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아이들은 글 읽는 외에 붓글씨를 배웠다. 따라서 지필묵(紙筆墨)의 수요가 많아, 동네마다 현재의 문방구와 같은 지필방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었다. 글공부를 좋아했던 선비들의 방에는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었다. 종이, 붓, 벼루, 먹 등을 말하는데, 선비가 가지고 있어야 할 네 친구로, 친구처럼 가까이하라는 뜻으로 의인화하여 문방사우라 하고 귀하게 여겼다.
붓, 벼루, 먹은 백제와 신라 때의 유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벼루는 신라와 백제의 도연이 발굴된 바 있고, 일본의 쇼소원에는 신라 시대의 붓과 먹이 소장되어 있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문방구류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록상에 나타난 최초의 붓은 진의 몽염이 나무 붓대에 사슴 털과 양털로 붓촉을 만든 창호이다. 족제비 털로 만든 황모필이 가장 유명하고 붓대는 반듯하고 가벼운 대나무를 썼다. 먹은 위진대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유연묵·송연묵·용향묵 등이 만들어졌다.
벼루는 보통 돌로 만드는데 때로는 옥, 수정 같은 보석이나 백자, 청자 같은 도자기로 만들기도 했다. 용, 대나무, 연꽃 등을 조각해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한껏 살려 만든 벼루는 훌륭한 장식품이 되었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의 남포석과 자강도 위원군의 청석이 유명했다.
전통적인 문방구의 종류는 문방사우를 포함해 지통, 필통, 필갑, 연적, 서판, 등 20여 종이 넘는다. 먹을 갈 때는 사용할 물을 담아 둘 수 있는 연적이 필요하다. 연적에는 공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구멍이 두 개 있어서 원하는 만큼 물을 따를 수 있다. 대개 청자나 백자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한 손에 잡힐 만큼 작다.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구항오 기자>
첫댓글 선비의 거실에 가지런히 자리한 문방 사우, 선비의 단아한 모습과 함께 멋스러움이 묻어 나는군요. ㄱ ㅅ
글씨는 젠병이유 그저 유명하다는 성주산 남포석 벼루나 구경을 해봤면 하는데
정감이 묻어 있는 문방사우...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