넓게 퍼지고 가장 오래 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 만일 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책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옛날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 체험하고 발명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밤낮 남이 이미 지나간 뒤를 밟아서 조금씩 나아가다가 죽고 말 것이 아닌가? 또, 그 조금 얻은 지식조차 그 사람 당대에만 끌나고 마는 까닭에, 인류 문화는 도저히 오늘과 같은 높은 곳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남의 경험을 제 경험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있기에 사람들은 항상 먼저 간 사람이 도달한 곳에서부터 자기의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옛사람이 쌓아 놓은 탑 위에 새 사람이 탑 한 층을 더 쌓는 셈이요, 옛사람이 들고 온 횃불을 새 사람이 받아 들고 뛰는 격이란 말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 같은 찬란한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나) 최초의 인류들은 간단한 몸짓이나 눈짓으로 서로 의사를 교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 언어는 조금만 거리가 떨어져도 의사를 교환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소리였다. 이 단계의 소리는 아직 자음과 모음의 분절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겠지만, 나름대로 상황에 맞는 의사전달의 기능을 담당했다. 이러한 소리는 점차 규칙성을 획득하면서 한 언어공동체의 말로 정형화된다.
이처럼 소리와 말은 의사소통의 공간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소리쳐 불러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면, 거기까지 한 개인의 영역이 확대된 셈이다. 물론 소리는 허공에 외치고 나면, 곧 사라진다. 이런 의미에서 소리는 저장성이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즉각성,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었다.
곧 사라져버리는 소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그림(이미지)이다. 네안데르탈 인과 크로마뇽 인의 동물 벽화는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마는 소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 경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하고 영속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동굴에 그려진 그림들은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적 과정, 의식, 그리고 반복적인 신화와 설화를 담으면서 건축 ․ 회화 ․ 조각 ․ 음악 ․ 무용 ․ 문학 등의 발전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발전은 좀 더 추상화된 기호인 문자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이제 시간의 일시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록의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인류의 의사소통 수단은 신체언어에서 소리와 말의 단계로, 그리고 그림과 문자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이 이처럼 단선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멀티미디어의 발전은 소리, 말, 그림, 글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의사소통의 방식을 주로 사용하며, 심지어는 글보다는 그림을, 그림보다는 말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상의 채팅은 글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말에 가깝고, 이모티콘(emoticon)과 같은 보조 이미지 활용을 통해 더욱 재미있고 감성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정착되고 있는 추세다.
(다) 1997년에 사무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거의 반수의 응답자들은 인터넷이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대체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공격적이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이메일이 직장 내에서 사용되는 것이 직장 내 관계를 심하게 훼손시킨다고 답하였다.
문제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신의 산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얼굴 표정, 목소리의 톤, 몸의 움직임, 손 제스처 등과 같이 말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마음이 존재할지라도 몸은 사라져 버린다. 메시지를 받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의 개성이나 당시의 정황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왜 메시지가 왔는지 무엇을 뜻하는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를 추측할 따름이다. 본질적으로 상호간의 신뢰가 성립하기 쉽지 않는 등의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만 된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전통적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상호간에 오해나 혼란, 그리고 상처를 더 많이 초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화와 비교해 봐도 인터넷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전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수신자가 드러내려고 하든 숨기려고 하든 말소리의 억양과 톤이 메시지 내용 이외의 풍부한 정보를 송신자에게 전달한다. 인터넷에서는 수신자가 어휘나 문체 등을 자유자재로 선택해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인상을 조작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모티콘조차도 인간의 목소리나 얼굴에 비하면 표현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정보량이 현저하게 적다. 인간의 기억력도 시각적인 정보를 접했을 때와 청각적인 정보를 접했을 때 차이를 보인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말했는지는 기억해도 중요한 책의 글자들이 어떤 활자체로 인쇄되어 있었던가를 기억하기란 어렵다.
