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인터뷰를 가진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질문-정리/ 정운현, 손병관 기자 사진/ 권우성 기자
" '작가 폐업'이라는 글 읽어봤어? 그거 안 읽었다면 인터뷰 못하지..."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57)은 인터뷰 전 한담(閑談)을 할 때부터 질문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모 정치인(결국 모두가 알게 되겠지만...^^)의 팬클럽 홈페이지에 올라왔다는 문제의 글은 "눈물나는 작품 하나 쓸려고 해도 못쓰겠는데, (인터넷에는) 무슨 작가보다 더한 인간들 투성이냐?"는 한 희곡작가의 '한탄 아닌 한탄'을 담고 있다.
"작가들만 폐업을 고민할 게 아니라 기자들은 '기자 폐업'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정 주간의 첨언은 인터넷 시대의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더욱 긴장하게 된 기자들의 고민을 응축하고 있다.
정 주간은 '언론개혁'이 사회적 논제로 부각됐던 지낸해 일부 거대 족벌언론을 빗대 '조중동' '조폭언론'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인구에 회자시킨 주인공이다. 동아일보 해직, 미국 유학,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진보언론의 대명사'인 한겨레의 논조를 결정짓는 자리에 오른 정 주간은 23일 오후 동아일보에 대한 '애증'에서부터 한겨레의 재정적인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언론집단의 책임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정주간 인터뷰는 지난 10일자 보도된 경향신문 강기석 편집국장에 이어 두번째다.<편집자 주>
"동맹하자?.. 바로 이게 조폭 아니고 뭐란 말인가"
-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2000.10.11)를 쓴지 1년 반만에 다시 '조폭언론'을 주제로 한 칼럼을 썼는데 어떤 의미인가?
" '조폭'이라는 표현만 안 썼을 뿐이지 그 후에도 언론문제 제기하는 글은 계속 써왔다. 1년반 전에 글을 쓴 이후 작년 세무조사가 있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를 부활시키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조폭'이라는 표현을 다시 쓴 것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갑자기 부상하는 상황에서 색깔론, 음모론, 신문사 국유화 발언을 토해내는 조중동의 행태가 진짜 조폭적이었기 때문이다.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조폭 언론'이라는 말을 쓰게된 것은 동아일보에서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2000년9월9일)는 기사 나오고 난뒤 우연히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 기사를 지적했더니 그 기자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 (회사)안에서도 우리가 조폭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몇몇 족벌 1인지배 신문의 행태를 두고 '조폭적'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세무조사 할 때는 (조폭적 행태가) 더 했고, 조선일보 노조가 동아일보 노조에게 '동맹'하자는 제안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바로 이게 조폭이 아니고 뭐냐 하는 생각이 다시 들더라."
- 일부 신문의 '조폭적 행태'란 구체적으로 어떤 행태를 뜻하는가?
| ▲ "사주 한 명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따라가는 게 과연 '변화'인가?"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색깔론, 음모론, 언론사 국유화 발언에서 조선.중앙.동아 세 신문이 똑같았다. 이번에도 동아 내부의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이게 조폭 아니냐'는 자조적 표현이 나왔다고 하던데... 색깔론 등의 보도를 보며 그 동안 전혀 고쳐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고 (행태가) 그대로 반복됐구나 생각했다. 1인지배 세습의 소유구조가 이런 행태를 결정지은 게 아닌가?
최근들어 조선, 중앙이 조금 바뀌고 있다는 그것도 얘기도 따지고 보면 '조폭적'인 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소속원 전체의 의견을 모아서 그를 토대로 변화의 의지가 나온 게 아니고 사주가 어디로 가야한다고 하니 소속원들이 그것을 추종하고... 이런 행태야말로 1인 지배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것 아닌가?
또 '신문사 국유화 발언' 논란을 보자. 그날 술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런 발언이) 없었다고 하는 데 검증도 안된 내용을 따옴표에 가둬서 제목으로 뽑아댔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팩트가 확인돼도 정권의 압력으로 제대로 못썼다. 예를 들어 '물가 인상'은 '물가 현실화', '데모'는 '학원사태' 또 DJ(김대중)를 '모 재야인사'로 표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팩트가 확인될 경우 제대로 쓸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팩트 확인이나 검증은 하지도 않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하지 않나? 불공정 보도의 전형이다.
