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찾아간 그 누각
입춘 이후 소한 대한보다 더한 추위가 닥쳐 한동안 머물다 정상을 되찾은 듯하다가 다시 추워진다. 봄은 앞으로만 나아가질 않고 후진하거나 제자리걸음으로 머뭇거리기도 한다. 지난번에 이은 2차 한파가 한반도로 닥칠 거라는 이월 중순이다. 월요일 아침 예매된 열차표로 제법 먼 곳으로 길을 나섰다.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진주를 출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밀양을 지났다.
창밖은 청년기 자주 오르내린 청도와 경산 일대 풍광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동대구역에 닿아 역사를 빠져나가지 않고 선로만 바꾸어 포항까지는 KTX로 갔다. 포항에서 강릉이 가까운 삼척까지는 꽤 먼 동해선 선로 itx마음은 입석으로 갔다. 예전 7호 국도는 새롭게 뚫려 해안과 거리를 두었고 철길도 터널 통과가 잦아 차창 밖으로 동해 검푸른 망망대해 구간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포항에서 영덕을 지난 후포역에 잠시 멈췄을 때 차창 밖으로는 검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젊은 날 이공계를 나온 친구가 한전 신입사원이 되어 울진 부구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근무했다. 나는 초임으로 밀양 얼음골로 부임했는데 방학이면 친구를 찾아 며칠씩 머물다 와 시외버스로 오르내린 해변이다. 당시 7호선 국도는 바닷가로만 다닌 옛길은 확장되면서 풍경이 달라졌다.
평일 열차표를 나흘 전에 예매해도 입석으로 가야 하는 처지였는데 통로에 예비석이 있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객실보다 자유롭게 차창을 내다보고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 울진에서 삼척이 가까운 근덕에 이르자 아까 후포처럼 수평선이 드러난 평원은 파도가 밀려와 하얀 포말로 부서졌다. 지난날 친구가 건설 현장 설계도를 펼쳐 시공한 원자력발전소 고로도 보였다.
삼척역은 석회석 산지답게 양회공장과 인접한 특성이 있었다. 내가 삼척을 찾아감은 두 군데 고적을 답사하려는 일정이다. 먼저 미수 허목이 남긴 동해척주비를 찾아갔다. 초행이라 지역 사정을 잘 몰라 가까운 곳이라도 택시로 이동했다. 역전에서 삼척교를 건너 야트막한 산봉우리 정상에 세워진 비각이었다. 미수는 남인의 영수로 주역과 의술도 밝고 특히 전서체 서예 대가였다.
미수는 관직 진출이 늦은 편인데 중년에 영남 일대에 두루 머물렀다. 부친이 거창 현감을 지내기도 했지만 미수는 의령 칠곡에도 지나갔다. 창원 달천계곡 너럭바위에 새겨둔 달천동(達川洞) 서체가 있는가 하면 후진을 가르친 외감 새터 달천정에는 매년 봄 제례를 올린다. 미수가 판 우물 돌 뚜껑이 거북 형상이라 구천으로 불린다. 칠원 운동에도 미수 행적의 빗돌이 세워져 있다.
목민관 미수가 육향봉에 척주비를 세웠더니 해룡의 노여움을 달래서인지 풍랑과 해일 피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빗돌은 후에 파손을 입어 집자 미수 서체로 복원되어 전해 왔다. 인근에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를 기리는 독도 기념관은 월요일 휴관일 듯해 발길을 돌려 오십천 천변으로 갔다. 장미공원이 잘 꾸며진 천변 매점 실버 일자리 할머니의 길 안내를 받아 죽서루를 찾아갔다.
죽서루는 정철의 관동별곡 팔경에 나온 명소다. 삼일포 총석정부터 울진 망양정까지 바닷가 절경인데 죽서루만 삼척 내륙 오십천 천변에 백두대간을 바라본 서향이다. 7칸의 둥근 기둥이 들보를 받친 팔작 기와지붕은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보는 듯했다. 중수기가 걸려 있음으로 미뤄 후대에 수리를 한번 한 듯했다. 관찰사로 다녀간 송강의 시를 비롯해 명사의 차운시가 걸려 있었다.
죽서루 누각 곁에 정철의 가사 문학비가 세워져 있고 최근 진주관이 복원되어 있었다. 주변에 향교나 서원에서 흔히 보는 학자수로 불리는 고목 화화나무가 여려 그루였다. 죽서루에서 중앙시장으로 들어 요기를 때우고 가자미 무더기와 학꽁치 생선회를 사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을 채웠다. 갈대가 색이 바래진 오십천 천변을 걸어 삼척역으로 나가 부전행 itx마음을 타고 어둠을 달렸다. 2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