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의 추억과 별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하나의 동경,별하나의 시와 별하나의 어머니'
<별헤는밤>은 윤동주가 고향을 떠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다. 고향을 떠나 먼이국의 땅에서 생활하던 그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였을까? 그리움,쓸쓸함,외로움등 이런 느낌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어느새 자퇴를 하고 홈스쿨을 한지 어느덧 8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항상 학교에서 누군가와 함께생활하면서 당연히 가던곳을 안가게되니 처음엔 좋았다가 점점 익숙해져 가면서 나도 왠지 쓸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같기도 하다. 학교에서 항상 힘든 나날을 버티기만 하면서 생활하다가 그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면서 살아가다보니 나도 점점 지쳐저 가는것 같다. 윤동주도 혹시 그런 감정이 있었을까? 고향을 떠나 이국의 땅에서 스스로 지치거나 힘든 감정이 있진 않았을까?
윤동주는 '별'에 자신의 인생을 상징했다면, 나는 '길'로 해보고 싶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길'은 어떤 길일까? 부자의 재벌2세들이 쥐고있는 '금수저'가 걷는길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스팔트'라면 내가 걷는 이길은 어떤길일까? 꽃은 필수 있을까? 일반 중학교를 다니던 그시절의 길은 보통 사람들도 다같이 걷는 길이지만 그길은 굉장히 더러웠다. 곧곧에 쓰레기들이 버려져있고 못이나 가시 같은 발으면 다칠것 같은 것들도 버려져 있었다. 그길을 벗어나고자 대안학교로 갔던 그곳에선 나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영화 <동주>에서 첫부분에서도 보면 공산당들이 온다고 마을사람들이 반대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당시 공산주의는 스탈린이 집권하던 독재와 자유를 박탈한다는 느낌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반대 했었지 않았나 싶다.
내가 다녔던 그길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기독교 정서와 안맞다는 것 이유로 미디어와 멀어지라고도 하고 쉬지도 놀지도 못했던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못즐기는것도 기독교 정서에 안맞는다면서 빼앗아 버린것 같았다. 불구덩이였을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길에서 벗어나서 지금 이길에 서있다.
그리고 나는 이젠 현타가 와서 쓰러진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멈추지 않듯이 쓰러질듯하지만 계속 걷고 있던것 같다. 윤동주는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했다.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게 이 길을 계속 걸어갈수 있을까?
다음주부터 별무리 선발캠프가 있어 아마 다음주 시간은 빠질것 같다. 어쩌면 이시간만을 위해 나는 계속 이 알수없는 길을 걸어왔던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작년부터 별무리를 꼭 가고 싶었다. 별무리 학교로 가는 그 갈림길이 그길이 꽃이 잘나오는 좋은 흙으로 되어있는 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길의 선로가 그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윤동주는 지금 천국에 있을것이다. 그곳에선 편안할까? 자신이 부끄럼 없이 살았던 그삶에서 벗어나 아름다워졌을까?
윤동주의 인생을 보고 '과연 난 부끄럽지 않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글이 좀 윤동주보다는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 져있어 좀 이상해보일수 있지만 이글을 쓴 이유는 다음주에 있을 선발캠프 때문이다. 어쩌면 두렵기도 하고 어쩌면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주제랑은 살짝 엇갈리지만 그래도 한번 써보고 싶어서 써봤다.글을 쓰면서도 '이게 맞나?' 하면서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별무리 학교를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담아서 기도문을 적고 글을 마무리 하겠다.
기도문:하나님, 제가 오늘도 걸어온 이길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세요. 다음주면 오래 기다렸던 것을 시작하게 될텐데, 주님 제가 두렵거나 긴장하지 않고 잘 하고 오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걸어오던 길에서 한걸음 한걸은 순간들에 힘들고 지칠때도 있었지만 별무리를 통해서 저를 일으켜주시고, 모든뜻이 주님의 뜻대로 풀리길 바랍니다.감사하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