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문학 신인상 수필 응모작
<응모자>
성명 : 박희주
응모작 : 마지막 선물 외 3편
1. 마지막 선물
반드시 있어야 하는 남편이 명단에 없었다. 한글을 갓 배우는 아이처럼 이름 석 자를 찾아내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움켜잡듯 포기하지 않고 보고 또 보았다. 승진에서 탈락한 날 밤, 남편은 어둠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텁텁한 공기만 내 가슴을 들락거렸다. 죽은 아이를 붙들고 매달리는 어미의 몸부림처럼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승강기에 실려 올라온 더위는 모조리 우리 집으로 몰려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습기가 집을 통채로 점령한 듯했다. 한여름의 공기가 질척대며 나와 겨루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싶어 마음에 불길이 일었다. 현관문의 아랫도리에 찍힌 희미한 발자국들이 유독 가슴을 파고들었다. 누구의 발길질인지도 모를 정도로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삶의 얼룩들이었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방법을 보면 하루를 가늠할 수 있다. 하루가 무탈할 때는 일정한 간격의 시차를 두고 또박또박 번호 키를 누르지만, 업무상 엇박자가 나는 날에는 비번을 알아내려는 금고털이범처럼 버벅거렸다. 가끔은 정신 줄이 끊어지도록 술에 절어진 몸이 되어 동료의 부축을 받는 날도 있었다. 그때 어쩌면 자신의 정신 줄을 잘라내어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 높은 하늘 어디엔가 있을 별을 쳐다보며 조금씩 오르기 위해. 그러나 이제는 오르지 못할 별에 대한 아쉬움과 목전에서 주저앉아 아파할 남편의 앓는 소리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 같았다.
자정이 지나자 소리에 대한 반응이 예민해졌다. 새삼 허망함이 밀려왔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산이었기에 조금씩 맘을 다잡기는 했으나 막상 떠밀리는 기분은 까무룩했다.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인데 조금 빨리 매를 맞은 거려니 생각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에서 밤보다 짙은 아픔을 술잔에 섞어 마시고 있을까.
승강기의 층수를 알리는 숫자가 십팔에서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삑삑삑,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만 들릴 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남편을 들여보내기 위해 애쓰는 낯선 목소리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현관 등이 켜지고 술 냄새가 먼저 들어섰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남편의 몸뚱이처럼 펄럭였다. 남편의 짐 보따리를 받아들고 흐느적거리는 남편을 부축하느라 진땀이 흘렀다. 남편은 정리함까지 가져오느라 많이 지쳐 보였다. 직책과 이름 석 자가 적힌 명패가 담긴 상자는 삼십 년이라는 세월에 반해 너무 단출했다.
"여보, 미안타."
남편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위엄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던 남편이 총상 입은 짐승처럼 바닥에 꼬꾸라졌다. 낯색은 붉은 핏빛이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는 나의 손을 잡으며 줄 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양복을 달라고 하더니 이곳저곳을 뒤적였다. 왼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서 잠시 머뭇거렸다. 비틀거리는 남편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온 것은 앙증맞은 상자였다. 무엇이냐고 물었다.
"선물!"
짧은 대답이 단칼에 잘린 남편의 처지처럼 단호했다.
"마지막 선물이다."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며 남편은 내 등을 두세 번 두드리더니 갑자기 나의 가슴에 와락 안겼다. 그 순간 억장이 무너지고 새까맣게 타던 속이 재가 되어 와르르 무너졌다. 긴 줄에 열쇠 모양의 장식물이 달린 목걸이였다. 남편은 이제 직장을 잃었으니 나에게 번듯한 선물을 해 줄 수가 없다고 중얼거리며 횡설수설하다가 나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누웠다.
이 매장 저 매장을 기웃거리며 아내의 취향을 고민했을 남편, 가면무도회 같은 위로의 술자리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을 남편, 조직이 제공한 차량에서 마지막으로 내렸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술과 마늘이 범벅된 냄새를 내뿜는 남편 옆에 누워 목걸이를 만져 보았다. 가슴에 매달린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남편의 갑갑한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잠긴 앞날을 열어 줄 열쇠. 남편이 문을 열지 못해 답답할 때 행운처럼 슬며시 다가와 줄 열쇠 하나를.
