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0-01-09 23:57 조회 : 1429 |
| | | 불과 말(馬)이 전하는 이야기
이진화
연초에 우리집에 오시기로 한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분명히 그 전 날 저녁 오시기로 약속을 했는데 전화를 거니까 전원이 꺼져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감기가 드셨다더니 혹시 많이 편찮으신 건 아닐까.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10여 분 거리에 사시는 어머니께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감기 몸살이 심하게 왔다며 누워 계셨고 휴대폰은 배터리가 나간 채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배터리를 갈아 끼우자마자 외국에 있는 동생들이 연달아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걸어왔다.
가끔 역사극의 장면 중에 긴박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달려가는 파발마를 본다. 천천히 먹을 갈아 붓으로 종이에 쓴 편지를 품에 넣고 달리는 동안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나서 전해지지 못하면 어쩌나. 실제로 소식을 받아야할 사람과 시간이 엇갈려서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영 헤어지는 운명을 맞기도 한다.
195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전화나 전보에 익숙한 편이었다. 갑자기 길흉사가 있거나 급한 소식이 있을 때 동네에 몇 대 안 되는 전화를 빌리거나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쳤다. 외국에 나가있는 가족들과 국제전화라도 할라치면 다른 나라를 통해 중계되는 통화를 해야 했다.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고 잡음이 많은 전화는 그나마 요금이 비싸서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1970년대 초부터 해외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인편으로 편지를 자주 보내셨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항공 우편을 기다리는 대신 인편에 오는 편지를 찾으러 다녔다. 아버지의 긴 편지와 함께 배달되는 은제품이나 목각 등의 자그마한 선물들이 얼마나 반갑고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두어 달 전 부터 아침마다 휴대폰으로 배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오랜 벗의 묵상 편지다. 음악과 함께 배달되는 그 편지는 하루를 여는 기지개와 같다. 친구의 편지를 시작으로 하여 이메일과 블로그, 홈페이지, 뉴스를 휴대폰으로 훑어보는 것은 나의 일과이다.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전자계산기를 사용한다. 그 뿐 아니라 간단한 단말기를 연결하면 인터넷 홈쇼핑의 결제도 할 수 있고, 혈당 측정도 가능하다. 이렇게 휴대폰은 통화와 문자 전달 뿐 아니라 과거에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낸다. 게다가 그 기능이 점점 빠른 속도로 진화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학창시절 매일 만나면서도 긴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친구가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과는 다른 시간의 속도로 며칠 만에 답장을 주고받는 편지가 우정을 더욱 도탑게 했다. 편지는 오고가는 동안 생각을 무르익게 하고 마음의 길을 냈다. 옛날 분들은 이어지지 않는 마음의 흐름과 단절의 애달픔을 건너지 못하는 강이나 바다로 표현했고 그런 이야기는 전설과 노래가 되기도 했다. 요즈음은 영화와 드라마, 가요에 핸드폰과 이메일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사람의 감정인 희로애락은 변하지 않는다 해도 전달되는 도구와 변화의 속도는 광속으로 달라지고 있다. 한동안 수십 통씩 보내고 받았던 카드와 연하장이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문자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메시지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특정한 대상에게 짧은 글로 마음을 표현하려면 상대방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도 고려해야 한다. 언제든 받아서 즐겁고 보내서 흐뭇한 것은 긍정적인 응원의 메시지다.
이제 휴대폰은 개인적인 통신수단일 뿐 아니라 필수적인 비즈니스의 도구가 되었다. 홍콩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는 동생이 며칠 간 우리집에 묵었다. 회사가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고 사업의 현장은 지구촌 전체인데 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하나로 그 일들을 차질 없이 해내고 있었다. 전화 통화는 스마트 폰이 가지고 있는 이십 만가지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라니 놀랍다. 어디 그 뿐인가. 밖에서도 휴대폰으로 집안의 형편을 살피고 기기들을 제어하는 시대가 왔다. 나는 얼마 전부터 작은 단말기만 부착하면 어디서든 쓸 수 있는 넷북을 장만해서 가지고 다니며 원고를 쓰고 인터넷을 하고 있다.
‘20세기에는 글을 모르면 문맹이었지만 21세기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문맹’이라고 앨빈 토플러가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빠른 변화의 속도를 어떻게 따라 잡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도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보내놓고 확인을 안 해서 전화를 따로 걸어야 소통이 되는 분들이 있다. 팔순에 이르신 어머니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므로 어머니께 문자 읽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귀가 어두워 벨소리도 자주 놓치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강의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는데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오셨다. 옆에서 이웃 청년이 가르쳐 주었다고 더듬더듬 찍어 보내신 것이다. ‘얘야 늘 건강해라 파이팅’. 메시지를 읽으며 눈물이 쑥 나왔다.
