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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9월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날은 매일같이 음산하고 바람은 또 왜 그리 축축하고 끈덕진지요.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지났고 달은 바뀌었고 기다리던 봄이 9월과 함께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선 느낌입니다. 지난 겨울이 아무리 힘들고 지루했어도 이제는 우리 모두 봄을 마중할 준비를 할 때입니다. 오늘 9월 첫날, 마침 햇살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와 우리에게 너울거리며 봄이 가깝다는 손짓을 합니다. 이런 날엔 카페에 무슨 글이라도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몇 년 전에 써놓았던 ‘마중’이란 글이 떠올라서 올려봅니다. 전에 ‘오문회’ 카페에 한 번 올렸던 글입니다. 읽으셨던 분은 매년 다시 오는 봄을 마중하는 기분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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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아내가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간 그 날 오후, 텅 빈 집안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시내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 창가로 넘나드는 햇살이 너무 투명해 보여 배가 타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배를 타고 내려다보는 바다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물결을 헤지고 달려나가는 뱃바닥을 통해서 바다를 느끼며 투명한 햇살 아래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는 그 재미를 그 오후에 다시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래 그 오후 홀가분히 집을 나온 나는 데본포트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시내에 나가면 나는 뒷짐을 지고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세로 거리를 걷는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구경도 하고 세일이라고 큼직하게 붙여놓은 상점마다 기웃거리기도 한다. 오클랜드 시내의 명물 중의 하나가 거리의 악사들이다. 바이올린을 치는 사람, 아코디언을 키는 사람, 기타를 쳐가며 열심히 노래 부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멈춰 서서 곡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거리의 악사' 생각이 나면 주머니를 뒤져 동전 한 닢이라도 놓고 떠난다.
시내에 나가면 꼭 들리는 곳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아트 갤러리고 또 하나는 리얼 그루비(Real Groovy)다. 가까운 호주의 시드니나 멜번의 아트 갤러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규모의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지만 이삼 년 전에 새롭게 단장을 마친 갤러리는 그래도 오클랜드의 얼마 안 되는 귀중한 문화공간의 하나이다. 상설 전시관도 있고 때에 따라 특별 전시회도 열고 카페도 있고 바로 인접해 있는 앨버트 공원이 뒤쪽 창문을 통해 보이기에 경관도 아주 좋다. 그날도 갤러리에 들렸다. 이층에서 빌리 애플 아트(Billy Apple Art) 특별전시가 있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상설전시관의 명화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3시 반이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걸어서 어퍼 퀸스트리트가 시작되는 왼편 길가에 있는 리얼 그루비로 들어갔다. 리얼 그루비는 오클랜드에서 유일하게 클래식 중고 레코드판을 파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민 왔을 때부터 여기는 시내 나오면 꼭 들리는 곳이다. 이민 초기에는 이곳에서 아주 좋은 클래식 레코드판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는데 재즈와 로큰롤에 밀려서 그런지 요즘은 클래식 판들은 가게 한구석으로 밀려났고 그나마 좋은 판들을 발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날이 갈수록 초라해져 가는 클래식 판의 진열대의 모습이 꼭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 같아서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허름한 진열대에 놓여 있는 판들을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판 하나라도 눈에 뜨이면 그때의 기쁨이란 꼭 횡재한 기분이다. 그날도 별 기대를 안 가지고 판들을 뒤적뒤적하다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관현악 모음집을 발견했다. 루돌프 켐페가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을 지휘한 3장이 한 질로 된 EMI 것이었는데 판 상태도 의외로 깨끗하여서 기쁜 마음으로 사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빨리 집에 가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자연히 돌아가는 발길이 빨라졌다. 아오테아로아 광장 시계탑의 시계가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지런히 가면 5시 10분 발 스탠리 베이 행 배를 넉넉히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차는 그대로 서 있는데 내가 없어서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했다. 시내에 나왔는데 곧 배를 타고 들어갈 것이라 말하자 아내가 '마중 나갈게요,' 했다. '마중은 무슨 마중, 바로 집 앞 선착장에 내리는데. 추운데 그냥 집에 있어요,' 하고 내가 말하자 아내는 '그래도 나갈래요. 선착장에서 봐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중 나오겠다는 아내의 전화에 내 발걸음이 별안간 더 가벼워졌다. 아내하고도 몇 번 같이 리얼 그루비에 온 적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 말에 의하면 밖에서 레코드판을 사갖고 집에 들어갈 때면 슬며시 주차장에 놓아두었다가 아내가 없을 때 집안으로 갖고 들어간다고 했다. 또 판을 사왔냐는 아내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내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한국에서나 뉴질랜드에서나 아내와 같이 판 가게에 들리면 아내는 내가 고른 판들을 일일이 꺼내서 상태를 점검하며 기왕 온 김에 많이 사라고 부추겼다. 오늘도 내가 사갖고 들어가는 판을 보면 '좋은 판들이 별로 없는 모양이지요. 고것만 사 오시게.' 라고 말할 것이다.