고상하게 빛을 발하던 목걸이로 눌러진 그날 밤의 막막함을 뒤돌아보면 남편의 나에 대한 배려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길이였다. 심해의 어둠보다 짙은 아픔에서 길어 올린 마지막 선물이므로.
2. 파잔
동물 쇼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강제로 잡혀 온 처지다. 훈련이 쉬운 아기를 포획하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인다. 코끼리는 강한 모계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잡혀 온 어린 코끼리는 ‘파잔’이라는 혹독한 의식을 치러야만 한다. 조그만 틀 안에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때까지 날카로운 쇠갈고리로 찔려야 한다. 삼박 사일 진행되는 이 행위로 인해 코끼리는 야생본능이 철저히 파괴된다.
‘파잔’은 그야말로 코끼리의 영혼을 말살시키는 의식이다. 절반이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살아남은 코끼리는 체념을 배운다. 살기 위해 자의식을 버려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길은 단순하다. 자유를 향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꾸역꾸역 치미는 자기 안의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는 척하면 된다.
유년 시절의 나는 어린 코끼리였다. 삼대독자 특유의 외곬이었던 아버지는 엄격함이라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나름의 저울질에서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날은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 분하고 화가 난 마음에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밧줄에 묶인 아기코끼리 신세였다. 울부짖으며 반항하다가 다락방에 갇히기도 하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은 살기 위해 굴복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티끌만큼도 없는 듯 엎드려 지냈다.
주변에서는 아버지의 방식을 엄격한 가정교육이라 했지만 어린 나는 공포에 떨었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도 세포들이 긴장하고 마음이 벌렁거렸다. 가끔 아버지가 출타하면 동생들과 은밀하게 독립을 꿈꾸기도 했다. 마음으로 만세를 외친다고 독립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다시 바람 앞에 풀처럼 몸을 낮추었다. 가출을 통해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해보기도 했다. 자금의 부족으로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불현듯 하늘이 아버지에게 귀천을 명령했다. 불호령이었다. 겨우 중년 무렵이었으니 얼마나 황망했을까. 슬픔은 잠시 내 가슴에 머물렀고, 나는 아버지의 몽둥이를 슬며시 챙겼다. 아버지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이된 것이다. 나는 아기 코끼리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결혼이라는 길목에서 아들을 만났다. 식은 죽 먹기처럼 호락호락해 보였다. 유독 잠이 많은 게 거슬렸지만, 몽둥이를 뒷짐에 숨긴 채 때를 기다렸다.
학교에 입학하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만 앞서가면 좋겠다는 욕심이 슬금슬금 생겼다. 갖가지 공부감을 수라상 올리듯 들이면 아들은 무참히 패대기쳤다. 사사건건 나의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기로 작심한 듯했다. 나의 공격이 심해지면 잠시 항복하는가 싶었지만 돌아서면 아들은 멀쩡하게 딴짓이었다. 실금으로 쩌억쩍 갈라진 내 마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가도, 악을 쓰며 엎어치기와 뒷다리 걸기 등 각종 기술을 걸며 승부수를 띄웠다. 좀처럼 생각대로 길들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상처가 아물 새가 없을 만큼 나는 계속 사랑이라는 구실로 매를 휘둘렀다. 삐딱선을 타는 아들과 빼딱선의 잣대를 들이대는 나의 갈등은 내리막을 몰랐다. 아들이 배움의 속도가 느리면 틀릴 때마다 고함치고,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삿대질하고, 잠깐 쉬고 싶다고 해도 눈 흘겼다. 때로는 잘 해도 타박했다. 아들이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투덜대면 쥐어박았다. 배움이란 원래 끝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급기야 아들을 길들이기로 작심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음식은 주는 대로 먹고 눈빛마저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학교로 보냈다. 담장 안에 가두고 자유의지를 꺾으면 제 놈이 별수 있으랴 싶었다.
아기코끼리는 굴복의 대가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사람을 태우고 걷기를 시작해서 방향 잡기와 기다리기를 배워야 했다. 두 발로 서는 것부터 사람을 코로 감고 걷기, 통나무 위에 서기까지 익혔다. 하모니카도 불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했다. 심지어 연극도 배워야 했다. 아들에게도 인생이라는 쇼에서 묘기를 부리려면 할 게 많다고 했다.
