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 (Fernand Léger, 1881.2.4~1955.8.17)
아르장탕 출생. 처음에는 캉의 건축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1903년 파리의 미술학교에 들어가, 제롬과 페리에에게 사사하는 한편, 루브르나 아카데미 쥘리앙에 다니면서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감화를 받았고, 마티스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1907년경 세잔의 작품을 계기로 화면구성이나 공간표현을 연구하게 되었다.
1910년 피카소와 브라크, 아폴리네르, 들로네 등과 사귀어 입체파(큐비즘)운동에 참가하여, 대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들로네와 같이 정물화다운 제재(題材)보다 자연과 인간생활의 큰 구도를 즐겨 다루면서 단순한 명암이나 명쾌한 색채로써 대상을 간명하게 나타냈고, 원통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기계문명의 다이나미즘과 명확성에 이끌려 그것을 반영한 다이내믹 입체파라는 경지를 이루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었으나, 이 전쟁의 체험을 통하여 기계와 인간의 공동작업이라는 새 시대의 주제에 눈을 떠 명쾌한 포름과 순색(純色)의 평도(平塗) 등 기계적인 표현으로 나아갔다. 르 코르뷔지에와 몬드리안 등과 사귀어 추상주의에도 관심을 보여, 회화와 건축, 인쇄 ·영화 ·연극 등과의 관련에 관심을 보여 현대 사회생활의 요구를 반영하고 생활의 실감을 존중하는 제작을 의도하였다.
유채화 ·소묘 ·판화에서 벽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등에도 손을 대어 폭넓은 활동력을 발휘하였다. 1920년대에는 전위영화 《발레 메커닉》(1924) 등 무대장치와 영화 ·발레 관계 일에 종사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곡예》나 《자전거 타기》 등을 제작하였다. 1945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46년 아시교회의 정면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고, 오댕쿠르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나 태피스트리 등 광범위한 일에 종사하여 간명하고 힘센 평면적인 표현을 통하여 기계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였다. 1960년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의 비오에 레제미술관이 개관되었다.
[레제의 작품 세계]
Nudes in the Forest
oil on canvas, 1909-11,120 x 170 cm, State Museum Kr?ler-M?ler, Otterlo, The Netherlands
The Card Players
Oil on Canvas, 1917, 129 x 193 cm, State Museum Kr?ler-M?ler, Otterlo, The Netherlands
The City
Oil on Canvas, 1919, 230.5 x 297.7cm,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생동하는 풍경
Oil on canvas,1921, 파리 개인소장
많지는 않지만 레제에게는 몇 점의 도시 풍경 또는 시골 풍경을 다룬 풍경화가 있다. 이 풍경에는 ANIME란 형용사가 달려 있는데, '생명을 불어넣은' 또는 '생기 있는' 등으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편의상 표제와 같이 하였다. 기계 문명에 둘러싸여 숨막힐 듯한 인간이 자연속에서 생기를 되찾는 그런 관점에서 이 작 품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하는 식의 캐치 프레이 즈는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도 도시인이 본 전원의 소박한 좋은 점을 담담하게 표현하였을 뿐 이다. 인간적 정감이 결여된 추상의 세계에서 방황하던 레제는, 현실로 돌아와 현대 문화의 특징 을 나타내는 구상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그것이 '메카니즘'이란 결론을 얻게 되고, 자연 모두를 기계와 같이 양식화하여 표현하다가 1920년 후반경부터 물체를 기계화하는 특징이 줄어 이 그 림과 같은 표현이 시작된다. 이 그림에서도 간결 명쾌한 표현으로 전원이 감싸 주듯 온화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Three Women
Oil on canvas,1921, 6'1/4" x 8'3",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역
Oil on canvas,1923, 파리 개인소장
주제는 역, 그러나 감상은 전혀 없다. 역건물의 거대함과 비정함이 이 화가를 매혹했는지 모르겠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기본으로, 사선이나 원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웅장한 건축미를 표현 하고 있다. 이런 주제를 그가 즐겨 그린 것은, 그가 건축가로서 출발한 경력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 다도 현대 문명이 이루어 놓은 환경의 미를 적극적으로 다루어 보려는 의도가 더 컸을 것이 다. 이 그림은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가 아주 쉬운데, 그것은 노르망디의 소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란 그는 본질적으로 촌사람이며, 노동자였기 때문에 서민을 항상 사랑하였다. 그는 '앞으로 의 자기 예술은 대중을 위한 봉사라야 한다.'고 믿고, 서민 생활을 찬미하려는 노력으로 일관 하게 되는데, 서민을 위해서는 '알기 쉬운 그림, 분명한 그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그 결과 '간결에의 복귀'라는 결론을 얻게 되어, 이 그림과 같은 단순화된 건축물을 그리게 된 것 이다. 단순화와 도식화는 이 그림이 가지는 특색이다. 또 이 그림에서 우리는 명확한 구성적 의도 를 볼 수 있다. 이 특색은 그의 전작품 공통의 것이어서 이 또한 건축가로서의 수업과 무관하 지 않을 것이다.
두 마리 앵무새가 있는 콤포지션
1935-39
대상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또는 기계이든 간에 순수한 조형적 모티프로서만 관심을 가졌으며, 현실적 형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써 그는 이 작품에서도 그렇게 나타내고 있듯, 한 화면에서 여러 모티프를 가져오면서 전체적으로 모뉴멘탈한 내용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다채롭게 잠수하는 사람들
1941년
화면 양쪽의 강렬한 추상적 요소의 강조가 주목을 끈다. 1940년 가을에 마르세유에서 미국행 배를 탔을 때 젊은 사나이들이 해안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광경을 보고 나서부터 '잠수하는 사람' 연작을 남긴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레제는 잠수하는 사람을 주제로 한 4점의 대작을 그리는데 그 중 가장 먼저 시도한 작품이다. 특이한 운동감을 다이나믹하게 발현시키고 있다.
