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3]
강병주(姜炳周, 1882-1955)①
강병주 목사는 신학자 강신명(姜信明, 1909-1985) 목사의 부친으로 1882년 경북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내매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그는 절망한 나머지 26세쯤 되었을 때 출가해서 수도의 삶을 살고자 가야산 해인사를 향해 길을 떠났다가 한 기독교 전도인을 만나 발길을 돌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를 출석했는데 바로 내매교회(1906년, 1908년, 1909년 설립설이 있음)였습니다. 나중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다녔으며, 졸업 후에 1923년 목사가 되어 풍기교회를 담임했습니다. 그가 신학 공부를 하기 전에 교인들이 세운 기독내명학교(基督內明學校, 1910년 설립) 교장이 되었습니다. 1913년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사립기독내명학교(私立內明學校)’로 정식 허가를 받았습니다. 내명학교는 순흥학교와 풍기학교에 이어 영주에서 세 번째 학교가 되었습니다. 내명학교는 1995년 폐교되었는데 평은초등학교 내명분교의 전신이었습니다. 강병주 교장은 내명학교를 통해 계몽운동을 열심히 했고 항일독립정신을 가르쳤습니다. 1919년에는 대구성경학교를 졸업했지만 3․1운동에 가담했다가 8개월간의 옥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에 졸업했고, 1923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그 학교 종교교육과에 입학하여 1925년 졸업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회계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농사 발전에 힘쓰는 등 농촌운동에 앞장섰고, 소비조합제도를 만들었으며, 도박을 없애려는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그는 1932년 총회종교교육부에서 일하면서 서류 일체를 한글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한글 보급에도 힘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