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운 코로나 난민
첫 번째
우리 의사 수필모임 수석회 회원이고, 전 아주대 총장으로 의대교수를 정년으로 마친 후 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이 분 덕에 시니어 의사클럽에서 재작년 해설이 있는 리움 미술관 관람과 태평양 화랑의 구경, 작년 현대 화랑의 전시회, 그리고 늦가을 오크 밸리 뮤지엄 산의 관람 등으로 우리들에게 미술 감상의 지평을 넓혀 주시었다. 또 자유칼럼에 정기적으로 정론을 올리시는 분이시고. 국내외 미술전시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시며 얼마 전 미국 LA에 미술전시회 구경을 가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귀국 편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하여 난민이 되셨다는 소식이 우리 카톡 방에 올라왔다. 귀국하여 하실 강의와 회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서. 그래도 LA 근교의 트래킹 코스를 다니신다는 글을 올린 걸 보면 다행이다.
두 번째
내가 서울 고등법원 조정위원을 오래 동안 하여 지금은 부위원장이다. 해마다 봄가을로 조정위원 야유회를 가는데. 장소가 대충 결정이 되면 사전답사를 가서 걸리는 시간과 볼거리 등, 가장 중요한 식사 장소 및 내용까지 검토를 한다. 고등법원 조정위원 총무인 김사장은 나보다 연배는 조금 낮으나 활동적이고 이런 일에는 솔선을 하여 일을 한다. 자신의 IT 회사를 가지고 있고 장한평에 빌딩도 소유하고 있는 능력자이시다. 작년 10월 야유회 사전 답사로 비무장 접경지대인 양구 두타연 계곡을 구경하고 점심식사 후 12사단 을지 전망대에서 펀치볼 구경, 그리고 귀경 길에 박수근 미술관을 다녀오며 좋은 차 앞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 ‘박사님 저 내년 겨울에 뉴질랜드에서 한 달간 살다 오겠습니다.’ 이 분 역시 귀국 편을 못 구해서 난민이시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분 다 부부가 같이 가있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는데 큰 걱정을 없이 재미있게 보낼 것이다.
세 번째
서울과 동경을 갔다 왔다 하면서 에니메이션 등 자그마한 사업을 하는 나의 친척 여동생은 지난 2월 27일 보낸 카톡 소식이 ‘건강관리 잘 하세요. 저는 일본에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있네요.’ ‘나의 답 글은 ’아이고 딱해라.‘
위의 셋 모두가 내 가까운 코로나 난민이다.
국내로는 분당의 종합병원에 순환기 내과에 근무 중인 내 직계 제자, 중앙의대를 나오고. 내 밑에서 내과 전공의를 마친,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의 발생으로 자가 격리 중이라는 소식이 페이스 북에 올라왔다. 내가 쓴 답 글이 ‘한 이틀이라면 몰라도 2주라면 갇혀서 뭘 하지?' 격리가 해제되었다는 뉴스도 떴으나 다시 몇 명의 환자가 더 발생하여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대구의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역시 내 직계 제자, 중앙의대를 나오고. 내 밑에서 내과 전공의, 그리고 마친 뒤 역시 내 밑에서 신장내과 전임의 2년 후 지방병원에서 근무 중 처가 대구법원에 발령이 나서 나에게 의논을 하여 당연히 네가 처한테로 가야지. 하고 대구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이 친구야 말로 코로나 방역 최일선에서 일하는데. 얼마 전에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 오늘 100명의 검체를 검사하였더니 다섯 명의 양성 환자가 판명되었다고. 이 집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왜냐하면 집에는 부인과 세 자녀가 있는데 D4 방호복을 입고 일하다 퇴근 때 벗고 집에 가면 혹시 식구들한테 감염이 될까봐 집에도 못가고 병원에서 숙식을. 네 살짜리 아들이 스마트 폰 화상 통화로 ‘아빠 몇 날 밤 자고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울컥해진다.
사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및 간호사인 의료진뿐만 아니라 지난번 은평 성모병원처럼 앰블란스 기사까지 모두 노출이 되어 있다.
첫댓글 우한코로나 방역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이산가족이되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집 식구들에게 옮겨줄까봐 이산가족으로 지내는 것에 공감이 갑니다. 나중에 진짜 훈장을 받을 사람들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