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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명이 대통령을 끌어내렸습니다. 하지만 단 1명도 죽지 않았죠. 시위 후 쓰레기를 스스로 치우고 구급차 길을 자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사토 교수가 끼어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런 규모의 시위 자체가 불가능하죠. 헌팅턴 교수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일본 국민이 천황을 끌어내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중국에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성공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왕리 교수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교수님 이것도 예외입니까? 한 번의 사례입니까? 강당 전체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즉각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40년간 구축해 온 제 이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마지막 슬라이드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교수님의 공식에 맞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은 동아시아의 예외입니다. 당당히 숨 죽인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연단에 서서 처음으로 제 확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저는 호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창 밖으로 보스턴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저는 그것을 볼 여유가 없었죠. 노트북을 열고 헌팅턴 교수가 제시한 데이터들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로서 저는 반증을 찾아야 했습니다. 40년간 쌓아온 이론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는 없었으니까요. 대한기름 유출 사고부터 다시 분석했습니다. 백유13만 명의 자원봉사자 1 인당 평균 비용 15만원이라고 헌팅턴 교수가 말했죠. 저는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총 비용은 1845억원 개인적 이익은 제로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려 했습니다. 혹시 정부의 은밀한 압박이 있었을까? 언론을 통한 사회적 압력이 작동했을까?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면 볼수록 그런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죠. 참여자 인터뷰 기록을 읽어보니 대부분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TV에서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 바다인데 어떻게 그냥 있어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제 이론에 없는 변수였습니다. 손익 계산이 아니라 본능적 반응처럼 보였죠. 저는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다음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분석했습니다. 351만 가구가 참여했고 227톤의 금이 모였습니다. 평균적으로 한 가구당 결혼 반지 하나 정도의 가치였죠. 대략 50만원 상당이었습니다. 351만 곱하기 50만원 총 1조 7550억원의 가치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겁니다. 매수 보장도 없이 정부 강제도 없이 말이죠. 저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려 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자기 재산을 내놓아 국가를 구한 경우가 있었을까? 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의 전쟁 공채 아니었습니다. 그건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린 것이었죠. 미국의 애국 채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처럼 회수 보장 없이 순수하게 기증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1잔 더 마시고 촛불 집회 데이터를 열었습니다. 1700만 명 이 숫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하기 위해 저는 다른 사례와 비교해 봤습니다. 2020년 미국 조지 플로이드 시위 참여 인원 약 2600만 명 하지만 미국 인구는 3억 3000만 명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7.9%였죠. 한국의 촛불 집회는 전 국민의 33%였습니다. 게다가 미국 시위에서는 수십 명이 사망했고 약탈과 방화가 빈번했습니다. 한국은 사망자 재로 폭력 사건 극소수였죠. 같은 규모의 군중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저는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보스턴 찰스 강에 다리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40년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손익 계산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공식에 맞지 않았습니다. 아니 완전히 벗어나 있었죠. 저는 처음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며칠 후 저는 다시 헌팅턴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 연락을 받고 보스턴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죠. 오후에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헌팅턴 교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정말로 한국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헌팅턴 교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답했습니다. 15년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다르다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준비해온 질문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예외적 사례만으로 전체를 일반화하는 건 학문적으로 위험하지 않습니까? 몇 가지가 아닙니다. 헌팅턴 교수가 가방에서 두꺼운 바위를 꺼냈습니다. 제가 정리한 한국의 집단행동 사례들입니다. 400년간의 기록이죠. 그는 파일을 제 앞으로 밀었습니다. 저는 첫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천해192년 임진왜란 의병 봉기 정규군 8만 4000명 민간 의병 22만 명 전체 전투 인력의 21%가 민간인 자원병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21%요 이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스페인 대 나폴레옹 게릴라전이 12%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2.3% 폴란드 저항군이 4.1%였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조용히 답했습니다. 저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맞습니다. 조선 시대 밀란 회수 활배 2호에 같은 기간 청나라 267회 같은 기간 일본 143회 일본의 6배입니다. 헌팅턴 교수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많이 저항한 민족입니다. 왕이 잘못하면 끌어내렸고. 관리가 부패하면 봉기했죠. 저는 페이지를 계속 넘겼습니다. 1919년 3일 운동 참여 인구 200만 명 당시 전 국민의 3.2% 1960년 4일 구 혁명 학생과 시민이 독재자를 끌어낸 사례 1980년 5일 8 광주 시민군이 군대와 맞선 기록 1987년 6월 항쟁 전국적 시위로 직선제를 쟁취 2016년 촛불혁명 전체 800만 명의 평화시위 패턴이 보였습니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위기가 오면 모이고 부당함을 보며 매년 저항하고 공동체가 위험하면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었죠. 