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
흔히 말해서 염불하는 사람들의 운명(運命)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불교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위한 종교라는 것은 법회에서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사해탈을 위해서 불교를 믿는다고 하다가도,
난관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가가 항상 관심거리가 되곤 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활발한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막상 생사해탈보다는
현세이익을 강조하는 것에 귀가 솔깃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생사해탈을 위해서 염불하는 사람들은 현세이익(現世利益)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항상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모시고 있는데,
이 염불의 근본경전은 무량수경(無量壽經)입니다.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부처님라고 하시는 분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법장(法藏)이라고 하는 수행자였습니다.
수행자이면서 동시에 보살(菩薩)이었기 때문에
법장비구(法藏比丘)라고도 하고, 법장보살이라고도 합니다.
이분은 본래 그 나라의 임금님으로 계셨습니다.
이 어른이 임금으로 있을 때, 세자재왕(世自在王)이라는 부처님이 계셨습니다.
세자재왕의 법문을 듣고나서 임금자리도 필요없다고 생각하시고,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세자재왕 앞으로 출가하여 법장비구가 되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은 법장비구의 이름 정도는 익숙하게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이렇게 법장비구가 되어서 세자재왕부처님을 모시고 공부하다 보니,
더이상의 공부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세자재왕부처님께 원(願)을 세우기를,
"저도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부처되기를 원하는데,
그러기 위하여 마흔 여덟가지의 원을 세우겠습니다
" 하고 48가지나 되는 원을 세웠어요. 이렇게 세운 원이 성취되어서,
끝내 부처가 되신 분이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이십니다.
48가지의 원이 참 묘해요. 그 중에는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체 모든 중생을 위한 원 뿐입니다. 그런데 원이 진술되어지는 문장이 참 재미납니다.
언제나 48가지 원의 모든 처음과 끝은, "가사 내가 부처가 되더라도 이러이러한 일이 성취되어야지,
만약 그런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說我得佛....不取正覺]"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과 운명을 같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당신께서 부처가 되실 원을 다 세워서 부처가 이미 되셨는데,
그러나 만약에 원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48가지의 본원(本願)중에서 중심이 되는 열여덟번째의 원[註 : 王本願이라고도 불림]이 있는데,
그 내용이, "내가 가사 부처가 되었을 때, 내나라[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워서 다만 열번이라도 이름을 불렀는데,
그래도 극락세계에 와서 태어나지 못한다면,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는 원입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말은, 성불(成佛)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부처된다는 이야기이죠.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중생이 중생노릇을 하고 부처가 되지 않으면,
나도 부처노릇을 하지 않고 중생이 되겠다"는 이야기이며,
"중생이 부처가 되면 나도 같이 부처가 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모실 때, 그 마음가짐이 두가지일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는, "나는 중생입니다. 이 못난 중생을 좀 보살펴 주십시오
"하면서 부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할 때, 부처님은 중생세계로 떨어집니다.
"내가 지금 중생인데, 원을 성취못하겠으니까 답답합니다. 부처님,
당신만 좋은데 계시지 말고 나도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할 때,
부처님도 중생세계로 끌어내려지는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마음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도 부처다"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이렇게 불교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믿을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전혀 정반대(正反對)의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당신이 부처입니다"할 적에 나도 부처라는 이야기가 되고,
"내가 중생입니다"할 적에는 부처님 또한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십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앞에 와서 예배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또 찬탄하는 것은 내 밖에 있는 남을 찬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나의 진실생명이 본래부터 부처생명을 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저는 지금 생사세계(生死世界)에 와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기가 어떻게 사람이 살곳입니까? 저는 못살겠습니다"
하면서 아우성치는 것은 부처님까지도 끌어내리는 것이 됩니다.
48가지의 원에는 별 세세한 문제까지 다 나옵니다.
거기에는 우리 모든 중생들의 행복,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가지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힐 때,
부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급하고 계시다는 것이 일관되게 나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부처님은
"너한테 발생한 문제이니까, 네가 해결해!"하면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그 "문제해결의 길을 열어주십사"하고 원했는데도,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게 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원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미 원력을 성취하여 부처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나무아미타불"하고 불렀을 때,
"당신은 부처이십니다. 당신은 이런 원력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지금 해결되고 있습니다."하는 입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부딪히는 문제가 너무 커서, 제가 지금 파멸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성치고 싶을 때가 있지요? 세상사람 모두가 그렇습니다.