건축노동자들(The Builders)
캔버스에 유화, 1950년, 299.8×200Cm, Musee National Fernand Leger, Biot
레제는 하나의 건물을 세우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여 여러 각도에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커다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조립되는 견고한 철골과 그 선명한 색채, 일하는 사람들의 활력이 넘치는 대작이다. 레제는 이 작품을 통해 문명과 인간의 조화, 형과 색의 선명한 대비 등을 강조하고 있다.
두 마리 새가 있는 노란 배경의 콤포지션
Oil on canvas,1955, 비오 국립 레제 미술관 소장
레제 최만년-죽기 수주 전-의 작품이다. 여기에는 전과 같은 구성력도 이미지네이션도 없지만, 그의 예술에 일관한 콘트라스트의 이 념이 있다. 피카소가 모든 기정의 개념에 도전을 계속하고, 브라크가 안정한 공간을 추구한데 대하여, 레제는 현대 사회의 적극적인 면을 강조하고 찬미하였다. 인간과 자연과 기계화된 사회라는 세 개의 대립 개념의 콘트라스트. 그에 있어서, 콘트라스트는 조화의 동의어라 하여도 좋은 것 이다. 역사, 전통, 지성, 세련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서민을 사랑했고, 노동자란 생각 으로 예술을 창작하였다. 맑은 하늘, 과자 같은 구름, 극채색의 식물, 춤추듯 내려 앉은 두 마리의 새, 극히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 일체의 사상이 단순화되고 순수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이 이상 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갖는다. 그런 경지까지 자기를 밀고 나간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아메리카 시대에도 한 번 이 주제로 그림을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많은 데생과 구아시로 시도하였다가 최종적으로 이 한점을 완성하였다.
Still Life with a Beer Mug
Oil on canvas,1921, 92.1 x 60 cm
The Four Cyclists
The Parade
Two Women Holding Flowers
■ 페르낭 레제 미술관 : 예술에 있어서 『급전성』과 『기능주의』의 조화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서쪽에 해당하는 지방은 'Alpes-Maritimes'지방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이름 그대로 알프스산맥이 바다쪽으로 접한 지대이기 때문이다. 이 지방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으로는‘앙띠브(Antibes)’시의 〈피카소 미술관〉과‘비오(Biot)’시의〈페르낭 레제 미술관〉이 있다. 〈페르낭 레제 미술관〉은 1955년 작고한 작가를 위해 그의 부인인 나디아 레제(NadiaLeger)가 세운 것이다. 1960년에 개관하여 67년부터는 국가에 귀속되었다. 미술관 건축은 앙드레 스베친(Andre Svetchine)에 의한 것으로서, 레제의 예술에 맞게 매우 모던하고 기능적이며, 레제의 두 가지 작품이 기념비적 방식으로 돋보이도록 설계되었다. 500평방미터에 이르는 전면에는 레제가 원래 하노버(Hanover)의 한 운동경기장을 위해 제작했던 구성적 작품 프로젝트가 모자이크와 세라믹으로 제작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레제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된 대형 스태인드글라스가 발견된다.
1987년에는 미술관 면적이 거의 두 배 가까이 확장되어, 소장중인 348점의 작품 거의 모두를 전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소장 작품은 페르낭 레제의 전 작품에 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레제는 입체파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다. 1912년 작 〈푸른 여인〉은 곡선과 직선, 평면과 입체면, 강한 색조와 중간 색조 등의 체계적 대비라는 특성을 통해 이러한 회화적 탐구의 한 결말을 보여준다. 1차대전을 맞아 레제는,“태양아래 솟구쳐 있는 75미리 대포의 모습은 세계의 모든 미술관보다도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고 말하며 새롭게 출현한 미래주의자들의 급진적 주장에 화답한다. 1923년 작〈큰 예인차 Le Grand Remorqueur〉는 전쟁 전의 실험들로부터 단절함과 동시에 일상 생활속에서 기계의 도입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벽화를 통한 대규모의 구성적 경향의 작품들에 전념하였으며, 더욱 진전된 건축 연구를 계속하면서 한때는 르코 르뷔지에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였다. 1930년 작〈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나리자〉는 레제 자신에 의하면, “극적으로 대비된 사물이란 관점에서 보면 가장 모험적인 그림”인데, 그 이유는 하나의 추상적 배경 속에서 유명한 명화의 주인공을 열쇠 꾸러미, 정어리 통조림과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동안 레제는 미국에서 머문다.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인물들이 그 실제적 장소의 공간구조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배치되어 있으며, 1942년 작〈原色 다이빙 서수>는 그 전형적 예로 보인다. 프랑스로 돌아와서 레제는 현대적 삶의 취향을 정치 사회적 의미와 결합시키는 경향의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붉은 바탕 위의 여가, 1949〉,〈캠핑하는 사람들, 1954〉등은 이런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역시 말년작으로서 다양한 원색의 도판(陶板)으로 제작한 부조물인〈앵무새를 가지고 있는 여인, 1952〉도 눈에 띈다. 레제는 도시 및 주거 환경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에 대해서도 열정적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회화뿐만 아니라, <목욕하는 여인들과 프랑스의 하늘> 같은 타피스리 작품, 나아가 브론즈, 모자이크, 스테인드 글라스 등을 다수 제작하였다.
첫댓글 귀한 그림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