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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유튜브: 진리의 증인
“1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여호와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편 107:1-3)
서론: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퓨리탄, puritans)에게서 유래됐습니다. 청교도란 16세기 후반, 카톨릭적인 영국 국교회에 반기를 들고, 칼빈주의를 모범으로 종교개혁을 추구한 개혁주의자들을 말합니다.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영국청교도들이 영국 국교회(國敎會)인 성공회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남부의 플리머스 항에서 180톤 규모의 메이플라워호란 목선(木船)을 타고 신대륙(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이들은 3개월의 항해 끝에 12월 21일 미국 메사추세츠주(州) 보스턴 남쪽의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낯선 땅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과 인디안의 습격으로 102명 중 절반 가까이 죽었습니다. 이듬해에 살아남은 60여 명의 청교도들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한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이 예배가 기독교의 추수감사절로 발전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지만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하여 국가적 축제와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의 영적 교훈”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이, 첫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한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왜 고국과 친척을 떠나 신대륙 미국으로 갔습니까? 잘 먹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고국을 떠났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102 명의 청교도들은 3개월의 항해 끝에 12월 21일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새로 정착한 땅에서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과 인디언의 습격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절반이나 잃었습니다. 첫해 겨울을 지나고 나니 102명 중 절반이 죽고 60여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세속적인 성공과 부귀영화를 원한 것도 아니고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왔는데 왜 지켜주시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추수를 한 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는데 이 예배가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너무 자유롭고 너무 풍요로운 세상에 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일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감사와 인정의 메마름 그리고 인간관계의 단절과 정신적 가치의 황폐화는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절반이나 잃고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달았고 천국과 영생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사랑하는 가족과 만난다고 믿고 확신했기 때문에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것입니다.
한쪽 팔을 잃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불구라는 절망감에서 “나는 불구자다. 불구자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고 인생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팔은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데 하나님은 왜 팔을 둘씩이나 주셨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과 없는 것 가지고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아니면 있는 것과 가진 것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갑니까? 불평과 원망은 인생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에게 고난과 시련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죄악이나 욕심이나 인색한 점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을 통해 깨우치시고 연단과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 재물과 명예를 잃었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있어도 신앙을 잃었다고 탄식하고 죄를 회개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신앙의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다 순교의 제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마제국은 그들의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했는데 그리스도인은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상태로 사자 굴에 던져넣었고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후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와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그들의 고국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것 소유하지 못하고 소원한 것 다 이루지 못해도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이유만 가지고도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보다 큰 축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이 추수를 한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시작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처럼 신앙의 자유와 천국의 영생복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추수감사절에는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9-10,에서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고......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하나님 축복으로 굶주려 죽거나 이삭을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없지만 상대적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또한 아프리카나 제삼 세계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는 교회의 사명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많은 돈을 내서 구제를 할 수는 없지만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으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구제를 하지 못하느냐? 돈이나 물질이 없어서 구제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고 믿음이 없고 구제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고생 안 시키고 유산도 넉넉하게 물려주기 원합니다. 부모의 그런 소원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로 자식을 사랑한 것 가지고는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 잘 섬기도록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하며, 하나님 이름으로 사랑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색하게 아끼고 모아서 자식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려는 생각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입니다. 자녀들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구제는 하나님 백성의 의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잠언 11:24,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흩어서 구제하고 베푸는 사람이 풍족한 삶을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베푸는 구제와 자선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며 천국에서 우리의 상급과 영광이 됩니다. 구제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행이 없고 구제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하며, 추수감사절이 아니라도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추수의 원리는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둡니다.
의를 뿌리거나(호세아 10:12), 악을 뿌리거나(잠언 22:8),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이 추수의 원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땀 흘려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수의 기쁨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추수의 계절은 후회와 고통과 괴로운 때가 될 것입니다. 남들은 땀 흘려 일할 때 일하지 않고 게으름과 태만으로 세월을 보냈다면 후회와 고통의 열매 외에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술과 쾌락과 방탕한 삶을 산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은 평생 돈돈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육체를 위해 심고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불쌍하고 가장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행이란 언제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전유물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추수의 법칙이요 인생의 법칙입니다. 불의를 심고 악을 행한 사람은 불의와 악의 열매를 거두고 선을 심고 의를 행한 사람은 선한 보상을 받고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추수의 법칙이요 인생의 법칙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식해야 합니다.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업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넓은 농토를 소유하고 많은 곡물을 수확하면 부자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농업은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전락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몰락한 것은 급속한 산업화의 원인도 있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험한 산지라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영농을 할 수 없다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외국의 값싼 농산물의 수입은 우리 농업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농업은 단순한 부가가치나 경제 논리로 따질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존에 식량자원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석유, 광물자원, 임산자원 등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자원은 석유나 지하자원이나 임산자원이 아니라 식량자원입니다. 인간은 석유나 광물이나 무기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농업을 포기하고 식량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 세계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곡물 메이저들이 우리의 생존권을 좌우하게 됩니다. 얼마나 두려운 상황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농업과 식량자급은 경제논리보다 생존권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쌀과 같은 주곡의 자급은 반드시 이뤄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위정자와 온 국민이 농업과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업의 발전과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한정돼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농업과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해 위정자와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대책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이 첫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한 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린 데서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처럼 신앙의 자유를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추수감사절에는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돈이 남아서 구제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와 내 가정과 내 자녀를 위해 사용하는 물질을 조금만 절약하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추수를 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추수의 원리는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추수의 원리는 인생의 원리입니다.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좋은 열매를 거둡니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처럼 하나님 앞에 진실한 믿음으로 행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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