아들이 점점 이상해졌다. 몸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아기코끼리의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보였다. 말수는 점점 줄었고 대답은 갈수록 짧아졌다. 훈련이 고되어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애써 캐묻지 않았다. 담장 높은 곳에 갇혔으니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눈치로 살피고 몸짓에서 읽었다. 널브러진 모습은 사라지고 깔끔한 제복을 입은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인 파잔 의식이라 여겼다. 어림없는 착각이었다.
아찔한 통보가 날아들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 아들이 자퇴서를 제출한 것이다.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서 난리인 곳을 걷어차는 이유가 무어냐며 울부짖었다. 나를 죽이고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며 매달렸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지시와 감시를 통해 매사 품위를 지키라는 학교의 감시가 아파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견디면 취업까지 보장되는 꽃자리를 박차고 나온 아들의 철없음을 꾸짖었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제때에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삿대질하던 나의 손가락을 슬며시 내렸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휘두르던 몽둥이를 저 멀리 내던졌다. 상처투성이가 된 아기코끼리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파잔 의식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영혼의 조각을 주워 담으며 숲길을 향해 걸었다. 서로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때리고 맞으며 살지 않기 위해서.
3. 중성자(中性子)
아스라이 긴 복도 끝에 교실이 있다. ‘뒷문은 사용금지’, 앞문에는 '다른 반 학생 출입금지'라고 적힌 종이가 눈길을 끈다. 등교 개학의 훼방꾼이었던 바이러스마저도 문턱을 넘어서기엔 주저되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맨 앞줄에는 희뿌연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다. 거리두기를 위해서다. 하얀 블라우스에 뽀얀 마스크를 쓴 여고생들이 갓 쪄낸 백설기처럼 앉아 있다. 창밖에 은행나무는 푸른빛이 한창이고 햇살은 교실 속을 수시로 기웃거린다.
입학식도 없이 여고생이 된 아이들이다. 더구나 꼬박 백여 일 동안 생이별을 시켰으니 서로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깊었을까. 사회적 거리 두기 따위는 망각하기 일쑤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오십 네 개의 눈동자가 일시에 나를 향한다. 등교한 지 열흘 만에 반장을 뽑자고 하니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자는 격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심정으로 카톡을 통해 후보자를 파악하여 알리고 반나절 동안 그들의 자질을 살피라고 했다.
드디어 간택의 시간이 왔다. 왕의 여인이 되기 위한 절차처럼 순서는 절도 있고 분위기는 사뭇 엄숙하다. 동그스름한 얼굴과 덧니를 드러낸 미소가 귀여운 소녀가 사뿐사뿐 걸어 나온다. 배꼽에 가지런히 두 손을 포개고 인사하는 품새가 규중의 여인 같다. 그러나 말문을 여는 순간 궁궐 여인들의 기강을 잡는 중전으로 변신한다. 또박또박, 힘 있는 목소리는 선을 넘으려고 망설이는 복병을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연설이 시작된다. “여러분, 과학 시간에 배운 양성자와 중성자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교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원자핵 내의 중성자는 강한 힘을 발휘해서 원래는 뭉쳐있을 수 없는 양성자들을 하나의 원자핵의 형태가 되도록 뭉쳐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합니다. 양성자는 전자를 끌어당겨서 마치 태양계 행성을 끌어당기는 태양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때 중성자는 양성자끼리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학급에서 저는 중성자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외되는 친구가 없는 학급으로 이끌고 싶습니다.” 그녀의 각오에 작은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창틀에 걸치고 있던 나의 두 손이 저절로 다소곳해진다.
시댁 식구 중에서 오랜 세월 중성자 같이 살아온 분이 있다. 그는 손끝이 야물고 강단이 있어서 일찍이 농사일의 적임자로 시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 공부하러 도시로 유학 떠난 형을 대신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그러나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살림살이의 주름살은 펴질 줄 몰랐다. 호롱불 아래서 그의 고민은 깊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어둠이 내리면 잠자리에 들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불호령에서 동생들을 구할 방법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보리 한 말을 어깨에 실었다. 사립문을 나서며 시아버지가 잠드신 사랑채를 향해 용서를 구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난에서 가족을 건져 올릴 것이라는 마음을 다지며 여우고개를 넘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는 그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순노동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워낙 성실하게 일을 하니, 눈여겨보던 사장이 기술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하나를 배우면 둘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니 흔히 말하는 기술개발로 이어졌고 두세 배의 월급을 받았다.
