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니~임...?’ 아쉬움이 가득 배어있는 막내딸의 달뜬 목소리가 환청을 울리며, 현관 문 밖까지 길게 따라 나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신선한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 몰려 들었다. 신선한 공기가 제법 유입되고서야 나는 머리가 띵했음을 알게 되었다. 찬 공기들이 피부에 달라붙어 열기를 지우고 오돌토돌한 소름을 만 들었다. 한기를 느낀 나는 그제야 알몸임을 알았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광란의 축제를 깨뜨리기가 조심스러워 운동복만 살짝 들고 나 왔기 때문이다. 웃옷부터 걸치고 외다리를 번갈아 바꾸며 바지를 꿰었다. 시린 달빛이 사람들의 행위와 사고와는 전혀 무관한, 평화로운 밤 풍경을 자아냈다. 작은 내리막 언덕에 다다르자, 먼발치에서 비바리가 바다와 이야기 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 “...” “춥지 않으세요?” “나를 덮치러 나왔나요?” “예...에...?” 그녀의 칼바람처럼 냉담한 반응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미안해요! 가지 마세요.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어 요. 사과할게요.” 무거운 침묵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되돌리자, 그녀에게서 날아 온 몇 마디 말이 내 발목을 잡아당겼다. “호호호!... 재미있게 구경하시던데... 벌써 나오셨어요?” “...” 비바리는 자지러지는 웃음은 뒤에,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기보다는 자조하듯이 독백 같은 말을 토해냈다. “왜, 그랬어요? ” “...글쎄요...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이브님이 아담님을 무척 좋아하던 눈치던데...뿌리치고...어느 모로 보나 그녀보다 많이 빠지는 내 주변을 서성거리시는지...” “그건...글쎄요...” 나는 ‘연민 때문에’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붙들어 매 고, 글쎄요 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대신했다. 그랬다. 이브가 나를 좋아했던 건 사실이었다. 마치 충실한 집사나 비서처럼, 때로는 터울 많은 누님이 알뜰히 보 살펴주듯이 식사나 주연, 놀이며 이야기까지 쫓아다니면서 알뜰살 뜰 챙겨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싫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비바리에게 더 많은 마음이 갔었다는 표현이 옳은 말일 것이다. 이브는 나에 대한 자신의 공력에 실망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고, 어 느 정도 배신의 느낌을 지닌 그녀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오천만원에 게 다리를 놓고 건너가 버렸다.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 마음도 씁쓸했다.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한들, 열 계집 싫어하는 남자가 있을까? 정이라는 건, 알게 모르게 부뚜막 소금 먹듯이 야금야금 커지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내가 내팽겨진 때는 마음이 어느 정도 상했다. 어 쩌면 내가 막내딸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것도 그런 이유가 많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론 이브가 그 자리에서 내게 직접적인 유혹을 했더라면, 뿌리칠 수 있다는 장담은 더욱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마음까지 도 그랬다. 마치, 어느 봄날에 뽀얀 먼지와 함께 뜬금없이 일어나 는 회오리바람과 같다고 생각된다. “왜 대답 안하시죠?” “아...예! 미안하지만...잊어먹었습니다.” 그녀의 곤란한 질문에서 잠시 벗어나, 이브와의 관계 정산에 몰입 하느라 그만 그녀의 질문을 날려버렸다. “이브님을 뿌리치시고, 왜 내게...” “아, 그랬죠. 글쎄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솔직히 저도 제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호호호! 제가 알아 맞춰 볼까요? 제게 연민이 들었다던가?...음, 아니면 저처럼 음울한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시는 건 아닐까요?” 비바리가 의외의 답을 제시했다. 