제시간에 선착장에 도착해 여유 있게 배를 탔다. 배가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나갈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지금 배 출발했어요. 한 10분 뒤면 도착할 거야,' 라고 내가 말하자 '저 벌써 선착장에 와있어요. 바다가 너무 예뻐요,' 라고 아내가 말했다. '아니 추울 텐데 왜 벌써,' 하고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내는 '걱정 마세요 따뜻하게 입고 나왔어요,'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배가 도착할 때 선착장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가슴이 따뜻해 왔다. 그러면서 나는 별안간 옛날 신혼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신혼 시절 우리는 미아리 삼거리 산동네 꼭대기의 연립주택에 살았다. 방 두 개짜리 연탄보일러 연립주택을 세 들어 살았는데 그땐 그냥 행복하기만 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내려갈 때는 이십 분 올라올 때는 삼십 분쯤 걸렸는데 출근하는 나를 아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같이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와서 버스에 탄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냈고 퇴근할 때엔 정류장까지 미리 내려와서 기다리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마중해서 같이 손잡고 집으로 오곤 했었다. 집에서 정류장까지의 길은 꽤나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어서 눈이라도 오면 둘이서 손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와야 했는데도 우리들은 그냥 즐겁기만 했다.
첫애를 가진 뒤 점점 배가 불러와서 거동이 쉽지 않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아침저녁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이제 힘들 테니 그만두라고 나는 극구 말렸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임신 중에 운동을 많이 해야 아가를 쉽게 낳는대요. 엄마를 믿고 태어날 아가를 마중해야 하잖아요. 엄마가 운동을 많이 할수록 아가가 쉽게 세상에 나오도록 마중하는 거예요,' 라고 말하는 아내의 큰 눈동자는 맑기만 했다. 퇴근 때가 가까우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 아내 생각을 하고 가능하면 곧장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곤 했었다. 회사에서 좀 언짢은 일이 있었어도 돌아오는 버스 안이 만원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돌아와도 나를 마중하러 나온 아내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있었다.
출산예정일이 며칠 안 남은 그날도 아내는 마중을 나왔고 손잡고 돌아온 집안에선 아내가 끓여놓은 찌개 냄새가 구수하게 났다. 저녁 식사 후에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때 한참 유행하던 ‘추적’이라는 특집프로를 보려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설거지 빨리 하고 와요. 이거 같이 보게,' 라고 내가 말하자 아내가 '저 좀 이상해요. 배가 많이 아파요,' 했다. '왜 많이 아파. 그럼 이거 보고 빨리 병원에 가봅시다.'라고 내가 말했다. 그때까지도 아직 상황을 파악 못한 이 철없는 예비 아빠는 태어날 아가보다 당장 눈앞에 펼쳐 치는 특집프로에 눈이 더 어두웠었다. 진통이 잠깐 멎었던지 아내도 내 옆에 앉아 같이 티브이를 보았다. 그러나 십 분도 안 돼 다시 말했다. '어, 배가 또 아파요. 이번엔 더 아파요,' 하고 말하는 아내의 얼굴에 송송 땀이 배어 나왔다. 그때서야 상황이 급해진 걸 깨달은 우린 옷을 주워 입었다. 큰 길가에 있는 ‘새한 병원’까지 걸어가기 너무 힘들 것 같아 '내가 가서 택시 잡아올까?'라고 말하자 아내는 또 그때 진통이 멎었는지 '아니, 그냥 같이 걸어갈래요.' 했다. 우리 둘은 또 손을 잡고 어두운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천만다행으로 내려가는 동안은 다시 진통이 아내를 괴롭히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곧 입원 수속을 했고 아내는 간호사를 따라 입원실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가자 아내가 친정에 전화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공중전화 있는 곳으로 가서 장인 장모님께 아내가 진통이 와서 방금 새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씀드렸다. 두 분이 곧 오신다고 하시기에 한결 마음이 놓여서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내가 안 보였다. 당황해서 옆 병상에 있는 분에게 여쭤보니 아내가 갑자기 진통이 심해져서 방금 간호사가 와서 데리고 갔다고 했다. 급히 분만실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간호사 둘이 막 아내를 부축하고 분만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보호자 분은 밖에서 기다리셔야 돼요. 안으론 못 들어오십니다,' 라고 간호사 하나가 내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아내가 나를 보았고 그 와중에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여기서 기다릴 게 걱정하지 마,' 라고 나도 손을 흔들며 소리치면서 나는 갑자기 울컥 목이 잠겼다. 분만실 안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도 작아 보였다.