"설훈 의원의 폭로는 한나라당이 진실 밝혀야 하나?"
어느 신문 사설은 이인제씨가 제기한 '음모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인제를 추궁하지 않고 엉뚱하게 당한 노무현에게 밝히라고 했다. 세상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밝혀야지, 문제 제기를 당한 사람보고 진실을 밝히라는 논리가 어디 있나? 설훈 의원이 최근 '이회창 수뢰설'을 폭로했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설훈 의원이 테이프를 공개할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진실을 밝혀야겠네? 바둑에서 악수 끝에 악수가 나온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논리를 전개하니 계속 그렇게 나온다.
노무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없이 상식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신문기자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일선 기자들은 그렇지 않다. 제목을 뽑고, 사설 쓰는 건 데스크나 간부들의 몫이다. '조중동'의 논설위원들, 편집국 상층간부들이 정말 문제 많은 것 같다. 그러니 동아의 젊은 기자들이 반발하는 사태가 나오는 것 아닌가?
- 항간에는 조중동 가운데 중앙은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중앙이 달라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 달라진 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은 연초에 '예산의 1%를 대북 지원에 쓰자'고 내걸어놓고도 얼마전에는 정부의 금강산 관광 지원을 두들겨대는 사설을 썼다.
따지고 보면 중앙 역시 보스가 '방향 틀어!' 하고 명령하니까 따라하긴 하지만, 밑에선 잘 안도는 모양이다. 그 변화가 일관성이 없고 자연스럽지가 않아 이가 맞게 돌아가는 상황이 아니다. 중앙이 상업적인 측면에서 틈새를 찾으려고 변화의 움직임을 약간 보이고 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결국 '조중동'으로 뭉친다."
- 최근 자사의 일련의 보도태도와 관련, 동아일보 노조 산하 공정보도위원회 소식지에서 내부의 '비판 목소리'를 실었다. 동아일보 기자출신으로서 현재 동아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는가?
| ▲"130여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내가 그분을 잘 아는데, 사실 김병관 전 회장은 동아를 이끌어갈 철학이나 생각이 없는 분이다. 비단 내 얘기만이 아니다. 얼마전 동아투위 27주년 행사 자리에서 김인호 씨(72∼77년 동아일보 광고국장 역임)가 와서 '김상만 전 회장이 아들 김병관 씨를 그렇게 걱정했었다'고 회고하더라. 글쎄, 김상만 전 회장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 아들을 그렇게 파악하더라는 것이다.
과연 김병관 씨가 그렇게 영향력이 강한 신문, 그 거대한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함장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함장은 함량미달이다. 현 동아일보 상층부에 대해서는 사내 권력과 독재정권에 엎드린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김 전 회장을 모시는 상층부 측근들이 시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문이 간다. 대개는 회사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김병관 회장, <동아> 이끌어갈 철학 없는 분"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나는 동아투위를 외면한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지금도 회의를 느낀다. 한 신문사에서 척추 구실을 하는 5년∼8년차 기자들이 거의 다 나왔다. 결국 나중에 여기저기서 '외인부대'를 모아 지금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나의 발언에 대해 편견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는데, 75년 3월17일 130여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회사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동아에 남은 사람들을 너무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들의 행보를 올바른 선택으로 보고 있지 않다. 냉철하게 평가하자면 동아사태 당시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권력에 순응하거나 기회주의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동아의 문제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상층부의 문제다"
- 동아일보에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나?
"나는 조중동 중에서 그래도 동아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지금도 애정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기대도 가장 많이 한다. 좋은 후배들도 많이 있고, 70년대 중후반 자유언론 투쟁의 전통과 '우뚝 솟은 1등'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때는 가장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87년 6월항쟁 때 독재에 저항해 제 역할을 했고 그래서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 ▲"동아는 70년대 유신독재 치하에서 백지 광고를 폭포수처럼 축복처럼 받은, 역사적인 신문이야"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런 것들을 잘 모으면 다시 단연 1등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신문은 제대로 된 경영진과 편집진으로 구성된 '리딩 그룹'이 좋은 일선 기자들과 맞물릴 때 가능한데 동아는 아직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조금만 잘하면 엄청 눈에 띌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조선도 마찬가지지만, 동아가 친일문제에 대응하는 것 보면 정말 바보같다. 도대체 왜 사과를 못 해? 우리가 그 당시 일제 하에서 항일도 했지만 불가피하게 친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면 아마 돌멩이보다는 오히려 박수가 더 많을걸? 대다수 한국사람들 온정주의잖아. 그런데 그걸 못해요.