통신은 달리는 말이고 타오르는 횃불이다. 북이고 나팔이며 종(鐘)이다. 아니, 이제는 그 모든 것 위에 더 많은 것을 통합하여 탑재한 그 무엇이다. 유비쿼터스의 시대에는 ‘신이 어디에든 존재하듯’ 주고받는 의사소통도 번개처럼 먼 길을 오고간다. 그렇게 태어난 말과 기호는 삭제해도 사라지지 않고 우주 어디엔가 남아있다. 파발마건 봉화건, 디지털 통신이건 어떤 도구가 실어 나르던 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되리라.
멀리 외국에 있는 친구와 인터넷 전화로 통화를 할 때는 불현듯 인류를 이롭게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탁월한 속도로 세상을 제패한 칭기스칸의 말(馬)이 생각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광활한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전하는 불과 말을 상상한다. 불과 말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행복한 소식만 전하기를 기도하는 새해 아침이다. |
| 임병식 | 10-01-10 06:40 | | "통신은 달리는 말이고 타오르는 횃불이다. 북이고 나팔이고 종(鐘)이다"라는 말이 시적 은유를 능가하는 것 같습니다. 한데 저는 말(馬)이라는 단어에서 말(言)과 말(馬)의 유사성이 문득 느껴집니다. 언비천리 (言飛千里)라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이 거의 날아가니까요.
문장이나 전개나 구성이나 담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잘 써진 수필 한편을 읽고 갑니다. | |
| | 이진화 | 10-01-11 00:54 | | 임병식 선생님, 통신으로 느끼는 따스한 세상을 써달라는 주문이라 유비쿼터스의 양면성인 '공유와 감시'에 대해서 다 쓰지는 못했습니다.
말(言)과 말(馬)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저도 쓰면서 느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은 여전히 유효하더군요.
읽어주시고 자상한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임재문 | 10-01-10 18:52 | | 맞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바로 문맹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터넷에 사진 올리는 법 동영상 올리는 법 등등 태그를 연습해보건만 잘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더 연구하고 배우고 익혀서 익숙하게 해서 이시대를 따라잡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이진화 | 10-01-11 01:02 | | 임재문 선생님, 이렇게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동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은 예전에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지요? 선생님은 누구보다 홈페이지에 참여를 많이 하며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시는 편입니다. 사진 올리는 일도 몇 번만 해보면 곧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
| | 최복희 | 10-01-10 22:24 | | 서광처럼 새해 벽두에 빛나는 글을 올리셨네요.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통신 매체 기기들을 빨리 익히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 기분이지요. 가끔 혼란스럽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사람 두뇌의 한계성은 어디까지인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이진화 | 10-01-11 01:09 | | 최복희 선생님, 인터넷 신문의 앵커로 뛰시는 선생님은 이 시대를 선도하는 분입니다. 사실 모르는 분야가 많아서 어리둥절 할 때가 많지만 시대의 흐름은 감지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뇌의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_^* | |
| | 정진철 | 10-01-11 09:33 | | 저도 휴대폰의 기능을 받고 보내고 가끔 문자보내는 정도 밖에 못하는데 언제 그런 기능을 익히셨는지 대단하세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어머니에게 달려갈때 혹시 하는 긴박하고 불안한 느낌이 범사에 그쳐서 참 다헹입니다, 아무쪼록 더 자주 찾아 보시고 효도 많이 하세요~ | |
| | 이진화 | 10-01-11 11:21 | | 정진철 선생님, 저도 아이폰 한 가지에 20만 가지 기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어머니께서 근력이 예전같지 않으셔서 걱정입니다. 그렇찮아도 오늘 가뵈오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 |
| | 박원명화 | 10-01-13 12:39 | | 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아나로그에서 디지의 세계로 가는 요즘입니다. 모두가 불랙홀처럼 기계속으로 빨려들어 가야 하는 세대, 그것을 따라 가자니 앞도 뒤도 돌아 볼 여유라는 게 없어져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편지나 전화를 통해 직접적인 메세지를 전달했던 것이 더 인간적인 정의 흐름이 있지 않았던가요. 선생님의 차분한 글의 메세지에서 빨리 가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생각케 합니다. | |
| | 이방주 | 10-01-13 20:38 | | 이진화 선생님 저는 우리 살아가는 공간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줄이 늘여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이른 아침 백두대간을 올라서면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마구 달려 들듯이 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읽었습니다. 읽기 재미있고 읽고 나니 남는 것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