병만 앓아도 그렇습니다. 열이 40도만 넘으면 "아이구, 죽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생각할 것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부처입니다"라는 말 속에는
"나의 진실생명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라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때 모든 문제가
부처님의 능력을 생각하는 힘으로 해결됩니다.
따라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하더라도,
또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에 들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무한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자신 속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몇마디 말 듣는 것만 가지고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정진(精進)해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면서 자꾸 불러야 합니다.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내 성대에서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같지만,
한참을 부르면, -부를 때의 마음자세가 위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을 압니다.
나무아미타불 소리를 내가 듣습니다[聞].
이말은
부처님으로부터
"걱정말아라, 네 모든 문제는 내가 다 책임졌다.
너에게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다. 아무 걱정말아라"하는
절대안심을 나에게 주는 소리를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이렇게 와서 몇마디 듣는 것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과 더불어 경전(經典)을 읽어야 합니다.
물론 경전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경전은 하나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 염불행자(念佛行者)들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택하기로 합시다.
반야심경이란 "중생(衆生)세계는 본래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계신 경전이지요.
이것이 나무아미타불의 내용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중생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에, 온갖 부딪힘이 많고,
어둠이 많고, 대립이 있고, 장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을 읽으면, 중생세계가 본래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중생세계가 본래없다는 것을 거듭 말씀해 주시는 것이 반야심경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 무무명...
(無眼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乃至無意識界無無明...)"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없다, 없다!"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세속생활을 하려면 무언인가 많아야 하는데, 없다고 하는 반야심경 읽으면,
가난해 진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모르는 소리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없다는 것은 중생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중생노릇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세계가 없다는 것은 본래부터 부처생명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을 속으로 들으면서[聞], 아침 저녁으로 20독씩합니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을 숫자에 제한할 필요없이 자꾸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을 불렀기 때문에 부처님이 나를 돌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부처님의 무한능력이 부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품이 나를 안고계시구나.
나의 본래생명이 본래부터 나무아미타불이었었구나"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본래부터 무한능력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구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야 되겠구나"하는 것이 벌써 무한능력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모르는 사이에 드러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으면,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 때 부터 이세상 사람들이 미워지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미워지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대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한한 축복(祝福)속에 있음을 압니다.
염불 많이하고 독경 많이 한 사람들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이 웃는 얼굴인지, 찡그린 얼굴인지를 보면 알 수 있음니다.
찡그린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능력은 적은데,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크다고 생각하는 공포심(恐怖心)
때문에 찡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능력은 적은데,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회사로부터 자꾸 문제가 연속적으로 나에게 달려오니,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래서 찡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원수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파면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찡그리는 사람도 반야심경을 많이 읽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아, 본래부터 중생세계는 없는 것이구나.
나의 참생명이 본래 부처님생명이구나. 본래부터 나의 능력이 부처님 능력이구나.
그러므로 대립이 없었구나. 원수가 없었구나.
나한테 장벽도 없구나. 어두움도 역시 없구나"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남처럼 보였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다 나와 한 생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러니 모든 사람들에게 끝없는 기쁨을 주게 되고,
그 사람들의 기쁨이 바로 내 기쁨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얼굴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언제나 기쁨에 찬 소리,
따뜻한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염불한 사람에게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의 세계가 아닙니다. 논리로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부지런히 독경 염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부처님과 내가 같은 운명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 대한 고마움이 솟아납니다.
"뭘로 봐도 죄(罪)덩어리이고, 못난이인 저와 어떻게 부처님이 같은 운명을 가지십니까?
제가 만약 못난이 노릇을 하면 부처님도 못난이 노릇을 하신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그런데 마침 당신이 부처님이시니까, 저도 또한 못난이 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래서 부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고 그래서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부처님이 무한히 고맙기만 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종교는 현세이익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세이익을 무당집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소원을 가지고 가면 그 소원성취된다. 걱정말아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현세이익이라고 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설탕을 주는 것이 자비인가요? 안주는 것이 자비인가요?
설탕 달라고 아우성 치는 당뇨병 환자에게는, "당신은 설탕이 필요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설탕을 바라고 있는 마음을 없애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와 같은 운명을 살고 계시지만,
부처님이 계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지금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티끌과 같이 보잘것 없는 못난이 같은 소원,
그 소원이 원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염불하면 저절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큰 소원을 갖게 됩니다.