동아투위 문제의 해결방식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요. 독재권력의 압력으로 불가피하게 그랬다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또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그러라는 거죠. 그리고 그 때 강제해직당한 사람들 몇 부르고 해서 젊은 기자들과 함께 새출발한다고 하면 박수받고 동아일보 잘한다는 소리 들을 텐데... 요새 (동아일보) 끊는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모양인데 그렇게 하면 그런 분위기가 일거에 바뀌지."
"동아는 과거 축복받은 신문... 조금만 잘하면 박수받을 텐데"
- 이 자리를 빌어 동아일보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내가 다른 자리에서도 누누이 얘기했지만, 동아는 70년대 유신독재 치하에서 격려광고를 폭포수처럼 축복을 받은, 역사적인 신문이다. 동아가 정말 조금만 잘 하면 되는데... 젊은 기자들이 스스로 그것을 얻어내야지, 방법은 젊은 기자들이 다들 알겠지. 동아투위 사태 때도 결국은 노조가 힘을 모았다.
지금은 언론사 노조가 대부분 자사이기주의에 휘둘려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동아 노조는 살아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있으니 정말 잘 하면 박수 속에 1등으로 올라설 것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6월항쟁'에 기여한 그 자리를 다시 찾길 바란다."
- 최근 쓴 칼럼에서 "조중동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는데...
"작년에 세무조사하고 신문고시를 부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새 시대의 여명'(2001.6.29)이라는 칼럼을 썼는데 거기서 '이제 조중동의 독과점 체제가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때 젊은 후배기자들은 내 글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 아니냐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지금의 변화를) 느꼈다.
1년 전을 돌아보자. 방송에 조선일보 제호와 건물이 나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수갑 찬 모습이 나올 수 있었나? 여기에 경향신문과 대한매일이 한겨레의 '우군'을 형성해서 조중동에 대해 하나의 '전선'을 형성했다.
특히 방송의 가세가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MBC의 경우 '100분 토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디어비평' 등에서 언론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또 '조선일보'라는 이름을 뉴스시간대에도 내보내는 변화로 이어졌다.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사실 KBS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조금 섭섭하다. MBC만큼은 안돼도 KBS 9시 뉴스를 보면 애매한 양시양비론으로 도망을 간다. 대표적인 양시양비론이 이인제의 색깔론 제기에 대한 노무현의 반응을 가리켜 민주당의 '이전투구'라고 표현한 보도다. 한쪽에서 잘못된 문제제기를 하는 데 대해 정당한 대응을 하는 것을 어떻게 '똑같은 놈'으로 몰아 보도하는가? 기계적인 평등주의,균형감은 결코 온당한 것이 못된다.
어쨌든 조선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방송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조중동이 한국의 여론시장을 쥐락펴락하던 형국이 사라지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색깔론, 음모론이 아니라 조중동이 나서서 미운털 박힌 정치인에게 몽둥이 찜질을 해도 안 통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최근의 '노풍'은 조중동이 1면에 도배질, 떡칠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요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는 방송과 인터넷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조중동 영향력 감소, 방송과 인터넷 영향이 결정적"
- 조중동의 과거 영향력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현재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그런걸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조중동의 영향력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 최근 중앙일보가 여야 경선 후보들의 노선 검증을 숫자로 한 것도 마음에 안든다.
조중동은 양적인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질적인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본다. 동아일보에서는 내부에서 기자들이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가 내부적으로 30대의 젊은 기자들을 논설위원으로 위촉한 것도 자기들이 바뀌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자인한 셈이다. 옛날처럼 대통령 만들기, 특정인 죽이기가 안 통하는 현실을 반영한 거다.
