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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 12:1-6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내용분해 : A.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있는 한 여자의 산통(1-2절)
1. 요한이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난 것을 (1a절)
2. 요한이 태양을 입고 발 아래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로 장식된 면류관을 쓴 한 여자를 봄 (1b절)
3. 그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할 때가 이르자 산통으로 부르짖음(2절)
B. 여자가 낳을 아이를 해하려는 붉은 용 (3-4절)
1. 하늘에 또 다른 표정이 나타나는데 곧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일곱 면류관을 쓴 큰 붉은 용이 나타남 (3절)
2.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짐 (4a절)
3. 붉은 용이 여자가 해산하면 아이를
삼키기 위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기다림 (4b절)
C. 만국을 다스릴 아들의 출생 및 아이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5-6절)
1. 마침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 아이는
장차 철장 권세로 만국을 다스릴 자임 (5a절)
2. 그 아이가 하나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감(5b절)
3. 또 여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즉 삼년 반 동안 보호를 받음 (6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핍박 속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할지라도, 진정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인 성도의 환난은 제아무리 극심한 것이라해도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임을 분명히 알라고 하시며, 환난 중에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라고 오늘 이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계시록 12:1-6절 말씀으로 한 여자와 아이에 대한 붉은 용의 핍박과 하나님의 보호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핵심 내용은 대종말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묵시들입니다. 이 묵시들은 계시록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며1:19의 ‘장차 될 일’ 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4:1-22 에 기록되었습니다. 대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어느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단회적·단절적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결정적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소위 말세의 상당 기간의 대환난과 그 이후의 백보좌 심판 및 신천 신지의 도래로 이어지는 연속적 사건입니다. 이중 재림 이전 말세의 대환난은 4-18장 사이에, 재림 이후의 사건은 19:1-22:5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하에 4-18장 사이의 말세의 대환난의 묵시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삼대 칠중 재앙(三大七重짜쨌) 환상을 뼈대로 전개되는데, 이 부분은 도중에 7:1-17 ; 10:1-11:14; 12-14장 등 세 차례에 걸쳐 끊겨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세 차례 끊겨지는 부분은 일종의 중간 계시 부분으로서, 드라마 구조로 치자면, 중요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막간(幕間, interlude) 의 역할을 합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길어지는 이러한 막간은 독자들로 하여금, 삼대 칠중 재앙 환상의 전개 과정에 대한 생각의 환기 및 다른 각도에서의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즉 독자들은 세 차례의 중간 계시들을 통해, 재앙들의 성격이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또한 심판의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관점을 선명하게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12-14장은 일곱 나팔 및 일곱 대접 재앙의 집행 사이에 삽입된 세 번째 중간 계시로서, 전체적으로 교회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박해 및 박해 속에서의 교회의 보호와 구원에 대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Antichrist) 에 의한 박해는 넓게는 교회사 전체를 통한 박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특히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발생하는 박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7년 대환난기는 해석의 관점에 따라 문자 그대로의 7년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기로 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특정한 짧은 시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따라서 장별로 내용을 살펴보자면, 먼저 12장에서는 교회 및 성도들에 대한 사단의 박해 및 그러한 박해 속에서의 교회 및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2:1-6과 12:13-17의 문단이 여자 및 여자가 낳은 자녀에 대한 붉은 용의 대적과 분노를 차례로 보여준다면, 그 중간인 12:7-12은 붉은 용이 여자와 여자의 자녀에 대해 대적하는 원인 및 배경으로서 천상 전투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붉은 용인 사단은 천상에서 천사장 미가엘 (MichaeD 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나게 되자,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해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어 13장은 두 짐승(two beasts) 의 등장을 통해, 교회 및 성도들에 대한 사단의 박해를 좀더 극적이고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앞서 12장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여자가 사단인 용의 박해를 피해 광야에서 보호받는 기간이 일천이백육십 일(12:5) 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14) 7년 대환난기의 전(前) 삼년 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여기서 짐승이 성도들을 박해하는 마혼두 달은(13:5) 7년 대환난기의 후(後) 삼년 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짐승 중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은 용의 모습과 홉사하여 열 뿔과 일곱 머리를 하고 있으며, 한때 머리에 치명상을 입어 거의 죽게 되었다가 다시 회복된 자입니다. 이 첫째 짐승은 용에게서 권세를 위임받아 극심한 훼방을 일삼으며 온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이때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이 짐승을 경배하게 됩니다 (7,8절). 여기서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이 세상의 권력을 하나로 모아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일어날 어떤 한 특정한 적그리스도(살후 2:3,4) 또는 그 세력을 가리킵니다.
