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문화기행 1] 정병경.
ㅡ여강의 흔적ㅡ
3년차 머무는 '코로나19'가 조금씩 소멸되어 야외 활동이 점차 자유로워져 다행이다. 완전히 회복되기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광진예술인 연합회(장은수 회장)에서 주관하는 문화기행에 나선다.
80명이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아침바람을 가른다. 평일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광진문협ㆍ광진미협ㆍ광진사진협회와 모처럼 함께 하는 행사여서 상호 교류의 장場이다. '여강문학관'과 '뮤지엄 산'이 여정의 하일라이트다.
여주 휴게소에 잠시 정차 후 문막 소재 원주 메디컬 캠퍼스 '경동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선다(원주시 문막읍 견훤로 815). 배불뚝이 산 위에 위치한 캠퍼스는 고풍스럽다. 역사는 짧지만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여 사회에 일조하는 대학이다. 방학 중이어서 교정은 한산하다.
본관 7층 강당으로 들어선다. 광진문협 안춘윤 회장과의 대담을 영상으로 듣는다. 여강如江 원용우(85) 교수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농군 아들인 여강 선생의 지난至難한 청ㆍ소년기를 반추해본다. 출생지가 여주 강천면 대둔리(생가)다. 지금은 원주 문막으로 행정 구역이 바뀌었다.
ㅡ외길 시조ㅡ
도전 정신력으로 학문을 이루어 낸 여강 선생은 시심이 깊어 외길을 택한다. 시조時調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본인에게 시조문학의 거목으로 칭한다.
헌시獻詩 한 수 남긴다.
"시조를 꽃피우며
여강이 걸어온 길
후대가 받들어서
반석에 올려놓고
세월이
다할 때까지
시인 묵객 한마당."
"끝까지 가야 성공한다" 는 좌우명이 시조의 대가로 만든다. 자신의 시詩 '일모(日暮)에' 가 제일 애착이 간다고 한다. 서당에서 배운 한문 공부가 시조 공부에 일조를 했다며 회고한다.
고향 떠나 광진구 구의동에서 반평생을 넘겨 지낸다. 제2의 고향이라 자부해 광진예술인들은 박수로 화답한다.
'어머니의 길'과 '고향 서정'을 차분한 음성의 정선영 시인이 대신 낭송한다. 시인의 마음을 담으니 감동이 일어난다.
경동대 자양관滋洋館 1층 '여강문학관' 북카페로 발길을 돌린다. '여강如江'은 원용우 교수의 호號다. 지난 3월 4일 경동대학에서 생전에 있는 인물의 문학관을 열게 된다.
문막 출신으로는 단연 으뜸으로 꼽힌 여강 선생을 선정하게 된다. (사)한국시조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할 때 일원으로서 여강 선생의 일거수를 지켜보았다. 여전히 열정이 식지 않기에 존경의 대상이다.
'여강문학관'에서 원교수의 체취를 느낀다. 여강 선생 저서와 흔적이 역사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고려대에서 '윤선도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계기가 있다. 현대 시조 대가 윤선도의 작품에 심취한 덕이다.
문학 관련 논문이 100여 편 넘는다. 38년간 재직 중 펴낸 시조관련집 10여 권과 시조집 10권, 수필집 9권이 있다. 1만여 권 도서와 46점의 도자기를 문학관에 기증하게 된다. 액자와 족자 등도 문학관에서 독자를 맞이한다.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은 후학들의 본보기다.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흉상처럼 평안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강 선생이 이룬 업적을 교훈으로 생각한다. 예술인 일행과 함께 찬사를 보내며 여강 선생의 업적을 영원히 기린다.
2022.07.05.
첫댓글 여강의 자취를 찾으신
경동대와 문학관 풍경
기다리는 풀포기 숲들이
흠뻑 반겨 주었겠습니다
여강의 물줄기 지나는
신륵사 앞 잔잔한 강가에
스쳐본 억새가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