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노는 놀이터
이월 둘째 일요일이다. 입춘날 한파가 닥친 이후 추위가 맹위를 떨쳐 연일 도서관으로 나가 시간을 유용하게 보낸다. 영하권 추위도 추위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강둑이나 들녘으로 산책을 나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난방이 잘 된 공공도서관만큼 놀기 좋은 놀이터는 없을 상 싶다. 휴일이라도 지난 화요일 찾은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을 행선지로 정해 아침 식후 일찍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102번 버스로 명곡교차로를 지날 때 불모산동을 출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기다렸다. 창이대로에는 추위와 휴일이라 그런지 대중교통편 말고는 오가는 차량이 드물었다. 기점 배차 시간을 지켜 다가온 북면행 버스를 타고 도계동과 소답동을 거쳤다. 천주암 아래를 지날 때 멀리 용제봉 방향에서 솟은 아침 해로 구룡산 기슭으로도 햇살이 비치었다.
굴현고개를 넘은 버스는 감계 신도시를 둘러 동전 일반산업단지에서 무동으로 들었다. 그곳도 감계 만한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당국에서는 입주민들이 문화생활을 누리도록 지은 최윤덕도서관을 찾았다. 조선 초기 북진 개척과 왜구를 물리친 최윤덕이 무동과 이웃인 내곡리에서 태어나 시민 공모를 거쳐 붙여진 공공도서관이다. 최윤덕은 사후 무동에서 멀지 않은 사리실에 잠들었다.
현관에서 2층 열람실로 가니 아직 업무 시작 전이라 사서가 출근하도록 10여 분 기다렸다. 정한 시각에 나타난 사서와 함께 문이 열려 1착으로 입실해 열람석에 배낭을 벗어두고 서가로 다가가 옛 그림과 사찰 기행에 이어 ‘조용헌의 내공’을 뽑았다. 옛 그림과 사찰 기행에 관한 내용도 그렇지만 조용헌의 책도 웬만큼 읽었는데 작년에 생각정원에서 펴낸 신간이라 그의 책을 펼쳤다.
사주 명리 연구와 함께 강호동양학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가는 저자다. 독서만권(讀書萬卷)에서는 내적 자양분을 취하고, 행만리로(行萬里路)로 판 발품으로 현장성을 살린 글감을 찾아내는 칼럼니스트다. 저자가 신문에 기고하는 글과 엮어낸 서책에서 내가 답사한 지역 역사나 인물은 일부나마 범위와 겹치기도 했다. 나는 나라 밖으로 나갈 기회가 적어 그쪽은 견문이 없다.
작자는 명사 반열에 올라 전국 각지를 순례해도 무전취식이 가능할 만큼 융숭한 환대를 받음은 부러움 살만하다. 절집을 찾으면 고승의 행적에 해박해 그곳 주지와 차담을 나눔에 지식과 언변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대중 연예인이나 기업 회장과 정치권 인사와도 교류했다. 특히 어느 고을에는 유력 성씨 집안이 어떻게 되고 선대 조상 보학에도 훤해 종가 종손으로부터 환대받았다.
영남에서는 안동 일대는 퇴계학이 주류이고 지리산 동쪽은 남명학이 맥을 잇는다. 산청 신등 이택당과 도양서원에서 70년대까지 후학을 가르친 중재 김황 선생 이후 우뚝한 한학자가 실재 허권수 선생이다. 그가 태어난 함안엔 고서와 한자박물관이 있고 후진을 가르친 진주에 아호를 딴 동양학연구소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실재 허 선생과 관련된 일화가 두 가지나 소개되었다.
오줌이 마려워도 촌음을 아껴 참아가며 책장을 넘기다 점심때가 되어 휴게실로 내려가 술빵 조각과 커피로 한 끼 때우고 다시 열람석에 눌러앉아 꽤 두터운 책을 완독했다. 잠시 역사책이 꽂힌 서가로 다가가 삼국유사를 뽑아와 앞부분 기이편 헌강왕 시대 처용과 연관된 구절을 찾아 읽어두었다. 내일 그 설화의 현장을 찾아갈까 싶어 내용을 알고는 있지만 한 번 더 확인해 두었다.
날이 저물기 전 도서관을 나오자 바람이 불지 않아 추운 줄 몰랐다. 원이대로에서 반송시장을 지나오니 대보름을 앞둔 때였다. “입춘에 닥친 한파 이레나 매섭더니 / 봄 오는 길목에서 제자리 찾으려나 / 열이틀 낮달 걸리자 포근해진 오후다 // 소시민 애환 서린 반송동 저잣거리 / 오곡에 부름까지 봉지에 꼭꼭 채워 / 노점은 대보름 앞둬 세시 풍속 살린다” ‘대보름 저자’ 전문이다. 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