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의 행복
이월 초순 둘째 토요일이다. 닷새 전 입춘날 닥친 추위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입춘 전날 창원천 천변에서 버들개지 솜털이 부풀고 한들공원 분재원에는 망울을 맺은 운룡매와 영춘화가 피어남을 확인했다. 이튿날 입춘에는 화포천 습지 인근 쇠실 동구에서 광대나물과 꽃잔디가 추위에도 꽃잎을 단 채였고 한림 들녘 신촌 비닐하우스단지 볕 바른 농수로에는 봄까치꽃이 피어났다.
추운 날씨를 명분으로 시설이 좋고 장서가 풍부한 교육단지와 북면 무동 도서관으로 다녔다. 토요일 아침은 평소 등교 시각에 대산 도서관으로 향했다. 절기에 맞춰 봄기운이 번지는가 싶더니 계절의 시계추는 멈추어져, 봄은 안단테로 안단티노로 오려는 모양이다. 소한 대한보다 더한 강추위가 엄습하자 어제는 아파트단지 쉼터에 숲을 이룬 대나무는 더욱 청청한 기상으로 돋보였다.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역에서 근교 들녘으로 다니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날 무렵 교통섬에 자라는 적송은 푸르름이 더 돋보였다. 오래전 어디선가 잘려 나갈 산자락 숲에서 도심 조경으로 옮겨와 자라는 소나무였다. 용강고개를 넘으면서 승객이 더 채워 빈자리가 없이 용잠삼거리에서 승객이 불었다가 줄어졌다. 주남삼거리 습지 웅덩이는 살얼음이 얼었다.
주남 들녘을 지난 가술에서 내려 평생학습센터와 겸하는 작은 도서관을 찾아갔다. 설을 쇠고는 처음이라 센터장과 인사를 나누고 신간 코너에 꽂힌 책을 세 권 뽑아 열람석을 차지했다. 시골이라 열람자가 적어 개인 서재처럼 혼자 호젓해 좋았다. 이번에 뽑은 책은 한국인으로 독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가 쓴 원서를 우리글로 번역한 ‘불안사회’와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이다.
심리학에서 행복을 연구하는 국내 학자로는 서울대 행복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최인철 교수의 책은 몇 권 읽었고 강연도 접한 적 있다. 그만큼 알려진 세계적 학자 반열에 오른 이가 연세대 서은국 박사다. 서 교수가 쓴 논문은 제목 정도 기억은 하는데 유명한 저서는 처음이다. 21세기북스에서 2014년도 출간해 이미 독자들에 회자된 ‘행복의 기원’인데 나는 처음 손에 쥐게 되었다.
이번 책은 10년 전 출간했던 그 책의 개정판으로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아주대 김경일 가천대 장대익 고려대 허태균 교수의 추천사에 이어 저자의 서문이 붙었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미국 유학 시절 만난 교수로부터 핀잔이라기보다 칭찬으로 들은 듯한 구절을 소개했다. “자네는 뭐든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는 재주가 있네.”였는데 본문을 펼친 1장은 ‘행복은 생각이다’로 시작했다.
행복은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 죽음과 이별과 짝사랑도.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의 최근 연구 결론도 지상에서 최고 성공담을 가진 동물로 꼽는 개미와 인간의 공통된 특징은 사회화로 봤다. 한 개체로는 탁월한 능력은 그다지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는 위한 사회화가 성공 요소였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 했다. 유한 인생에서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도 관건이었다. 시간이나 돈은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하다는 구절에는 최근 건설사 회장이 초등 친구나 출산한 직원에게 1억씩 쾌척한 얘기가 떠올랐다. 저자는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가치를 둠도 의미 있게 봤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의 오랜 시간에 걸친 저작물을 짧은 시간에 훑어 한 수 깨쳤다. 때가 되어 바깥으로 나와 점심을 들고 ‘가술거리에서’를 남겼다. “입춘에 닥친 한파 닷새째 맹위 떨쳐 / 도서관 열람실서 책장을 넘기다가 / 점심은 추어탕으로 한 끼 요기 때웠다 // 식후에 국도변은 바람이 차가운데 / 뻥튀기 파는 아낙 시린 손 안쓰러워 / 한 봉지 사주긴 해도 줄지 않아 염려다” 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