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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평촌 「마벨리에」에서 12월 7일 19시30분부터~
★ 대ㆍ소행사의 성ㆍ패 관건은 첫 째가 그날 날씨여.
ㅡ 5일 6일 무척 춥더니 오늘7일은 멋져! 독하게 춥거나 덥거나 비나 쏟아져 봐. 어떤놈이 날 잡었냐?고. (4년 전에는 바로 이곳에서 5일에 했지)
★다음은 동원, 참여 여.
ㅡ군중집회건 애기 돌잔치건 시아버지 회갑날 손님없어봐?
시골서 노박래 군수영감까지 ㆍㆍㆍ건물 내 가장 넓은 홀을 가득 채움. 회장, 사무국장 홍보국장 비롯 임원들이 해마다 애를 많이 쓰심과 공사다망 다 제쳐놓고 모이는 동문들, 내가 빠지면? 내가 주인인데! 열정과 사랑덕분여.
★그리고 진행의 매끄러움과 깔끔함여. 진행자가 버벅대봐?
땀 난당개.
글러벌뉴스 권혁중 대표를 뫼시고 같더니 혀를 내둘러. 특히 여흥국장의 진행 맨트에ㆍㆍㆍ
날보고 "재갑이성은 5년은 더 배워야 여흥국장 따라갈껴"라는 겨.
그리고 중요한게 음향기기 성능이고 먹거리 볼거리가 최종평가를 하는겨.
이 첨단시대 그 멋진 장소에
음향기기 성능으로 잔소리들 할까봐 행사 장소 주인이 "음향기기는 모임단체 각자가 마련하라"는 뱃짱여.
올테면 오고 말라면 다른데 가서 하라는겨. 우리 음향기기는 시작 전 누가 며 패댕겨쳤다나? 신기옥 홍보국장한테 따져봐.
그곳 단점은 서울장수막걸리와 된장찌개가 없어 탈이지 뷔페 끝내주더군. 먹을 음식이 너무 화려하고 많아서 고르다가 밥만 먹었당개. 서울장수는 내가 집에서 배낭에 2병만 지참.
송년회 참석자 중 최고령자 65년 1월 농고 농과 졸업생을 17회랴?
무슨 소리냐구? 모르면 그냥냅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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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今의 世態를 坐視만 할 것인가?
이재갑(기산 안산너멀)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기해년
(己亥年)도 전광석화(電光石火) 처럼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향을 자랑하는 마음’과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합하여 가는 해를 성찰하고 새 해 소망을 다듬고자하는 자리에 건강하신 선배ㆍ후배 동기들과 자리를 함께하니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같은 자리에선 ‘선배존경 후배사랑, 모교자랑, 모두화합’의 오붓한 덕담만 나눔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터,
복잡한 世上事는 뒤로 미룸이 현명한 지혜임을 왜 모르리오. 그러나 작금 돌아가는 세태가 그렇게 녹록치만 않습니다. 특히 국민의 머슴선출 21대 총선이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도 정치권에선 국민알기를 고스톱 판에 비 열 끗 취급하는
이런 상황을 좌시(坐視)할 수 없다는 것은 몇몇 특정인의 분개만은 아닐 것입니다.
55 년 전인 65년1월 우리모교 졸업식장에서 후배가 들려준 송사에 대한 답사에서 “천방지축 (天方地軸)분간못하는저희들에게 나가라면 어디로나가란말입니까?”
울부짖은 뒤 교문을 나선지 55년이 지난 재갑이울분을 선배ㆍ후배님 들과 공유코자 하는 점을 혜량(惠諒)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사는 오늘을살아가는 거울’이라고들 합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를 잘 활용한 민족은 흥하였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패망과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 성쇠는 외세의 침략과 같은 외부조건 보다는 오히려 내부 갈등과 모순으로 인해 패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부 모순이란 주로 국론 분열, 위정자와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부정부패, 지도층의 책임의식 결여, 청소년의 방종, 지도자와 국민간의 불신과 괴리 등입니다. 우리 민족의 생명력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는 강인하다고 하지만 내부의 화합과 결속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강인함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시대 상황을 꿰뚫어 보는 밝은 눈을 갖기 위해, 그리고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험난하고 치욕적이었던 과거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592년의 임진왜란을 사전에 예견했던 율곡 이이 선생의 10만 양병론(養兵論)은 사대주의사상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 온, 통신사들조차 동인과 서인 간의 당파싸움에 휘말려, 머지않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의견은무시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 왜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성을 보호해야 할 임금과 사대부라는 조선의 지도층은 몽진이라는 곳으로
도망가기 급급했고, 죄 없는 백성들만 도륙(屠戮)을 당하고 일본 땅으로 끌려갔으며, 귀중한 국보의 방화와 약탈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전체가 황폐화된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치욕스런 역사를 잊어버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지 50년도 못되어 또다시
병자 호란을 겪었습니다.
