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우치 게이이치가 어렸을 때, 이웃에 사는 학회원 중에 세계를 무대로 활약
하는 창작무용가 부부가 있었는데 "인도는 정말 좋은 곳이란다." 하는 부부의
말을 듣고 인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점차 인도 뉴스 등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유년기에 어머니와 함께 입회한 오코우치는 학회의 뜰에서 자랐다.
고교시절에는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가 고등부원을 위해 쓴
'대백련화' 권두언 '봉추여 미래로 날아올라라'를 지침으로 삼아 활동에 힘썼다.
그 내용 중에 가슴을 뛰게 한 구절이 있었다. "지금이 바로 세계평화, 다시
말해 세계광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전진해야 할 시대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지금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여러분을 위해 길을 개척했다. 또 앞으로도 길을
열 결심이다." 고등학교 2학년 지리 수업시간 때, 선생님이 흥미가 있는 나라
를 조사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불교 발상의 나라이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은 인도를 선택했다. 인도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지배, 착취
당해 빈곤층도 많았다. 당시 인구는 5억이 넘었다. 오코우치는 인도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오코우치는 자주 고등부 멤버들과
광선유포의 미래도를 이야기했다. "우리 사명은 일본 광포보다 오히려 세계
광포가 아닐까" 하는 친구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리고 세계로 웅비하고 싶다
는 꿈이 차츰 커졌다. 어느 날 오코우치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동쪽의 일본으로 건너
와, 이번에는 니치렌불법이 일본에서 동양으로, 인도로 돌아간다는 '불법서환'
을 확신하셨다. 그러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사명을 자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실현되지 못할 일이다.
나는 장래 인도에 가서, 인도 광포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다."
결의의 씨앗이 있어야 열매가 열린다.
오코우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인도에서 취업하려면 건축기술을 익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공대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또 인도 공용어인 영어 습득
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같은 공용어인 힌디어를 배우려고 어학당을 다니며
집중 강좌도 들었다. 진정한 결의에는 치밀한 계획과 행동이 따른다.
계획과 행동이 없는 결의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1975년 1월, 인도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인도의 대학원에 유학할 수 있는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합격에는 이르지 못하고, 보결자 명단에 오르는 데
그쳤다. 졸업한 뒤에는 대학 연구실에서 교수를 돕거나 공부하며 인도 유학의
길을 모색했다.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하고 창제에도 열심히 힘썼다.
이해 8월 25일, 신이치가 참석한 가운데 봉추회 결성 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코네연수원(나중에 가나가와연수원)에서 열었다. 오코우치는 문화행사에
출연해 땀투성이가 되어 아프리카 춤을 추었다. 그 직후 어머니에게서 연수원
으로 전화가 왔다. '인도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으니 바로 연락해 보라'는 내용
이었다. 오쿠우치는 연수원 전화로 대사관에 연락했다. "당신의 유학이 결정
되었습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인도로 출발해 주십시오." 귀를 의심했다.
합격자 중 한 사람이 유학을 사퇴하는 바람에, 대신 인도로 가게 되었다.
오코우치는 연수원에 있는 신이치에게 바로 보고했다. 신이치는 오코우치의
전도를 축하해 염주를 선물했다. 도쿄로 돌아온 오코우치는 주일 인도대사관
에서 유학 수속 등을 마치고 9월 2일 서둘러 일본을 떠났다. 오코우치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명문 루르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사력을 다한 노력, 진지한 기원이 곤란의 벽을 부수는 핵심
이다.
오코우치가 인도로 건너간 무렵 인도는 가뭄으로 식량 부족과 물가 상승,
부정부패 등으로 반정부운동이 고조되어 정세가 불안했다. 세상이 어수선
하자, 많은 외국기업이 인도에서 철수했다. 오코우치는 그런 상황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영어로 수업을 듣고 영어로 시험을 보았다.
노력은 했지만 어학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11월 시험에서는 거의 모든 과목
에서 최하위 성적을 받았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도에서 사명을 완수
할 수 없다. 질 수 없다!' 대학 기숙사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최우수 성적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립 자와할랄네루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다. 오코우치는 "미래로 웅비하는 사명을 자각할 때,
재능의 싹은 급속도로 자란다"는 신이치의 지도를 되새겼다. 신이치는
뉴델리에 있는 호텔에서 인간적으로 크게 성장한 오코우치를 보니 마음 든든
했다. 손수 육성한 창가(創價)의 젊은 사자가, 드디어 인도의 대지를 질주
하기 시작한 일이 참으로 기뻤다. 고등부를, 봉추회를, 더 나아가 미래부 각부
와 미래회 등을 만들어 광선유포를 위한 인재의 대하를 연 일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후세의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라고 신이치는 강하게 확신
했다. 사람은 모두 각인각색의 개성이 있고 재능이 있다. 누구나 인재다.