단지, 이 몇 마디가 섬에서 함께 해온 지금까지 64일 동안 가장 많이 나눈 말이었음은 그렇다 치더 라도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하하하! 처음부터 워낙 민감하고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어서... 하지만 음울한 성격이라는 건 제외합니다. 처음부터 그냥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저를 거들떠보지 않는데, 이분은 왜 이러실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제가 냉담한 제스추어를 수시로 보냈는데도요.” “그게 어쩌면, 비바리님의 침묵 속에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느 낌이 들긴 했습니다.” “호호호! 그렇다면 제가 비밀이 많은 사람일 거라는 말씀이군요? ... 아마 그럴 거예요. 남들보다 많은 상처와 발설하기 힘든 앙금 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앗...?...” “호호호! 뭘 그리 놀라세요. 부끄럽게...” 비바리가 갑자기 내게 기대어오며, 주머니 속에 있는 내 손을 잡아 서 지그시 쥐었다. “우리는 서로 말은 안 했어도, 저는 그 긴 침묵 속에서 아담님의 깊은 정감과 신뢰를 듣곤 했지요. 연민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무 척 포근했어요. 게다가 방 안의 무리들과 달랐음에 너무 감사했어 요.” 비바리는 소곤거리듯 말을 이으며, 주머니 속의 내손을 꼭 쥐며 힘을 주었다. 그녀의 따듯한 손끝에서 말하지 못한 비밀이 내게 옮 겨짐을 느낄 수 있었다. “호호호! 저 때문에 아담님까지도 외톨이로 전락되고 말았네요?” “하하하! 그런가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저는 지금 이대로가 오히 려 편한데요. 비바리님은 안 그래요?” 오늘은 여느 날과 달리, 그녀가 내 손을 이끌어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비바리와 내가 마음을 나누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그녀와의 신뢰 가 많이 쌓였다. 스스럼없이 농담과 가벼운 포옹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그녀는 무척 밝아졌다. 섬 생활에서 특별히 변한 것은 없었다. 그동안 해가 바뀌었고, 1월도 제법 많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 바뀐 것이 있다면 따뜻한 섬에 눈이 두 차례 내려서, 잠시지만 눈꽃 축 제를 즐겼다는 정도이며 섬 생활 청산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는 것뿐이었다. “아담님, 우리와 저 사람들 중, 누가 더 나쁠까요?” “글쎄요...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들은 그들의 배우자를 배신해서 신랄한 육체의 교접과 정신을 조금 나누었겠고, 우리 역시 그런 조 건에서 정분과 뜨거운 피의 온도를 나누었으니 누가 더 나쁘다고 저울질 할 수는 없겠지요.” “일주일 뒤에, 섬에서 나가면 저들을 포함한 우리들을 어찌 될까 요?” “그건 참 답하기가 곤란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바람이 어느 곳에서 다가와 또 어떻게 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요? 그것은 바람이 기압골을 따라 이동하듯이, 우리도 사회나 가정 의 통념에 따라 움직이게 되겠지요. 가끔은 회호리 바람이 일듯이, 우리 역시 회호리 바람을 만들기도 하고 받기도 하겠지만요.” “그렇겠네요. 어머나! 저 섬들 좀 봐요. 어쩜 저렇게 예쁠까요?” “그러네요.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들이 참 예쁘군요. 하하하! 비 바리님, 저기 섬들 중에 우리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까요?” “호호호! 그럼, 없다면 우리 거기 가서 그냥 모든 것 다 잊어버리 고 살까요?” 섬이 외로워보였다. 외로움도 극에 달하면 아름다운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을 아름답다라고 칭하기 보다는 필연으로 갖고 살아야 할 고독에 대한 동거개념의 애련일 것이다. 중년을 맞으면서 하나 둘씩 인연은 떠나갔고, 그럴 때마다 공허한 마음들이 조금씩 몰래 들어와 가끔 고독감을 느끼게 하곤 했다. 나는 제각각 중년마다, 가슴 한 켠에 그들만의 외로운 섬을 어루만 지며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끝) @ 퀴즈 : 중년 남녀 8명 중에, 이글의 이벤트 주관자가 있습니다. 1.아담(나), 2.비바리, 3.이브, 4.파리대왕, 5.사이비, 6.핫팬티, 7.오천만원, 8.막내딸 이 중에서 누굴까요? ^^* 그동안 글에 비해서, 과분한 관심과 따듯한 답 글에 넘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 그들만의 외로운섬을 어루만지며 살것,,,," 공감 합니다.