푼푼이 모은 돈을 쪼개어 마른버짐이 꽃처럼 핀 동생들의 학용품을 살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이었다. 배움에 굶주린 그가 급기야 단칸방 신혼살림에 동생들을 불러들였다. 어린 동생들의 분탕질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그는 묵묵히 씻기고 입히고 대학까지 뒷바라지했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서 사업은 나날이 확장되었고 반듯한 중소기업을 꾸리게 되었으니 자수성가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집안에 대소사를 챙기며 동생들이 삶의 마디를 만날 때마다 앞장선다. 어느 날, 며느리까지 맞이한 늙은 동생이 세상의 꼬임에 빠져 길거리에 나앉는 처지가 되었다. 멍청하게 당하는 모습에 열불이 터진다며 그가 가해자를 찾아내고 퍼즐 조각 맞추듯 살림을 수습했다. 또 다른 동생이 반백을 넘긴 어정쩡한 나이에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 그가 허둥대는 모습은 실직자가 된 당사자보다 덜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상처로 아파할 때마다 그는 약재를 넣은 백숙을 손수 끓였다. 가족들의 시린 맘을 달래주며 조용히 지폐 서너 장을 손에 꼬옥 쥐여주며 머리를 식히라고 했다. 눈이 흐려져서 동생들은 고맙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는 이 산 저 산에 흩어진 묘를 한 곳으로 모으는 이장에 대한 형제간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 앞장서겠거니 믿었던 맏이는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밍기적거렸다. 동생들은 산소를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힐끗힐끗 피하는 눈치였다. 서로의 맘은 조각나기 시작했다. 또 칠순을 훌쩍 넘긴 그가 팔을 걷어붙였다. 풍수지리를 불러 터를 살피고, 산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도 치렀다. 일일이 살피고 조율한 그의 노력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흩어질 뻔했던 조상의 묘와 가족들의 마음은 한 곳으로 모일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숱한 양성자들이 돌고 있다. 서로를 밀치고 눈 흘기며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교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원자핵과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설핏 든다. 나는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가 되어 한 해를 보내야 한다. 반장이 된 아이의 소감을 들은 후 교실을 나선다.
4. 어른 노릇
올해 추석은 몸은 멀리하고 마음만은 가까이하라고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니 집 단속 몸단속을 잘하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의료진까지 동원하여 근거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설명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 며느리들이 당당하게 시댁을 가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내가 새댁이었던 시절엔 명절 하루 전날부터 잔칫집이 따로 없었다. 마당에 가마솥을 걸었다. 아궁이를 피우고 투망으로 건져 올린 미꾸라지와 잡어를 뭉근히 삶아 채에 거르고 푸성귀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추어탕은 호불호가 따로 없었다. 김이 뭉게구름같이 피어오르는 국에 마늘과 알싸한 고추를 다져 넣고 간을 맞추었다. 입맛에 따라 화룡점정의 산초가루까지 넣은 추어탕을 먹으며 남자들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집안 남정네들의 수발을 드는 며느리들은 노동력을 우려내느라 바빴다.
집안이 넓어서 명절날 모이는 식구도 많았다. 얼추 삼십 명 안팎이니 현관은 신발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기를 더 내와라, 나물 전을 더 썰어 달라'는 외침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연거푸 과일을 내야 하고 성묘에 올릴 음식을 챙겨야 하니 숨 한 번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나도 며느리 역할에서 탈출하나 싶었다.
삼십 년 뒤, 며느리가 생겼다. 그 사이, 세상은 변해 버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며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새삼 냉장고 정리에 나선다. 대충 검은 봉지에 보관했던 식재료들을 예쁜 통에 담아 정리한다. 처음으로 명절을 쇠러 오는 며느리에게 어수선한 모습이 들킬까 무서워서이다. 혹여 냉장고 문짝에 얼룩이라도 있을까 싶어 행주질에 힘을 싣는다.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듯 환경정리에 열을 올리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명절이면 시어른을 위해 수선을 피우던 며느리는 이제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랑 과일을 채우느라 바쁘다.