당시는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사상으로 인한 정쟁으로 저항다운 저항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임금이 삼전도에 내려와 淸태종에게 소위3배구고 두례(三拜九叩頭禮)즉 언 땅에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이나 머리를 찧으며 대국에 항거한 죄를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이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이 땅의 귀여운 딸들이 붙들려가 오랑캐의 성 노리개가 되었으면 환향녀(還鄕女)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국가경제의 60-70%를 조공으로 바치느라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 했습니까?
이렇게 양란을 겪은 후에도 조선의 지도층들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외부의 적을 잊고 고질적인
당쟁에만 휘말려 있었습니다. 조선 말기에와서도 지도층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동학란 등 국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국가 안위와 직결된 부국강병에 힘쓰지 않고 외세의존, 사대주의 근성과 파벌싸움, 지도층의 분열 등으로 많은 내홍을 겪었습니다. 특히 외세 의존적 타성과 정권 다툼이 극도에 달했으며, 착취와 수탈이 자행되고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으로 36년간 나라를 잃고 타민족의 가혹한 지배를 받는 화를 자초하였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통일된 나라의 기틀을 잡기에 여념이 없어야 할 시기에도
"공산주의다, 민주주의다, 찬탁이다, 반탁이다, 친소다, 친미다"등 허구한 날을 정쟁과 정권 다툼으로 지새다가 결국에는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전란을 겪었습니다. 되풀이 된 민족 수난사를 조명해보면 어떤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쟁, 국론분열, 지도층의책임의식과솔선수범정신결여, 부국강병의소홀, 외세의존 등으로 50-60년을 주기로 국난을 당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 현상이 이 땅에 동족상잔의 포화가 멎은 지 70년이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잖습니까.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와 가치관의 혼란, 이전투구의 정쟁과 분열, 지도층의 책임의식과 솔선수범의 결여, 외세 의존 등은 치욕적인 역사의 공통적인 현상과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한지 불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동족인 북한 지도층은 인민을 굶어 죽이면서도 대남 도발야욕을
버리지 않고 우리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이 땅의 지도층들과 국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생존은 스스로 지키고자하는 강한의지와 힘이 있어야만 보장됩니다. 평소에는 미국을 잊고 있다가 안보에 문제만 있으면 한미 공조를 찾는데,
이러한 공조도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만 자주적이고 원만한 공조가 가능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지켜야지, 누구에게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데 도와 달라고 애원할 것입니까?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힘은 키우지 않고 북한의 협박에 우왕좌왕하거나,
북한의 만행에 강력대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전쟁광으로 매도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꼬리를 내리고 한마디의 비판도 없이 인도주의니 동족이니 하며 돈과 물자를 퍼주는 한심한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위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돈으로 평화를 사면 인질이 되고 자위를 의탁하면 속국이 되며, 남의 힘에 의해 지켜지는 국가와 국민은 민족의 정기를 가질 수 없고 국민정신이 빠진 국민의 국가는 패망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월남과 캄보디아의 패망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며칠 전 설거지하던 아내가 뉴스 들으며 내뱉은 독설을 선후배들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대로 전하면서 정치인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할 것을 감히 제의합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민생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당리당략 (黨利黨略)에 혈안이 된 저 국회의원 놈들 월급 없이 자원봉사 하라면 한 놈도 나서지 않을 놈들이여”라고 내뱉기에 부엌에 대고 “과연‘전국순악질여사
연맹’ 임원다운 발언여”라고 대꾸했음을 솔직히 밝힙니다.