최근 정통부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 숫자를 알고나서 깜짝 놀랐다. 4년전 160만명에서 작년 말 2400만명으로 인터넷 이용자 수가 늘었는데, 도대체 몇 배가 늘어난 거야? '폭발'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조선이 사설 한 번 잘못 쓰면 네티즌들이 나서서 융단폭격을 해대는데 그 공격의 논리도 정연하다. 특히 10년전 자료까지 뒤져서 증거물로 들이대니 꼼짝도 못하더라. 노무현이 '몰매'를 맞고도 살아남은 게, 다 이유가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의 부수가 현저히 줄지는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데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생존방법이라는 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된다. 이미 조중동은 타 신문들과 비교도 안 되는 자본을 축적했고, 공격적인 판촉으로 선점한 시장이 결코 쉽게 안 무너진다.
한 가지, 조중동이 자유시장체제 수호를 얘기하는데, 자기들이 가장 반자유시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그런 말하면 안되지. 신문 대자본의 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면 한경대(한겨레, 경향신문, 대한매일)의 장래는 상당히 암울하다. (지향하는 목표에) 걸맞는 시장 장악력이 없으니 참 안타깝다. 공동판매제 같은 방식으로 돌파구 찾아야 한다."
"대자본 힘앞에 '한경대' 장래 암울... 공동판매제 등으로 돌파해야"
| ▲"가장 반자유시장적인 행태를 보이는 조중동이 자유시장 체제 수호를 말하면 안되지"ⓒ 오마이뉴스 권우성 |
- 본인이 체감하는 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 실태는?
"우리 나라의 신문구독자 실태를 보면 독자들도 엄청나게 잘못 길들여져 있다.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한 것이 대자본이다. 대자본이 없는 신문들은 계속 어렵고, 광고도 조중동으로 쏠리니 조중동의 신문시장 장악력이 더욱 강화되는 형상이 거듭 반복된다.
최근 현직에서 은퇴한 모 선배 언론인이 전화를 걸어와 집에 일주일 정도 있어보니 벨만 울리면 '신문 XX지국에서 왔다'고 해서 나중에 문을 안 열어주니까 이번에는 '선물 가져왔습니다'라며 문을 두드리더라는 것이다. 확인차 문을 열어 보면 신문사 지국 사람들이 진짜로 '선물'을 주면서 '6개월 공짜'에 '1년 정기구독'을 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경품과 6개월 공짜로 독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 가장 흔한 불공정 행태다. 독자들의 전화와 이메일에 '신문고시 어떻게 되고 있냐'는 질문도 많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되나보다 하고 독자들이 지레 포기하고 무디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신문업계에서 자율적으로 한다는데 그게 되고 있나? 정부에서 타율적으로 하라는 게 아니라 규정대로만 하라는 거다."
- 한겨레가 창간(88년 5월) 이후 14년이 흘렀지만 기대만큼 무럭무럭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력 없이 시장을 넓혀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가를 미국서 귀국하고 나서 더 느끼게 됐다. 우리의 몇 가지 현실적인 한계를 보자.
| ▲"우리야 최선을 다하지만 내부 환경보다 외부 조건이 많이 작용하는 게 현실이야"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우리는 현재 윤전기가 한 대 밖에 없어서 그거 멈추면 신문 못 찍는다. 아마 한국에서 백업 인쇄기 없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을 거다. 마감시간도 다른 곳보다 빠르고, 지방 동시인쇄가 안된다. 일부 지역은 곧 동시인쇄에 들어가는데, 동시인쇄가 안되는 곳은 오후 5시에 마감되는 1판을 보내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겨레 지방독자들은 전날밤 프로야구 결과를 가정배달판에서 못 보는 경우도 과거에는 있었다. 다른 곳에서 여러 섹션을 넣는데, 우리는 3섹션 이상 못한다.
또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야 좋은 기사도 나오는데, 창간 이후 한겨레 기자들은 박봉에다 기자 수(210명)도 제일 작고, 반면 노동강도는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지면에 부어넣을 재력도 없고, 작년에는 광고시장 축소로 재정적자까지 겹쳤다.
한겨레, 왜 그따위로 신문 만드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신문제작은 내부환경보다 외부조건이 많이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우선, 잘못 길들여진 독자들이 많아서 판촉에 따라 구독할 신문을 선택한다. 또 한겨레의 경영 마인드가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점도 없진 않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달걀 세우듯이 조중동이 선점한 '마의 벽'을 일거에 깨고 한겨레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사장으로 모실 텐데....