사이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자들은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실제처럼 생활하지만 막상 지역공동체가 현실로 겪고 있는 무관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프라인 모임은 갖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미디어 형태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훨씬 편리한 경우에조차도 사람들은 직접적인 접촉을 여전히 가치 있게 여긴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오히려 더 두드러진 것 같다. 한 예로 비지니스계의 사람들은, 화상 회의용 전화나 비디오 연결을 통해 사업 거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여전히 지구의 반 바퀴를 날아가서 직접 상담을 벌이거나 회의에 참석하곤 한다. 가족 성원들도 실시간 디지털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여 가상 재회를 하거나 명절에 모임을 가질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이런 것들이 왠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즐기는 것이 주는 따스함이나 친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느낀다. 이처럼 직접적인 만남을 선호하는 현상 혹은 그런 감성적 태도를 어떤 학자들은 ‘근접성 강박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라) 어느새 아파트가 우리의 중심적 주거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에 따라 주민들의 일상도 과거 단독주택이 지배적이던 시절에 비해 여러 면에서 크게 달라지고 있다.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가져다준 아파트 생활 이면에는 주민 간의 대화 단절과 개인주의의 팽배라는 역효과가 도사리고 있다. 가까운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게 바로 오늘날 우리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이러한 폐단은 우리 사회에서 꽤 오래 전부터 정례화된 주민회의인 반상회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아파트 반상회는 공동체적인 유대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데다가 지역과 이웃 주민들에 관한 정보의 부재로 인해 몇몇 주도적 인사들에 의해 다분히 형식적으로 소집,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현안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고 주민 공동의 중요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사후 의견이 분분하여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만남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삭막한 현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어 반갑다. 반상회를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개선, 운영하고 있는 ΟΟ동에서 그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 위치한 이곳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새로 이주해 온 까닭에 자연부락과 같은 연대감이나 소속감이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주민의 60% 이상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20~30대 젊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야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반상회 개최가 극히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ΟΟ동에서는 지방자치체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 그들은 먼저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반상회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특히 주민 대다수가 신규 전입한 젊은 층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디지털 방식의 지역사회 커뮤니티 구축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아파트의 인터넷망을 활용한 카페를 개설하고 공동관심사 위주의 게시판 운영 및 정부 자료 업그레이드를 수시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정부 시책 및 공지사항에 대한 토론과 협의가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며 평소 만나기 어려운 이웃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화합의 장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통장 선거, 시ㆍ구 의원 보궐 선거 등과 같은 공공 현안이 주민들에게 상세하게 전달되고, 사이버 게시판을 통해 제기된 가로등과 택시승강장 설치문제, 안전시설 관리 점검 등의 공동 관심사도 접수 ․ 처리할 수 있었다. 또 사이버 카페를 통한 활발한 주민 토론과 합의 도출은 정부사업 관련 민원을 해소하는 데 크게 일조했으며, 각 단지의 일정을 미리 사이버 공간에서 조율함으로써 행사와 관련하여 구성원 간의 서먹한 감정이나 불필요한 갈등까지 방지할 수 있었다. ΟΟ동 아파트 단지들은 이러한 성과에 고무되어 인터넷 취약 계층인 노년층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에 나서고 있으며, 동사무소 홈페이지와 반상회카페를 연계 운영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 반상회란 정부의 공시사항 전달, 주민의 의견 수렴, 이웃 간의 친목 도모 등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으로서, 최하 행정조직인 반 단위로 운영된다.
2. 출제 의도와 제시문 해설
(1) 출제 의도
인문계 논술시험은 정보사회의 특징적 현상 중 하나인 가상 공동체의 등장을 대상으로 삼았다. 어느 세대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에 익숙한 수험생들이 전통적 형태의 공동체인 지역 공동체가 가상 공동체로 대체되는 현상이 사회 구성원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상 공동체 작동에 관건이 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전자매체와 공동체의식이 그것이다. 즉, 새로운 의사소통 도구로서 전자매체가 지니는 특성과 구성원이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 사이의 관계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제시문에 따르면, 전자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은 대화자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방식의 의사소통으로, 전자매체 자체의 기술적 특성 뿐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의사소통 수단인 말과 글의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또한 인간의 의사소통에는 메시지의 전달과 함께 인간의 몸과 몸이 만나는 직접 접촉에 대한 욕구가 개입되어 있다.
지역 공동체와 사이버 공동체 중 어느 쪽이 공동체의식 고취에 유리한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이와 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함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지, 주어진 자료와 서로 다른 입장의 제시문들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뒷받침할 근거를 적절하게 이끌어 내고 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는지가 평가의 대상이다.
(2) 제시문 해설
① 제시문 (가)는 조지훈의 「책이 놓는 다리」에서 발췌하였는데 고등학교 독서교과서(대한교과서)에 실려 있다. 말보다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글과 그림, 책이 지식 축적과 문화발전에 유리함을 밝히고 있다.
② 제시문 (나)는 김정탁의 미디어와 인간에서 발췌하여 보완하였다. 인류의 매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신체 언어, 소리, 말, 글, 멀티미디어 등 각 소통 수단의 특징을 밝히며 서술하고 있다.