저는 파일을 덮고 헌팅턴 교수를 바라봤습니다. 이게 정말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우연히 400년간 반복될 수 있습니까? 그의 반문에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스텔리 교수님 교수님의 이론은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 적용됩니다. 미국인도 유럽인도 심지어 중국인과 일본인도 손익 계산으로 움직이죠. 하지만 한국은 예외입니다. 그들에게는 손익 계산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공동체의 생존입니다. 헌팅턴 교수가 새로운 자료를 꺼내 보여줬습니다. 한국은 2000년 역사 동안 933 1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평균 5.5년에 한 번씩 외적이 쳐들어왔죠. 저는 그 숫자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은 반도 국가로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헌팅턴 교수가 물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답했습니다. 뭉쳐야 했겠죠. 정확합니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 환경이었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따지면 민족 전체가 사라지는 상황이었죠. 그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했습니다. 2000년간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민족입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죠. 저는 침묵했습니다.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환경이 행동을 규정하고 반복된 행동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DNA처럼 되물림되는 것이죠. 그래서 재난이 터지면 회의부터 하는 게 아니라 출동부터 합니다. 헌팅턴 교수가 말을 이었습니다. 규칙이 없어도 움직이고 강제가 없어도 협력합니다. 내 손에 보다 우리의 안전이 먼저입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이터가 역사가 패턴이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교수님 제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미소지었습니다. 인정하는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왜 한국만 그런 겁니까? 중국도 일본도 비슷한 역사를 겪지 않았습니까? 헌팅턴 교수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환경이 달랐습니다. 그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역사상 외침을 두 번밖에 받지 않았죠. 몽골과 2차 대전 때요. 외부 위협이 없으니 내부 질서가 발달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습니다. 위기가 와도 도망칠 곳이 있었죠. 왕조가 바뀌면 새 왕조에 복종하면 됐습니다. 생존을 위해 뭉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헌팅턴 교수의 분석은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습니다. 작은 반도 도망칠 곳 없음 강대국에 둘러싸임 뭉치지 않으면 민족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었죠. 저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40년간의 연구가 한순간에 재구성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카페를 나온 후 저는 보스턴 거리를 걸었습니다. 11월에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저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니까요 하버드 캠퍼스로 돌아와 제 연구실에 들어섰습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기념사진 국제학회에서 상을 받던 순간 제 첫 번째 저서 출판 기념회 모든 것이 제 학문적 성취를 증명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게 흔들리고 있었죠. 저는 책상에 앉아 원고 파일을 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동일성 유교 자본주의에 합리적 선택 제목을 보는 순간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동일성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거짓말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저는 한국 관련 챕터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적 특성을 보인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 경제 발전은 국가 주도의 합리적 선택 결과다. 모든 문장이 이제는 피상적으로 보였습니다. 표면만 긁었을 뿐 본질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서랍에서 오래된 논문을 다시 꺼냈습니다. 1983년에 쓴 한국 경제 개발 모델의 한계였습니다. 당시 저는 자신만만하게 예측했었죠. 한국 경제는 실패할 것이라고 정부 주도는 비효율적이고 재벌 중심 구조는 붕괴할 것이라고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 예측이 왜 틀렸는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시스템만 봤지 사람을 보* 못했던 것입니다. 숫자와 모델만 분석했지. 그 뒤에 있는 문화와 역사를 간과했던 거죠. how many people 같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열고 한국에 대한 자료를 새롭게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제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태안 봉사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봤습니다. 한 60대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말했습니다. 추웠죠. 힘들었죠? 근데 TV에서 바다가 시커멓게 변하는 거 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또 다른 4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 휴가 내고 갔어요. 애들한테는 아빠 바쁘다고 하고 근데 가야 할 것 같았어요. 왜냐고요? 그냥 우리 바다니까요. 근무기 운동 참여자 인터뷰도 찾아봤습니다. 한 70대 할머니가 결혼 반지를 내놓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50년 끼고 산 반지인데 근데 나라가 어려운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반지보다 나라가 먼저 저죠. 촛불 집회 참여자의 말도 들었습니다. 추웠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나가는 게 쉽지 않았죠. 근데 내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나 싶었어요. 모든 인터뷰에서 같은 표현이 반복됐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우리 것이니까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이것은 손익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죠. 저는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걸 어떻게 공식으로 만들지 학자로서. 저는 여전히 일원화하려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공식도 이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새벽 4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40년 경력의 학자로서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제 이론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것인가? 학문적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진실에 복종할 것인가? 