"신문제작은 내부환경 보다 외부조건이 많이 작용하는게 현실"
- 최근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로 어렵고, 이를 타개할 방책은 있는가?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라 '조중동'을 제외하고 '한경대'와 국민, 문화가 다 어렵다. 앞으로 2∼3년 안에 신문업계가 요동칠 거다.
한겨레의 최대과제는 좋은 신문 만들어서 역사발전에 기여하는 신문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부족하고 주어진 조건도 좋지 않은데다 너무 오랫동안 고생해서 구성원들도 지쳐있는 상황이다.
| ▲ "광고주들이 독자층이 겹치는 조중동을 선호하는 것도 문제야."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창간 초기와 89년 8월 리영희 논설고문 구속 때의 열기를 다시 기대하기는 힘들고.. 한겨레의 생존을 위한 물적기반을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증자가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대략 200∼300억원을 예상하고 있는데, 내부 조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증자 빼고는 광고 시장의 호전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나는 낙관적이다.
한 가지, 광고주들이 조중동만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중동은 겹치는 독자들이 많으므로 세 군데 모두 비싼 값으로 광고를 싣는 것은 광고주 입장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조중동 중 하나, 한경대 중 하나, 경제지 중 하나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면 전체 신문독자들의 90%를 잡는 셈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조중동 셋 가운데 광고를 어느 한 곳이라도 안주면 광고주를 기사로 '조지는' 행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광고주들은 '정치적 고려'로 광고를 내는 경향이 엄연히 있다고 본다."
- 한겨레도 광고주의 압력으로 기사가 빠지거나 삭제된 사례가 있는가?
"거대 신문사들에 비해 우리 신문사는 '돈 되는 광고'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 광고 의존율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결국 우리가 광고주의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되지만, 편집이 경영과 철저히 독립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광고주들도 우리에게 무리한 부탁은 안 한다.
모 회사와 큰 광고계약이 있었는데, 그 회사를 '조지는' 기사가 편집국에서 준비되고 있어서 광고국이 엄청 고생을 치른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광고 때문에 '흔들린' 기사가 아마도 있었겠지, 왜 없었겠나? 한겨레는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이 철저히 분리돼 있어서 편집국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연 없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회사 광고국에서는 편집국에 불만이 많다. 우리 구조로 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내가 직접 관할하고 있는 사설면의 경우 사설 바꾸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없고, 당연히 나갈 기사가 빠진 적도 없다."
- '조중동'의 맞수 개념으로 한겨레, 경향신문, 대한매일을 묶어 '한경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용어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우선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그간 한겨레 혼자서 외로웠다. 사람들은 으레 한겨레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가져왔다. 가령 무기구매를 반대하거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한겨레가 평화주의자여서 그런 것인데 그마저도 수구세력들은 '한겨레는 원래 저렇다'며 주변부로 밀어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응원군이 생겨 함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색깔론을 비판해도 (한경대가) 함께 하니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6일자 한경대는 마치 서로 짜고서 한 것이라도 하듯 같은 제목(경의선 연결 합의)을 뽑아서 조중동과 묘한 대조를 이룬 적이 있다.셋이 같이서 거두는 효과가 적지 않다.
양자는 따지고 보면 지난해 언론전쟁 상황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는 가에 대한 입장에 따라 나눠진 개념인데, 이번 '노풍'에 대한 입장에서도 서로 딱 갈라졌다. 조중동과 한경대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신문사 소유구조와 편집권의 독립 여부와 관련이 있는데 이 구분의 핵은 '소유구조'라고 본다.
| ▲"경향, 대한매일의 가세로 '한경대'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언젠가 내가 TV 토론에 나가서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을 주장한 것을 가지고 중앙일보의 한 후배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나를 비판했다는데, 그리 따진다면 그린벨트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하지 않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독과점을 막자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
"공공이익 위해 독과점 막자는 게 왜 잘못됐나"
1인사주 지배구조라도 자기들이 잘만 하면 왜 욕을 먹겠나? 사주가 지금처럼 경영과 편집을 모두 장악하고 권력을 휘들러대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개인소유의 신문이지만 거기서 사주가 칼럼이 맘에 안 든다고 빼고 고치고 했다는 얘길 들어보지 못했다."
