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레몬청 차를 맛보고
이월 중순 토요일이다. 가끔 들리는 근교 농촌의 지역민 대상 평생학습센터에 딸린 작은 도서관을 찾아가는 날이다. 창이대로에서 소답동을 거쳐 창원역으로 갔다. 이번 주말을 넘긴 월요일은 동해선 열차로 삼척 고적 답사를 예정해서 표를 예매하려니 평일임에도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동대구에서 포항은 KTX로, 삼척까지 itx마음 편으로 바꾸어 입석, 귀로는 심야에 신해운대 닿았다.
열차표 구매를 마치고 1번 마을버스를 타서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 이르자 승객이 만원이라 서서 가는 이들도 생겼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주남삼거리에서 들녘으로 들어 대산 일반산업단지서 승객은 거의 내렸다. 삼봉마을에서 국도로 들어 가술 정류소에서 평생학습센터를 찾았다. 2층 열람실로 들어 익히 아는 사서와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 열람실은 한산한데 나중 10시부터 수제 청 만들기 문화강좌가 열린다는 안내를 받아 나는 열람석 대신 컴퓨터 책상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신간 코너 서가에서 전번에 제목만 봐둔 황선엽의 ‘단어가 품은 세계’를 뽑아 들었다. 저자는 서울대를 나와 다른 곳의 강사 경력을 보태 모교에서 후진을 가르치는 국어학자였다. 그의 책은 처음인데 문학이 아닌 어학을 가르치는 듯했다.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어도 국어 교사였던 나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단어가 간직한 넓고 깊은 이야기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탐구하고 싶을 열정을 드러냈다. 그가 학부 시절 강원도 정선으로 방언 조사 나가 상추가 옛 투 ‘부루’로 살아 있음에 경이로움을 느꼈다면서 국어학의 첫발을 딛는 계기를 소개했다.
본문에서 정지용의 시가 가곡으로 작곡되어 불리는 ‘향수’ 첫 소절 ‘얼룩백이 황소’를 먼저 언급했다. ‘얼룩백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얼룩소인 칡소를 말하고 ‘황소’는 덩치가 큰 수소를 의미한다고 풀었다. 흥미진진해지는 본문으로 빠져드는데 열람실은 수제 청 만들기 강좌에 등록한 수강생과 강사가 나타났다. 센터장 번팅으로 안내받은 소규모 문화강좌로 결원이 한 명 생겼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의 책장을 덮고 재료가 준비된 테이블로 옮겨 수강생들과 같이 합류했다. 강사는 진해 북원로터리 인근 카페를 운영하면서 도서관 문화강좌로 출강을 나오기도 했다. 레몬으로 빚은 수제 청을 견본으로 두고 재료들을 한 봉지씩 분배했다. 열대산 과일에다 하와이에 자생하는 말린 히버스커스 꽃잎이 설탕과 같이 들어 있었다. 간편한 도마와 칼까지 준비해 나왔다.
도서관 센터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면인 수강 동료와 함께 강사의 안내를 받아 레몬차를 손수 담가 봤다. 앞뒤 옆자리 동료들은 모두 마음 뿌듯해했다. 자기기 담근 수제 레몬차는 뚜껑을 닫아두고 강사가 마련해온 발효 숙성된 레몬차를 시식하는 기회도 가졌다. 말린 꽃잎에서 우러나온 붉은색이 무척 고왔다. 입안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차에서 레몬의 향이 짙게 배어났다.
레몬차를 만들고 난 뒤 아까 읽다 접어둔 책은 집으로 가져가 읽으려고 사서에게 대출 처리 받아 배낭에 넣었다. 수제 레몬청을 만든 동료들이 떠나고 열람실을 나와서 자주 들린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식후에는 가술 거리에서 죽동천 천변 따라 걸으니 줄지은 산수유는 망울이 부푸는 즈음이었다. 대산 들녘 비닐하우스 안에는 한겨울 추위에도 오이와 당근이 싱그럽게 자랐다.
제1 수산교 근처까지 들녘을 거닐어 신전 종점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귀로 버스 안에서 아침나절 체험한 ‘수제 레몬청’을 남겼다. “도서관 찾은 걸음 지역민 문화강좌 / 카페를 운영하는 수제 청 전문 강사 / 레몬을 도마에 썰어 수제 차로 담갔네 // 준비한 말린 꽃잎 열대산 과일 재료 / 눈으로 빛깔 곱고 코끝에 향기 닿아 / 여남은 수강생들과 숙성 견본 맛봤네” 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