그 순간 저는 제 스승 중 한 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노벨 경제 학상을 받았던 그분은 강의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학자는 자기 이론을 증명하고 분명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이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심이 섰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책 출간을 잠시 연기하고 싶습니다. 담당 편집자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이미 인쇄 준비까지 들어간 상태인데요. 저는 조용히 답했습니다. 전면 수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 관련 부분을요. 한국 부분이요. 무슨 일이 제가 한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40년간 잘못 봐왔어요.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습니다. 편집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교수님 이건 큰 결정입니다. 정말 확신하십니까? 네 확신합니다 저는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학자로서 틀린 것을 출판할 수는 없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하버드 캠퍼스에 가을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단풍이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죠. 저는 새로운 원고 파일을 열었습니다. 제목을 지우고 새로운 제목을 입력했습니다. 한국 예외의 증거 합리성을 넘어선 공동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습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저는 제 이론의 한계를 인정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죠. 진실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후 저는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영국 경제학회에서 후속 세미나를 열기로 했고 저를 다시 초청했기 때문이었죠. 보스턴 심포지엄 이후 학계에서는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이 정말 동아시아의 예외인가 아니면 과장된 해석인가?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런던 경제학회의 건물은 템즈강이 내려다보이는 현대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세미나실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학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보스턴 그때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죠. 약 300명 정도가 모인 것 같았습니다. 제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옥스퍼드의 헌팅턴 교수가 앞줄에 앉아 있었고 도쿄대 사토 교수와 칭화대 왕리 교수도 보였습니다. 사회자가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보스턴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논쟁을 심화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과연 동아시아의 예외인가? 첫 번째 발표자는 사토 교수였습니다. 그는 연단에 올라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헌팅턴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화면에 일본의 데이터가 떴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보여준 질서와 헌신은 세계가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 문화의 특성입니다. 사토 교수가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한국도 같은 문화권입니다. 차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는 새로운 슬라이드를 띄웠습니다. 한국 문화에 많은 부분이 일본에서 유래했습니다. 불교 도자기 기술 건축 양식 등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죠. 청중 중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토 교수가 계속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을 특별하게 보는 것은 학문적으로 과장입니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하나의 문화권입니다. 그가 발표를 마치자 박수가 터졌습니다. 다음은 왕리 교수의 차례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조공국이었습니다. 유교 한자 정치 제도 모두 중국에서 전래되었죠. 왕리 교수가 말을 이었습니다. 현대에도 한국 경제는 중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죠. 그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5%에 달합니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왕리 교수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한국을 중국과 분리해서 보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다시 특히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제 제 차례였습니다. 저는 천천히 연단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제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다. 학자로서 제 이론을 수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여러분 저는 오늘 고백하러 왔습니다. 세미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40년간 한국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웅성거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첫 번째 슬라이드를 띄웠습니다. 1983년 제 논문 표지가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제가 젊은 시절 쓴 논문입니다. 한국경제개발모델에 한계라는 제목이죠. 저는 당시 제 주장을 요약했습니다. 저는 한국 경제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정부 주도는 비효율적이고 시장 원리를 무시한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봤죠. 다음 슬라이드를 넘겼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입니다. 재 예측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사토 교수가 끼어 더 들었습니다. 그건 운이 좋았을 뿐 아닙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본질을 놓쳤습니다. 경제 시스템만 봤지 사람을 보* 못했습니다. 저는 헌팅턴 교수가 제공한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 때 123만 명이 자발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사토 교수님 이것을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과 비교해 보시죠. 비교 데이터가 나타났습니다. 자발적 참여율 한국 94% 일본 22% 재난 발생 48시간 내에 도착 한국 68 선 주 20명 일본 2640명 사토 교수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저는 왕리 교수를 향해 말했습니다. 왕 교수님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행동 패턴은 완전히 다릅니다. 새로운 슬라이드가 나타났습니다. 2008년 쓰촨 대지진 자발적 참여 11%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자발적 참여 94% 중국인들은 이익을 계산하고 움직입니다. 한국인들은 계산 없이 움직이죠. 왕리 교수가 반박하려 했지만 저는 계속했습니다. 근무기 운동을 보십시오. 351만 가구가 결혼 반지까지 내놨습니다. 