그렇죠. 그것들이 형상화되지 않은 모습이기에, 수시로 부딪치며 다가오지만 무뎌지게 느껴지지요. 때로는 자기 변명하며 애써 태연해지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중년들에겐 외로운 섬이 하나씩 있는 것 같습니다. ^^*
비바리.. ㅎ
ㅎ 왜 비바리일까요? 그쪽으로 심증이 많이 가죠. ^^*
이제야..끝났군요...이제 편히 댓글 달 수 있겠네요...ㅎㅎ..땀난다..ㅋㅋ
ㅋㅋㅋ그동안 글에 대해서 '부끄' 많이 하셨군요. ^^*
.................오천만원.....
이미 그것을 닉네임으로 써먹은 작가의 의도라면 그것은 작가의 함정 입니다..
함정에 빠지고 시포여..ㅎ
ㅎㅎㅎ 저는 아직 함정을 만들만큼 가기까지에는, 그 거리가 한참 멉니다. ^^*
이글의 이벤트 주관자...? 이브 겠죠...ㅎㅎㅎ
ㅎㅎ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브의 입장이라면, 오천만원에게 향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상처가 많은사람에게 연민에 정을 더 느끼는게 어쩌면 진실이라 생각됩니다 ^-^*
그렇죠. 인지 상정입니다. 다만, 각박해진 현실들이 목하 인스탄트식의 것들만 선호하죠. ^^*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더 생각하며 읽었을텐데... 다시 처음부터 한번 더 읽고 그 짓궂은 주관자를 찾아내!! 씨~ ㅎㅎㅎㅎ그런데 순간적으로는 비바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
씨~ 건너 뛰면서 읽으셨군요. 야시시만 읽으셨죠? ㅋ 죄송, 농담입니다. ^^*
어떻게 알았어요??? 글 쓰시는것만 귀신인줄 알았더니... 사람보는것도 귀신이시네... 이궁??? 조심해야~~~~~지??? ㅎㅎㅎ
애 쓰셨쑤
마죠여......정말 애 많이 셨습니당....
그러게요. 처음에는 재미로 쓰다가, 갈수록 의무감이 생기니 그렇게 되더군요. 게다가 1월 들어서 단편소설을 연이어 3편을 쓰다보니 머리에 쥐가납니다. ^^*
영화출품 되겠는데요?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ㅎ 그렇군요.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네요. 아미주님께서 영화하신다면, 다시 잘 써서 드리겠습니다. ^^*
챗팅에 이어 중년의 섬 잘읽었읍니다. 우리주변에 흔히 일어날수도있는 일들을 조마조마하며 잘읽었어요.아마도 주관자는?비바리 같은데...맞나요?그런데 시간여행님은 시간이 많으신가봐요?저희들은 읽기도 바쁜데 ~~이렇게 좋은글을 써서 저희들을 즐겁게해주시니 말입니다...정말감사합니다.
즐거우셨다니, 감사합니다. ㅎㅎㅎ 시간 많으면, 데이트 해주실래요? ^^*
ㅎㅎㅎ 답 글 주신 분들 의견이 모두 맞습니다. 퀴즈 부분에 있어서는, 글에 넣을까 망설이다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풀어가면 좋을 것 같아 제안했습니다. 그 주관자는 사실 저도 모릅니다. 굳이 글로 꿰맞출 수는 있었겠지요. 하지만 주관자의 의도가 외주를 받은 연구가 되었건, 자신의 연구, 엽기적인 취미.... 여러가지의 원인을 가지고 주도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맞습니다. ^^*
간단한 질문!! ----------> 누가 탔어요~? ㅎㅎㅎ ( 어영부영 두리뭉술 답이 싫은 하나나>>)
ㅎ 질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ㅎㅎ 그 외로운 섬들 다 모이면 ..또 다른 픽션이 계속되겠지요..
ㅋㅋ 다음에는 안단테론도님의 섬을 해부해 볼까요? ^^*
OK~~ㅎ
마지막 순간까지 시간여행님의 향이 물씬 풍길 수 있는 마무리글을 쓰셨군요. 쓰시는 동안 너무 즐거운 시간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 또는 2부작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너무 많은 수고를 하셨는데 답례를 어찌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