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 공군의 압박작전
1. 개요
유엔군은 '51년 후반 크리퍼 작전을 시작으로 지상에서 제한목표공격작전을 실시하는 한편 동시에 공군력을 집중한 후방지역차단작전을 실시하여 적의 병참선에 대타격을 가하였다.
이 후방차단 작전은 스트랭글(Strangle:교살작전), 세추레이트(Saturate:집중폭격)로 전술에 변화를 가하며 '52년 전반기까지 실시하였다.
그러나 공산측에 시간만 주고 오히려 휴전회담에 진전이 없게되자 유엔군측은 공군 전략개념을 바꾸어 북한내에 있는 결정적인 군사전력목표를 반복적으로 폭격하여 적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서 공산군이 휴전협상에 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52. 5. 12일 새로 유엔군 사령관에 부임한 클라크 대장은 북한의 수력발전시설에 대한 공격을 결정하고 새로운 항공압박 전략을 계획하였다.
가. 대공작전과 비행장의 파괴로 제공권을 유지한다
나. 적의 보급품, 장비, 시설 및ㅊ 인원을 파괴 혹은 손상시킨다
다. 적의 보급품, 장비 및 병력의 이동을 지연시킨다.
라. 지상군을 근접지원한다.
유엔군은 이러한 전략에 따라 지속적인 공중공격으로 적의 장비, 보급품, 시설, 병력에 막대한 댓가를 치르도록 할 것과 동일한 목표를 매일 강타하여 적에게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엇다.
2. 공군 작전
이러한 작전개념에 부합되도록 북한 발전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위해 해.공군.해병항공대의 합동작전을 계획하였으며, 1952년 6월 23일에 개전이래 최대의 공격이 이루어졌다.
제5공군과 해군 및 해병항공대에서 차출된 500대 이상의 항공기로 편성된 합동특수기동부대가 수풍, 부전, 장진, 허천발전소를 공격하였다. 이 작전은 한국내의 모든 비행기를 총동원하는 것으로 4개의 발전소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다.
가. 수풍발전소 공격
수풍발전소는 '52. 6. 23일 약 180대 이상의 F-86전폭기들이 폭격기를 엄호하기 위해 미그회랑을 초계비행하였으며, 제7함대에서 출격한 해군 F-9F전투기들이 압록강안의 적 대공포진지를 강타하였다.
동시에 해군 F-4U와 F-9F전투기 약 72대가 금강하 폭격을 감행하여 거대한 발전소의 건물 및 발전기를 폭파하엿으며 뒤이어 제5공군 F-84 및 F-80전투기 120대가 같은 목표에 폭탄과 로켓탄으로 정밀 공격을 가하였다.
수풍발전소에 대한 두번째 폭격을 '52. 9월 12일 야간에 실시하였다. 이 작전에 31대의 비행기가 참여하고, 야간 침투기인 B-26경폭격기들도 목표지역을 계속 초계비행하였다. 이 후 4개월 후인 '53. 2월 15일 발전기 두대가 다시 가동되는 것을 세번째 폭격하여 북한의 발전체계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나. 동부지역 발전소 공격
아울러 유엔 해. 공군은 동부지역의 발전소에도 공격을 가했는데, 항공모함에서 접근하기 쉬운 허천 발전소는 해군 함재기들이, 부전 및 장진호 발전소는 미 제5공군과 해병대 전폭기들이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를 주었고 유엔군은 함재기 5대가 격추되었다.
유엔 해. 공군은 북한발전소를 영구히 파괴하기 위해서 반복적인 공격을위해 '52. 6월 24일과 26일, 27일 연속으로 동해안 발전소를 강타하였다.
다. 평양 폭격
유엔 해. 공군은 '52. 7월 초에 심리적인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평양을 공격하기로 하고 평양 공습은 미 제5공군과 미 해병 항공대 및 해군함재기의 합동작전으로 진행되었다.
유엔 해군은 두 척의 항모에서 91대의 함재기를 동원하고, 미 제5공군의 엄호아래 폭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미공군의 F-84쎈더 제트기가 적의 대공포를 선제공격한 후 F-4U 코르세어와 AD 스카이레이더기가 뒤다라 적의 시설물에 폭탄을 투하하는 순서로 되었다.
항모 함재기들은 원산 여도에서 출격하여 평양 동남 탄약보급소와 수송부대 그리고 사령부와 막사를 비롯하여 공장과 기관차정비소 및 차고 등이고 다른 목표는 제5공군과 해병항공대, 호주, 그리고 제95기동부대 항모 오션호에 함재기들이 담당하였다.
'52. 7. 11일 평양 대공습에 822대를 3파로 나누어 폭격을 감행하여 11시간에 1,400톤의 폭탄과 23,000갤런의 네이팜탄이 대부분 명중되어 1,500여 개의 건물이 파괴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대해 공산군측은 비인도적 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심리적으로 대단히 위축되었다.
극동 공군은 다시 '52. 8. 4일 평양에 대해 2차 공습을 감행, 284대의 전폭기들이 평양 동쪽 북한군 사령부를 공습하여 대공포 진지, 병력 등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8월 29일 제3차 공습으로 무려 1,080대의 유엔군 비행기와 한국 공군 36대가 참여하여 평양의 45개 군사목표물을 강타하여 31개 목표에 심한 피해를 주는 전과를 얻었다.
라. 해상에서의 폭격
유엔 해군은 해상에서 함포사격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52. 7월 5일 제77기동부대 전함 아이오와호는 원산항을 7시간 폭격하여 해안포 및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였으며 , 동일 7월 15일 제95기동부대의 미 구축함 오렉호는 동해의 양도-청양 간 적의 보급열차를 함포사격으로 15개의 객차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7월 중에해군 함대는 총 28량의 객차를 파괴하였다.
다시 '52. 9월 1일, 미 제7함대 항모 에섹스호등 3척의 항모에서 144대의 함재기가 출격하여 북한에서 가장 큰 정유보급지인 아오지 정유공장 일대를 폭격하였고, 10월 8일 제7함대 항모 3척에서 출격한 89대의 함재기와 극동 공군 중폭격기 B-29 10대가 고원 일대의 고사포진지, 철로, 통신망, 부대, 보급시설을 파괴하였다.
다시 '52. 11. 17일 미 제77기동부대의 함재기들이 청진 일대 해안철도 및 시설물, 고아산을 폭격하고, 미주리 함 및 헬레나 함이 합세하여 5회에 걸쳐 청진 시가를 포격하였다.
유엔 해군은 작전간 '52년 후반기에 해상작전에서 구축함 톰슨호, 시어스호, 바탄호등이 피격되는 손실을 입었다.
유엔 해. 공군은 이밖에도 '52. 후반기에 각 전선에서 지상군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 됨에 따라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과 특히 저격능선과 삼각고지 전투간 미 제7사단과 국군 제2사단에 2,217회의 출격하여 당시 10월 중에 있던 4,488회의 절반이 지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