중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왕리 교수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촛불 집회 전체 700만 명 사망자 영 명 이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입니다. 화면에 비교 자료가 떴습니다. 2020년 미국 시위 사망자 수십 명 약탈 다수 2019년 홍콩 시위 폭력 충돌 빈번 2016년 한국 촛불 사망자 영 명 평화 유지 세미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DNA입니다. 헌팅턴 교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스텔리 교수님 그렇다면 왜 한국만 그런 겁니까?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죠? 저는 헌팅턴 교수가 제공한 역사 데이터를 띄웠습니다. 2000년간 국회 31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평균 5.5년에 한 번씩 외적이 쳐들어왔죠. 숫자가 화면을 채웠습니다. 일본은 섬나라로 외침이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은 넓은 땅으로 도망칠 곳이 있었죠. 저는 잠시 멈췄다가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습니다. 작은 반도 도망칠 곳 없음 강대국에 둘러싸임 뭉치지 않으면 민족이 사라지는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학자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2000년간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제가 직접 답했습니다 나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했습니다. 개인의. 손익보다 공동체의 생존이 우선이어야 했죠. 저는. 새로운 공식을 화면에 띄웠습니다. 한국. 위기 회의
없음 즉시 출동 일본 위기 규칙 대기 지시 후 행동 중국
호흡 위기 이익 계산 소닉 후 행동 미국 위기 개인 판
단 선택적 행동 한국은 재난이 터지면 회의가 아니라 출동부터
니다 규칙이 없어도 움직이고 강제가 없어도 협력하죠. 사토 교수가
다시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문화적 유사성은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표면적 유사성과 본질적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한자를 쓴다고 불교를 믿는다고 같은 민족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저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일본 전황은 단 한 번도 국민에
국민에 의해 폐위된 적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평화적 정권 교체는
적이 없죠 저는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민이 대통령
대통령을 끌어내렸습니다. 1700만 명이 평화적으로요? 세미나실의 분
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는 40년간 틀렸습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변주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악보.
다 세미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 젊은 학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한국인의 그런 행동이 정말 지속 가능합.
현대 사회에서도 계속될까요? 저는? 준비했던 자료를 꺼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보시죠 새로운. 데이터가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한국.
마스크 착용률 97.8% 정부 지침 발표 전 94% 미국 마스
률 38.4% 유럽 평균 50% 정부가 강제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벌금도 없었죠. 하지만 국민의 97 포인트 8%가 마스크를 썼습니다.
인터뷰 기록을 읽었습니다. 참여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마스크를 쓰냐고
쓰냐고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 안 되니까였죠. 또 다른 학자가 질문했습니다.
그건 아시아 문화의 집단주의 아닙니까? 저는 비교 데이터를 보였습니다. 그거 좋습니다. 일본은 정부 지침이 나온 후에야 착용률이 올랐습니다. 지침 전에는 62%였고 지침 후 91 퍼
됐죠 저는 강조했습니다. 한국은 지침 전부터 94% 였습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사토 교수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일본인들은 규칙을 존중합니다. 그게 잘못입니까? 저는 부드럽게 답했습니다.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겁니다. 일본은 규칙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규칙 없이도 움직이죠. 왕리. 교수도 끼어들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면 처벌받았습니다. 강제였죠.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중국은. 강제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한국은. 강제 없
저는 잠시. 인터뷰했습니다. 화면에 인터뷰 내용이 떴습니다. 힘들죠.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참아야죠. 다 같이 힘드니까
먼저인 본능이 있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자료를 추가 있습니다. 코로나. 때 한국의 자영업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화면에. 인터뷰 내용이 떴습니다. 힘들죠.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참아야죠. 다 같이 힘드니까. 내가 문 열어서. 않습니까? 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네 단기적으로는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합리적이죠. 저는 설명을 이었습니다. 동네가 먼저죠. 저는 그 문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 장사보다 동네가 먼저 이것이. 한국입니다. 한 경제학자가 회의적으로 물었습니다. 회의적으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합리적이죠. 저는 설명을 이었습니다. 개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가 살아남으면. 결국 개인도 살아남습니다. 2000년간 그렇게 살아온 민족입니다. 또 다른. 질문이 나왔습니다. 교수님. 71. 명 임금의 80. 5% 송금 베트남 파병 32. 만 명 위험수당 전액 송금 중동 건설 100. 80만 명 파견 왜. 그들은 자기 임금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보냈을까요? 저는 학자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 데이터를 띄웠습니다. 1960. 년대와 70년대 한국인들은.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화면에 숫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독일 파견 광고 7000코3? 36명 임금의 90% 본국 송금 독일. 파견 간호4 1000 371명 임금의. 85%. 임금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보냈을까요? 저는 학자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나라가 가난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벌어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자기 가족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나라를 위해 돈을 보냈습니다. 합리적 선택이 아닙니다. 본능입니다. 세미나실이 숙연해졌습니다. 저는 마지막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이해합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이런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면에 새로운 문구를 띄웠습니다. TNA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토 교수가 천천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반박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탠릭 김교수님.