차원이 보다 높은 세계의 원(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이세상 그 자체가 무한한 부처님의 원력속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세이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듯이 "돈 나와라 뚝딱!"하는 식은 더욱 아닙니다.
때문에 염불은 주문(呪文)이 아닙니다. 혹, 어떤 분들은 염불이 주문인 것으로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염불은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회에 나와서 듣는 것만 법문이 아니라,
반야심경을 읽는 것도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또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도 법문듣는 것입니다.
"너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야.
너에게 있는 장벽은 모두 해결되는 것이야. 걱정하지 말아.
너 한테 원수가 나타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어.
모두가 네 마음의 그림자가 그렇게 나타났을 뿐이야.
전생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나타났다면 나타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도 너의 염불속에서 소멸될 수 있는 것이야"라는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듣는[聞] 가운데, 나 자신의 마음을 저절로 비추게 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자꾸 부르면,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의 현상태를 내가 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사수(聞思修)입니다.
문사수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법회에도 부지런히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독경 염불해야 합니다.
또한 평상시에도 언제든지 염불해야 합니다. 염불하는 가운데에서,
48원중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성불이 이미 결정나는 것입니다.
성불의 결정은 그 중간에 있는 조그만 모든 소원들은 이미 해결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염불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때,
그것은 나의 성대를 통해서 나오지만 그 속에서 부처님이 나를 불러주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업장이 소멸됩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만 불러도 80억겁의 업이 소멸된다"고 나왔는데,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본래부터 부처생명을 살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부처생명을 살고 있음이 드러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혹시 목숨이 다하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죽으면 극락세계에 가는 것이고,
하루 더 살면 염불을 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아집니다.
"돈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명예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그런데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해결되면 이 세상을 살면서 생기는 모든 공포는 저절로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사람들이 두렵다고 하니까,
나무아미타불이 우리세계에 나타나셔서 공포심을 없애주시겠다고 모습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십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포심을 없애주시는 분이지요. 이처럼 우리들은
관세음보살이 나타날 필요가 있을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깊은 법문을 들으면,
나무아미타불 자체속에 이미 모든 공포가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포심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건강도 저절로 좋아집니다.
몸에 암(癌)이 생겼다고 하지만, 그런 병이 생기는 원인을 보면 공포심 때문입니다.
공포심이 없으면 병도 좋아집니다. 몸의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공포심이 없어져서 부처님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진 못해도,
내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침착한 가운데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으로부터 끊임없는 능력을 공급받음과 동시에
부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에 있어서 공포심을 갖지 않고 편하게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달에도 말한 것과 같이,
우리 문사수법우회 법우들은 끊임없이 정진(精進)해야합니다.
정진하면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진이란 나무아미타불의 법문을 듣는 것이므로,
그 가운데에서 본래의 내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부처님이 나에게 끊임없이 능력을 주고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언어문자의 세계나 논리(論理)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염불을 함으로써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극락(極樂)은 어떠한 괴로움도 받지 않고, 다만 즐거움만을 받는 곳입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즐거움이라고 하는가를 봅시다.
사실은 괴로움이라고 하는 실체도 없고, 즐거움이라고 하는 실체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만이 있습니다.
느낄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떠한 현상이 벌어졌을 적에 그것을 괴로움으로 느끼느냐,
즐거움으로 느끼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염불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즐거움이라고만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기 한량 없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 세계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여 성불한다"
고 이야기합니다.
성불(成佛)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리 법우들의
성불방법은 부처님을 믿고 염불해서
성불하는 것입니다.
내 힘만으로 성불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성불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문제에 부딪힙니다.
문제가 자꾸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
왜 나에게만 문제가 생기는가?"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알고보면
그 문제라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것입니다.
문제가 없으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문제가 없으면 부처님께 머리를
돌리지 않습니다.
세상사람 모두와 원만하고 아무런 문제에 부딪힘이 없으면,
염불할 생각도 나지않고, 정진(精進)할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자극(刺戟)이 옵니다. 이러한 자극 때문에,
염불정진을 더하게 되고 그에 따라 내 차원이 자꾸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차원(次元)이 높아지는 것보다
더욱 고마운 것은 없습니다.
나에게 장애롭게 나타난 원수같은
사건이라든지 사람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나의 차원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한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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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군요...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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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법문에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법문으로 마음 챙겨봅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받아 모시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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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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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여 성불한다.....마음에 세깁니다.나무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ㅡ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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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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