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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숭리와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문숭리
내 아내도 작가란다. ---------------------------------------------------------------------- 문숭리
지난여름, 30년 문학 열정에 그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는 내 고향 충청도라는 자전적 종합 문집(시, 소설, 수필, 단상. 논문, 후기, 독후감 기타)을 내고 자타가 인정하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전환하고자 사업자 등록을 작가로 신고해 놓고 교보문고에서 책이 팔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책을 팔아서 의식주를 해결할 만큼 그 수입이 미미한지라 최소한의 생계를 위하여 불혹이후 생업이 되어있는 의류 이동판매를 당장 그만두지 못하고 이순이후 내 고향 충청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온전히 정착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10여년 전국을 오고가며 농부들을 상대로 작업복을 팔 것이다.
비록 옷을 팔고는 있지만 금년 가을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이 스스로 이제는 옷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후의 농민소설을 쓰기위한 삶이 목적이고 의류판매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의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필자의 승합차에는 의류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점 에서 팔리는 있는 동일한 책이 실려 있어 직접 농부들에게 판매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나누어 주기도 한다. 책을 구입해 주면 더욱 좋고 아니면 그동안 옷을 많이 팔아준 단골에게는 필자가 쓴 책이라고 그냥 한권쯤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동안은 말로만 소설가였지 어디 당신이 소설가이면 당신이 쓴 책을 한번 내어놓아 보라고 하면 인터넷 홈페이지 말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금년을 계기로 처녀작인 내 고향 충청도를 내고 보란 듯이 내 놓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평택 진위면 동천리에 위치한 어느 농가 오이재배 비닐하우스로 작업복을 팔러 들어갔다. 늘 보아오던 남자 농부가 비닐하우스 수리를 하려고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옷을 사라고 스피커 소리가 나면 그의 아내가 늘 나와 보곤 했는데 조금 기다려도 아니 나오고 그 남자 농부도 오늘은 옷을 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산 옷도 아직 덜 떨어져서 안사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오직 팔고자 했던 것이 옷이 전부였는지라 안 산다고 하는데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기 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옷을 안사면 책이라도 한권 사야 한다고 능청을 떨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듯이 말이다. 그랬다. 늘 보아오던 그 농부 남자에게 옷이 필요 없으면 책이나 한권 사라고 했다.
농부 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옷장사가 갑자기 무슨 책이냐고 반문을 한다.
아저씨! 아저씨가 지금까지는 옷장사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옷장사가 아니고 소설가라면 믿겠소? 하기야 지금 당장은 옷장사가 맞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 옵시다.
당신이 작가라면 내 아내도 작가란다.
작가는 작가끼리 대화가 통할 것이니까 자신의 아내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서 큰 소리로 가지를 따고 있던 자신의 아내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이 불러내느냐고 약간의 투정을 부리면서 나왔다.
그의 남편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나와 보라고 하는 말에 의아한 눈빛으로 하면서 나왔던 것이었다. 보아하니 전에 옷을 팔러왔던 옷 장사 아저씨인데 무슨 특별한 일이냐고~ 오늘은 옷은 안사도 되는데 일없이 바쁜 사람 불러내느냐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 옷 장사 아저씨가 작가라고 하는데 당신도 작가니까 한번 어디 대화를 같이 해 보라고 나오라 하며 당신 책도 한권 보여주란다.
그러더니 정말 늘 가지나 오이, 아니면 호박을 따기만 했던 아줌마가 주거용으로 쓰이는 컨테이너 방으로 들어가서는 책을 한권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2009년 농어촌 여성문학이라는 책이었다. 자신의 글이 책속에 실려 있고(오이를 팔던 날, 유봉희, 상게서 P.195~8. 실제 글은 필자 다음카페 게재-저자에게 직접 양해를 얻었음. 필자 카페회원이 아닌 분들에게는 필자가 속해 있는 카페에 한번 원문을 다시 한번 게재 하겠습니다.) 실제 자신이 농민 여성수필가란다. 그리고는 자신의 글이 있는 페이지를 열어서 보이고는 자신의 이름이며 자신이 쓴 글이라고 일러준다.
사실이었다. 그동안 십여 년 오고가면서 옷을 사준 이 아줌마가 농사를 지으면서 문학 활동 을 하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몰랐다. 물론 모르기는 그 아줌마도 이 옷장사가 젊어서는 법대를 중년에는 문학을 전공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기는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 아줌마와 필자는 옷을 팔고 사는 일 말고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줌마 남편에게 옷 대신 책을 한권 팔아보고자 했는데 그의 남편은 책과는 거리가 멀고 자신의 아내가 책이라면 이야기가 될 것이니까 아내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는 것은 그렇고 당신 책이라 맞바꾸면 되겠네 하고 바둑 장기처럼 훈수를 두는 것이었다. 그러마했다. 서로가 이렇게 들판 한가운데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인연이니 값을 떠나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러마했다. 그리고는 그 책도 농민 여 성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담아낸 소재들이라 전국의 농민들의 심정을 글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는 좋은 소재이기에 거절할 수 없는 좋은 거래였다. 필자가 느끼는 농민들의 농사에 대한 심정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직접 쓴 것이기에 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농민문학이자 소재이기에 농민소설을 추구하는 필자에게는 황금을 한 덩어리 얻는 격이나 더할 나위 없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는 그 남자가 필자에게 나이를 물었다. 58년 개띠라고 하니 그는 57년 닭띠, 그리고 그 농부의 아내는 책에 나와 있는 그녀의 글 밑에 이름과 나이 연락처에서 59년 돼지띠였다.(유 봉희, 59년 용인출생, 오이하우스 농장 경영, 농가주부모임 전통음식 보유자) 그 농부 남자는 유머가 있었다.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해 보라는 것이었다. 못할 것도... 한 살이 많아도 형님이니까~ 형님! 그러면 내가 그의 아우가 되고 그 농부의 아내에게는 오빠가 되는 것일 세~ 하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사실 그대로 이니까 말이다.
