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 처용암으로
내가 젊은 날 보냈던 좁은 교류의 폭에서도 울진에는 각별한 친구가 있어 방학을 맞으면 몇 차례 들렀다. 80년대 초반 그곳 부구리는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중이었는데, 고향 초등 친구가 건축계열 대학을 마치고 현장에 근무해 독신자 숙소 여러 날 머물다 왔다. 그로 인해 포항에서 강릉을 잇는 7호 국도를 시외버스로 다녀 동해 검푸른 바다를 원 없이 봤다.
울산으로도 자주 다녔는데 교육대학을 같이 다닌 한 친구가 그곳에 근무해서였다. 신규 교사는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밀려났는데 친구는 남구라도 석유화학단지 인접한 공해 지역이었다. 친구네 학교 근처 처용암을 찾아갔던 기억이 아슴푸레한데 지금은 당시와 많이 달라졌음은 분명하지 싶다. 그새 울산은 경남에서 분리 광역시가 되었고 최근 동해남부선은 강릉까지 전철이 뚫렸다.
입춘에 닥친 추위가 맹위를 떨치다가 주춤한 이월 둘째 월요일이다. 동해선 전철로 포항을 지나 삼척까지 올라 미수 허목이 전서로 남긴 동해척주비와 죽서루에 올라 보고 싶지만 후일로 미루고 울산 개운포까지 가려 마음먹었다.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를 탔다. 생각보다 빈자리가 적어 보인 객차 두 량은 진례터널을 빠져 진영역과 한림정역을 거쳤다.
김해 생림에서 낙동강 강심으로 가로놓인 철교를 건너 삼랑진에 정차했다가 물길과 나란한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 원동에 잠시 멈추니 인근 순매원에서는 곧 매향이 번져날 때라 여겨졌다. 강 건너 김해 상동 여차리 용당나루 매화공원 매화꽃망울도 그려졌다. 물금에서 화명을 지난 구포에서 사상으로 진입해 부전역에 닿아 바로 연결된 동해선 전동열차는 지공거사 무임승차였다.
동래 도심에서 해운대 아파트 숲을 거쳐 송정에서 기장을 지났다. 세밑에 새해 일출 서기를 받으러 다녀가면서 거닌 좌천역 임랑해수욕장에서 검푸른 바다가 보였고 차창 밖 묘관음사였다. 월내에서 행정구역이 울주로 바뀐 서생으로 들어 망양역에서 내렸다. 같은 지명이 울진에도 있으나 바다를 바로 접하지 않음이 달랐는데 행인에 길을 물어 일단 화학공단 변전소까지 이동했다.
울산 북구 농소에서 도심을 가로질러 남구 해안 화학 공단과 울산 신항으로 다니는 버스로 갈아탔다. 한낮에 종점이 가까워져 승객이 아무도 없는 버스를 타니 SK계열 석유화학 공단이었다. 오래전 가지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볼 때 아득한 곳에 매연이 구름처럼 보였던 곳이다. 길도 처용로였고 버스 정류장도 처용암삼거리에서 내리니 화학공장 유증기가 하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40년 전 친구가 근무하던 학교에 들렀다가 찾아간 처용암이었다. 그때는 한적한 포구 갯가에 몇 채 민가와 초등학교도 있었는데 개발의 뒤안길 모두 이주하고 공장이 들어서서 숲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옴팍한 만으로 둘러싸인 용연 바다 가운데 처용 설화 현장 바위섬이 손에 잡힐 듯했다. 지난날 울산 친구와 세죽마을 횟집 주인 고깃배로 바위섬까지 건너가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1250년 전 신라 헌강왕이 신하와 울주 행차 귀로에 갑자기 짙은 운무가 끼어 앞을 가렸다. 용왕을 기쁘게 해주십사는 일관 말에 따라 제를 지냈더니 구름이 걷히고 용왕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곳이 처용암이다. 보내준 한 아들이 서라벌로 따라가 관직을 받아 아내를 맞아 살다, 어느 달 밝은 날 밤에 밖에서 놀다 돌아오니 신발이 한 짝 더 있어 춤을 춰 물리친 처용가다.
용연 바다 처용암이 바라보인 곳에 지은 망해사 터가 있고 구름이 걷힌 개운포는 전철 역이름이다. 마침 내가 찾은 그 시간 바다 건너 울주 처용리 온산공단 유류 탱크 불이 나 소방차와 헬기가 출동해 진화로 어수선했다. 갯가를 더 서성여보려다가 검은 연기를 피해 전동열차로 기장으로 가 대변 포구를 거닐다 바다에서 금방 건져낸 청정 물미역을 사 해운대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25.02.10
첫댓글
그래 그렇구나...
40년이 지난 이 시간
그 때의 처용암은 예전 그대로인데
그대와 나의 모습만 변했구나.
그대를 친구로 둔 것에
지금껏 살면서 선택한 여러 경우의 수에서
최고였음을 표하고 싶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