남편의 힘도 빌렸다. 욕실 청소를 맡겼다. 세정제와 수세미를 내밀며 깨끗하게 청소하라고 했다. 연이어 거실이며 문틀의 먼지를 닦으라고 했다. 며느리가 머물 방바닥은 쪼그려 앉아서 닦으라며 걸레질까지 시켰다.
"너무하네. 내가 뭐 청소 당번인 줄 아냐"
식구끼리 편하게 살아야지 뭐 하는 짓이냐며 투덜대도 청소를 멈추지 않는다. 시키지도 않은 베란다까지 정리하며 열심이다.
작은 추석날 저녁에, 아들 내외가 들어선다. 정갈한 옷차림의 며느리가 주방으로 향하자 아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뭐할까요, 어머님?"
나는 손사래를 치며 며느리를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아무것도 할 거 없다. 호텔식 뷔페를 배달시켰으니 그걸로 먹자."
비대면 문화가 퍼지자 유명 호텔에서 만든 상품인데 명절 특가행사를 한다기에 주문한 것이다. 결혼 전에 며느리가 명절에 음식을 만지느라 기진맥진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나의 선언에 대한 약속이다. 긴가민가하던 아들 부부의 낯빛이 환해진다. 나와 며느리 사이에 혹여 마찰음이라도 생길까 긴장하던 아들의 반색이 가관이다. 멋진 시어머니라고 치켜세우며 엄지 척까지 날린다. 나는 손가락 하트로 화답하지만, 입꼬리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며느리가 내미는 보따리를 열어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추어탕, 도토리묵, 김치, 송편을 보내왔다. 안사돈이 직접 끓이고 담근 음식이라니 정갈한 마음에 코끝이 찡하다. 자식을 나누어 가진 인연으로 이 많은 정성을 받는다 생각하니 며느리가 새삼 귀하다. 며느리가 송편을 내 입에다 넣어주며 방긋 웃는다. 녹두 앙금이 알싸하다.
추석날이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거리가 먼 작은 집으로 가야 하므로 서두른다. 아들 내외를 아침 일찍 깨워 큰집에 가니 시숙과 조카들이 모두 모여있다. 주방 쪽을 건너다보니 휑하다. 질부들이 왁자지껄하게 차례 음식을 차리고 있어야 할 공간에 형님 혼자서 동분서주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모임을 자제하라는 정부 시책에 따라야 하므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애국자 집안이로세. 언제부터 너희들이 그리도 고분고분했더냐. 더욱 괘씸한 것은 질부들끼리 미리 합심하여 오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네 명의 며느리들이 너만 가고 나는 가지 않으면 시어머니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이니 대동단결하여 같은 배를 탄 격이다.
내 며느리만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전입생이 친구를 사귀려면 시간이 걸리듯 질부들의 합법적 반란에 동참하기엔 시기상조다. 처가에 빨리 보내야 한다는 핑계로 차례만 모시고 아들 내외를 집으로 보낸다. 작은집에 들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오니 아들과 며느리가 달게 자고 있다. 지난밤, 시댁에서의 잠자리가 편치 않았나 보다. 그 사이에 주방 소리를 죽여 가며 나는 밥상을 차린다. 햅쌀로 밥을 새로 짓고, 미리 장만해 두었던 반찬으로 식탁을 차린다. 문어를 삶고 고기도 푸짐하게 구워낸다.
식사를 마치자 남편이 사과와 배를 깎아서 쟁반에 담는다. 남편은 연신 애교를 피우는 며느리가 사랑스러운가 보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으니 나는 질끈 눈을 감는다. 사돈댁을 생각하면 아이들을 독차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친정에 빨리 가보라고 재촉하니 어느새 햇살이 기운을 잃고 있다. 아들 손에 선물 꾸러미를 챙긴다. 신혼살림에 보탬을 주어야지 싶어서 과일도 주섬주섬 챙기고 밑반찬도 담으니 보따리가 커졌다.
떠나는 꽁무니를 향해 두 팔을 흔들고 돌아서니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거실 바닥에 큰 대자로 벌러덩 누우니 어른 노릇 힘들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되짚어 보니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게 살았는데, 세월이 어른 노릇을 떠맡긴다.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왕지사 내가 맡아야 할 감투라면 제대로 자릿값 하기를 기원한다. (끝)
첫댓글 축하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