- '한경대' 중에서 한겨레가 다른 두 신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공통적인 점도 많지만 한겨레가 사설과 칼럼에서는 아직은 경향, 대한매일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향이 요즘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얘길 듣고 있다. 그러나 대한매일과 경향에는 아직도 과거 지향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 생각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 한겨레 내부에도 세부적으로는 편차가 있고, 그런 것은 적극적으로 얘기하라는 분위기다. 목소리가 다 똑같으면 안 되잖아?
그러나 경향, 대한매일은 방향 자체가 큰 흐름에서 (한겨레와) 같이 못 가는 것을 가끔 느낀다. 그나마 지금은 작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작년에는 경향의 어떤 사설을 보고 그곳 후배에게 어떻게 그런 사설이 나가냐고 직접 항의까지 한 적이 있다."
- 경향의 최근 논조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겨레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글쎄, 평가가 약간 다른데... 한겨레는 원래 그랬고, 경향은 과거와 달라 보이니 큰 변화로 느껴진 게 아닐까? 우리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나오고 나서 8일 연속해서 비판하는 사설 썼다. 아마 경향이나 대한매일이라면 5일 정도만 연속해서 그렇게 써도 아마 큰 뉴스가 됐을걸?"
- 한겨레 지면에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어 갈수록 '초심'을 잃어 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기층 민중에 대한 보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갔다가 2000년 6월 귀국해서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특히 기층 민중에 대한 보도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후배들에게 '가슴에 손 얹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우리는 사회부를 민중들의 기본적 권리에 더욱 관심을 가지자고 '민권사회부'라고 이름지었다. 그런데 내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밖으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반성할 점이라고 본다.
한겨레의 열정이 창간 초기 독재정권과 싸우던 시절만큼은 못하다. 초기 열정이 사라진 것을 더러는 느낀다. 나 자신도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처음의 열정이 무뎌진 것을 느꼈다. 한겨레 내부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또 시대가 바뀐 것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정부의 대립도 현 정부 들어서 많이 무뎌졌는데 앞으로의 정권에서는 더 달라질 지도 모른다. 한겨레는 2년마다 사장, 편집국장을 뽑을 때 항상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고 내부적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음모의 실체는 DJ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 '노풍'의 진원지는 어디이며, 그 힘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 ▲"DJ가 네티즌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 맞춰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 게 음모라면 음모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금부터 얘기는 한겨레의 지면 제작방향과 상관없는, 개인 의견으로 생각해달라.
우선 굉장히 복합적인 양상이라고 본다. 첫째는 여론조사기관, 언론, 전문가 집단도 한국사회의 변화의 깊이와 폭을 몰랐던 거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언론에서는 그냥 이인제와 이회창이 붙는다고 떠들었고, 그 때문에 이민간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탈당할 때 젊은 사람들이 박근혜 지지한다고 한 마음을 몰랐던 거다.
이인제와 이회창이 한동안 대세론 몰이로 거의 '고정출연'을 했는데, 40∼50%에 달하는 '무응답층'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존 정치판에) 시들해 하는지 그 심각성을 몰랐던 거다. 표면 밑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이인제의 음모론이 어떻게 보면 맞다. DJ가 네티즌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 맞춰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 게 음모라면 음모다. 미국도 못한 정보화를 해냈다.
지나온 과거를 복기해보라. DJ의 총재직 사퇴로 민주당이 완전히 오픈 시스템의 국민경선제를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TV 토론회가 있었다. 신문에서 편집한 게 아니라 노무현과 이인제의 표정이랑 말을 그대로 보지 않았나? 침소봉대 없이 실상을 보여주니 그걸 보고 노무현이 솔직하다는 인상을 느낀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제주에서 한화갑이 1등 했는데 이게 엄청난 의미를 준다. 이어 울산과 광주에서 노무현이 연이어 이기며 '이인제 대세론'이 무너졌는데 이인제 입장에서는 '음모' 말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게 기독교 신자들에겐 '하느님 뜻'으로 비쳐졌을텐데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혁명'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음모론, 색깔론으로 접근한다. 하부구조가 바뀐 것을 너무 모른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여전히 20∼30대 투표율이 낮아서 40∼50대 지지율만 가지고 자기들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생각은 올해 대선에서는 20∼30대 투표율이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
'노무현 신드롬'은 세상의 변화를 압축, 상징한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세대교체가 돼 70대들은 다 물러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상고 출신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니 바로 '학벌 타파'로도 이어지지 않겠는가?
