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아이의 아버지 찾으러 사찰로 온 여인#풍경1대승불교 경전인『금강경』이나 『반야심경』에는2500년 전에붓다가 머물던사찰의 풍경은보이질 않습니다.대신마음과 이치와깨달음에 대한본질적 메시지가담겨 있지요.초기 불교 경전인『잡아함경』을 읽어 보면다릅니다.거기에는구체적인 풍경이곳곳에 담겨 있습니다.아하, 그때는 이랬구나!그런 생각이 드는풍경들 말입니다.그중에유독 기억에 남는 광경이하나 있습니다.어찌 보면가슴 아픈 광경이고,어찌 보면궁리할 거리를 던져주는장면이기도 합니다.붓다가인도 북부의 사위성에 있는기수급고독원에머물 때였습니다.한 여인이아이를 안고 찾아와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알고 보니,그 여인은스님들 중에서아이의 아버지를찾고 있었습니다.#풍경2당시그 절에는상가마지라는비구가 있었습니다.그는출가하기 전에이미 결혼을 했고,아이도 있는처지였습니다.그런데도아내와 아이를 뒤로하고머리를 깎고출가했습니다.아내는크나큰 배신감을느꼈겠지요.그 대목을 읽는요즘의 우리도황망할 정도니까요.아니,출가를 하려면결혼하기 전에 하든가,아이까지 낳았는데어떻게이기적인 출가를 했을까.이런 생각이절로 들지요.물론2500년 전고대 인도의 관습과 전통도있었겠지요.그래도아내가 느끼는배신감은그때나 지금이나크게 다르지 않아보입니다.그 여인은사찰 안에 있는남편의 방 앞으로갔습니다.거기서걷기 명상을 하고 있던남편을 만났습니다.아내가 따지듯이물었습니다.“이 아이는 어린 아기입니다. 당신이 버리고 출가를 했습니다. 누가 길러야 합니까?”비구 상가마지는아무런 말도하지 않았습니다.아내는똑같은 말을 던지며두 번, 세 번따졌습니다.상가마지는그래도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화가 난아내가 말했습니다. “두 번, 세 번이나 말해도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는군요. 나는 이제 아이를 두고 가겠습니다.”그 여인은정말로 아이를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아이 아버지의 반응이어땠을까요?그래도상가마지는아이를돌아보지 않았습니다.뒤를 돌아그걸 지켜보던 여인은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이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구나. 필시 얻기 어려운 현자의 도리를 얻었을 터이다. 훌륭하신 사문이여, 반드시 해탈을 얻으시오.”
그 말을 남긴 채여인은 아이를 안고서돌아갔습니다.#풍경3갑론을박여러 의견이 있을 법한일화입니다.화를 내며 따지는사람도 있을 터이고,눈을 감고생각에 잠기는사람도 있겠지요.여러분은어느 쪽이신가요.비구 상가마지는참 이기적이고못된 사람이구나.이렇게생각할 수도 있습니다.그런데알고 보면석가모니 붓다도똑같은 처지였습니다.붓다는왕위를 이을외아들이었는데부왕을 배신했고,아리따운 아내와태어난 지 1주일밖에 안 된갓난아들을 뒤로 한 채새벽에 궁에서 나와출가를 했습니다.비구 상가마지보다더하면 더했지,못할 게 없는처지였습니다.상가마지를 보면서붓다는동병상련을 느꼈을까요.당시그 풍경을 본붓다는이런 게송을 남겼습니다.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가는 것도 슬퍼하지 않는다. 세간에서 말하는 화합에서 해탈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니 나는 저 비구를 진정한 수행자라고 말하네.”#풍경4참,쉽지 않은일입니다.세속의 인연을뛰어넘는 일 말입니다.요즘은통신이 발달해출가자라고 해도휴대폰으로속가의 안부를어렵지 않게물을 수 있습니다.또 짬이 날 때는부모님을 찾아뵐 수도있습니다.예전에는 달랐습니다.교통이 불편하고통신도 없으니일단 출가하면자식 얼굴을 보기가무척 힘들었습니다.성철 스님도그랬습니다.뼈대 있는 유학자 집안에서태어난 성철은집안의 대를 이을장남이었습니다.그런데도유교 대신 불교를 택했고,머리를 깎고 출가해스님이 됐습니다.아버지의 배신감은무척 컸습니다.오죽하면이렇게 말했습니다.“이제 석가모니가 내 원수다”성철 스님도출가 전에결혼한몸이었습니다.아내와 딸을 뒤로 한 채머리를 깎고집을 떠났습니다.출가한 후에아들 있는 곳을수소문한 끝에 찾아온어머니에게돌을 던지며쫓아내기도 했습니다.어찌 보면참 모진 장면입니다.그런데도비구 상가라지와성철 스님은왜그 모짊을 감당했을까요.거기에는깊고 강력한목마름이 있지않았을까요.#풍경5비구 상가마지에게도,성철 스님에게도,붓다에게도다 마찬가지가아니었을까요.그들에게는존재의 이치를 모른 채살아가는세속의 삶은,이쪽으로 가든저쪽으로 가든어차피오보십보로 보이지않았을까요.모질게도,그들은돌아가지 않았습니다.대신직진을 택했습니다.그렇게자기 마음의 바닥을뚫고서존재의 이치를깨달았습니다.거기가끝이 아닙니다.깨달음을 성취한붓다는고향으로 돌아가자신의 가족에게법을 전했습니다.아들 라훌라도,아내 아소다라도붓다의 제자로 출가해결국아라한의 경지에 올랐습니다.이게붓다가 줄 수 있는,진정으로큰 선물이 아니었을까요.성철 스님의 아내도,외동딸인 수경(불필 스님)도훗날머리 깎고 출가해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영정 앞에 서 있는 딸 불필 스님. 불필 스님의 어머니도 출가해 수행자가 됐다. 중앙포토남편을 스승으로,아버지를 스승으로 삼고서말입니다.저는눈을 감고그 장면을 다시떠올려 봅니다.아이를 안고 선여인과걷기에 집중하는젊은 비구.그들 사이에 흐르는삶의 애환과그 애환을본질적으로 넘어서고자 하는구도심.참,애잔한 물음표와명징한 느낌표가동시에 흐르는풍경입니다.2500년 전에도말입니다.붓다의 한 마디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가는 것도 슬퍼하지 않는다.”붓다는제자들을 향해길을 가라고 했습니다.그건즐거움의 길도 아니고,괴로움의 길도 아니라고했습니다.그 사이에 있는중도(中道)의 길이라고했습니다.다시 말해,즐거움에도괴로움에도물들지 않는 길이라고했습니다.그 길에적멸의 고요가 있다고했습니다.[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출처: 프른 들판 원문보기 글쓴이: 청원 임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