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과천동화읽는모임 발자취를 말해달란다.
사정이 안 되려니와 활동 안 한 기간이 있어서 발자취를 환히 꽤고 있지는 못하니까 꾸준히 나온 1기회원 중 어느 분에게 부탁해 보는 게 좋겠다 했다.그대신 모임을 꾸리던 때 이야기는 카페에 올려 놓겠다 했다.
수요일 저녁까지는 올려 놓아야지 했는데 어느새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사실, 아이들과 아빠 문제로 가정이 위태위태하게 된 일이 있어서 집안분위기가 일주일 동안 말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끌적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인생살이 허무하구나 싶다.
내 인생을 조망해보니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하던 그때가 참 좋은 때였다. 너무 소중한 때였는데 감사할 줄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그때 상황을 알려줘서 같이 기뻐할 이들이 있다면 좋겠다.
난 이오덕선생님의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 강좌를 통해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알았다. 도시에서 어린이들이 참살이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글쓰기 보다 글읽기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이 되었다.1기교육 받기 전에 회원이었지만 아주 고참은 아니었다. 또, 창작분과에 있었기 때문에 활동자체가 소극적이었다. 그래도 내겐 참 소중했다. 아이들 키우고, 어머니 모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 읽은책에 대해 얘기하고, 그 속에 있는 현실의 자식 얘기도 하고, 어른이 된 속에 있던 내 어린 것도 끄집어 내어 놀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남태령고개를 넘어오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혼자서 즐거웠던 거다.
여기저기서 동화읽는어른 모임이 생겨서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데 내가 사는 과천엔 아무낌새가 없었다. 동화읽는어른모임은 어도연에서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던 '동화읽는어른'을 보고 지역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여서 만들 걸로 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하는 지 고민하던 엄마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매개체가 '동화읽는어른'이었을 거다. 하여튼 난 어디서 모임을 꾸렸다더라 어디서 꾸렸다더라 하면, 자꾸만 과천사람들에게 빚진 느낌이었다. 나만 기쁨을 누리는 데 대한 미안함이 동화읽는어른모임이 만들어질 때마다 커 갔다. 나중엔 아이들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있을 과천어른들이 이렇게도 냉소적일까 하며 욕을 그들에게 돌렸다. 그래도 마음의 짐은 덜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과천동화읽는어른이 탄생하는 데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장소를 제공한 과천도서관 어린이담당 선생님이다. 어린이책을 읽으려니 자연스럽게 어린이실담당 직원과 친하게 지냈다. '동화읽는어른'이 나오면 그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어도연의 활동상황도 알려주었다. 선생님도 어도연에서 연 사서선생님을 위한 워크샵에도 참석하여 열려있었다. 내가 모임을 만들고 싶다니까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 주셨다.
또한,강의를 도와 주신 분도 있다. 강의를 다니는 분들에게 부탁하면 강사비를 드려야하는데 돈이 없어 내가 주로 하기로 했다. 잘 모르지만 내 아는 정도껏만 전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몇몇 선배님들의 강의안을 참고하여 우리동화,옛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그림책은 잘 몰라서 안양에 살면서 그림책분과 회원이던 안선희선생님께 부탁했다.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진짜 고마웠던 분들이 있다. 그 당시 난 북치고 장고치고 할 판이었다. 강의도 해야하고, 오신 분들 챙기기도 해야했다. 그런데 참교육학부모회원이 몇몇분 강의(강의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지만....달리 다른 적당한 말이 없어서...)를 들으러 오셨다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위해 노래도 불러주시고 떠드는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그 분들 덕분에 며칠 간(4일간인가?)의 무당놀음은 끝났다. 선무당이 날고 뛰고 했는데도 다행히 미친 취급 안 받았나 보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다시 모여서 모임을 꾸렸다. 회원이 많아 두 모임이 되었다. 한 모둠은 우리동화를 주로 읽었고, 한 모둠은 그림책을 읽었다. 같은 방에서 두 모임이 토론을 하느라 어수선하고, 상대편의 열띤 어조에 분위기가 한쪽으로 쏠리기도 했다. 애들 키울 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눈으로 들어가는 지 모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모임이 끝나고 일어날 때 즐거워하는 모습은 참 흐뭇했다. 그 어린애들 젖 먹여가며,똥치워 가며 귀를 쫑끗 세우는 회원들을 볼 때 보람이 있었다.
자식을 뱄을 때는 낳아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모임을 꾸려나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여러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요구는 시시각각이었다. 그러나, 난 깨어있는 어른이 많기를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어린이들의 문화를 바로 일굴 수 있는 역할 하나만 맡는다고 해도 좋겠다 싶었다. 난 사회의 문화가 바르면 우리 가정도 바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소 내 자식이 엄마의 손길을 덜 받아 꽤재재하다해도 우리의 자식들이 좋은책을 매개로 올바른 문화를 맛보고 누리면 더 할 수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회원들이 모임을 통해서 자신을 가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랐다. 그래서 난 회원들을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어도연에서 하는 행사를 제시한 다음 독려했다. 하면 됩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기 회원들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를 지니고 있다. 참 고맙다.
**첫강의 때 정정원씨네 아기들 얘기며, 모둠 이름 붙일 때 애피소드 등은 1기한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아주오랜시간이 지나왔는데 얼마전이야기처럼 생생한 그림으로 다가오네요. 연수때 함께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11월24일 총회때는 꼭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