"후보 사상 검증해도 이젠 별 영향 못줄 것"
- 최근 일부 신문에서 대선 및 지자체 후보들에 대한 '후보검증위원회'를 구성,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 및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차피 선거 때는 언론이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해야 하는데, 검증위원회를 따로 만드는 게 오히려 우습다.
TV 토론에서 패널들이 질문만 알차게 해도 그게 바로 검증이 되니 TV 토론만 여러번 제대로 하면 (후보 검증이) 된다. 신문에서는 지면제한이 있으니 거두절미, 침소봉대가 흔히 이뤄진다. 특히 최근 후보검증위원회를 구성한 조선일보는 과거의 '전력'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조선이 그 동안 사상검증, 마녀사냥을 했지 않은가?
검증위원회를 만든 게 (조선일보로서는) 자기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런데 이제는 후보의 사상 검증을 한다고 해도 별 영향을 못 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신문의 질과 평판만 악화시킬 뿐이다. 이번에는 옛날처럼 못할 거다.
미국 방송에서는 후보검증을 위해 '진실 규명(reality check)'이라는 것을 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후보들이 연일 쏟아내는 각종 정책, 공약에 대해 실현가능성 여부 및 정도 등을 지속적이고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형태다."
| ▲정 주간과 인터뷰를 하는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오른쪽).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대선에서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시기상조라고 본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의 토론문화가 언론의 (특정후보) 공개 지지, 이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 언론이 누구 지지한다고 하면 바로 '친(親)XX'로 규정해 버린다. 현정권 출범 후 '한겨레는 친여지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DJ 정부의 정책중 한겨레의 지향과 맞는 것은 지지했을 뿐이다.
둘째, 편집국의 완전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신문의 경우 사설로 지지를 밝히는데, 미국은 뉴스와 사설이 엄격히 분리됐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객관적으로 한다. 지금처럼 편집권 독립이 안된 우리 언론의 현실에서는 '편향된 뉴스 제작'에 면죄부를 줘버리게 된다. 즉 사설을 따라 스트레이트 기사마저도 특정후보 지지의 편향보도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셋째, 언론간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한나라당 후보 지지의 신문과 민주당 후보 지지의 신문이 숫자와 영향력에서 비슷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미국은 공화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의 신문들이 숫자와 영향력에서 비슷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다. 그런 균형이 없는 상황에서 공개 지지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는 시기상조"
- 안티조선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을 내 칼럼에 두어 번 썼다. 카오스 이론은 변화무쌍한 구름의 흐름 등 기존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한 것으로, 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작은 나비 하나가 날개를 파닥파닥거린 결과 그로 인해 생긴 공기의 진동이 시간과 거리를 지나 태평양을 건너면서 '폭풍'이 된다는 식이다.
'안티조선운동'도 종래 물리학으로는 게임이 안 되는 얘긴데, 카오스 이론으로만 지금의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다. 처음 네티즌 몇 명이 시작할 때, '조선일보'라는 거대한 바위에 계란치기 같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그 영향력을 지금 우리가 다 알지 않나? 참고로, 안티조선의 홈페이지 '우리모두(www.urimodu.com)'는 내가 매일 들어가는 사이트 중의 하나다."
-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급증했다는 평가가 있다. 영향력을 실감하나?
"실감한다. 사실 작년만 해도 (인터넷 언론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 몰랐다. 노무현 홈페이지의 페이지뷰가 550만이 넘어간다는데, 이거 무서운 거다. 또 인터넷의 특성이 우리 나라 사람들 성미에 얼마나 딱 들어맞나? 미국의 인터넷 신문은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기사들을 훑어보는데 거기서 '디테일'을 자주 찾아낸다.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성장애운동가 최옥란 씨 사건이나 장애자 이동권 문제 등에 대한 사설도 그렇게 나왔다. 또 인터넷 신문에서만 얻을 수 있는 디테일들이 있다. '북파 공작원'들의 도심 시위, 우리는 사진만 실었는데 <오마이뉴스>에서는 거의 실시간 중계하지 않았나? 그런 것은 종이신문에서 다룰 수 없는 영역이다.
