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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그와 그녀의 목요일'과 13월에 부는 바람소리
종삼역 승강장. 사흘 전(12. 22 土), 중딩 동기 송년 모임 장소였던 국일관 1층 이대감고깃집 끝나고
1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날 음식점에 두고 온 카메라 가방을 찾아 캐논 에오스 키스 디
지털 엑스(Canon EOS Kiss Digital X)를 담아온 거다. 목적지는 예술의전당. 2012. 12. 25(화)
'전철을 두 번 통과 시키며 얻은 사진이지만 새벽강이 보기에 좋지 아니하다. '올 겨울, 단 한편의
진짜 사랑 이야기' 라는데 글쎄. '일회용' 예감이 짙다. 진짜 러브스토리(love story)라면 작가와
감독은 13월의바람을 용서하시라.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지만 진짜 사랑과 연 닿기는 어려우니 많이들 보시라. 새벽강의 바램 아니
어도 대박 날 거다. B급 정서가 판치는 반창고 같은 사랑의 시대라.
살인적인 추위가 지배하는 남부터미널역을 남긴다. '평생 전쟁터에서 타인의 죽음을 기록하다 자
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여자' 연옥을 만나기 한 시간 전이다. 시방(時方) 타임
2시. 2012. 12. 25(화)
누군가는 추억에 잠기겠지. 일순. 13월의바람에게 남부터미널의 추억은 없다. 강변역이 있는 동서울
터미널과 그 언저리에 점점이 박힌 사랑을 떠올렸다. 그대도 사랑이었을까. 발끝까지 못 채운 사진,
눈에 찰리가.
육교를 건너온 지점. 좌대각으로 흐리게 보이는 건물이 예술의전당 동편일 게다. 눈의 티인 자동차
아니어도 맘에 안 드는 포토(photo)다. 생산 안 되는 낡은 카메라를 탓하는 건 아마추어적 발상이
다.
가슴의 돌덩이다. 가운데 배치되어버린 구도가. '가슴에 돌단을 쌓은' 과거도 그렇고. 고개 들고 내밀
사진 한 장 못 건졌다. 전작보다 나은 속편 없음을 징크스(jinx)의 도움 받아가며 증거하는가. 그러
면서도 설렌다. 2012. 12. 25(화)
배종옥이 나오는 순간 좋았다. 마음까지 환해졌다. 한때는 수진이라는 봉투명으로, 무수한 연서를 새벽
강에 띄운 여자가 있었다. 언젠가 배종옥에 대해 좋은 평을 했더니 그 배우의 코먹은 소리가 답답하
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느 인기 성우에게 내가 호감 못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희미한 콧소리는 흡인력로 작용하기 쉽다. 방송이 과장한 배종옥 비음의 실체는 엷었다. 같은 무대
에 선 타 배우의 음성이 헝그리(hungry)하게 들릴 만큼 공명(共鳴)했다. 완급이 컨트롤 되는 낭랑,
정확하고 매끈한 발성이 통통튀며 전달됐다. 눈을 편안하게 하는 키에 페이스(face) 작은 배종옥
감정 표현의 진폭은 컸다. 실물이 훨씬 뷰리플(beautiful)한 166cm의 배우다.
여전히 "우이~ 씨"가 누구보다 잘 어울릴 여자, 1964년생 배우 배종옥 매력의 밀도는 높았다. 몰입
(沒入)은 자동이었다. 안경과 콤비를 걸치고 튀는 타이를 맨 옆좌석 맨의 척척한 매너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되 A블록 1열 2번석의 휴대폰이 발광하며 몸을 떨었다.
난 1번석.
2번석의 콤비맨은 전화를 받았다. 무성음으로 한마디하고 끊은 후로도 환하게 켜진 폰을 계속 만지작
거렸다. 객석을 벗어났다 오기까지 그랬다. 3번석에는 그와 적절한 관계로 안 보이는 쉰 근처의
여자가 있었다. 웃고만 있었다. '부적절한 관계여도 공적인 부적절에는 지체없이 일침을 놓는 여인
이어야' '2번 객석님은 낫살이나 돔바갖고 그러셔야. 애인 델고 다닐 땐 더 잘하는 거예요' 이
순(耳順)을 넘겼지싶으니 순하게 받아드리리라 믿는다. 그래야 사람이제.
쌍정(정재은, 정웅인) 버전 후기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다. 연대를 구분하고 연옥과 정민, 두 사람을 번
갈아 쓴 책자의 줄거리를 옮기다시피 할 거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기억의 창고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지방 대학의 시간 강사였던 정민은 26살 미혼모인 학생 양선이와
2년을 같이 살았다. 연옥이 파리 특파원으로 있던 시절,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그녀에게 정민이
다가섰고 두 사람은 한달 간 동거를 했다. 임신을 한 연옥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기뻤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인학생회에서 지혜를 만난 정민은 파리에 있는 연옥에게 편지를 보냈다. 결혼을
한다고. 연옥은 정민이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혼자서 애를 낳았고, 이경이라고 불렀다.