잠시 뒤 담당 의사처럼 보이는 이가 또 다른 간호사 하나랑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혼자서 바깥 복도를 서성거렸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그때 아내 혼자에게 출산의 책임을 맡겨놓은 비겁하고 무능한 남편인 것처럼 느껴졌고 분만실 안에서 혼자 있을 아내가 무척 외로우리라고 생각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영겁처럼 느껴졌다. 매 일 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분만실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별안간 분만실 쪽이 수선스러워지는 것 같더니 문이 열리고 아까 들어갔던 의사가 간호사 하나와 같이 나왔다. 나는 뛰듯이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되었지요?' 나의 물음에 의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남편이시구먼! 축하합니다. 공주님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난 공주님이든 시녀든 그건 전혀 상관없었다. '산모는요? 산모는 괜찮나요?' 하고 숨이 넘어가듯 물었다. '아, 예 건강합니다. 걱정 마세요. 좀 이따 만나보세요,' 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곁을 지나가려던 의사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쳐다보며 '근데 산모가 임신 중에 운동을 많이 했나 봐요. 초산에 이렇게 쉽게 아기를 분만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 라고 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며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엄마를 믿고 태어날 아가를 마중해야 하잖아요. 엄마가 운동을 많이 할수록 아가가 쉽게 세상에 나오도록 마중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아내는 임신 중 내내 그 힘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남편을 전송하고 마중하면서 또 태어날 아가를 마중했군요. 그러더니 이렇게 쉽고 편안하게 아가를 맞이했군요.'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김 서방, 김 서방! 어떻게 됐나?' 그때야 도착하신 장인 장모님께서 복도 저 쪽 끝에서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나는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시내에 나갔다 돌아와 아내의 마중을 받은 그 날 저녁은 참 행복하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와 같이 그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그 밤에 시를 한 편 썼다.
마중
마중은 내려놓기입니다.
하던 일 내려놓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내 삶의 문턱도 내려놓아
내게 오는 그분이 쉽고 편하게
내게로 오도록 만드는
마중은 내려놓기입니다.
마중은 나와의 만남입니다.
나를 만나러 오는
그분을 맞으러 나가
반가이 나를 찾는
그분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중은 나와의 만남입니다.
마중은 설레임입니다.
오는 분 맞는 사람의 마음이
이미 어디선가 서로 만나
반가운 눈빛
다정스런 미소가 되면
가슴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마중은 설레임입니다.
마중은 사랑입니다.
끝이 없는 삶의 여정
문득 문득 벗어났을 때
어디서라도 나를 맞아주는
누군가가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중은 그래서 사랑입니다.
2015. 6월 동짓날 석운 씀
첫댓글 마중은
내려놓기,너의 눈에 비친 나와의 만남,설레임,사랑.
두 분 모습이 너무 아름답네요!
석운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시네요
저렇게 곱고 예쁘신 사모님을 두셨으니...
물론 선하신 선생님의 화답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요
저도 가끔씩 데본포트 도서관에서 시내까지 배를 타고는 합니다.
' 아트 갤러리에 가서 앨버트 공원 경관의 카페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셔야지 '
어느덧 미소가,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우리집 사람이 곱고 예쁜걸 어찌 아셨는지... ㅎㅎㅎ 하지만 아쉬운 건 이제는 마중할 때가 아니라 모든걸 배웅할 때라는 엄정한 사실이지요. 남은 세월은 배웅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따뜻한 댓글 고마워요.
오랜만에 다시 읽어 봅니다.
새로운 감동이 있습니다.
명작이라 그럴 겁니다.
9월,
봄이 피었습니다.
저도 다시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새로운 감동? 맞아요. 지난날에 써논 글을 읽다보면 어느땐 내가 그때 어떻게 이런 글을 썼나 스스로 대견히게 느끼는 적이 있습니다. 팔불출 같은 소리지만... 그래서 아무리 졸작이어도 쓸 수 있을때 많이 써 놓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힘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두 분, 오손도손 벗하시며 오래도록 함께 하시길...
나이들수록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부부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름다운 덕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