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데이터가 명확합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자발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규칙과 지시가. 제가 40년. 만에 발견한 한국의. 진실입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번의 미담이 아닙니다. 400년간 반복되는 행동 패턴입니다. 저는. 역사 데이터를 다시 보여줬습니다. 1992년. 2007년 태안봉사 2016년 촛불집회 2026년. 코로나 대응 400년간 같은. 패턴입니다. TNA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토 교수가 천천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반박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탠릭 김교수님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데이터가 명확합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자발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규칙과 지시가 있어야 움직이죠 왕리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익이나. 강제가 없으면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가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한국은 정말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두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 사회는 자기 환경에 맞게 진화했습니다. 저는. 정리했습니다. 일본은 질서와 규칙에. DNA를 발달시켰습니다. 중국은 생존과 실용의. DNA를 만들었죠. 한국은 공동체 우선의 DNA를 가지게 됐습니다. 헌팅턴 교수가 일어서며 박수를 쳤습니다. 곧 세미나실. 전체에 박수가 퍼져나갔습니다. 저는. 연단에서 내려오며 제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음을 느꼈습니다. 40년간의. 확신이 무너졌지만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이해가. 생겨났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여러 학자들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한 젊은. 연구자가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이론을 바꾸시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저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자는 진실에 복종해야 합니다. 자존심이 아니라요. 또 다른 교수가 말했습니다. 교수님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학자들이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습니다. 저야말로 한국에게서 배웠습니다. 겸손함을요. 그날 밤 호텔 방으로 돌아온 저는 창밖에 런던 야경을 바라봤습니다. 햄즈 강에 달이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열고 수정 중인 원고를 꺼냈습니다. 새로운 서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40년간 인간을 공식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내 공식을 모두 깼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습니다. 한국을 설명하는 건 제도가 아니라 행동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본능은 2000년 역사가 만든 거죠. 봅시다. 저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 썼습니다. 이것은 우월함이 아니다. 다름이다. 그리고 존중받아야 할 다름이다. 밤이 깊어갔지만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저는 진심으로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런던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후 저는 예상치 못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서울대학교에서 온 초청장이었습니다. 리처드 스탠리 교수님의 19883년 논문을 재조명하는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한국경제개발 모델의 한계 40년 후의 재평가. 그들은 제가 젊은 시절 쓴 그 논문을 다시 꺼낸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완전히 틀린 그 논문을요.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제 논문의 스캔본이 있었습니다. 모라퐁이에 인쇄된 글자들이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었죠. 저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정부 주도 경제 개발은 시장 효율성을 저해한다. 재벌 중심 구조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억압하는 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다. 저는 당시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중반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논문을 다 읽고 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30대 초반에 제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숫자와 모델만 보고 사람과 문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죠. 저는 답장을 써야 했습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머뭇거렸습니다. 거절할까 아니면 받아들일까? 학자로서의 자존심은 거절하라고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책임은 받아들이라고 말했죠. 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타이핑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손가락이 멈췄다가 계속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 논문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묘한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두 달 후 저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저는 긴장했습니다. 제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나라. 그런데 지금은 세계 시위권 경제 대국이 된 나라. 공항 밖으로 나오자 서울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높은 빌딩들 깨끗한 도로 질서 전견한 사람들 1983년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동안 저는 창밖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다리들 현대적인 건물들 활기찬 거리들 모든 것이 제 예측이 얼마나 틀렸는지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서울대학교 세미나실에 도착했습니다. 200명 정도의 청중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한국 학자들이었고 일부 언론인들도 보였죠. 저는 연단에 올랐습니다. 화면에는 제 1983년 논문 표지가 크게 떠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리처드 스텔리 하버드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43년 전 한국 경제에 대한 예측과 현실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사과 하러 왔습니다. 세미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43년 전 저는 한국 경제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완전히 틀렸습니다. 