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 7월 4일 금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포르투갈의 성녀 엘리사벳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사라를 안장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종을 보내 레베카를 데려오게 하여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맞아들이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있던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며,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3,1-4.19; 24,1-8.62-67
1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이다.
2 사라는 가나안 땅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울었다.
3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4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19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마므레,
곧 헤브론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안장하였다.
24,1 아브라함은 이제 늙고 나이가 무척 많았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아보는, 집안의 가장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네 손을 내 샅에 넣어라.
3 나는 네가 하늘의 하느님이시며 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가나안족의 딸들 가운데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지 않고, 4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사악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여라.”
5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그 여자가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드님을 나리께서 떠나오신 그 땅으로 데려가야 합니까?”
6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7 하늘의 하느님이신 주님, 곧 나를 아버지의 집과 내 본고장에서 데려오시고,
‘내가 네 후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맹세하신 그분께서
당신 천사를 네 앞에 보내시어,
네가 그곳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올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8 그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맹세에서 풀리게 된다.
다만 내 아들만은 그곳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세월이 흘러
62 이사악은 브에르 라하이 로이를 떠나, 네겝 땅에 살고 있었다.
63 저녁 무렵 이사악이 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눈을 들어 보니,
낙타 떼가 오고 있었다.
64 레베카도 눈을 들어 이사악을 보고서는 얼른 낙타에서 내려, 65 그 종에게 물었다.
“들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오는 저 남자는 누구입니까?”
그 종이 “그분은 나의 주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레베카는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66 그 종은 이사악에게 자기가 한 모든 일을 이야기하였다.
67 이사악은 레베카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3). 구약 성경에서 전하는 희생 제사는 제물을 봉헌하는 이가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으로 시작하여 사제가 그 짐승을 잡아 피 뿌리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이 예식은 죄 때문에 단절된 하느님과의 생명의 친교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사의 성격에 따라 희생 제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불사르는데, 전부를 불사르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흠숭을 뜻합니다. 일부를 불사르는 것은,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며 친교를 회복하고, 불사르지 않는 부분을 사제와 봉헌자들이 나누어 먹으며 그들 사이의 친교를 다지는 것을 뜻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희생 제사의 목적은 이러한 친교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친교와 어긋나는 분리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희생 제사의 근본 목적인 친교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분의 활동 전체를 요약한다면 자비와 사랑, 그리고 이를 통한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친교의 가장 큰 걸림돌인 죄를 없애시고, 다시 사람들을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살도록 회복하시고자 당신 목숨까지 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누구도 제외하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냉대받던 세리와 죄인들과도 식사의 친교를 기꺼이 나누셨고, 당신의 적대자처럼 행동하는 바리사이들에게도 “……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라고 그들이 자주 쓰는 말로, 그들의 처지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자주 배제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김태훈 리푸죠 신부)
성당은 ‘자비’라는 근육을 키우는 헬스장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저는 성당 옆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물론 언제나 부족하기는 하지만, 일단 어머니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렸다고 믿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저를 위해 성당을 내려다보며 매일 기도하고 혹시 무슨 일이나 없을까, 매일 걱정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좋아할 줄 아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마련해 놓은 새집에서 운동도 하셔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어 미사도 나오고 신자들과도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제가 집을 마련하여 모신 이유를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나 제물은 그분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웃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그렇습니다. 이 성당이라는 영적 헬스장에서 우리가 진짜 키워야 할 근육은 ‘자비’라는 근육입니다. 우리의 기도, 미사, 희생은 모두 그 ‘자비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 기구일 뿐입니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신애는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오랜 기도 끝에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살인범은 너무나 해맑은 얼굴로 말합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용서받았습니다.” 그 순간 신애는 무너져 내립니다. 아직 그만큼 자비로울 수 있는 근육을 단련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2023년 5월, 인천의 한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서 전직 보디빌더인 3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차량 앞을 막은 차량의 여성 운전자 B씨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었습니다. A씨는 말다툼 중 B씨를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B씨에게 침을 뱉는 등 모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당시 A씨의 아내 역시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폭행으로 피해자 B씨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을 통해 '주차장 보디빌더 갑질 폭행'으로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A씨의 우람한 체격과 피해 여성의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이 대비되면서, "그 힘을 고작 연약한 여성을 때리는 데 썼나"라는 대중의 엄청난 분노를 샀습니다. A씨는 재판에 넘겨져 2024년 5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는 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수련은 전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거울만 보는 ‘영적 헬스 중독자’가 성당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주 우리 힘을 측정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헬스장이 아닌 밖에서입니다. 매일 헬스를 다니면서 정작 어머니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계셔도 “지금 운동 갈 시간이라서요”라며 지나치고, 친구들이 이사를 도와 달라고 해도 “오늘은 가슴 운동을 쉬면 안 되는 날이야”라며 거절한다면 헬스 중독자일 뿐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의 힘을 측정하는 장소는 항상 헬스장 밖이어야 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나 조르조 프라사티 복자들의 경우, 그들은 매일 새벽미사와 성체조배를 통해 아쿠티스는 성체기적을 전하기 위한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프라사티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거기서 얻은 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기도는 그저 영적 헬스 중독일 뿐입니다.
