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四字成語산책
허 열 웅
사자성어는 네 글자로 된 한자 관용어를 말하지만 우리말 사자성어도 신조어로 만들어져 재미있게 유통되고 있다. 특히 요즘유행하고 있는 “내로남불”은 세계어가 되어 로마자로 표기되어 외국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4,7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소식을 전하며 영어인 double standard(이중잣대)로 번역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 naeronambul로 썼다. 로마자로 표기한 한국어의 최초는 단어는 불고기(bulgogi)였다. 한국이 내세울 것 없던 시절, 외국인에게 “어떤 한국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조건반사처럼 돌아오던 단어이기도 했다.
“내로남불”이란 말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1987년 출간된 이문열 소설집 <구로아리랑>에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 카기도 하고>이 말을 한 정치인이 ‘스캔들’을 불륜으로 바꿔 사용한 게 내로남불로 굳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해마다 연초에 교수신문이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다. 2020년 선정된 사자성어가 <我他是非아타시비>였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뜻이다. 원래는 “내로남불”을 골랐는데 거기에 맞는 한자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아타시비로 선정했다고 하니 교수들이 오늘날의 상황을 예리하게 예견한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의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갖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나도 며칠 전 테니스장에서 상대팀에게 완패를 당하고 나서 상대선수 한 사람에게 심한 짜증을 냈다. 그는 경기를 할 때 항상 노련하거나 힘이 좋은 선수와 한 편이 되려고 기회를 엿보거나 상대팀이 강해보일 경우 파트너를 바꾸려고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나 역시 게임에 들어가기 전 실력이 월등하거나 몸이 빠른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내로남불의 세계적인 인물로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있다. 루소는 그의 작품 <에밀>에서 주위의 나쁜 영향에서 아이를 보호해야하며, 그 책임은 어머니에 있다고 하며 부모의 양육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냉혈한이었다. 촛불로 정권을 잡고 적폐청산을 하고 있는 정권이 내로남불을 하는 바람에 혹독한 국민의 선거 심판을 받았다. 그 지도자 사무실에는 정반대의 뜻을 가진 사자성어의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春風秋霜춘풍추상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나에겐 가을 서리같이 란 뜻의 큰 액자이고 보니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자성어에는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할 촌철살인과 같은 의미와 철학이 포함되어 있어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개를 골라보면, 過猶不及과유불급-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 易地思之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磨斧爲針마부위침-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즉 아무리 어려운 뜻이라도 계속 정진하면 이뤄낼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모른다는 塞翁之馬새옹지마 등이다.
특히 내가 마음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자성어는 啐啄同時(줄탁동시) 또는“啐啄同機(줄탁동기)이다. 쪼을 줄(啐), 쪼을 탁(啄).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개 되는데 이것을 '줄(啐)' 이라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 이라고 한다. 줄과 탁을 통하여 병아리가 제때 부화하듯 적절한 시기에 줄탁을 통해 어떤 일이 완성됨을 뜻하는 것으로 불가의 중요한 화두가 되는 말의 의미는 스승이 제자를 지도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 "줄탁(啐啄)"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불,남,로 즉 내가 하면 불륜이고 남들은 로맨스로 보아주는 것이 성숙된 자의 아량이고 나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를 깨우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알을 깨는 일이란 존재의 혁명이고 창조적인 탄생이다.
나는 그 동안 사자성어를 주제로 몇 편의 수필을 썼다.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 늙은 말이 길을 알고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유하고, 혹은 경험이
풍부한 나이든 사람이 일을 잘 처리한다는 노마지지[老馬之智]다. 이외에도 친구와의 우정을 표현한 지란지교[芝蘭之交]등이 있다.
우리말 사자성어도 재미있게 인터넷 등에서 유통되고 있다. 농산물 직거래소를 의미하는 [싱싱장터], 힘닿는데 까지 짜내고 또 짜낸다는 뜻의 [다짜고짜]등이 있다. 사자성어를 음미하다보면 나를 알고 세상을 이해하는 자기성찰의 지혜가 떠오를 때가 많
다. 좋아하는 사자성어 몇 개쯤 외워두었다가 힘들고 답답할 때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