저는 당시 논문의 주요 내용을 화면에 띄웠습니다. 저는 정부 주도가 비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재벌 구조가 붕괴할 것이라고 했죠. 다음 슬라이드에는 현재 한국의 경제 지표들이 나타났습니다. GDP 세계 10위권 반도체 세계 1위 조선 세계 1위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재예측과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했습니다. 저는 왜 틀렸을까요? 무엇을 놓쳤을까요? 한 한국 교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경제 모델 자체는 틀리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단지 한국에 적용하기에 부적절했던 것 아닙니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더 근본적인 것을 놓쳤습니다. 저는 새로운 슬라이드를 띄웠습니다. 저는 숫자만 봤습니다. 사람을 보* 못했죠. 화면에 제가 준비한 자료가 나타났습니다.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들 간호사들의 사진 이들은 임금의 90%를 본국으로 보냈습니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요. 베트남 파병 군인들의 기록 32만 명이 위험수당 전액을 나라로 보냈습니다. 중동 건설 노동자들의 사진 180만 명이 사막에서 피땀 흘려번 돈을 한국으로 송금했습니다. 저는 청중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제 경제 모델로 어떻게 설명합니까? 합리적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세미나실이 조용했습니다. 뭐 없습니다. 이것은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스템이 만든 게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겁니다. 또 다른 학자가 질문했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 무엇이 한국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십니까? 저는 헌팅턴 교수에게 배운 것을 설명했습니다. 2000년간 9301번에 침략 뭉치지 않으면 사라지는 환경 그것이 한국인의 DNA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1592년 의병부터 2016년 촛불까지 400년간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화면의 역사적 사건들이 나열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본능 나보다 우리가 먼저라는 습관 이것이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한 젊은 연구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그러면 앞으로의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측하지 않겠습니다. 43년 전 예측이 완전히 틀렸으니까요.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한국인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DNA를 가진 한 이 나라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한 노교수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70대 후반으로 보였습니다. 스텔리 교수님 저는 1960년대 독일에 간 광보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3년간 탄광에서 일했습니다. 교수님 논문에 나온 그 사람들 중 하나죠.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임금의 대부분을 보내셨습니까? 노 교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습니다. 나라가 가난했으니까요.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싶었죠. 하지만 가족은 힘들어요. 그렇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송금하고 나면 제게 남는 돈이 거의 없었죠. 그가 눈 시오를 불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냥 있어요? 우리나라인데 저는 그 순간 제가 43년간 놓쳤던 것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합리성 효율성 손익 계산 그 모든 것보다 강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일주일은 제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저는 태안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2007년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던 그곳을요. 해안가에 서서 파도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8년 전 이곳에 123만 명이 달려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현지 주민 한 분을 만났습니다. 60대 여성이었는데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죠. 그때 정말 대단했어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죠. 그녀가 회상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새벽부터 밤새도록 끝까지 기름을 퍼냈어요.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심지어 아이들까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왔을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글쎄요. TV에서 보니까 안 올 수가 없었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녀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우리 바다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또 그 표현이 나왔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 한국인들에게는 정말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IMF. 근무기 운동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한 70대 할머니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결혼 반지를 내놓으셨다고요?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네 50년 끼고 산 반지였어요. 할머니가 손가락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자리가 하얗게 남아 있어요. 반지 낀 자리가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후회요. 왜요? 할머니가 오히려 의아해 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반지가 무슨 소용이에요? 나라가 먼저죠. 저는 그 순간 무릎을 칠 뻔 했습니다. 나라가 먼저 먼저 우리가 먼저 공동체가 먼저 이것이 한국인의 우선순위였습니다. 저는 2016년 촛불 집회 현장도 찾아가 봤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선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1700만 명이 모였다는 것이 한 40대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당시 매주 토요일마다 지표에 참석했다고 했습니다. 힘들지 않으셨어요? 매주 나오는 게 힘들었죠. 추웠고 시간도 많이 걸렸고 그가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런데 왜 계속 나오셨습니까? 내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나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걸 우리나라 문제잖아요? 내 문제이기도 하고 저는 일주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저는 노트에 메모를 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다. 위기가 오면 회의하지 않고 출동한다. 규칙이 없어도 움직이고 강제가 없어도 협력한다. 내 손해보다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다. 