그의 농부 아내는 안사도 된다는 옷을 자신의 것과 남편의 것을 합쳐 2만원어치를 사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개시라는 것이었다. 농사꾼 아줌마 작가를 직접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옷도 팔고 더불어 지난해 책과 더불어 필자는 한권을 주고 두 권을 받았으니 대 횡재를 한 셈 이 아닌가?
그러다가 농부 남자가 필자의 차 안을 들여다보다 악보와 하모니카를 보더니만 자신은 기타를 좀 칠 줄 안다면서 하모니카를 비용 안들이고 배우는 곳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있다 말고요~ 필자는 연습장 노트를 한 장 확! 뜯어서 다음카페 하모사랑 이라고 적어주고는 그동안 잘 안 불던 하모니카 두 개를 꺼내서 주었다.
필자 자신은 아직 오십을 넘기면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고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 하모니카를 불기는 불었지만 따스한 물어 담가서 소독을 해서 쓰면 훌륭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랬다. 그 아무도 서로가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 한 서로가 작가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한 사람은 옷장사요, 한 사람은 그저 농사꾼 아내일 뿐!
필자는 농담 삼아 그 남자에게 앞으로 아줌마에게 더 잘 하라고 했다. 작가 아내와 누구나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라고... 그 농부 남자도 그 말이 싫지는 않았나 보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아내가 작가라는 것을 은근히 내 세우려고 초장부터 책 이야기가 나오자 말자 물 만난 고기처럼 아내를 불러 세웠던 그였다.
그 남자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일만 하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보다는 그래도 문학 강좌도 종종 들으러 가고 저녁에는 어쩌다 글도 쓰고, 일 년에 한 번씩은 문학캠프 참가를 떠나는 아내 가 자랑스러웠던 것이었다.
두 자녀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 자녀들도 그럴 것이다. 그 농부 아줌마가 어디까지 배움의 기회를 가졌는지는 잘 모르나 졸업장을 떠나서 문학에 열정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엄마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육신은 힘들고 지쳐있을지라도 그것을 글을 통하여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세상 누구에겐가 내 보이면서 농사도 열심히 하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애써 보여주려는 그 아줌마에게 찬사를 보낸다. (2009.10.28. 평택 송탄 어느 사우나 찜질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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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그의 남편은 그 마을 동천리 작목반장을 맡고 있었고 그들 부부가 경영하는 농장명은 한길농장이며 계절에 따라 오이, 가지, 토마토, 고추 등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농협을 통해 가락동 농산물 시장으로 보내서 위탁판매를 하고 있다. 아울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한, 두 가정이 나누어서 소비를 하면 대도시에서 소비자 가격보다는 50% 정도 수준에 택배비만 부담하면 현지 신토불이 농산물을 먹을 수 있고 또한 농어촌 살리기에 당신도 힘이 보태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중간 유통업자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굳이 직접 구매를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마는 할 수 없지만은 중간상인들이 저렴한 외국산을 들여다가 신토불이라고 속여서 먹을거리를 속여서 파는 일이 비일비재 하는 지라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한길농원 : 경기 평택 031) 664-5988. HP : 016-777-5988) |
첫댓글 이동근 선배님 잘 읽었습니다.아름답고 재미있고 감동적입니다.추운 날씨 건강과 큰 발전을 바랍니다.^^
늘 건강에 유의하시고요. 방송대에 연배이신 조 후배님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감사하고 잇습니다. 저는 방송대가 두 번째 대학이지만 젊어서 나온 대학보다 더 정이 가고 어디를 가도 방송대를 졸업했다고 할 만큼 제 생에 많은 전화점을 가져다 준 대학인지라 후배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움츠러 들었는데 선배님의 글이 가슴을 다시 펴게 만드네요. 따뜻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통문제에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세상사 안되는 일도 있구료. 이제 마지막 학기 유종의 미를 잘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내년 졸업식에는 꽃다발 사들고 찾아 뵈오리다. 감사!
선배님~잘 지내시지요. 정겨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하고요. 늘 늠늠한 김윤제 회장을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별을 네개 정도는 달 장군감인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역시나 유종의 미를 잘 거두시고 내년에는 동문으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감사!
참 재밌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농민소설이랍니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은 없지만 영리적인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이 시대에 농민소설도 쓰는 소설가도 한명쯤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말입니다. 7권 출판 예정에 이제 한권 나왔고 앞으로 6권이 더 나와야 하는데 7번째까 화룡점정이 될 진짜 농민소설이랍니다. 농민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주고 싶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