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수능한파와 불공정 수능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2019.11.18
202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 당일 전날보다 기온이 무려 6℃가 떨어져, 서울 기준 영하 3℃를 기록했다. 수능한파의 속설이 증명됐다. 대입학력고사든 수능이든 포근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수능을 생각하면 시험장 들어간 자식을 기다리며 혹한에 꽁꽁 언 손을 모으고, 교문 앞에서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그래서 수능한파는 매년 변함없이 되풀이 되는 하나의 절기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능한파는 사실이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대입학력고사가 수능시험으로 대체된 1993년부터 올해까지 총 26회의 수능시험 동안 날씨가 영하 이하로 떨어진 날은 7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능 당일 온도가 10℃ 이상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수능 당일 날씨가 유독 추워진다는 수능한파는 통계를 놓고 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수능한파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은 날씨가 추웠다기보다는, 마음이 추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설명한다. ‘화엄경’ 사구게에 나오는 일체유심조는 “마음이 삼라만상 모든 것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원효 스님이 새벽에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시원하고 달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해골에 담긴 물인 것을 보고 구토가 난 것은 모두 마음이 일으킨 일이다. 해골에 담긴 물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다.
수능이라는 인생의 첫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부담감은 학생들에게 날씨와 무관하게 지독한 한기로 느껴졌고, 한때 학생으로 수능 경험이 있는 부모들 또한 정작 시험 보는 아이들 못지않게 추웠을 것이다.
요즘 사회 각계에서 불공정 수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볼 때마다 학부모들의 마음에는 한기를 넘어 고드름이 인다. 잘난 부모들을 둔 아이들에겐 그리 쉬운 길들이, 우리 자식에게는 험난한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못난 부모의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만큼 지독한 한기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