오늘은 성 주세페 모스카티(1880-1927)를 소개해드립니다.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이자 의과 대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진단 의학의 권위자였으며, 그의 과학적 연구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모스카티의 하루는 연구실이나 강의실이 아닌, 제대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모셨고, 기도로써 자신의 모든 의술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평신도 사제직’으로 여겼습니다. 환자를 진찰하기 전에는 항상 기도했으며, 동료 의사들에게 “고통받는 환자의 육신뿐 아니라, 그들의 신음하는 영혼도 기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매일의 기도와 성체 신심은, 고된 의사의 삶 속에서 자비의 힘을 길러내는 그만의 ‘영적 헬스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단련된 ‘자비의 근육’은 그의 진료실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진료실에는 “가진 사람은 내고, 없는 사람은 가져가시오”라고 쓰인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을 뿐 아니라, 처방전을 써준 뒤 몰래 주머니에 진료비와 약값을 넉넉히 넣어주곤 했습니다. 그의 흰 의사 가운은 기도로 단련되고, 이웃을 향한 자비로 얼룩진 가장 거룩한 제의(祭衣)였습니다.
일단 헬스장에 오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당에 오면 기도와 제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거울로만 바라본다면 영적 헬스 중독자입니다. 내가 어떤 힘이 생겼는지, 밖에 나가서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전재용 선장은 96명의 보트 피플이 그날 하루만 25척의 배로부터 외면당한 상태로 자신을 바라볼 때 그들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끌어올렸습니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신앙 안에서 근육을 단련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자비를 주님은 바라시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걷는 것이 참 좋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마음도 맑아집니다. 그런데 걷다 보면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온 뒤, 습기가 많은 곳을 걷다 보면 원치 않는 친구들, 곧 모기가 찾아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려고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친구 하자”고 다가옵니다. 물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의 가려움입니다. 버물리를 발라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그 불편함. 한번은 모기가 아닌 다른 벌레에게 물렸는데 물집도 생기고 며칠을 고생한 적도 있습니다. 그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존에서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주문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땐 잘 챙겨 썼는데, 달라스에 와서는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마(魔)가 많다는 뜻입니다. 산책이 좋지만, 벌레가 따라오듯, 인생에도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도 비슷합니다. 어떤 분은 모태 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성당과 함께 자라납니다. 저는 저 역시 모태 신앙입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양식장에서 자라는 물고기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신앙 환경에서 자란 셈입니다. 반면에 세례를 받지 않고 살아오다가 어느 시점에 신앙을 받아들이신 분들도 계십니다. 결혼을 통해, 친구를 통해, 혹은 삶의 고난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 분들입니다. 이분들에게는 신앙이 늘 새롭고, 그래서 오히려 더 간절합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자리를 잡아갑니다. 우리 본당에도 개신교에서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개신교의 좋은 전통을 품고, 천주교의 전례와 성사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신앙이 더 좋을까요? 모태 신앙일까요? 아니면 성인이 되어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신앙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내며 살아가느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불쾌해하며 말합니다. “당신네 스승은 왜 저런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이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병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외면당한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특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마치 벌레에게 물리면서 우리 몸에 면역력이 생기듯이, 신앙도 시련과 아픔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싶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마음도 종종 물리고 긁히고 가렵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현실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 성체 앞에 나와 무릎 꿇는 그 순간, 하느님은 우리 각자를 감싸안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이사악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사악은 어머니 사라가 세상을 떠난 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상실은 크고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레베카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비로소 위로받습니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받게 되었다.” 