그러나 그 개성, 능력도 개발하지 않으면 그대로 묻힌 채로 끝나고 만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여러 교육의 장이 필요하다.
그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사명 자각'을 촉구하는 혼의 촉발이다.
신이치는 인도 광포를 위해 살겠다는 오코우치에게 기념으로 시를 선물했다.
"영원히 / 그대의 이름 향기로워라 / 영취산"
2월 6일 오후 3시, 신이치를 단장으로 하는 인도방문단 일행이 델리대학교를
방문했다. 도서 1000권을 기증하는 증정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델리대학교
는 1922년에 설립한 인도 최고봉의 종합대학 중 하나로, 중국과 일본을 연구
하는 학과도 있어 일본을 연구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성의
전당에는 시계탑이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R. C. 메로트라 부총장이
웃는 얼굴로 따뜻하게 신이치 일행을 맞아주었다.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풍모가, 중후한 지성의 광채를 느끼게 했다. 교내에 있는 타고르
기념강당에서 교직원과 학생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도서 증정식을 거행했다. 부총장은 인사말에서 일행을 환영한 뒤, 신이치가
소카(創價)대학교 등의 교육기관과 미술관 등을 창립하고 토인비 박사와 엮은
대담집을 비롯해 많은 저서를 저술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인도에서 일어난
부처의 가르침이 동양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중 한 나라인 일본이 자국의
전통을 살리면서 근대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일을 상찬했다. 신이치는 황송한
마음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과학이나 경제발전의 그늘에서
정신성을 잃어가는 일본에, 경종을 울리는 말로 받아들였다. 정신성을
소실하면 인간의 야만적인 본능이 활개를 쳐, 물욕에 번롱되는 사회를 낳고
만다. 신이치는 정신 대국인 인도에, 일본이 많이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과학기술의 진보나 부를 손에 넣는다고, 마음까지 풍요로워진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인은 풍족함과 편리함, 쾌적함을 손에 넣는 대신, 오히려 마음은
가난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과학기술이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가족애나 우정,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졌을까? 환희나 감사, 만족감, 충실
감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까? 길 가는 사람들 중에 웃는 얼굴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의 행복은, 풍요로운 정신의 토양에서 꽃피운다.
마음을 일구어야 행복의 꽃밭은 넓혀진다.
신이치는 메로트라 부총장의 인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인도는 아직 발전도상에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동자는
빛나고, 이야기를 나누면 웃음꽃이 핀다. 이것은 민중의 마음이 풍요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앞으로 인도도 급속도로 공업화, 현대화가 추진될 것이다.
이 격류는 발전을 가져오는 반면에, 빈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사람들의
풍요로운 마음도 빼앗아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느냐
가 향후 큰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불법이라는 생명의
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총장은 도서 증정의 의의를 말하고 '가치 있는
선물'이라며 고마움을 피력한 다음 더욱 힘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서 증정은 물론이고, 야마모토 선생님이 우리 대학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간의 진실은 행동에 나타난다. 직접 현지로 가서 만나야
우정이 싹트고, 그것이 쌓이면 굳은 신의를 맺을 수 있다. 다음은 신이치가
인사할 차례였다. 신이치는 델리대학교와 맺은 교육교류는 일본과 인도의
평화, 문화교류의 막을 열기 위해 염원하던 일이며, 이번 도서 증정이 여러분
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양국의 상호교류와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면
더 없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신조를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교육이 바로 21세기의 평화사회를 건설하는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교육,
문화교류에는 정치, 경제 차원 이상으로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제가 창립한 소카대학교의 모토는 '새로운 대문화건설의 요람이
되어라'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요새가 되어라'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델리대학교와 더욱 활발히 교류하고, 일본과 인도 사이에 무너지지 않는
'문화와 평화의 다리'를 놓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델리대학교에서 거행한 도서 증정식에서 신이치가 메로트라 부총장에게
자연·사회과학, 문학, 예술 등 기증 도서 1000권 중 일부와 도서목록을 전달
했다. 끝으로 A. P. 스리바스타바 도서관장이 단상에 서서 도서 증정에 깊이
고마워하며 "이 도서 증정은 앞으로 상호이해에 근본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하고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인도에서 전해 오는 책에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옛날에 중국에서 한 고승이 나란다의 불교대학에 유학한다.
학문을 모두 익힌 고승은 귀국을 앞두고 책을 가지고 돌아가기로 한다.
