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사단이 나고 말았다. “사이비님이 누구죠?” 표정 없는 청년 3명이 숙소로 갑자기 쳐들어와서 누군가에게 물었 다. 술에 취해 개잠이 들었다가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나 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멀뚱거리다가 방안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이요.” 긴 하품을 입에 걸치고 오천냥이 방 한가운데서 큰 대자로 퍼질러 자고 있는 사이비를 지목했다. “아저씨! 일어나 보세요!” 덩치 좋은 청년 한명이 사이비를 흔들어 깨웠다. “뭐야!...누구야...당신... 누구야...?” “잠시 면담 좀 하지요. 운동복 입고 나오세요. 그리고 비바리님은 어디 계시죠?” “비바리?... 없네...어디 갔지?...” 비바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설마...’ 나는 덜 깬 잠 탓에 막연한 느낌은 들었으나, 그 상황에 이해는 가 질 않았다. “무슨 일 있나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조사해 봐야겠지만, 사이비님께서 규정을 위반하신 것 같습니다...” 이브의 질문에, 옆에 있는 청년이 마지못해 답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파리대왕과 핫팬티는 술에 취해 멍석잠을 자느라 정신이 없었고, 비바리는 노루잠인 줄은 모르겠으나, 구석에서 쪼그린 상태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머지 깨어있는 사람들은 지난밤의 사건을 분석하느라 두어 명씩 모여서 웅성거렸다. “그 얘기 알아요?” “무슨 일이죠?...엊저녁 일이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어제 사이비님이 술김에 비바리님을 강간했나 봐요. 우리는 안에 서 술 마시느라 몰랐지만 밖에서는 굉장했나 봐요.” “예에...강간을요? 그래서 어떻게 됐죠?” 이브가 놀라서 묻는 내 얼굴에 다가와 귓속말처럼 소식을 전했다. “새벽까지 울다 지쳐 잠이든 비바리님을 달래면서 중간 중간에 들 은 이야기에요. 우리는 방 안에서 술 마시느라 몰랐지만, 사이비님 은 술좌석 끝에 밖으로 나갔나 봐요. 그리고 그는 비바리님을 찾았 고요. 비바리 이야기를 빌리면, 자기는 바닷소리 들으며 밤하늘별 을 보고 있었는데, 그가 비척거리면서 걸어오더래요. 술 취한 사람 상대하기 귀찮겠다 싶어서 자리를 뜰 생각을 가졌지만, 그 자리를 피하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엉거주춤 그냥 머물러 있었데요. 처음 에는 혀가 꼬부라져서 일반적인 몇 마디를 물어보기에 귀찮지만 대 꾸를 해주었는데, 갑자기 미친개처럼 달려들더래요. 추리닝을 벗기 고 힘으로 찍어 눌렀대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막무가내로 그를 밀치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고, 그의 살덩어리가 자신을 파고 드는 느낌이 들어, 안되겠다 싶어서 도와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는군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당하고 말았다내 요.” “소리쳤는데 왜 우리는 아무도 못 들었죠?” 내가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글쎄요.... 평소 비바리의 작은 목소리도 그랬겠지만, 파도소리 에 묻혀버린 것 같아요. 우리도 날씨가 쌀쌀하니까 문을 꼭꼭 닫은 채로 술자리를 벌였으니... 어쩌면 못 듣는 것이 당연했겠죠.” “나쁜 자식이구만! 그 새끼 어디 있어요?” “...” 내가 흥분해서 소리를 크게 지르자, 이브는 내게 할 말을 잃은 채 멀뚱거리며 쳐다보았고, 나머지 모두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삐하고 무전기 신호음이 울렸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미루고 있었으므로 내가 달려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본붑니다. 무전 받으신 분 누구시죠?” “나, 아담이요. 말씀하세요!” “예, 아담님! 거기 계시는 분들께 말씀 좀 전해주십쇼. 어제 일은 참으로 유감이었다고 말씀하시고요. 사이비님은 계약 규정을 위반 해서 귀가조치 시켰습니다.” “...그러면, 비바리님은 어찌되는 겁니까?” “예, 우리가 조사해본 결과, 그 분은 피해만 입으셨습니다. 처음 에는 그 분도 함께 귀가시키려 했는데, 일방적으로 당하셨고 남으 시겠다는 의사가 있으셔서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당신들, 대체 우리를 여기에 가둬놓고 뭐하자는 겁니까?” “...그럼 끊겠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그에게 분풀이하듯 따져 물었다. 한편으론 내가 이 말을 물어볼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에서는 그렇 게 뿜어져 나왔다. 2007년 11월 28일 (날씨: 하루 종일, 흐림)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새벽이나 밤에는 사람들 몰래 안개비가 야금야금 겨울을 옮기며 자 주 내렸다. 붉음과 노란 색만으로 농도를 달리하며 현란하게 수놓 던 단풍잎들도 물기를 잃으며 점차 퇴색되었고, 가벼운 자신의 무 게도 못 이기는 잎들은 부초처럼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게다가 마 치 파장 분위기의 연회장과 같은, 만추의 향연장에 마침표를 찍을 것처럼 세찬 찬바람마저 달려와 심술을 부리곤 했다. 하긴 서울이었다면, 김장 준비하느라 법석이었을 거다. 여기에 들어와서 쓴 일기장이 제법 두툼해졌다. 세어보니 오늘이 서른여섯 번째다.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그 과정이 막연히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크고 작은 물줄기에 휘둘리어 정 신없이 내몰리는 삶에, 옅은 느낌만의 감각으로 살았기에 그 변화 의 흐름도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보였다. 인간 개개인의 속성이 보였고, 환경이 변하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어쩌면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며 쉽게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도 사람들을 윤리와 법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기 위해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만든 말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개개인의 욕구와 욕망은 가득 펼쳐져 있는 인생 이정표에 가냘픈 후각의 나침반과 힘에 의해, 한 축만 보고 살아가는 점들로 나타난 다고 생각되었다. 비바리 역시 굶어 죽을 것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처럼 누워있더 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서 중년을 지내오기까지 겪어온 비릿한 상처가 느껴졌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무가 나이 테와 옹이를 안고 살듯이 또 하나가 더해진 상처를 지니며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상처의 냄새가 그동안 나의 상식과 는 달리 비릿하게 느껴져 왔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감한 후각을 자극하며 알 수 없는 운명의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두 잠든 이 시각에, 나와 함께 이 공간을 지키는 깊은 어 둠은 내 운명을 몰래 맛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첫댓글 그래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속성은 다~ 같은 진데... 어떠한 생각을 갖고 행동을 하든지 스스로 자신들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현재 처한 상황의 규칙속에서 자제하며, 절제하며 지켜나갈 수 있다는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윗글과 같이 무인도에 있진 않지만...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철저한 규칙속에서 하루하루 자신과의 싸움으로 물음표(?)가 되어 있겠지요...