사랑은 상실을 메우는 가장 깊은 치유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비로소 치유 받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모기에게 물렸다고 걷는 걸 멈출 수는 없습니다. 삶이 가렵다고,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 여정, 그 길 위에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나의 곁>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마태 9,10)
나의 곁이
너르면 좋겠다
누구든지
깃들일 수 있도록
나의 곁이
따스하면 좋겠다
누구든지
머물 수 있도록
나의 곁이
부드러우면 좋겠다
누구든지
벗할 수 있도록
나의 곁이
낮으면 좋겠다
누구든지
오를 수 있도록
나의 곁이
고우면 좋겠다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도록
나의 곁이
환하면 좋겠다
누구든지
기뻐할 수 있도록
나의 곁이
새하야면 좋겠다
누구든지
어울릴 수 있도록
오늘의 성인
성녀 엘리사벳(Elizabeth)
신분 : 여왕, 3회원
활동지역 : 포르투갈(Portugal)
활동연도 : 1271-1336년
같은이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이사벨, 이사벨라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왕 페드로 3세(Pedro III)와 시칠리아(Sicilia)의 왕 만프레디(Manfredi)의 딸인 콘스탄스(Constance)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을 따라 같은 이름을 지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의 왕 디니스 1세(Dinis I)와 결혼하여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결혼 7년째 되던 해에 자녀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디니스 1세는 능력 있는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남편으로서는 칭찬받지 못할 사람이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불신앙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낳지 않은 서자들의 교육까지 담당하였으며, 끊임없이 기도와 경건한 삶을 추구하여 병원, 고아원, 매춘 여성들의 보호소, 양로원 등을 설립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냉대와 불신앙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였다. 그리고 1297년 이복형제들에게 관대한 아버지의 행동에 분개하던 아들 아폰소 4세(Afonso IV)와 남편 디니스 1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오해를 받아 한때 알랑케(Alenquer)로 추방되기도 했던 그녀는 1324년 남편 디니스 1세가 병을 얻자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었다. 극진한 그녀의 정성에 감동한 남편은 회심하였지만 이듬해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이 사망한 후 성녀 엘리사벳은 코임브라(Coimbra)의 집으로 은거하였는데, 그곳에는 자신이 세운 성녀 클라라(Clara)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가 있어서 인근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펴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녀는 수녀가 되겠다는 이상을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엄격한 보속생활과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1336년 7월 4일 에스트레모스(Estremoz)에서 사망하여 코임브라의 수도회 성당에 묻혔다. 성녀 엘리사벳은 1516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복녀로 선언됨으로써 코임브라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공경 예절이 허락되었으며,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1630년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축일이 7월 4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169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가 7월 8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날을 모두 축일로 인정하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념하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흔히 포르투갈의 이사벨라로 알려져 있다
.
성 하깨 (Haggai)
활동년도 : +6세기BC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지역 :
같은 이름 : 하가이, 하까이
기원전 538년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첫 번째 귀향한 유태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우선 ‘번제의 제단’을 세웠다(에즈 3,1-6).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지방민’(사마리아인과 아시리아의 식민지 주민)의 방해로 이 첫 번째 재건축의 시도는 좌절되었으니, 이 지방민들은 옛날 아시리아 왕들이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어온 이교도들의 후손으로, 야훼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우상숭배로 오염시킨 자들이다(에즈 3,7-13; 4,1-5 참조). 그래서 그 후 18년 동안 성전을 다시 짓는 공사는 중단된 채였다.