인터넷 언론의 수익모델 창출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비자에게는 천국이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지옥인 상황 아닌가? <오마이뉴스>의 경우 최근의 급성장을 감안할 때 기존매체로 치면 수익이 엄청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지 않은가?"
- 한겨레의 자회사인 인터넷 한겨레를 포함해 한겨레도 변화하는 매체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나?
"아직 적자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노풍'이 불기 전에는 인터넷 시장의 크기를 몰랐다. 물론 종이신문의 기능이 나름대로 있다. 그러나 40∼50대는 종이신문을 봐도 젊은 사람들은 신문을 안 본다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는 모든 종이신문이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이제 종이신문에서 '속보경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종이신문은 호흡을 길게 가지고 심층분석, 제대로 된 알찬 기획을 하고, 속보는 이제 인터넷 신문에 내줘야 할 것 같다.
요즘 종이신문에서는 사진 크게 싣고 활자 키우면서 미국의 USA 투데이 같은 '보는 신문'을 지향하는데 이거 문제라고 본다. 이런 식이 되다보니 해설기사로 원고지 10장 이상 쓰던 것이 5장으로 줄고 그러다보니 취재도 5장 분량에 맞추게 되고 생각까지도 5매 분량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독자들이 손해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매수 제한이 없는 인터넷 매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종이신문은 '속보경쟁' 그만두고 '심층분석' 지향해야"
|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 보라고... 이것이 혁명이 아니고 뭐야?"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인터넷 언론의 최대 장점은 독과점 체제를 깨는 개방체제라는 것이다. 사실 한겨레에 있는 '정연주 칼럼'도 솔직히 말해 진입장벽이 있는 독과점 체제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는 누구나 글을 쓰는 개방된 체제를 이루고 잇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매수, 문체의 제한틀을 벗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 봐라. 글도 잘 쓰지만 온갖 논거가 다 들어있지 않은가? 아마 모르긴 해도 조중동도 사설 쓸 때는 쩔쩔 맬게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종이신문들, 몇 시간 후면 TV와 인터넷에 다 뜨는 기사를 놓고 물을 먹었느니(낙종), 특종을 했느니 요란을 떤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의 탐사보도, 장문의 분석 기사를 보라. 두 신문이 해마다 퓰리처상을 싹쓸이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런 역할을 종이신문이 해줘야 한다. '깊이 있는 신문'이 바로 종이신문의 살길이다. 핵심 몇 개 찍어서 도드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당장 종합지로서 독자들의 욕구도 적지 않다. 증권시세표, 프로야구 경기결과 같은 것들에 대한 가독율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늘 고민이 많다."
-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루에 독자들로부터 받는 이메일은 몇 통 정도 되고, 또 주로 어떤 내용들인가?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좋다고 말하는 분들은 주로 내 글이 쉽고, 낙관적이고, 따뜻하다는 평이다. 나는 어려운 글은 악문(惡文)으로 친다. 특히 신문기사는 쉬워야 한다. 또 내 글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은 글이 편협하다, 한쪽 밖에 못 본다, 너무 친DJ적이라고 지적한다. 또 한겨레에 대해서는 왜 얘기하지 않고 조중동만 비판하느냐는 분도 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나를 다듬고 키워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일 평균 20통 내외의 독자메일을 받는다"
"기회 되면 미국연구소 만들고 호흡 긴 글 쓰고 싶어"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나도 이제 형식이나 매수에 구애받지 않는,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미국생활을 한 18년 해서 미국에 대해서는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안다. 그래서 미국에 관한 책을 하나 쓰고 싶은데 도저히 여건이 허락치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대학과 손잡고 미국연구소를 하나 세우고 싶다.
내 관심사는 크게 미국, 북한, 언론 세 키워드로 잡을 수 있다. 내 칼럼 주제의 대부분이 그쪽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그 때문에 편협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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