두 짐승 중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와 이적을 행하되, 그러한 권세와 이적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 숭배를 조장합니다. 곧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되었다가 회복된 첫째 짐승을 위해,우상을 만들며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이게 합니다. 그리고 이 둘째 짐승은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 ‘666’ 을 받게 하며, 그것을 받지 않은 자들을 매매를 못하게 하여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경제 활동조차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은 종말의 때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교회를 혼란케 하는 기독교의 이단 세력이나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한편 이상의 붉은 용, 첫째 짐승, 둘째 짐승의 역할을 살펴보면, 이들이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을 모방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즉 붉은 용은 성부를 모방하고, 치명상을 입었다가 회복한 첫째 짐승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성자를 모방하며, 둘째 짐승은 성령을 모방합니다. 이처럼 사단이 7년 대환난기에 삼위 일체 하나님을 흉내내며, 자기 화신과도 같은 존재들을 등장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을 미혹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사단의 활동이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 극에 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14장은 12.13장과 좀 다른 차원에서의 장면이 제시되는데,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믿음의 격려 차원에서 제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14:1-5 에서는 시온산의 십사만사천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이 ‘새 노래’로 찬양하는 장면은 곧 환난의 때에 믿음을 지킨 성도들의 결국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 14:6-13은 바벨론의 멸망 및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숭배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가 나옵니다. 바멜론CBabylon) 이란 거대한 세속 도시로서 죄악된 세상 자체, 혹은 죄악된 문명의 총체를 가리키는데, 이러한 바벨론이 멸망하고 짐승에게 굴복하여 우상 숭배한 자들에 대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경고는, 그 자체로 성도들의 인내에 대한 강력한 권고입니다 (12절). 이어14:14-20에서는 두 추수 (two Harvests) 의 환상이 제시되는데, 여기서 곡식이 상징하는 바 성도들을 향한 구원의 추수 뿐 아니라, 포도가 상징하는 바 진노의 대상자들에 대해서도 심판의 추수가 이루어집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근접할수록 사단의 최후 발악적 활동이 극에 달할 것임과 그에 따라 교회가 얼마나 큰 환난과 핍박에 직연하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세의 대환난에 대한 계시록 예언의 목적은 결코 종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혹은 막연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말세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하며, 특히 환난을 피할 수 없는 성도들에게 인내로써 그 환난을 통과하도록 격려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미혹하고 핍박하는 사단의 활동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13:10).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사단의 세력에 굴복하거나 결탁한 자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심판이 예고되어 있다는 사실이 성도들에게 믿음의 인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14:12).
성도는 비록 핍박 속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할지라도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진정 복되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제아무리 극심한 것이라 할지라도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 이후 인내한 성도는 믿음의 행위를 보상받고 수고를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4:13).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어디로 가든지 어린 양의 인도를 따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14:4).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공동체에는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해산의 고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러면 여자가 낳은 아니는 누구입니까? 5절에 의하면, 아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는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절의 내용이 실제가 아니라 환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탄생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로마서 9:5와 관련 된 말입니다. 거기에 보면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저희’ 란 구약 선민 이스라엘 곧 구약 교회를 가리킵니다. 즉 이는 그리스도가 구약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본절의 의미 역시 그러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게 되어 부르짖은 사실은 구약 교회가 메시야를 대망하며 고통 중에 부르짖은 것을 의미합니다. 실로 구약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죄로 인한 고통으로 신음하며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기만을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외침은 그러한 구약 교회의 부르짖음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과 새 시대를 바라보며 부르짖는 것은 비단 구약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신약 교회 역시 고통 가운데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보며 부르짖는 것은, 구약 교회와 매한가지입니다. 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의 교회들은 세상의 박해로 인한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로 인한 새 시대를 바라보며 부르짖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참된 성도들은 세상이 주는 각종 고난으로 인하여 고통 중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시기를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자가 새 생명을 해산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반드시 겪어야 하듯이,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의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산하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주님은 임신한 여인의 고통과 같이 구로하는 공동체를 통하여 오셨고 또 오실 것입니다. 해산하는 고통이 먼저 있어야만 새 시대는 도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를 위한 고통이야말로 오늘의 교회의 몫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 몫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새 시대를 위한 이 진통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아픔이 여러분의 삶 속에 배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 수 없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세상 풍조에 휩쓸려 사는 것은 음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라면 마땅히 믿음을 지키는 데서 오는 해산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속에서 애써 부르짖는 간구가 우리의 입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진정,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