보스턴에 도착해서 저는 곧바로 연구실로 갔습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원고를 열고 전면 수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제목을 바꿨습니다. 원래 제목 동아시아의 동일성 유교 자본주의에 합리적 선택 새 제목 한국 예외의 증거 합리성을 넘어선 공동체 그리고 서문을 새로 썼습니다. 나는 40년간 한국을 가르치려 했다. 그런데 한국이 나를 다시 가르쳤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인간은 손익 계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내 손해보다 우리의 안전이 먼저인 본능이 작동한다. 저는 계속 썼습니다. 한국은 그것이 단 한 번의 미담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임을 증명했다. 이것은 우월함이 아니다. 다릅니다. 그리고 배움이다. 새벽까지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한국 챕터를 완전히 새로 쓰고 일본과 중국 챕터도 수정했습니다. 비교의 틀을 바꿨습니다.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강조했죠. 며칠 후 저는 출판사에 연락했습니다. 원고 수정이 완료됐습니다. 편집자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정말 전면 수정하셨습니까? 네 한국 부분은 완전히 다시 썼습니다. 제 이전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명확히 했고요. 교수님 그러면은 책의 핵심 논지가 바뀌는데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게 맞습니다. 진실이 제 이론보다 중요하니까요. 편집자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교수님 많은 학자들이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그해 겨울 제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총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저는 결론 챕터를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을 설명하는 건 제도가 아니라 행동의 본능이다. 그 본능은 2000년 역사가 만든 것이고 400년간 반복되며 검증된 것이다. 돈을 내라고 한 적 없는데 스스로 내놓는 문화 분노해도 폭력 대신 질서를 선택한 군중 국가가 아니라 사람부터 살리는 선택 이것이 한국이다. 저는 마지막 문장을 조심스럽게 썼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64년 인생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겸손함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저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40년간의 오류를 바로 잡았고 새로운 진실에 다가갔습니다. 그것은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며칠 후 헌팅턴 교수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스탠리 교수님 새 원고를 읽었습니다. 훌륭합니다. 그의 메일은 계속되었습니다. 35년 전 제가 처음 한국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서양 학자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다르다고 하면 다들 웃었죠. 이제 교수님이 증명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답장을 썼습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저입니다. 교수님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으니까요. 저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진리를 찾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 이론을 증명하는 것인가? 저는 40년간 후자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습니다. 진정한 학자는 진리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국이 저에게 그 겸손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6년 1월 저는 은퇴를 한 달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버드는 은퇴하는 교수에게 마지막 강의 기회를 줍니다. 40년 경력을 정리하는 자리죠. 강의 제목을 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정했습니다. 내가 틀렸던 것들 한 경제학자의 고백 동료 교수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리처드 마지막 강의인데 왜 실패를 이야기하려고? 한 선배 교수가 물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실패해서 배운 게 성공해서 배운 것보다 많았으니까요. 1월 25일 마지막 강의 날이 왔습니다. 하버드 최대 강의실이 학생들로 가득 찼습니다. 수백 명 정도가 모인 것 같았죠. 제자들뿐 아니라 다른 학과 교수들 언론인들도 보였습니다. 저는 연단에 올라 청중들을 둘러봤습니다. 40년간 이 자리에 서서 수많은 강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 떨린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틀렸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40년간 저는 하나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손익 계산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죠. 저는 첫 슬라이드를 띄웠습니다. 화면에 복잡한 수식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제가 평생 연구한 인간 행동의 공식입니다. 비용과 편익 효용과 만족 모든 것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가 제 공식을 모두 깼습니다. 다음 슬라이드에 태극기가 나타났습니다. 한국입니다. 강의실이 툴렁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달간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심포지엄에서 헌팅턴 교수와의 만남 런던 세미나에서의 논쟁 서울 방문에서의 깨달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 때 123만 명이 자발적으로 달려갔습니다. 데이터를 보여주며 설명했습니다. 제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 이익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근무기 운동 때는 351만 가구가 결혼 반지까지 내놨습니다. 촛불 집회 때는 1700만 명이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저는 각 사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달은 것을 공유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압니다. 인간은 공식을 넘어섭니다. 강의실 뒤쪽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40년간의 연구가 무의미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제 1 프로는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됩니다. 미국인도 유럽인도 많은 아시아인들도 손익으로 움직이죠. 저는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외에서 배워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슬라이드를 띄웠습니다. 화면에 제 1983년 논문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제가 젊은 시절 쓴 논문입니다. 저는 당시에 오만함을 고백했습니다. 저는 한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완전히 틀렸죠. 왜 틀렸을까요? 저는 청중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숫자만 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 못했죠. 