예, 맞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그저 그렇게 모두 엉겨져서 사는 것 같지만, 일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섬 속에서 분리되어진 것과 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제가 쓰는 글은 그것을 떼어내 상징화하는 과정이고요. ^^*
인간에 내심은 다비슷하나 어떤걸 누루고 어떤걸 표출하나에 차이라 봅니다 어머니 제사 잘 모셨는지요
예, 여름님 염려 덕에 잘 지냈습니다. ㅎㅎ 어머니께 여름님 안부도 전했습니당! 그렇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여러 이정표중에 일부분에 모이는 사람들 이야기지요. ^^*
감사해요 우리가족 건강좀 많이 빌어주세요 구정에도 부탁 드릴께요
드뎌... 퇴출도 생기고...점입가경...
ㅎㅎ 글이 절정으로 가기 위한 수순입니다. 빠짐없이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간여행님 글을 쓰는 방향이나 모든 것은 작가의 마음 입니다. 그런데 하나만 조언을 드리리다. 아마 블로그나 다른까페나 글을 일찍히 쓰시고 옮겨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이렇게 나열하게 되면 너무 방대하게 보이기에 읽기 좋도록 5연이나 6연이나 줄을 바꾸시면 아마도 독자가 읽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독자가 이해가 쉽고 글을 분석하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조나 시처럼 말입니다. 건필 하옵소서 ㅎㅎㅎ
ㅎ 그렇군요. 저는 다른 곳은 일체 모릅니다. 단순하기에 글도 이야기샘터와 제 플래닛 밖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이 옆으로 많이 늘어져 있으면 보기가 더 어려울 거 같아 소설책의 폭만큼 글을 조정해서 올렸습니다. 서부사나이님의 조언도 있고하니, 다음에는 그렇게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새로운 운명의 시작...
ㅎㅎㅎ 이미 예고된 운명인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의 암시가 그렇게 유도하네요. ^^*
드디어 한사람에 낙오자가 발생하였군요 따라서 피해자도 생겼구요 그상태에서 100% 사고가 없다면 세상풍파란 말도 없었겠지요 세상은 한마디로 요지경속 맞습니다 ㅎㅎㅎ
ㅎㅎㅎ그럼요. 세상 사는 어느곳이나 이런 경우는 허다할 거라고 생각되어, 끼어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또 다른 사건의 전개가 시작 되는군요. 흥미진진(?) 이럴 때 쓰는 말 맞죠? 즐거운 시간 주시는 시간여행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내일 다시 뵐 수 있죠?
ㅎㅎㅎ나천사님, 저도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꾸벅! 그럼요. 바로 위에 글 올려놓았습니다. ㅎ 오늘은 좀 야시시해요. 더 적나라게 쓰면 카페에서 퇴출될 거 같아서...^^*
뒷 장을 넘기려다... 허허한 마음에 몇자 꼬리글만 남기오이다..............
ㅎ 그래도 반가운 꼬리글이죠. 내일이 마지막 회이니, 내일까지 또 봬요.^^*
......비바리 하소연은.....물결속에 ..꺼져가네.......
가사 좋고, 박자도 좋고. ^^*
전혀 예기치 못했는데...! 시간여행님은...늘....고전적인 흐름을 묘하게 깨트리는 관점이 참 새롭습니다! ㅎㅎ 꼭 다시 되돌아와서 찾게하는 그 궁금증의 꼬리...........................
ㅎㅎㅎ 감사합니다. 글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말씀이신데, 염두에 두고 쓰는 편입니다. 항상 부족한 제 글에 따스한 격려 말씀 감사드립니다. ^^*
늘 수고 많으시고요 반갑습니다^^*
와우,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전해들은 근황에 감기가 심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가벼운 운동과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어 빨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