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4-12
솔로몬의 간구와 응답 /
설교 요지
∙솔로몬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렸다. 왕이 된 후 축제에 젖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천 번제를 드렸다. 번제는 희생 제물을 드리되 마지막에는 재만 남게 하는 제사였다. 철저한 순종과 희생을 하나님께 신앙고백으로 드렸다.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깨닫고 행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하실 때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그는 먼저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다. 과거에 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의 기본자세이다. 우리는 먼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 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임을 인정해야 한다.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응답받는 원리이며 복을 누리는 기본원리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함
솔로몬이 간구한 것은 자신의 영광과 욕망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의 선을 위해 지혜를 구하였다. 이 간구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면 그것이 형통함이요 그것이 응답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간구는 신속한 응답과 완전한 보장을 준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은 듣는 분별력을 얻게 되었다. 지혜로운 마음은 히브리어로 '렙 쉐마'인데 렙은 마음이요, 쉐마는 듣는다는 뜻이다. 잘 듣는 마음이 지혜다.
지금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바닥을 헤매는 혼란과 고통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간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믿음과 지혜를 가진 국가 지도자가 요청되며 솔로몬과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평화라는 뜻인데 그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제적, 정치적, 신앙적 평화를 안겨다주는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어려운 때에 솔로몬의 간구는 무엇이었으며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것이었는데 그의 믿음과 지혜와 하나님의 응답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성경 가운데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요, 실패는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은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늘의 지혜를 받았고 땅의 부요를 누렸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영화를 다 소유한 사람으로 그가 받은 복은 전무후무한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솔로몬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4절을 보면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으시대면서 축제나 벌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경호 때문이라고 하면서 장로로 시무하던 교회도 안 나가고 매주일 목회자들을 불러들여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그런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전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주일학교 교사직을 내놓지 않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가르쳤습니다.
솔로몬은 제단을 찾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백성들에게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원했습니다. 솔로몬은 바른 신앙고백과 온전한 헌신의 표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기브온 산당은 산정상에 있는 제단으로 다른 산장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역대상 21장 29절을 보면 이곳은 실로에서 옮겨온 성막과 번제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일천 번제는 일천 마리의 양이 죽어야 하는 엄청난 희생의 제사입니다. 번제는 희생 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께 헌신을 고백하는 자원제사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불살라 태워 드림으로 나중에 재만 남게 되는 제사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흔적도 없이 드리는 희생제사입니다. 솔로몬은 철저한 헌신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표로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하여 맡은 사명을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행해야 할 우선순위를 바로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고백을 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거룩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거룩하다. 순결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순결하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집은 성전이 되고, 그가 먹은 음식은 성만찬이며, 그의 옷은 예복이 된다. 매일 매일이 거룩한 날이고 그 자신은 하나님에게 왕이며 제사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강렬한 신앙에서 하나님은 그의 희생제물을 열납하시고 솔로몬을 통하여 큰 일을 하시고자 그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먼저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일이 역사상 없습니다. 전적인 헌신이며 특별한 정성과 믿음입니다. 전무후무한 축복은 전무후무한 신앙이 앞서야 받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고 하나님께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신앙을 받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번제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모습과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솔로몬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을 때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과거에 이미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신앙의 기본자세입니다. 6절을 보면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므로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바르게 믿음으로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고 크신 긍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조 때에 베푸신 것들은 다만 행한대로의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감사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줄꼬" 하셨는데 그는 소원을 말하지 않고 선대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줄꼬 구하라" 하실 때 솔로몬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무엇을 구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구구절절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출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 다윗이 불륜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태어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기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을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출생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살아온 생애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허물됨을 생각하면 복받을 만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살고 있다면 이것이 은혜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위에게 베푼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여야 자기에게 베푼 은혜도 알게 됩니다. 먼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기본원리입니다.
사람이 지나온 과거사에는 섭섭한 일도 있고 감사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찾고 감사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은혜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에게서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를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나 감사할 조건이 있는데도 감사치 않거나 도리어 불평하고 원망하면 먼저 주신 감사할 조건조차 빼앗아 버리십니다. 우리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음에도 탄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감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하셨는데 먼저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적 자세입니다. 우리도 내 소원만 생각하고 그것만을 구하지 말고 먼저 감사를 드립시다. 솔로몬이 받은 엄청난 축복과 영화는 이 감사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람에게 받은 은혜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넘치게 받는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자신의 겸비함을 나타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할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으므로 최고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겸손해 하고 있습니다. 왕은 겸손하기가 어려운 신분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겸손한 모습을 솔직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잠언 29:23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10:17에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하셨습니다.
무디 선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이룬다. 그러나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한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할 때 은혜를 알게 되고 겸손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셋째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9절 말씀에,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셨습니다.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요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의 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무엇을 더 받고 덜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 그것이 큰 축복입니다.
솔로몬은 오래 살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 아니요 잘 살게 해 달라고 구한 것도 아니라 오직 주의 백성들이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는 Leadership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권력을 누가 잡느냐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선한 분별려과 판단력이 있는 지도자가 더 중요합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양혜 왕은 "어떻게 하여야 이 나라를 이롭게 하겠습니까?"하고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이때 맹자는 "왕께서는 왜 이 나라의 이로운 것을 묻습니까?"
먼저 도의와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이로운 것을 찾으면 신하들도 어떻게 하면 이로울까 하고 이로운 것만 찾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이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요 정의를 뒤로 두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인자함과 정의를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나라 문제나 이사회의 문제는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가 아닙니다. 큰 문제는 양심의 문제요 도덕의 문제요 근본적인 것은 영적 판단력의 문제입니다.
성도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우리의 판단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가장 지혜로운 것보다 몇천배 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의요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히브리어로 '렙 쉐마'라고 합니다. '렙'은 마음이요 '쉐마'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hearing heart입니다. 잘 듣는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듣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예사로 듣습니까? 뜻없이 관습적으로 듣고 있지나 않습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태도는 아닙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는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것이 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막히면 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가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몇번이나 가져 보셨습니까? 하나님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어본 것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에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이 일어나는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어야 건강한 영성을 가진 성도입니다. 시시하게 믿으려는 주님은 시시한 주님으로 나타나고, 값비싸게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숭고하신 주님으로 나타납니다.
성프랜시스는 하늘과 땅을 감동시킨 역사적 사람입니다. 슈바이쳐는 아프리카를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원수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수많은 나환자의 마음을 감동시킨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더니 하나님의 뜻을 그를 통해 이루게 하셨습니다. 솔로몬 역시 그의 신앙과 간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고백과 간구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놀라운 은총의 응답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서노회(http://cafe.daum.net/harn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