결혼을 한 정민은 다른 남자를 집에 맞아 들인 지혜로 인해 이혼을 했다.
미국 특파원으로 거쳐를 옮기던 연옥은 정민을 통해 엄마의 죽음을 들었다. 연옥과 휴가를 가기로 한
정민은 공항에서 이경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당황스러웠고 화가 났다. 그게 10년 저쪽이다.
연옥은 위암에 걸렸고 죽으면 그만인데 의사는 천천히 준비하라고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정민이 연옥의 집으로 찾아온다. 매주 목요일마다 주제를 정하고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일주일이
지난 두 번째 목요일, 정민의 연구실에서 그를 보자 비겁함이 떠올랐다.
세 번째 목요일, 잠실 야구장에서 역사를 논한다. 해태와 MBC 청룡의 한국시리즈 결승전이 있던
날(1983. 10. 20 土), 그 둘만의 역사였던 첫날밤을 떠올리며. 다시 일주일 뒤, '라이프' 사진 전시
회에서 만난다. 정민이 연옥을 배려해 정한 장소고 주제는 죽음이다.
다섯 번째 목요일, 정민이가 편지를 보내왔다. 불안하다. 정민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녀는 여전히 둘의 관계가 혼란스럽다. 정민은 딸 이경이를 찾아가 엄마의 상황을 말한다. 이때
딸의 임신을 알게 된다.
여섯 번째 목요일, 종군 기자로 복귀를 결정한 연옥에게 정민은 솔직해지라고 화를 낸다. 시리아로
떠나기 전, 연옥은 이경을 만난다. 둘은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 연옥은 시리아로 떠났고, 이경은 낙태
를 결심하고 아빠와 병원에 간다. 말 없이 딸의 손을 잡는 정민. 정민은 재혼을 한다.
정민은 연옥이 떠난 집에서 목요일마다 이경이를 만난다. 담배를 끊은 이경은 동거남의 사랑과 아
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글보다 사진을 편안해하는 여자, 연옥은 국경에서 정민
에게 편지를 보낸다. 옛날에 함께 찍은 사진을 동봉하여. 처음으로 연옥의 편지를 받은 정민, 설렌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배종옥, 조재현 버전으로 다시 보니 많이 우러났다. 빼곡한 말들이 배우의 입
과 몸짓으로 모양있게 살아났다. 희곡과 연기가 사이좋게 기댄 작품이다. 그렇지만 전 후기에서 지
적한 민망함은 여전 했다. 죽음을 앞둔 연옥이 시리아로 떠나지 않는 코스였다면 극적 효과 덜 했
을까. 그런 생각을 밀치고 찬사를 보낸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인사할 때의 박수, 뜨겁고 길었다. 자신의 글을 연출로 보여준 황재헌 님에게
미안과 감사를 믹싱(mixing)해 올린다. 미안함은 무능하고 안목없는 자가 무질서하게 뱉은 악평이
걸려서고, 감사는 내 인생의 마지막일 연극 관람이라는 말을 거두게 해서다.
무책임했으며, 들쑤시고 다닌 과거를 지닌 정민이는 재혼을 했다. '지난 30년간,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하고 밀쳐냈던 남자. 내 딸의 아버지이면서 다른 여자의 남편(pamphlet 팸플릿에서)' 이다. 삶
은 살아남은 이들의 축제라는 반복 학습은 못내 쓸쓸하다.
일 년 전 겨울, 장어집. 30년만에 학벌을 추가하게 된 어떤 녀석이 '쯩'이라는 말로 나를 압박했다.
'장대한 중국사에서 태백(李太白)을 능가하는 시인을 보았는가. 그가 문학상을 기웃거린 전과가 있
던가. 사라 장(Sarah Chang 장영주)이 콩쿠르(concours)에 나간 히스토리가 있는가.' 고급한 독자
를 흥분시킬 언어의 진경이 없는 아마(amateur)의 내면 풍경이다.
모든 백성에게 있는 민증(民證)과, 운전 허가증 빼면 '쯩'이라곤 없는 나. 그렇지만 자격이라는 말은
좋아해. 거기엔 당당이 묻어있거든. 그리고 난 있지, 자격보다 자유를 사랑해. 책임과 도리를 다하
고 남은 공간을 채우는 자유. 마음대로 사는 건 자유가 아니야. 건 쓸쓸함이지.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은 어디에 있을까. 난 의리에서 찾는다. 그 의리에는 불변의 진실이 함께 할 거야.
