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외 1편)
장승리
방금 전에 죽은 그녀가 일어나 샤워를 한다
그녀에게 묻는다 좋냐고
아주 좋다고 대답하는
그녀의 몸을 핥는다
혓바닥의 4분의 3이 가렵다
나머지는 오리무중
바람이 분다
까치가 흔들린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바람이 흔들린다
바람을 타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앞뒤로 몸을 흔든다
아니 아니 바람을 타라고 그녀가 또다시 말한다
나는 좌우로 몸을 흔든다
아니 아니 아니 나뭇가지에서 떠나지 않고 까치가
한자리에서 계속 방향을 바꾼다
—《시인세계》2013년 여름호
직각의 바다
어떤 추락은 너머가 된다
기억을 염려하는 순간
미리 슬프다는 감각에 몸서리친다 나는
질 수 없는 놀이에는 흥미를 갖기 어려웠다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hi를 하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힘들었다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자동차가 빨간 신호등을 소외시킨다
짬뽕 국물을 핥고 있는 길고양이의 혓바닥과
측면에서 보이는 길고 아름다운 남자의 속눈썹 사이에서 나는
이다와 아니다가 아니다와 이다여도 무관한 문장
나는 널 몰라라는 말도 있는데
너는 날 몰라라는 말을 굳이 해야겠니
잊을 일이 없으니 만날 일도 없는 거라며
중력을 믿지 못해 뛰어내렸니
항상이라는 열린 문 앞에서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접히면 꺼질 거 같아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인 것은 악마가 절망에 빠져 있는 꼬락서니죠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주제 파악을 하고 있다면
악마는 악마인가
평화롭게 노를 저어 가고 있다
직각의 바다에서
왼쪽으로 넘어간 기역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나는
보고 있다
너는 오지 않고
사라진 너는 사라지지 않고
시간은 간다
너의 침묵이 밀고 간다 너의 부재가 밀고 간다
—《문학동네》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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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리 / 1974년 서울 출생. 2002년 〈중앙일보〉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습관성 겨울』『무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