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에서
이월 중순 일요일이다. 어제는 근교 농촌의 작은 마을도서관으로 나가 책을 펼쳐 보다가 같은 시간대 열람실에서 열린 수제 레몬청 만들기에 합류해 의미 있는 체험을 했다. 진해 북원로터리 인근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강사가 재료들은 준비해 와 빈자리만 채워주면 되었다. 세척된 레몬을 잘라 백설탕과 함께 말린 히비스커스 꽃잎을 넣으니 색이 붉게 우러나오고 맛은 한결 상큼했다.
소모임 알림방 행사 공지에서 신청자 중 결석이 생겨 참여했는데 나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레몬만이 아닌 말린 꽃잎에서 독특한 색과 맛을 더하였는데 하와이에 자생하는 꽃의 잎을 말린 재료였다. 나는 강사에게 우리 주변 꽃밭에 핀 꽃잎도 따 말려 쓰면 되느냐 여쭈니 검증 안 된 재료는 쓰지 마십사 했다. 곁에서 센터장이 듣고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시다고 거들었다.
일요일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못다 읽고 집으로 가져온 황선엽의 ‘단어가 품은 세계’를 펼쳐 읽다가 음용하는 약차를 재탕 달여 놓고 아침밥을 들었다. 아침 식후 일요일이지만 문을 여는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으로 향했다. 창이대로로 나가 감계 아파트단지를 둘러 무동으로 가는 마금산 온천장행 17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벗어나 굴현고개를 넘어 감계 신도시에서 무동으로 갔다.
동전 일반 산업단지를 지난 무동 아파트단지에서 산기슭에 자리한 도서관을 찾아가자 사서만 출근하고 열람자는 드문 시간이었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2층 열람실 단추를 누르니 동승 여직원이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으니 3층 학습실에서 기다리십사 했다. 나는 친절한 안내에 고마움을 표하고 문밖에서 얼마간 기다리면 된다면서 먼저 내려 복도 의자에 앉아 잠시 대기했다.
정한 시각 출근한 사서가 문을 열어 제1착으로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역사와 지리 분야 책이 꽂힌 서가로 갔다. 내일 강원 삼척으로 고적 답사를 떠나려고 열차표를 예매해 놓아 그곳의 여행 정보를 살펴봤다. 평일임에도 열차표가 만석이라 포항에서 삼척까지는 입석이었고 귀로는 역시 동해선으로 밤늦게 신해운대역에 내려 심야버스로 창원에 닿으면 날짜 변경선을 넘길 듯하다.
강릉에는 내 발길이 몇 차례 닿았으나 삼척은 지나치기만 했다. 정철이 남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 일대를 둘러 울진 망양정까지 내려온 동선에서 삼척의 죽서루도 그곳 팔경 하나로 꼽았다. 죽서루를 둘러 미수 허목 동해척주비만 살피고 돌아올 예정인데 다른 고적은 곁눈으로 스칠 참이다. 삼국유사 수로부인 설화 현장과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를 기린 공원도 어딘가 꾸며 놓았다.
여행 정보 지리책은 발췌독으로 끝내고 아까 서가에서 뽑아왔던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펼쳤다. 일간지 연재와 종편 방송에서 역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한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국내 곳곳을 탐방한 사진을 곁들여 소개한 책이었다. 그는 땅에는 흔적이 남고 문헌에는 기록이 남는다고 했다. 삼척 연안 속섬은 영국의 세계적 사진작가가 남긴 소나무를 찍은 촬영지이기도 했다.
삼척은 우리 역사에서 세 왕조 흥망사가 공존했다.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마의태자와 같은 형제였을 한 아들은 왕건으로부터 삼척을 봉토로 받은 실직군왕이 되었고 그의 손자 무덤이 있었다. 고려가 망할 때 공양왕은 아들과 함께 그곳까지 쫓겨와 이성계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된 고개가 사래재였다. 경기 고양에 공양왕 무덤이 있으나 삼척에도 잘린 목을 묻은 봉분이 있었다.
조선을 개창한 이성계는 전주가 본향으로 삼척에 그의 5대조 양무가 묻힌 준경묘가 있었다. “육룡이 나르샤 ~”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에서 목조 할아버지가 잠든 곳이다. 역사 탐방 전문기자가 발품 팔아 쓴 책에서 ‘왕조 스캔들’편에는 대권을 놓고 궁궐 종친과 신하가 합종연횡으로 암투를 벌인 과거사는 오늘이라고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25.02.16
첫댓글
ㅎㅎㅎ
찻물에 감초도 보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