가슴에 돋을새김한 문장 하나 있어. '무서운 깊이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없다' 니체의 말이지. 천
(淺)한 삶이 '비극'을 만드는 거야. 드러나지 않는 깊이를 품은 아름다운 표면이면 좋겠다.
눈 쌓인 사진 석 장은 13월에부는바람의 발코니에서 담은 거예요. 아까. 2013. 1. 3(목)
황재헌 님이 글을 쓴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보면 "넌 사랑을 책으로 배워서 그 모양이냐"고 공격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옥은 그말을 "넌 사랑을 몸으로 터득해서 그러냐"고 받습니다. 연옥의 입에
서 나온 오리지널 대사는 '사랑을 몸으로 배워서'일 거예요. '그 모양이냐'는 말도 원본과 다를 거구요.
뭐가 팩트(fact)든 님들은 사랑을 어떻게 배우고 익히셨는지. 행여 사랑을 모르실리야.
유영건 곡 '비가' 혜은이의 18집 앨범(1989) 타이틀 곡입니다. 오토리버스(auto reverse) 아니오니
다시 듣고 싶으신 님은 오디오 버튼을 누르세요. II 무늬. 혜은이의 노래가 그립거든 밑줄쳐놓은 '까
지색' 비가를 눌러줘요. 세월의 힘이 태를 잉깔려버린 동영상을 이쁘게 볼 자신있다면요.
화사하기도 해라. 우리들의 이 선생님, 이연순 벗님. 2011. 5. 1(日)
새벽강의 박주열 벗님 결혼 / 1부… 이 둘의 합일을 기어이 사랑이라 부른다에서
이연순20 한편의 일상을 편안하게 그려나간 글이 왠지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진솔하고 아름답게 묘사
를 해서인지 많이 와 닿는 군요. 언젠가 강남 어디선가 공연했던 '헤드웍'을 보러 갔는데 기대도 안했던
윤도현이 주연이어서 흥분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아련한 추억에 젖다 갑니다. 2012. 12. 26(수)
새벽강의 그와 그녀의 목요일(쌍정 버전) 리플(reply) 마당에서
지난해(2011) 가을, 박기만 님의 남이섬 앨범을 보며 지나온 여정을 들췄던 이 선생님. 한탄 곁들
이셨지요. "그때 해보지 못한 남이섬 자전거 여행을 언제나 할 수 있를런지..." 싱글 자전거도 있
던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일인용은 싫으셨던 건지. 연인의 추억 한 페이지 없다해도 이 풍
진(風塵) 세상 잘 사실 걸로 보여집니다.
2010년 시월 남이섬(南怡島) 연안의 밤은 흠씬 뜨거웠다 했지예. 새벽강에 젖은 여인 하나 있어.
늦은 아침을 먹은 우리는 남이섬을 종횡무진했습니다. 커플자전거(couple bicycle)에 몸을 얹고 과거
로 가는 페달을 오래오래 밟았습니다. 그 섬에는 절정 지난 가을이 있었습니다.
잘하는 게 없는, 아니 못하는 것 투성이인 새벽강이 잘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맨살의 바디랭
귀지(body language)는 패스(pass) 시키고, 자전거를 잘 타게 된 서러운 이야기만.
청계 3가 전기가게에 적(籍)을 두고 밥을 벌던 그때 짬짬이 짐받이 자전거로 요동치는 인파를 뚫고
다녔다. 용접기 두 대를 합바해 배달가다 종로로 이어진 어느 골목에서 엎어진 날, 비루하기만 한
삶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근무지는 계천(淸溪川)의 가게들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맨 늦게
문을 닫았다. 몸은 고단했고, 잠은 늘 부족했다. 일요일이 다섯 번인 달도 1·3 주일만 쉬게 했다.
월급 18에 주말마다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았다. ― 새벽강의 비공개 글 '왕십리(往十里)'에서
서울 올림픽 전이었고, 현리 맹호사단 기갑수색대대에 1111호 탱크를 반납한지 오래 되지 않은 때
였고, 먼 곳에 살던 인연이 떠난 겨울이었습니다. 처음 맺은 인연이 '함부로 길을 나선' 겨울이었습
니다. 그러고선 심신(心身)을 못 견디며 '그 너머를 간절히 그리워하게 되는' 죄의 겨울이었습니다.
여기까지 하지요.
서경 송년 모임 공지의 고명이 되게 글 써 이 선생님을 초대했는데 왜 부답했는지. 궁금해 하지는 않
습니다. 공들여 쓴 글로 예고했던 언어의 발칸포를 대신하며 축복을 드리오니 잘 사십시오. 새벽강
혹은 13월에부는바람이 백봉산 자락에서 2013. 1. 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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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부 터미널 보니까 거제가던 날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