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托鉢’/양관(良寬, 일본 선승)
吾れ亦是釋氏子
一衣一鉢迥灑然たり
君見ずや淨名老人嘗て道う有り
食に於て等しき者は法も亦然り
直下に恁麽し去るも
誰か能く兀兀として驢年に到る
譯]
나도 또한 석가모니의 자식(제자)
몸에 지니는 것은 가사와 발우뿐
그 옛날, 유마 거사가 말했던 것을
그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음식을 받기에도, 불법을 베풀기에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말을 듣고는 금방 알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가 능히 분명히 당나귀해에 이를 수 있을까
(불법을 회득會得할 수 있을까)
*
나도 석가의 말손末孫의 말제末弟의 1인에 줄서고 있다.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가사뿐,
가지고 있는 것은 음식의 보시를 받는 발우뿐.
옛날, 유마 거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말로는 금방 알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도대체 누가 佛法의 진실한 경지를 회득會得할 수 있을까.
*
이 詩는 ‘托鉢’이라고 제목한 19句로 되는 漢詩의 후반의 부분이다.
탁발이란 ‘걸식乞食’ 혹은 ‘걸행乞行’이라고도 하고,
승려가 발우를 가슴에 들고, 집 한 채 한 채 문앞에 서서 보시를 받는 것이다.
승려는 그것에 의해 생명을 잇는다.
이것은 석가가 정한 수행의 12 두타頭陀의 하나로,
‘비구가 자신의 色身을 살리기 위하여 음식을 타자에게 비는 것’
이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중요한 수행이다.
그러나 이 托鉢(보시행)은, 실제로는 매우 엄격한 것이다.
다리는 피곤하고, 겨울은 춥고, 끊어지는 일도 있고, 때로는 찬 물벼락을 맞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음식에 있어 동등한 것은 법 또한 그렇다.”라고 있는 것은,
가고 싶지 않은 집이라도, 반드시 순번에 따라 문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보시를 해줄 것 같은 집에만 가는 것은 수행은 안 된다.
이와 같은 수행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펼 때,
상대가 어떠한 사람이든 평등하게 베푼다고 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良寬 스님은, 生涯, 이 托鉢의 정신에 의해 살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