③ 제시문 (다)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실린 존 로크의 글 「사이버 공간에서 공동체의식이 무성히 자라날 수 있을까?」와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에서 발췌하여 편집하였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인간의 정신 뿐 아니라 신체가 관계하는 것으로, 대화자들이 직접 대면하는 방식은 대화상대자에게 좀 더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며 서로에게 친밀감과 신뢰를 갖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반상회가 공동체의식 고취에 유리하다는 입장에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④ 제시문 (라)는 고등학교 인간사회와 환경교과서(지학사)와 행정자치부가 발간한 행복한 마을 - 반상회 우수사례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가공하였다. 사이버 반상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사이버 반상회가 공동체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한다.
3. 논제 해설과 예시 답안
(1) 【논제 1】은 제시문 (나)를 요약하는 문제이다. 인류의 의사소통 수단이 신체 언어, 소리, 말, 그림, 문자, 멀티미디어의 등으로 발달되어왔음을 각 수단의 특징과 함께 설명하는 글을 제시된 글자 수 범위 안에서 작성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답안이 가능하다.
<예시 답안>
인류 최초의 의사소통 수단인 신체 언어는 몸짓과 눈짓에 의존했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소리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사라져가는 소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림과 글을 사용했다. 그림과 글은 인간 경험을 영속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수단의 발달이 이처럼 단선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말, 그림, 글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림과 말을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253자)
(2) 【논제 2】는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는 (가)와 (나)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글’의 특성을 200자 내외로 요약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시문 (라)에 나타나는 인간의 의사소통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에서 ‘글’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을 유추하여 200자 내외로 요약하는 것이다. 두 답안의 분량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답안이 가능하다.
<예시 답안>
첫째, 글은 말과 다르게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별로 받지 않는다. 말은 일시적이어서 소리가 허공에 사라진 다음에는 그 의미가 소멸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글은 기록으로 남겨진 까닭에 영구적인 효력을 갖는다. 둘째, 글은 더 많은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과 다르다. 말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적 범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전달될 수 있는 반면, 글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글은 대화 상대자와 직접 대면하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풍부한 신체 언어와 대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며, 결과적으로 말보다 풍부한 정보를 담을 수 없다. 또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의 신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따스함과 친밀성이 결여되며 상호간의 신뢰가 성립되기 힘들다. (400자)
(3) 【논제 3】은 기존의 반상회와 사이버 반상회 가운데 공동체의식 고취에 유리한 쪽을 택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하고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논거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제시문 (다)와 (라)에 포함되어 있다. 기존의 반상회를 택한다면 주로 제시문 (다)에서, 사이버 반상회를 택한다면 주로 제시문 (라)에서 논거를 찾을 수 있다. 제시문 속에서 논거를 이용하여야 하는 조건과 논거를 3개 이용하여야 하는 조건을 준수하여야 하며 주장과 논거의 연결이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한다. 입장 선택에 따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의 답안이 가능하다.
(가) 사이버 반상회가 공동체의식 고취에 유리하다
(가능한 논거)
① (기존의 반상회와는 달리) 사이버 반상회는 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므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 (라) “야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반상회 개최가 극히 어려운 형편이었다.” / “평소 만나기 어려운 이웃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화합의 장도 마련할 수 있었다.”)
② (기존의 반상회와는 달리) 사이버 반상회는 얼굴을 직접 대하는 만남이 아니므로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덜 서먹하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
(← (라) “공동체적인 유대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주도적 인사들에 의해 다분히 형식적으로 소집, 진행된 경우가 태반이다.” / “사후 의견이 분분하여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③ (기존의 반상회와는 달리) 사이버 반상회에서는 게시판을 통해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므로 정보 전달 및 축적, 토론과 협의에 유리하다.
(← (라) “지역과 이웃 주민들에 관한 정보의 부재로 인해 몇몇 주도적 인사들에 의해 다분히 형식적으로 소집,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 “각 단지의 일정을 미리 사이버 공간에서 조율함으로써 행사와 관련하여 구성원 간의 서먹한 감정이나 불필요한 갈등까지 방지할 수 있었다.”)
④ (기존의 반상회와는 달리) 사이버 반상회는 늘 열려있으므로 공동의 문제에 대해 미리 조율하고 수시로 의견교환이 가능하다.