저는 독일로 간 광부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금의 90%를 송금한 사람들 베트남 파병 군인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험 수당 전액을 나라로 보낸 사람들 중동 건설 노동자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180만 명이 사막에서 흘린 땀 이것이 한국의 경제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합리성이 아니라 헌신이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저는 미소 지으며 답했습니다. 겸손함입니다. 저는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는 화면에 새로운 문구를 띄웠습니다. 한국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들 첫 번째 공동체는 때로 개인보다 강하다. 두 번째 위기에서 회의보다 행동이 먼저일 수 있다. 세 번째 규칙 없이도 질서가 가능하다. 네 번째 강제 없이도 협력이 일어난다. 다섯 번째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합리적이다. 이 모든 것이 제 이론과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현실에서 작동했습니다. 400년간 반복적으로요. 저는 마지막 슬라이드로 넘어갔습니다. 화면에 제 새 책 표지가 나타났습니다. 한국 예외 증거 합리성을 넘어선 공동체 이것이 제 마지막 저서입니다. 저는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40년 경력의 끝에서 저는 처음으로 진정한 학문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진리를 찾는 것이지 자기 이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강의실이 숙연해. 졌습니다. 저는 마지막 말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학자가 되려면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좋은 학자가 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64년 인생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64세에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더 일찍 배우시길 바랍니다. 강의를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립 박수였습니다. 500명의 청중이 모두 일어나고 박수를 줬습니다. 저는 연단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40년 교수 생활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한 대학원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교수님 오늘 강의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학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어요. 또 다른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은퇴 후에 뭐 하실 계획이세요? 저는 미소 지으며 답했습니다. 한국에
다시가 보려 합니다.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그날 저녁 저는 연구
정리했습니다. 40. 년간 모아온 책들 논문들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하나씩 내리며
되새겼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사진 국제학회에서 받은 상들 제자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들 모든 것이 소
하지만 가장. 태안. 챙긴.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사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독일 파견 광부. 저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한국을 특별하게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잠시 생각하고 답했습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가장 값진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제 새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한국 예외의 증거 합리성을. 넘어선 공동체 출판사에서 기념 행사를 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참석했죠.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게서 배운 것을 정리한 책이죠. 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한국을 특별하게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잠시 생각하고 답했습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르다는 의미죠. 저는 설명을 이었습니다. 한국은. 2000년간 생존을 위해 공동체 우선의? DNA를 발달시켰습니다. 이것은 어쨌든. 다른 문화와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단지 다를 뿐이죠 그리고.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저는 화상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한국 기자가 물었습니다 교수님. 한국
는 배워야 합니다. 최근 출판되자마자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 선택. 저는 강조했습니다 이것들을 잃지 마십시오. 교수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코 답장이. 왔습니다. 스탠리 교수님 한국에. 오신다니 기쁩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저는 계속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본능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 이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돈을 내라고 한 적 없는데 스스로. 내놓는 문화 분노에도 폭력. 대신 질서를 선택하는. 지혜 국가가 아니라 사람부터 살리는 선택? 저는 강조했습니다 이것들을 잃지 마십시오. 비행기가 이륙하며 저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보스턴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40년을 보낸.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앞을 보고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어울러 가는 동안 저는 창밖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좋습니다. 한강에 비친 불빛들이 반짝였습니다. 저는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 한국을 이해하려 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겸손함을 배웠고 개방성을 배웠고 진실에 대한 존중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알았습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예외가 아니라 인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공동체가 개인보다 클 수 있다. 증거 손익을 넘어선 헌신이 가능하다는 증명 위기에서 회의보다 행동이 먼저일 수 있다는 신뢰 이것이 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64년 만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인의 이런 DN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만히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라는 생각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오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DNA는 수천 년 역사 바닷가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만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해 주시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해외 감동 사연을 소개해드리는 스페셜 코리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