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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교회는 뭐지? 일? 놀이?” 지난 번 저의 ‘기자 잡설’ 첫 글은 이런 물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유시민 씨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임상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을 ‘사랑’과 ‘일’, ‘놀이’라고 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짝꿍’과 ‘직장’, ‘교회’가 이루는 저의 버뮤다 삼각지대의 한 개 꼭짓점인 가톨릭교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본당 공동체 안에서 제가 하고 있는 온갖 활동은 일인가, 놀이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지난 ‘잡설’에 댓글이 두 개 달렸더군요. 그 중 한 분은 “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면서 하는 일은 모두 놀이 아닌가요”라고 쓰셨네요. 그래요. 교회, 더 넓게 보아 온갖 종교는 ‘인간이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놀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 대목에서 인상 팍 쓰시며 ‘감히 거룩한 어머니 교회를 놀이 따위로 격하시키다니!’ 하고 분노하시는 일은 없기를…….^^; 잡놈이 쓰는 잡설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갑시다. 또 다른 한 분은 이런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교회는 ‘연대’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는 사랑도, 일도, 놀이도 될 수 있겠지만 저에게 교회는 연대로서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네요. (희망사항인가요? ㅎㅎ) 유시민 씨가 이번 책에서 사랑, 일, 놀이 그리고 ‘연대’라고 강조하기도 했구요.” 교회는 ‘연대’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우리에게 뭔가 영감을 일으켜줄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이런 가벼운 문답을 주고받기보다는, 더 진중하고 깊이 있게 ‘교회란 무엇인가’에 관해 성찰해보고 싶다면 <가톨릭교회 교리서>나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정독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제 개인적 경험 이야기를 조금 할까요? 가볍게 생각해볼 때, 저 자신에게도 교회는 사랑이기도 하고, 일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합니다. 다만 최근 몇 달간은 분명히 ‘일’이라는 측면이 더 강했던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깊고도 넓은 본당월드’에 관해 쓴 칼럼을 읽으신 분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작년 3월부터 OO성당의 독서와 해설을 담당하는 단체인 ‘전례단’의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12월부터는 새로 선출된 전례단장님을 돕는 총무 역할도 하게 됐어요. ‘총무’라는 명칭이 거창합니다만, 제가 전례단 총무로서 하는 일들은, 의미 부여를 하자면 한없이 중요한 임무이고, 어떻게 보면 별 것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든 전례단원이 모이는 회합 때, 단장님이 만들어주신 전례 봉사 배정표를 인쇄해 나눠드리고, 지난달 회의록을 낭독하고, 회합 출석 체크를 하고, 논의 사항과 지도 신부님 · 수녀님 말씀까지 꼼꼼히 요약 기록한 회의록을 만들어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 것. 그밖에 문자메시지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등의 잡무가 있지요. 적다 보니 꽤 많아 보이네요. 사실 이 모든 일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름의 어려움도 있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고, 무사히 임기를 마칠 때까지 총무와 단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사히 임기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을까 고민해보니 대학 시절의 상처가 떠오르더군요. 그때 저는 학생 열댓 명으로 이뤄진 사회과학 학회에서 임원을 맡았다가 그 임무의 무거움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져버렸어요. 그랬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지금까지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군요. 다시는 그런 실망을 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거든요. 에고, 가볍게 쓴다는 게 좀 무거워졌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저에게 교회 자체가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의 전례단 활동은 ‘일’에 가까워진 것 같네요. 몇 달 전, 전례단 회합에 참관자로 오신 수녀님께서 단원들에게 “봉사자로서 첫 미사를 준비하던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봉사만 열심히 하다 보면 첫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하셨는데,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