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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설명하는 우메다 료스케 씨와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 (사진 제공 / 이케나가 오사무) |
우메다 료스케 씨는 35년 전 일본 시마네 핵발전소와 츠루가 핵발전소에서 1년간 일을 한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코피가 자주 나고 울렁거림과 현기증이 계속돼 수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나가사키 대학 병원에서 전신검사를 하고 나서야 원인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체내에서 코발트와 망간, 세슘 등이 검출되면서 방사능 피폭 의심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메다 씨를 고용했던 하청업체나 핵발전소 운영 기업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백혈구 이상과 심근경색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소송을 내고 수년간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2일 우메다 씨의 소송을 맡고 있는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가 한국을 찾았다.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가 개최한 탈핵 강연회 ‘굿바이 원전’에 참석해 일본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우메다 씨의 재판은 개인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방대한 숫자의 피폭 노동자 모두를 구제하기 위한 재판”이라고 설명했다.
우메다 씨가 핵발전소 두 곳에서 맡았던 일은 원자로에 생긴 균열에 납땜을 하는 보수작업이었다. 이외에도 우메다 씨는 느슨해진 볼트를 조이는 등 본래 자신이 맡지 않았던 일도 해야 했다. 일본에선 우메다 씨와 같은 핵발전소 노동자를 ‘원전 집시’라고 부른다. 각 핵발전소의 정기점검기간에 맞춰 발전소를 옮겨 다니며 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파견된다는 점이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노동자들은 다중의 하청 구조에 속해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위험하다고 하면 누구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메다 씨를 비롯해 피폭의 위험을 알지 못했던 대다수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작업을 마치기 위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을 했다. 방사능 수치를 알려주는 선량계를 받기는 했지만, 선량이 높은 구역으로 들어갈 때는 밖에 있는 동료에게 선량계를 맡겼다. 누적 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그날 작업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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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 |
이케나가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정해진 기간 안에 작업을 끝내고 일당을 받기 위해 스스로 선량을 낮췄다. 피폭의 공포를 모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우메다 씨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낮은 피폭선량이었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우메다 씨의 선량계 수치는 선량이 낮은 곳에서 선량계를 맡아 뒀던 사람의 선량이었다. 우메다 씨의 정확한 선량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오늘날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상황이 30년 전 우메다 씨의 경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을 우려했다. 여전히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다단계와 비슷한 구조로 여러 곳의 하청업체를 거쳐 파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발전소 운영 기업과 하청업체는 안전교육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노동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를 책임질 주체는 불명확해진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관리구역 안에 들어간 총 연인원이 100만 명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핵발전소 밖에서는 노동자와 심지어 시민들까지 제염작업에 동원돼 피폭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핵발전소는 인해전술을 통해 가동된다고 할 수 있다. 핵발전소는 사람의 목숨을 원동력으로 하는 비인도적인 발전시설”이라고 말했다.
▲ 3월 22일 서강대학교 다산관,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 강연회 (동영상 제공 / i Kol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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