그러던 중 522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 왕이 죽고 다리우스 1세가 등극하게 되었는데, 귀향한 예루살렘의 유태인 공동체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간섭을 예고하는 징표로 보았다(하깨 2,21-22). 이러한 징표를 느끼던 유태인들 앞에 하깨와 즈가리야는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성 하깨는 6월의 신월제(新月祭)를 지내던 날, 정확히 말하면 기원전 520년 8월 27일에 설교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말까지, 그러니까 약 넉 달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하깨 1장 14절이 증언하듯 성공적이었고,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활동은 즈가리야에 의해 계속되었다(에즈 5,1-2). 히브리어 ‘하깨’(Haggai)라는 말은 ‘나의 축일’이란 뜻인데 이 이름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열쇠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언자가 예배와 성전에 큰 관심을 쏟고 성전 주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깨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예언자의 후계자로 보인다(1사무 10,9-10; 2열왕 4,38; 예레 35,4).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매우 가난하였다. 게다가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지방민들의 방해로 시달림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깨는 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설하며 귀향한 공동체가 겪는 가난의 원인은 바로 종교적 열성이 저하되고 성전을 짓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방민족들의 왕국이 뒤흔들리는 것은(2,7-22 참조)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 백성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라고 하였다. 예언자들의 전통적인 설교도식에 따라 하깨는 귀향한 유대 공동체가 평화를 선물로 받고(2,9) 이방민족들의 보화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며(2,7-9를 이사 60,5-13과 비교) 또한 즈루빠벨(2,20-23)이 다윗의 후예 메시아를 대변하고 있다고 예언하였다.
하깨의 활동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예배를 정화시키고 희망을 진작시켰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첫 성전보다 더 영화로운 제2 성전과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할 왕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를 마지막 성전이자 종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한다. 비록 하깨와 즈가리야의 설교로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제2 성전은 사라졌지만 하깨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성전인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 신앙의 요구를 하고 있다.
성 울다리코 (Uldaricus)
활동년도 : 890-973년
신분 : 주교
지역 :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같은 이름 : 우달리꼬, 우달리꾸스, 우달리코, 우달리쿠스, 울다리꼬, 울다리꾸스, 울다리쿠스, 울리크, 울릭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인 성 울다리쿠스(또는 울다리코)는 스위스의 성 갈루스(Gallus)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삼촌인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 복자 아달베로(Adalbero, 4월 28일)의 지도를 받았다. 성 울다리쿠스는 923년에 고향의 주교가 되었고, 아우크스부르크가 마자르인(Magyars)들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온 주민들과 더불어 도시의 재건을 지휘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나이가 많아지자 그는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의 시성은 993년에 교황 요한 15세(Joannes XV)가 거행했는데, 이것은 교황이 시성식을 거행한 첫 번째 기록이다. 그는 울릭(Ulric) 또는 우달리쿠스(Udalicus)로도 불린다
복자 베드로 (Peter)
활동년도: 1369-1387년
신분: 추기경
지역: 룩셈부르크(Luxemburg)
같은 이름 :베드루스,페드로,
페트루스,피터
베드로(Petrus)는 로렌(Lorraine)의 리니(Ligny)에서 룩셈부르크 백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4살 때에 양친을 잃었다. 매우 총명했던 그는 불과 10세의 나이로 파리(Paris)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노트르담(Notre-Dame)에서 성직자가 되었다. 1380년부터 1381년까지는 그의 큰 형에 대한 몸값으로 칼네스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베드로는 겸손과 덕행에 현저한 진보를 보였고 또 인생의 대전환기가 되었다. 그는 1384년에 메스(Metz)의 주교가 되었고, 또 2년 뒤에는 벨라브로(Velabro)의 산 조르조(San Giorgio)의 추기경이 되었다. 그의 높은 성덕을 대변하는 것은 다음의 말 한 마디이다. "세상을 경시하고 너 자신을 경시하라. 그때 자신의 경멸에서 기쁨을 찾아라. 그러나 다른 사람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는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 의해 시복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