대학이 이 고승에게 짐꾼 열 사람을 붙여주었다. 도중에 배로 강을 건너는데
책이 너무 무거워서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고승이 '책을 버려 짐을
가볍게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인도의 짐꾼이 헤엄쳐서 건너겠다며 강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5명이 잇따라 뛰어 들어 책을 무사히 중국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책에 큰 가치를 두는 인도 사람들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책은 지식의 보고이고, 지혜를 키우는 빛이다.
관장은 화제를 바꾸어 '창가학회'의 '창가(創價)'는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
라는 것을 알고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공해 해결, 행복 확립,
인간의 적대심을 없애는 일 등 인류가 안은 과제는 모두 오늘날 대학에 주어진
과제이며, 그것을 해결하려면 가치 창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또 부처는 이미 먼 옛날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제시했으며, 그 가르침 속에 새로운 가치 창조의 원천이 있다고 강조
했다. 더욱이 창가학회가 그 불교를 근간으로 활동을 펼치는 점을 상찬하고,
앞으로 인도와 일본의 문화, 학술교류에 기대를 걸었다. 신이치는 인도의
지성이 창가학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느끼고 "해는 동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月氏)로 돌아갈 서상이니라" (어서 589쪽)는 성훈을
깊이 되새겼다.
▶2p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과 함께 신시대를 만든다 [26]
태양의 마음으로 불연을 넓혀라
'음식은 생명'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아, 우리의 생명을 떠받치는
농어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거듭되는 태풍으로
피해를 입어 고생도 얼마나 많으셨을까요. '제천이여, 존귀한 농어광부의
보우를 지키고 또 지키라!' 하고 강성히 기원하는 나날입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 일염부제(一閻浮
提)의 일체중생,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된다는 것을 용출(湧出)
이라고 하느니라." (어서 834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도, 문명도 초월해 이 지구에 사는 누구나 가장 존귀한 지용보살의 생명
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사람 또 한사람 자각시켜 주는 것이 우리의
광선유포입니다. 56년 전 10월 2일, 자절광포(慈折廣布)의 위대한 스승이신
도다(戶田) 선생님의 사진을 셔츠 주머니에 넣고, 나는 세계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사제불이(師弟不二)라면 두려울 것은 무엇도 없었습니다.
'이 지역은 어렵다' '저 사람은 무리'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묘법(妙法)은 일체를 비추는 태양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같은 인간'으로서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고뇌에 맞서 행복을 추구하고, 평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흉금을 터놓고 서로 대화하면 불연이 맺어지고, 서로 공감이
넓혀집니다. 성훈에는 "타인일지라도 막역한 사이라면 목숨도 대신하느니라"
(어서 1132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나는 내외를 불문하고 우정의 다리를
놓고 신뢰의 길을 열었습니다. 지금 우리 창가(創價)의 평화와 문화
그리고 교육의 크나큰 연대는, 세계를 감싸고 희망의 큰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부가 생기발랄하게 새 출발을 했습니다. 각지에서 새로운 정예가
힘차게 뛰어올라, 사회공헌의 인재성(人材城)이 밝고 활기찹니다.
청년부를 졸업하고 장년부, 부인부에 진출하는 벗도, 멋진 대승리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모두 '평생 청춘'의 마음으로 청년과 함께, 후배를 위해 '더욱더'
라는 신심으로 용맹정진해야 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발전하는 조직은
어디가 다른가', 그 요체를 명쾌하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광선유포라는 사제의 대원을 근본으로 모두 학회정신에 불탄다.
둘째, 리더가 절대적 확신에 서 있다.
셋째, 사이좋게 서로 격려하며 나아간다. 이 세가지입니다.
영원히 빛나는 복덕과 화락 그리고 환희의 확대를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루하루 전진했으면 합니다. 용기가 중요합니다. 용기가 자비로 바뀝니다.
태양의 마음으로 대화에 나섭시다!
첫댓글 대성인께서 부처의 '출세의 본회(本懷)'라고까지 말씀하신 '사람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대하는 '행동'을 통해 '마음의 재보'도 전해집니다. 내가(이케다 선생님) 일찍이
가정교육에 관해 말한 핵심도, 이른바 부모다운 '행동'을 언급한 것입니다.
①신심은 평생. 지금은 면학제일로.
②나날이 자녀와 어떻게 교류할지 연구하자.
③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④부모가 동시에 야단치지 않는다.
⑤공평하게.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다.
⑥부모가 신념에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전하자.
총명한 행동이 가장 중요합니다. 근본은, 자녀를 존중하는 '남을 공경하는' 실천입니다.
(법련 2016년 10월 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