한 국가의 지도층은 국민에게 그 사회의 공동의 이상과 목표, 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또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사회 활동들을 조정하고 조화시키며 갈등을 해소하는데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안일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물질적인 발전을 성취해 놓고 국제적 지위를 높여 놓았다고 하더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쇠락의 길에서 탈피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지도층들이 국가와 민족, 인권,
민주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뒤에서는 철저하게 지역, 당파,
혈연의 패거리 이익을 취하거나,
쥐새끼들처럼 자기의 출세나
영달을 위해 거짓말과 부정한 행위, 남을 해하는 행위 등으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국민의 정신적 사표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미증유의 변혁기인 庚子年 쥐띠 해에 치르는 총선에서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는 입후보자 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관과 의무를 다 할 것인가?”를 묻고 투표합시다. 나라와 사회의 발전보다 자신에게 불이익이라 생각하면 무조건 반대하면서 투서나 파괴행위로 자기의 상사나 동료를 음해하고 공권력을 짓밟는다면, 그 사회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관과 도덕성 및 질서는 무너지고,
종국에 가서는 공동체가 해체될 것 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부끄러운 속담을 과감히 배격해야 합니다. 가치관과 마음의 자세를 개혁하여 우리스스로의 힘으로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소망하며
동문여러분과 재학 중인 모교 아우님들 모두 새해 庚子年에도 변함없는 냉철한 사고와 건강하길 늘 기도하기로 우리 함께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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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면 안산너멀 46년출생해서.
국교19회 서중14회 농고14회
송림동이던가? 농고 부근에서 자취ㆍ나중엔 일제시대 지은 기숙사에서 나 혼자 방학기간에도 졸업식 날까지 냉방 자취함.
♥냉방에서 자취하며 아직 아침밥도 못해먹은 나한테 친구 몇 명이 졸업식날 일찍 나를 찾아와 빈속에 삼학쇠주를 들고와 한 대접 따라준다. 그걸 마시고 졸업식장에 들어가 학부형들 창가쪽으로 쭈우욱 장항경찰서장 비롯 내빈들과 교장선생님 비롯 선생님들이 서 계신데 술 취해서 일어서질 못하고 앉아서 눈감고 후배가 읽는 송사를 듣는데 교실 천장이 빙빙도는거라.
옆에 친구가 자꾸 꼬집으며 "야 임마 네 차례여" 간신히 나가서 두루마리로 준비된 답사를 읽다가 연습 때도 그 대목에서 영 기분 잡치는 내용, "사랑하는 아우들아!
선생님 속썩이지 말고 제발 말씀 잘 들어라" 선생님이 우리보고 나가란다. 선생님! 천방지축 분간못하는 저희들을 나가라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도저히 서있기 힘들어 바닥에 앉아 엉엉 울면서 두루마리 펼쳐가며 읽었던 선생님이 일으켜 세웠던기억은 나이 70중반인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엄니 아버지는 내가 연락 드리지 않아서 졸업날도 모르셨다)
나만 운게 아니란다. 부모님들은
물론 교장선생님 경찰서장까지 울었다는 사실을 뒤에 내 졸업장을 전해주러 우리동네로 날 찾아온 후배가 전해주면서 "교장선생님도 개학 날 운동장 조회에서 '교직생활 수십년 하면서 졸업식날 첨으로 울었다'고 하시더군요"(연구생이라 수업료 면제지만 학생회비는 내야는데 몇 푼 안되는 그 것마저 못내서 그날 졸업장을 받지 못한 가난뱅이가 지금까지) 훗날 동기생들 모임에서 이봉하 친구가 "재갑이 이 새끼 땜에 유리창 깨기는커녕 울면서 나왔어"
2019 수도권거주 동문송년회 평촌에서 22시 넘어 끝난난 후 "지금 끝나서 집에 간다"고 아내한테 카톡보고했더니 "동문 서답하구있어. 행운권 테레비젼 못탔냐구?" 하길래 카톡 다시 조회했더니 미처 보지 못한 내용인즉 "행운권 어떻게 됐어 TV는?" 못 탔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하는 응답에 서울장수 마신 게 확 깨버렸다. "TV 자체가 당첨 상품대상에서 없는 걸 어떻게 해?" 흐느적 대며 자정넘어 집에 도착, 밖에 서 있다가 집에 몇 시에 들어갔는지는 밝힐수 없지만 1병 추가 후 취침, 10시 기상 교회로 달렸음을 고백한다.
승현이는 노군수 참 좋아 하는가 봐
혁준이는 튀는습성이라 옷칼라도 다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