(← (라) “공동관심사 위주의 게시판 운영 및 정부 자료 업그레이드를 수시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정부 시책 및 공지사항에 대한 토론과 협의가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며 평소 만나기 어려운 이웃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화합의 장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시 답안A>
나는 사이버 반상회가 공동체의식 고취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반상회의 성립과 진행에 필수적인 출석률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기존 반상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았다. 특히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면 반상회 시간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사이버 반상회는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까지 반상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사이버 반상회는 서로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느 누구라도 처음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갔을 때, 서로 이미 친해진 이웃사람들 사이에 끼어 반상회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반상회를 한다면 아직 친숙해지지 못한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부담 없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이버 반상회는 기존의 반상회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모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존의 반상회는 이웃들 간의 가벼운 대화나 잡담으로 흐를 공산도 크다. 반면 사이버 반상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내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문자를 사용하면 즉흥적인 말보다는 훨씬 내용이 알차고 책임 있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공동체의식을 흔히 한자리에 모여 같이 음식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로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공동체의식은 형성될 수 있다. 공동체의식이란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할 때 생겨나는 것이지, 반드시 동일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897자)
(나) 기존의 반상회가 공동체의식 고취에 유리하다
(가능한 논거)
① (사이버 반상회와는 달리) 기존의 반상회는 몸과 몸이 직접 만나는 방식의 만남이므로 친밀감 형성에 유리하다.
(← (다) “우리 모두는 이런 것들이 왠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즐기는 것이 주는 따스함이나 친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느낀다.”)
② (사이버 반상회와는 달리) 기존의 반상회에서는 신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오해나 혼란의 여지가 적다.
(← (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전통적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상호간에 오해나 혼란, 그리고 상처를 더 많이 초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③ (사이버 반상회와는 달리) 기존의 반상회는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되므로 상처를 주거나 공격적이거나 각자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일이 적다.
(← (다) “공격적이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이메일이 직장 내에서 사용되는 것이 직장 내 관계를 심하게 훼손시킨다고 답하였다.”)
④ 사이버 반상회는 젊은 층에게만 익숙한 데 반해 기존의 반상회는 인터넷 사용에 서투른 계층까지 포용할 수 있다.
(← (라) “주민 대다수가 신규 전입한 젊은 측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예시 답안B>
기존의 반상회가 공동체의식 고취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사이버 반상회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이버 반상회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예상된다. 첫째, 사이버 공간을 많이 이용할수록 직접적인 대면의 기회는 줄어든다. 사이버 반상회가 활성화될수록 이웃 간에 얼굴도 모르고 지낼 가능성은 더 커지는 셈이다. 이는 사이버 반상회가 기존의 지역공동체에서 생겼던 문제, 즉 서로 간의 대화 단절과 개인주의 팽배라는 문제를 개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자로 의견을 나누었을 때, 전달할 수 있는 정보는 직접 만났을 때보다 덜 풍부하다. 얼굴 표정, 목소리의 톤, 몸짓 등 신체 언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제약 때문에 상호간에 오해와 혼란이 생길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서로가 불신하고 서로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입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 간의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셋째, 사이버 상에서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정도를 넘어서면 동네 반상회에서는 처리할 수 없는 극단적인 충돌 양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사이버의 세계는 직적접인 대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기 어려운 부탁이나 거절을 할 수 있다는 편리함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익명성이라는 어둠에 숨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매도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다툼과 경쟁의 장소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상회는 동네의 중대한 민원을 처리하는 부서도 아니며 이웃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관도 아니다. 그저 편하게 만나 서로 얼굴을 익히고, 자연스럽게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 방식의 만남이어야 친밀감과 신뢰가 쌓이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식이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914자)
4. 평가 기준
* 모든 논술고사에서 요구하는 기본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견해, 일관된 주장, 설득력 있는 근거,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가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 【논제 1】과 【논제 2】의 경우에는 특별히 독창적인 의견을 요구하지 않는다. 핵심적인 내용만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논제 3】의 경우, 주어진 두 제시문에서 논거를 끌어내되 3개라는 논거의 수도 지켜야하므로 상대적으로 복잡한 서술이 요구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논거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제시문 (다)와 (라)에 포함되어 있다. 제시문 속에서 논거를 이용하여야 하는 조건과 논거를 3개 이용하여야 하는 조건을 준수하여야 하며 주장과 논거의 연결이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한다.
* 원고지 작성법,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의 정확성과 명료성, 문단 나눔의 적절한 활용, 정해진 분량 등 한글 답안의 형식적 요건들이 두루 충족되어야 한다.
다. 자연계열
1. 출제문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